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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없는 주일예배’ 로의 예배 갱신, 가능할까요? (예배갱신 2)- ‘연설’(rhetoric) 적 전달 방식, 여전히 유효한가? -
김택규  |  petertk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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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7월 07일 (일) 01:04:39
최종편집 : 2017년 11월 11일 (토) 21:03:27 [조회수 : 6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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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갱신 2 :‘설교없는 주일예배’ 로의 예배 갱신, 가능할까요?


- ‘연설’(rhetoric) 적 전달 방식, 여전히 유효한가? -


지금 우리는 너무도 급격하게 변천되어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연 교회에서, 종교개혁 이후 500년간 계속되어 온, 낡은 방식인, ‘말로 하는’ 연설식 (rhetoric)전달 방법이 아직도 과연 효과적일까? 교회를 사랑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것이다.

1. 미국 감리교회에서 ‘속회’제도가 사라진 이유?

감리교회 제도에서, 웨슬리 때부터 있었던 중요한 ‘감리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속회’(Class)였다. 한데 웨슬리가 직접 파송한 전도자들에 의해 세워진 미국 감리교회는 이제 속회 제도가 없다. 한국 감리교회 목사님들은 ‘속회 없는 감리교회 있을수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한국 감리교회의 모교회인 미국 감리교회에서 속회제도가 사라진지 벌서 오래다.

그 이유는 더 이상 속회가 교인 훈련이나 교육을 위한 ‘방법’으로서의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속회 모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과거 단순하던 사회 시대 때는, 저녁에 별로 갈 데가 없던 시절이라 이웃 가정에서 모이는 속회 모임을 사람들이 가기 좋아했다. 그러나 점점 사람들은 저녁시간에 재미있는 것으로 붙잡아두는 매체들(TV 등)이 늘어나고, 혹은 유익한 많은 모임들이 생겨나게 되자, 속회 모이기를 좋아하지 않게 되어 속회는 자연히 소멸되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이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고 유익하던 제도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하게 되는 것이다.

‘높은 위치’에서 일방적으로, ‘연설식’으로 전달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다. 정치인들이 아직도 그런 방법을 일부 사용하고 있으나 이제 거리 연설 유세같은것은 사라졌고, 연설보다 소외계층을 찾아가 봉사하는등 ‘이미지’ 혹은 ‘행동’ 정치로 변신되었다.


2. 시대적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불과 반세기 전쯤의 인류가 상상할수도 없었던 놀라운 변화(change)가 매일 폭발되고 있다. S.N.S.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한 커뮤니티 안에서 연결되고, 개인들은 그런 연결을 통해 ‘1인 커뮤니티’를 현성한다. 인터넷의 Wi-Fi 서비스 확장은 이제 어디서나 어떤 정보던지 다 접속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이런 I.T.의 발전은 교회생활, 신앙생황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아직도 부흥사 중에 “주일이 되면 성경 툭툭 (먼지)털어 들고 교회간다”는 말 하는 분이 있는데, 이제는 성경찬송 들고 다니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스마트 폰에 저장된것을 열어보면 된다.

성경공부, 신학적 해석, ‘설교’ ‘좋은 말씀, ’유익한 말씀‘ 등 등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섭렵할수 있다. 그래서 이제 오늘날의 평신도들은 더 이상 목사보다 성경 지식이나 신학적 이해 혹은 교회 생활 등에서 뒤떨어지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은 분들이 많다. 내가 아는 교수님 한분은 (그는 공과대학 교수인데도) 온라인으로 신학공부를 마치고, 그의 학교에서 영어로 성경공부 클래스를 특별활동으로 인도하고 있다.

인터넷 설교뱅크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면 유명 목사님들의 좋은 말씀을 얼마든지 볼수 있다. C.T.S. 화면에서는 거의 하루종일 목사님들의 설교가 방영되고 있다. 나이많은 권사님들까지도 이제는 유명 목사님들의 설교에 ‘귀가 높아져’ 담임목사의 설교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젊은이들이 점점 교회를 떠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잇겠지만, 설교듣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다. 한국교회도 이대로 가다간 앞으로 유럽교회들처럼 텅텅 비게되는 시절이 올지도 모른다. 교회는 지금까지 몇 백년동안 하던 방식을 고집하고만 있어서는 안될것이다. 무언가 패러다임 변경이 필요하다.


