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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 장로, 감독 직분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2)- 교회 직분의 기원 -
김택규  |  petertk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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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7월 30일 (화) 00:36:15
최종편집 : 2017년 11월 11일 (토) 21:04:15 [조회수 : 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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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교회에서 시작된 ‘장로’(πρεσβυτερος) 직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으로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가 어떤 형태의 조직과 직분제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사도행전은 오순절 사건 이후, 믿는자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날마다 모이고, 떡을 떼면서, 그 수가 점점 늘어났다’고 전하고 있다.(행2:42-47) 따라서 그렇게 자라가고 있는 ‘모임체’를 이끌어갈 지도체계나 직분의 필요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처음에는 ‘12사도’들이 단독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고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지도하는 ‘리더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 사도들을 도와 일할 ‘일곱’명의 봉사자들이 선출 되었다. 하지만 그 ‘일곱’은 ‘임시적’인 직분이었지 항구적인 교회 직분으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후에 그 ‘일곱’중에 하나인 빌립이 사마리아 등에서 활동한 것을 보면, 스데반의 순교후에 그 ‘일곱’직분은 흩어지거나 해산된 것으로 본다.

한데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항상 머물러 있을 수 만은 없었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예수께로부터 받은 천국복음 전파였으므로, 사도들은 항상 여러 지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자연히 교회에 정착하여 교회를 다스릴 고정된 ‘직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는 당시 이스라엘 커뮤니티에 있었던 ‘장로’제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유대인들의 커뮤니티에는 ‘장로들의 회’가 있었다.

회당에서 장로들은 예배 인도자는 아니지만, 행정 및 재판과 체벌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던 산헤드린 공회는 의장인 대제사장을 제외하고 70명의 장로들로 구성이 되었다. 그것은 모세의 ‘70인 장로’(민 11;16-25, 출24:1)전통에 그 유래가 있다. 물론 형태나 기능에서는 같지 않지만,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일부 유대 커뮤니티의 제도를 따른 것은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장로제가 언제 시작이 되었는지, 또한 어떤 절차로 ‘장로’를 세웠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마 처음에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흔히 그랬듯이, 교회에서도 연령과 신앙이 높고, 존경받는 ‘연장자’를 장로라는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것은 처음에는 유대사회에 흔히 있었던 제비뽑기나 무슨 선출 과정을 통해서 임직된 직분은 아니었던것 같다.

하지만, 사도행전 및 바울의 서신에서, 그것이 정확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40(AD) 년대에 교회의 행정적인 일을 담당하고,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임무를 가진 ‘장로’직분이 예루살렘교회에서 시작된것은 분명하다.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장로들에게 목회적 책임은 없었던 것 같다.

바울이 회심 후, 처음 예루살렘을 방문했을때(AD37-40경) 거기에는 ‘사도’들만 있었고 ‘장로’란 직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행9:26-30, 갈1:18-19). 그런데 그후 안디옥 교회가 구제금을 모금하여 보낼때, 바나바와 바울이 그 구제금을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전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행11:29-30).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때에도(행21:17) 거기에 야고보와 ‘장로’들이 등장하고 있다.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조직 운영 체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단서 하나를 사도행전 15장에서 찾을수 있다. 안디옥교회에서 이방인신자들의 할례문제로 논쟁이 발생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 등을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보냈을 때, 거기 ‘사도와 장로’들이 있어서 그들의 영접을 받았다. 곧이어 ‘사도와 장로’들로 구성된 ‘교회 총회’가 공식적으로 모여, 토론 끝에 해결책을 결정했다.(행15:1-21). 이것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에 있었던 ‘공의회’(Council)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보면 예루살렘교회에서, 그때 교회운영에 있어서 어떤 중요한 사안이 생겼을때, 사도와 장로들이 함께 모여 의론하며 결정을 하는 ‘협의체’ 혹은 ‘자문회의’ 같은 것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회의에서 야고보가 의장의 위치에 있었는데 물론 그도 ‘장로’였을 것이다. 그때 예루살렘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모교회로서, 사도들과 장로들의 지도아래, 다른 지방의 신생교회들을 지도하고 지원하는 ‘우위적’ 위치에 있었음이 분명하다.(행8:14, 11:22, 15:22등 참조)

