여름의 絶頂에서

1

7월의 마지막 날, 분명 盛夏다. 

숲 속 산책길에 떨어진 샛노란 단풍잎 하나  

내 발걸음을 멈춘다. 조심스레 손에 집어 들었다.  

따뜻한 생명의 온기가 손끝을 적신다.  

"살아있구나?" 코끝에 댔다. 

"아, 이 상큼한 가을내음 !" 

가을은 盛夏에서,

衰退는 絶頂에서부터 시작된다. 

생명은 손끝 온기에서 시작되어

코끝 향기로 사라진다.  

코는 얼굴의 絶頂이다.  

한 나뭇잎의 추락으로

여름의 쇠퇴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 쇠퇴는 계절의 沒落도,

계절의 죽음도 아니다.

가을의 잉태를 위한 자기 비움이다. 

2

며칠 전에 아들 제임스가 대학졸업 후

첫 직장을 시작했다.

"아빠 갔다 올게" 하는 서투른 한국어로

작별인사를 남기고. 빨간 스포츠카 도

눈에 띄지 않는다.  

남기고 간 마음 속 빈자리, 마냥 서럽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일까?  

헤어지는 연습을 하고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고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조병화 시에서) 

아니다. 제임스도 여름도 떠나가는 것이 아니다.

마음 속 빈자리로 남아있는 것이다.

사랑은 빈 마음으로만 서로 만날 수 있는 거야. 

천사들처럼 가벼워야 하늘을 훨훨 날아  

찾아갈 수 있거든.  

사랑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