3. 떼제 공동체 예배

프랑스에 있는 ‘떼제 공동체’(The Taize Community)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것이다. 어떤 주간에는 전세계에서 6천명이 모여들기도 한다. 그런데 거기에서의 예배에는 ‘설교’나 ‘강론’이 없다. 정말 은혜로운 찬송, 침묵 기도, 성경말씀, 고요한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 정말 ‘영성’이 충만한 ‘신령과 진정의’ 예배다. 물론 떼제 공동체는 수도원이기 때문에, 일반 교회 예배와는 다르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왜 거기에 매주간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드는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4. 실제적 제안

일반 교회, 주일 예배에서도, ‘설교없는’ 이런 ‘영적’인 예배를 시도해 볼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설교’가 완전히 필요없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집회’에서는 설교는 여전히 유효하다. 부흥회, 빌리그레이엄 전도대회, TD 제이크스의 ‘메가 페스트’ 같은 ‘특별집회’에서는 여전히 설교는 파워풀한 전달 수단이다(물론 ‘영상’ 등이 같이 일한다.) 하나 개교회의 주일예배는 ‘예식적’(liturgical) 순서를 무시하지 않는 영적 예배가 되어야 한다. ‘집회식’ 순서의 예배가 되어서는 안된다. ‘리터지’(liturgy)에 충실하면서 설교없는 예배를 시도해 볼수 있지 않을까?

물론 예배에서 ‘말씀’을 배제하라는 말이 아니다. ‘말’로만 하는 ‘전달 수단’을 바꾸라는 말이다. ‘하나님 말씀, 진리’는 변해서는 안되지만, ‘전달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 여전히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령하게, 효과적 방법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제1부 예배나 어떤 다른 시간 대의 예배를 ‘설교없는 예배’로 시작해보는것도 좋을것이다. (대신 은혜로운 성경 낭독이 ‘말씀’ 순서가 되어야 할것이다.) 그리고 ‘성경공부’는, 소그룹 클래스를 통해서 체계적으로, 지속적으로 성도의 신앙 성장을 위한 ‘말씀’ 사역으로 힘써지는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설교를 통해서 사람이 변화되던 ‘기대’의 시대는 지났다. 오죽하면 어떤 유명한 부흥사가 “내가 평생 설교해 오지만 설교를 통해 변화되는 사람 못 보았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변하기로 했다.”라는 고백의 말을 했겠는가?

5. 나가는 말- ‘영성의 예배’로의 갱신

워싱턴 DC의 유명한 감리교 영성운동가 Dr. Gerald G. May (Pilgrimage Home 의 저자)가 그의 책에서 이런 고백을 했다. (그는 의사이며 평신도이다.) “매주일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평신도 지도자로 봉사하고, 집으로 올 때마다, 나는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무언가 빠진 것 같은 (something missing)느낌을 가지곤 했다. 무엇일까? 결국 그것은 ‘영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대인들은 '영성’에 목말라 있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예배에서는 깊은 영성은 없고, 귀청을 때리는, 여러 악기를 동원한 ‘찬양팀이 인도하는 요란한(?) 찬양시간’,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같이 외처대는 통성기도, 그리고 또 장시간의 현란한 수식어, 개그 같은 표현이 춤추는 장시간의 외치는 설교, 등이 대세다. 과연 그런 순서를 통해서 정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세미한 소리’가운데 들려졌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는가? 시끄러운 ‘소음’ 가운데 피곤하게 사는 현대인들은 또 교회에 와서, 역시 ‘noisy' 한(시끄럽고 떠들썩한)순서들을 통해서 ’평안‘이 아니라, 어떤 ’피곤‘이 더해지는 것은 아닐까? 현대인이 목말라 하는 ’신령한‘ 예배로의 갱신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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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 (112.187.27.99)
2013-07-08 06:24:15
제목만큼 기대되는 내용은 아니네요
제목만큼 기대되거나 파격적인 내용은 아니네요

아직 갈길이 멀었나 봅니다.

필자가 말하는 신령한 예배가 뭔지 모르겠다는...