이와같이 예루살렘교회에 시작된 ‘장로’직분은, 그 후에 나타나게 되는 바울의 이방교회에서의 ‘장로직분같은 목회자는 아니었다. 유대인 회당에서와 같이 교회 운영에 중요한 사항등을 협의하고 결정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한데 사도행전은 ’일곱 사역자‘ 선출 과정은 자세히 기록하면서, ‘장로’에 대한 선출이나 역할, 기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또 ‘일곱’의 이름이나, 혹은 여러 사역자들의 이름들이 거론되면서도, 장로 직에 있던 사람의 이름은 전혀 없다. 이런점을 유추해 본다면, 예루살렘교회에서의 ‘장로’직은 어떤 행정적 ‘파워’를 가진 교회의 ‘공식적인 직분’이 아니고, 다만 그때 교회 안에 있던 '어르신‘들을 그렇게 부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교회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중요 위치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예루살렘교회에서, 야고보와 관련하여,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찾아볼 필요가 있다. 즉 야고보의 교회 내에서의 특별한 위치이다. 갈라디아서에 언급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기사가 누가의 기록(사도행전)어느 부분과 일치되는지는 논란이 많고, 또 서로 모순되는 부분들이 있지만, 바울 자신이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거짓말이 아닙니다’(갈 1:20)라고 말한것처럼, 바울의 보고에 신빙성을 둔다면, 예루살렘교회에서 ‘야고보’는 예수의 형제로서 특별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첫 번 방문때 바울은 다른 사도들은 보지 못하고 베드로와 야고보만 만났다고 말하고 있다.(갈1:18-19). 한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울이 야고보를 ‘사도’와 같은 반열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1)


갈라디아서에 기록된 ‘14년후’(갈 2:1), 두 번째로 보이는 예루살렘

방문 보고에서,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유명한자들’ 및 ‘교회의 기둥’으로, 야고보, 게바, 요한을 언급하고 있다.(갈2:6-9). 특히 그 ‘기둥’명단 순서에서 야고보를 제일 첫 번째 자리에 두고 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사도들은 때때로 순회전도차 외부로 나가는 일이 많므로, 야고보가 항상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교회를 지키는 실제적 예루살렘교회의 ’수장‘노릇을 한 것임이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야고보 당시에는 아직 ‘감독’이란 직분이 등장하지 않았고, 그래서 야고보는 ‘감독’이라 불린 적은 없지만, 그의 예루살렘교회에서의 ‘수위적’(primus inter pares)위치나 직무를 보면, 그는 그 당시, 하나의 예루살렘 지역 ‘주재감독’(Resident Bishop)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바울의 선교교회에서의 ‘장로’(πρεσβυτερος) 직분

스스로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하는(갈2:8) 바울은 열정적으로 각 지역에 다니며 교회들을 세워 나갔다. 자연히 그 공동체들을 이끌어 갈 지도자들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우선 그가 세운 교회들을 위해, 각 교회에 ‘장로’들을 택하여 세웠다.(행14:23)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누가의 기록이 사실이라고 하면, 바울이 선교여행시 처음 장로들을 임명했는데, 과연 새로 시작한 지역의 개체교회내에 자도자적 위치에서 ‘사역’을 담당할만한 일꾼들이 있었겠느냐는 것 이다. 그래서 선교 현지에서 발탁하여 임명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교회에 있었던 장로들을 초청해 와서 임명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하지만 누가의 보고에서 회중이 함께 ‘금식과 기도하며’ 장로들을 선택한 것을 보면, 바울이 세운 지역, 개 교회의 신자들 가운데서 신실한 사람들을 택하여 세운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의 임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때 바울의 교회에서 ‘장로’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신약에서 ‘장로’에 관련하여 언급된 내용들을 볼때, 바울의 선교교회에서는, 장로들이 새로 세워진 신앙 공동체를 이끌며 말씀 사역 등 일종의 ‘목회적 사역’을 한 것으로 본다.(행20:27-32, 딤전5:17-18, 딛1:5 등 참조)

한데 바울의 편지들에는, 목회서신(2)을 제외하고 10개 서신에서, ‘장로’(πρεσβυτερος)에 대한 언급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해서 그의 선교초기에는 바울이 각교회에 장로들을 정규적으로 임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누가의 제3차 바울 전도 여행 기록(AD 약 54-58년경)에 의하면 그때 이미 에베소에 여러명의 ‘장로’ 사역자들이 존재해 있었던 것을 보면(행20:17), 바울은 선교지마다 교회를 조직하고 장로들을 세웠음이 확실하다.