조용한 예배만 신령한 예배? 시끄런 예배엔 신령한 예배가 될수 없나요? 어짜피 말장난 사설이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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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JD (72.234.181.31)
2014-07-24 12:37:52
글세올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씀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일뿐. 세상 따라 가다 망한 유럽 더 빨리 닮아가라고 부추키는 사람아! 혼자 죽음의 길로 가시던지 왜 다른 사람들은 끌고 가려고 안달을 하는지 한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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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지리산 (182.213.69.214)
2013-07-26 08:23:24
공감합니다.
이제 말이 아닌 삶으로 설교할 때입니다.
하지만 예배 시간이 있으니 말씀 증언이 있어야 하고 설교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현장 증언이나 시대 증언을 넣을 수 있으면 어떨까요?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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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ㅅㄴ승ㄺ (175.206.24.134)
2013-07-15 20:42:34
참.... 답답합니다. 아예 교회를 다니지 마시지요...그 시간에 예수 이름으로 사회 봉사를 하시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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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샬롬 (118.36.202.174)
2013-07-12 14:45:55
혼미한 영성은 감성을 영성으로 착각
내용은 프리메이슨 프로그램에 깊이 빠진것 같군요

영혼을 살리는 신령한 성경을 덮어 놓고 감성에 빠져 공중권세

잡은 자의 소리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한

유혹에 빠져 죽자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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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
죽어야 삶니다 (222.113.255.5)
2013-07-10 14:55:26
예배는 어차피 제도화된 형식과 절차에 의하여 들여진다 유럽이나 미주에서 속회가 폐지되어가고 있다고 설교가 폐하는것이 예배일까? 하는 문제를 제기 하는 김택규 목사님의 칼럼을 읽고 신학을 가르치는 고명하신 목사님으로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을 들어내고자 하는 학문의 토론도 아니고 자기과시도 아닌 파격적이고 신앙원리도 아니고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알지 못하겠네요 문제 제기를 하면서 해결방법도 제시하지못하는 그런칼럼은 신령한 예배는 어떻게 하여야 신령하고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예배일까요 말장난 그만하시고 죽으십시요 아직도 당신의 철학이 살아살아 있기에 死則生의 원리를 아시고 사십시요 아직도 죽지않고 살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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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지나다가 (121.141.106.8)
2013-07-09 13:08:36
^^
한 사람의 주장...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들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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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최목사 (58.236.251.98)
2013-07-09 11:29:28
대안적 예배로는 뭔가 부족해보입니다.
1. 필자가 말하는 "영성"이란 무엇인지 정의부터 내려 주세요.
2. 속회와 말씀중심 예배와의 연계성을 좀 더 설득력있게 서술했으면 합니다.
3. 설교없는 예배의 가능성도 열어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떼제 예배에 많은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듭니다. 그러나, 매주 똑같은 젊은이들이 모이지는 않아요. 일탈의 영성이라 해도 좋을까요?
5. 신령한 예배란 무엇인지 이야기해주세요.
6. 조용함의 영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같아 보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조용함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적 요구라 생각하는 것은 개인적 영성을 시대에 강요하는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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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Philip Im (70.62.49.64)
2013-07-09 03:06:47
저 또한
"오늘날, 개신교예배에서는 깊은 영성은 없고, 귀청을 때리는, 여러 악기를 동원한 ‘찬양팀이 인도하는 요란한(?) 찬양시간’,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같이 외처대는 통성기도, 그리고 또 장시간의 현란한 수식어, 개그 같은 표현이 춤추는 장시간의 외치는 설교, 등이 대세다."라는 말씀에 동의하고 예배의 모습이 어떠하여야 하는지 고민도 했습니다.

결론은 성도 각자가 '중심에 불타는 듯한 심령으로' '하나님께만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모여 예배드릴 때 각자의 성향이 다르므로
모두를 만족시킬 예배의 형식적 모습은 없다고 봅니다.
어떤 이는 두 손 들고 눈물 흘리며 찬양하기를 좋아하고
어떤 이는 손뼉을 치면서 찬양하며
그런 와중에 어떤 이는 조용히 눈을 감고 찬양을 드립니다.