바울의 서신에서 장로라는 직분명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10개 서신), ‘장로’직을 암시하는 내용들은 여러곳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그의 편지들에서, ‘함께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순종하라’(고전16:16), 혹은 “여러분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이들을 극진히 존경하라”(살전 5:12-13)고 말한 그 대상은 그때 교회를 지도하고 있던 ‘장로’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직분과 은사를 열거한 곳에서도 ‘관리하는 일’(administration, 고후12:28), ‘지도하는 일’(leadership, 롬12:8)의 은사는, 장로와 관련된 업무를 지칭한 것으로 볼수 있다.

바울의 대부분 편지에서 ‘장로’직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초대교회가 조직이나 직분이 분명하게 정착되어 있지 않았고 ‘직제’보다 ‘은사’에 치중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것이다. 또한 처음 바울은 그가 세운 각 지역 교회에, 필요에 의해서, 유대 커뮤니티 전통인 ‘장로’라는 호칭으로 ‘지도자’들을 임명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용어가 이방교회의 지도자 호칭으로 적당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 직명 사용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바울의 선교 교회에서는 ‘장로’대신에 다른 용어의 직분 명칭이, 후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주(1). Jerome (De uiris illustribus, 2) 에 의하면, ‘히브리인의 복음’에 “주께서 세마포를 제사장의종에게 준 후에, 야고보에게 갔으며 그에게 나타나셨다.”는 기록이 있다. 부활하신 예수의 만남은 ‘사도’됨의 한 조건인데, 고전 15장에 나오는 명단 중에 야고보의 이름이 나와 있다(고전15:7).


주(2). 목회서신의 저자를 바울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이 전통적이나, 문체, 신학, 서신이 보여주는 그때의 상황 등을 살펴 볼 때 바울의 작품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 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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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109.98.59)
2013-07-31 10:43:43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으로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가 어떤 형태의 조직과 직분제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사도행전은 오순절 사건 이후, 믿는자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날마다 모이고, 떡을 떼면서, 그 수가 점점 늘어났다’고 전하고 있다.(행2:42-47)

하나님은 왕이시고 성령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제사장이기 때문에 조직이 따로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도들과 직접 교제하시고 명령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조직이 필요없습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조직은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천주교나 필요하지
개혁교회에서는 필요하지 않다고,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조직을 원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인간의 조직을 원하는 자들은
니골라당(성직자계급)인 교황, 신부, 사제, 목사, 이민희와 같은 부류입니다.
왜냐하면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성도들은 오직 중보자이신 예수님으로 하나님과 접속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연결에 성직자계급이 필요없습니다.

김택규 형제님께서 말씀하신
"따라서 그렇게 자라가고 있는 ‘모임체’를 이끌어갈 지도체계나 직분의 필요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라는 이 말은

지도체계나 직분의 필요성에 따른 권위의 계급을 만드는 아니라

일의 효율성을 위한 은사의 분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도의 몸은 성전이며 지성소에는 성령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성도 각각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데
인간들이 만든 조직은 필요없습니다.

'바로 그분이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선물을 은총으로 주셔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예언하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들은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10절, 공동번역)'

인간이 만든 조직에는 교황, 사제, 신부, 목사 등등의 성직자계급이 필요하겠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왕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 만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을 성도들은 성경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리플달기
17 26
BPARK7 (72.196.234.24)
2013-07-30 14:32:20
유익한 성경지식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조직이 있는 곳에 직책은 필요하지요.
다만 직책은 시대에 따라서
그 역활과 기능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리플달기
18 25

김택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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