'속회'가 없어진 이유를 제시하시면서 예배가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저녁 시간 유익(?)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 모이기 힘들어 없어졌다면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하여 모일 수 있도록 하자는 결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 그 방법을 모색하여 나온 것들이 위에서 지적하신 잘못된 예배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릴 때 사람들의 재미를 충족하여 많이 모이게 한다면 예배드리는 본질에서 어긋난다고 봅니다.

'떼제'공동체를 말씀하셨는데 어느 신문의 기사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모이는 그들의 대부분은 구속받기를 싫어하는 즉 자기 마음대로 예배(?)랍시고 드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배(?) 시간 내내 키스만 하는 커플도 있더군요.
제가 한 면만 부각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외 여러 모습들을 보면서 '뉴에이지'의 냄새가 난다면 저의 과민 반응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모습이 그런가 의심스럽습니다. 더불어 '거룩'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곳' 혹은 '저곳'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어떻게'의 외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중요합니다.
그것에는 반드시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전제합니다.
기독교가 타 종교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그 말씀을 묵상하든 남에게 가르치든 대중을 상대로 설교를 하든 그 방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 개인이면 상관 없지만 교회 공동체의 모임에서는 반드시 회중을 향한 말씀 선포가 있어야 합니다.

글 가운데 말씀 선포의 형태를 바꾸었으면 하시지만 제목이나 글 전체의 맥락을 짚어보면 말씀 선포을 없앴으면 하는 의도가 보입니다.

사람을 교회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이 교회로 모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설교답지 않은 시사 교양적이거나 개그 수준의 말씀(?)을 전하는 분들에 대해서는 바른 말씀을 선포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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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외침이 (125.129.16.124)
2013-07-08 19:41:00
외치는 소리
세례요한 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목소리가되어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설교를 설교라 하지 말고 주님의 목소리라고 하십시오
주님의 목소리가 없는 예배가 참 예배일까?
"너희는 내앞에서 말씀듣기 원하노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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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김성주 (220.79.149.230)
2013-07-08 09:30:30
대부분의 설교는...
대부분의 설교는 거의 한두 문장으로 요약 가능합니다.
거기에 온갖 예화와 비유와 잡담 등을 버무려 1시간 넘게 뻥튀기한게 설교죠.
그러게 성도들을 수면상태로 몰아갑니다.
그리고 보통 그런 설교문은 자기 것도 아니고 부목사가 대신 준비합니다.
말하는 자도 관심이 없고, 듣는 자도 관심이 없는 죽은 설교에 예배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하는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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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08 03:18:33
김택규님,
듣기에는 그럴듯한 말이지만요, 교회에서 설교가 빠지면 기성 기독교는 교리 자체가 무너진다는 것을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네요. 기독교 자체가 제도적인 구조나 예전을 만들 때에 그 근거를 자신들의 성경해석에 두고 있는데 설교를 빼버린 예배라는 것 자체가 당신들의 신학적 교리에 도전하겠다는 말이에요.

사람들에게 진보적이고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자기 살 뜯어먹기랍니다. 성경에는 원래 교리니 신학이니 예전이니 그리고 형식적인 예배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요.

예수는 그저 인간이 가야할 도리를 가르치려한 것 뿐이고요.
그것을 가지고 종교를 만들어 욕망의 도구로 만든 게 기독교지요.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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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2
Pastor Lim (125.132.245.133)
2013-07-07 15:00:29
영과 진리의 예배
필자는 "떼제예배가 ‘신령과 진정의’ 예배다."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어떤점이 정말 그러한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영과 진리의 예배'인지 정확한 진단이 없다. Nonverbal 예배이든 오감을 통한 예배이든 중요한것은 영과 진리의 예배이다. Form이 본질을 위해 봉사할때 큰 가치가 있다.
영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인간의 영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뜻이다.
우리가 영으로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인간의 본성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육신(肉身)으로 예배를 드린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하기만 하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물가의 여인은 예루살렘 성전이나 그리심 산상에 있는 사마리아인의 전에 가는 것이 곧 예배라고 생각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혼(魂)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우리의 혼은 감정이 위치하는 자리이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에 때때로 감정이 고무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감정이 격해져 눈물이 흐르거나, 기쁨에 넘쳐 감격에 젖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만한 것인가를 묻는다면 언제나 그렇지 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의 본성과 흡사한 인간의 영으로 예배해야 한다.
우리가 영으로 예배드리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기 위하여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들어 오셔야 한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을 자극해 주시고, 동기를 부여해 주시며,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감격에 넘칠 수 있도록 열어주시기 전에는 우리는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
예배는 하나님의 진리로 새롭게 된 마음의 분출이다. 이 진리란 무엇일까? 이 진리는 곧 아버지의 말씀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절17절에서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이렇게 우리가 진리로 예배 드려야 하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을 기반으로 해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즉 우리는 성경의 계시를 근거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분께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곧 길이요, 진리(αληθεια)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6절)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나의 욕망과 정욕과 탐심을 버리고 예수님을 나의 중심 곧 예수님의 제자된 자로 예배에 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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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08 03:13:00
아~~~~~
문자주의가 여기서도 극성이네

오직 예수?

웃기지 마세요.

예수는 '주여주여 하는 자' 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분명히 말했죠.

기독교의 대속론은 성경에도 없는 교리라고요.

오직 예수? 정말 웃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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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3
아비 (119.192.81.7)
2013-07-11 09:32:21
아직 예수님을 못 만나셨군요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음성을 들으시길...
아직 예수님을 못 만나셨군요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음성을 들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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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11 13:25:48
놀고있다. 예수를 만나? 정말 웃긴다.
말로만 그럴듯한 소리하는 게독들 보면 가관이다. 그냥 바르게만 살아라. 그럼 정색하고 제대로 예의를 차려서 바른 소리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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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7
ㅅㅅㅅㅅㅅ (175.206.24.134)
2013-07-15 20:45:24
만나보시고도 그런 소리가 나올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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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포이멘 (183.109.98.59)
2013-07-07 08:12:31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감리교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같은 지역의 이웃들과 생활속에서 함께하는 속회가 아닌지요?

성령안에서 성도된 우리들은 지역안에서 작은 공동체를 세워야 합니다.
감리교에서 남자 권사제도가 시작된 유래가 이 때문이 아닌지요?
서로 삶속에서 음식도 나누어먹고 서로 자랑하지 않으며
존재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임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신앙고백의 장소가 되는 작은 공동체가 감리교의 자랑인 속회라고 생각합니다.이 신앙고백이 바로 설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목사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은사가 아니라
성령이 함께하는 성도들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이 설교가 아닐까요?

이를 위해선 단독의 목회가 아니라
성도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의 목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교없는 주일 예배는
목사가 하는 설교가 없고
성도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신앙고백이 있는 예배가 아닐까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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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박평일 (72.196.234.24)
2013-07-07 07:51:24
"내가 평생 설교해 오지만
설교를 통해 변화되는 사람 못 보았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변하기로 했다.”라는
고백의 말을 했겠는가?

참으로 아름답게 글을 마무리 한 것 같습니다.

영성이 무엇인가? 는 여전히 우리들에게
숙제로 남아있겠지요.

오늘 아침에 만난 고객과 나눈 이야기 중
일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남편은 백인계 미국인이고 부인은 일본계
미국인으로 은퇴생활을 막 시작한 분들입니다.

일년 전에 한국을 여행으로 방문하고
그 인상을 나에 이렇게 털어 놓았습니다.

몇 년 만에 다시 본 한국의 발전상에
깜짝 놀랐다. 가는 곳 마다 고층건물숲이었고
인파와 차량들이 거리에 흘러 넘쳤다.
너무 복잡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모든 것들이 빠르고 편리했다.

그런데 아주 이상하게 느꼈 던 점은
시민들의 얼굴표정에서 미소나 웃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대분분 사람들이 마치 뭔가에
잔뜩 성나있는 사람들 처럼 느껴졌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고
나의 개인적인 견해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과 미국과의 문화적 차이일 것이다" 하고
찜찔한 마음으로 대충 얼머무렸습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으며

성령이란
"신앙인들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행복한 미소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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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07.210.3.147)
2013-07-07 02:48:48
신령한 예배로의 갱신..
너무 좋습니다. ^^

오늘은 긴 말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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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규 (전 감신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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