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좀 낳게 해 주세요.


일시 : 2013년 6월 25일. 화요일
장소 : 산후안 바랑가이
참여자 : 간호사 – 루이, 그레이스
사회복지사 – 제롬
치유선교사 – 이강무
현지 참여자 : 산후안 바랑가이 간호조무사 – 리사

오늘은 가까운 거리라 트라이씨클을 타고가다. 산후안 바랑가이는 타운에서 베상파스 방향으로 내려가 들판을 지나며 첫 번째로 나타나는 마을이다. 약 10분 정도 달리니 도착하다. 아침 일찍 갔지만 교육받을 자모들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차도 다니지 않는 먼 곳에 살지만 교육열들은 대단하다. 실은 교육열보다도 자기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참석하는 것 같다. 간호사들이 강의하기 전에 먼저 참석한 이들의 명단을 체크하다. 오늘도 물론 뎅기모기 예방책과 사후 처리에 관한 교육이다. 루이는 항상 준비를 잘 한다. 아버지가 대학 교수라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그가 강의를 할 때는 현대식 IT장비를 동원한다. 노트북과 프로젝트를 가져오고, 가끔 고가의 캐논 줌 카메라를 가져오기도 한다. 오늘은 간단히 차트를 준비해 왔다.

간호사들이 강의가 끝나자 오늘도 사회복지과 직원 제롬이 이어서 재난방지 예방책에 대하여 강의를 하다. 그러는 사이 간호사들은 바랑가이 클리닉에 와서 나의 치유사역을 도와주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틈틈이 산후안 바랑가이의 가난한 가정의 등록부를 살피며 아이들 숫자를 파악하다.

2008년에 필리핀 정부는 빈곤가정을 파악하여 전산화 시켜놓았다. 그리고 그들을 꾸준히 돕고 있다. 한 아이 당 500페소씩 정부에서 매월 지원한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를 버리거나 굶겨 죽이지 않게 하기위하여 필리핀 복지부(DSWD)가 실시하는 대단히 큰 헬핑 프로젝트이다. 필리핀 정부가 스스로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외국의 자원봉사단체에서 권유해서 시작한 것인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오늘 방문한 조그만 산후안 바랑가이만 해도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가정이 약 150여 가정이나 된다. 세르반테스 읍 전체에는 약 1500여 빈곤가정이 등록되었다. 각 가정에서 3명까지 지원받을 수 있으며 가난을 면치 못할 경우 아이들이 14세 될 때까지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빈곤 가정 한 가정에 두 명씩만 계산해도 세르반테스에서 매월 빈곤수당을 지원받는 아이가 약 3000여명이나 된다.

이뿐 아니라, 복지부에서는 빈곤 노인들에게도 3개월 마다 1500페소씩 지원한다. 내가 체류하고 있는 일로코스 수르 프로빈스에서 노인 수당을 받는 분들의 수가 약 3000여명이나 된다. 필리핀 전역에서 빈곤수당을 받는 아이와 노인들의 숫자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숫자가 될 것이다. 이 많은 지원금을 어디서 조달해 오는지 보통일이 아니다. 부정부패가 심한 필리핀 관료들이 해외 NGO단체들로부터 후원금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몫을 먼저 챙기고 나머지로 인심을 쓰는 척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기도 하다. 정부에 돈이 없다고 공무원 봉급도 제날짜에 주지 못하는 처지에, 수백만 명의 빈곤가정을 매월 정기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후원금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서, 각 바랑가이를 방문하며 요즈음 심하게 번지고 있는 뎅기모기 예방과 산악지역의 수해재난예방 그리고 아픈 이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친히 본을 보여주신 사랑과 희생정신으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혹시 엉큼한 마음을 갖고 가난한 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몰래 챙기려 하는 관료들이 있다면 회개하길 바라며.

이곳 산후안 바랑가이 의료 담당인 리사씨는 나이가 56세이고, 30년이나 조무사 일에 종사하고 있으며 13명의 조무사들 중에서 가장 선임이다. 어느 날 RHU(시 보건소)에 와서 근무하는 그녀가 허리 보조대로 허리를 잔뜩 동여매고 있다. 왜 그런 걸 허리에 차고 다니느냐 물으니, 허리가 몹시 아프단다. 언제부터 그러냐고 물으니, 수년전부터 아팠는데 요즈음 더 심하다고. 왜 나한테 이야기 안했느냐고 물으니, 그냥 씩 웃기만 하다. 수년 동안 약을 먹어도 고칠 수 없는 허리를 침 맞는다고 낫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당장 2층 치료실로 올라오라고 하여 몸 전체의 발란스를 맞추어 주었다. 서양의학은 세균의술이고, 침뜸의학은 균형의술이다. 기혈순행이 잘 되도록 몸의 균형을 맞추어 주면 몸 스스로 자연치유력과 면역력이 증대되어 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 약 7천여 년 동안 전통으로 내려오는 침뜸의술의 핵심이론이다.

결핵이나 암 같은 특별한 질환에 의하여 허리가 아픈 게 아니고, 그냥 막연히 허리만 아픈 것은 첫째 신장의 문제로 봐야하고, 신장은 간과 표리 관계에 있으므로 간도 보해 주어야 한다. 이런 경우 온몸 앞뒤상하좌우로 흐르는 경락을 통하여 몸의 밸런스를 맞추어 주어 기혈순행이 잘 되도록 도와주면 통증이 상당히 완화 될 수 있다고 설명해주다. 몇 번이나 맞으면 되느냐 묻기에, 그 정도로 수년간 아픈 증세는 몇 번이 아니라 수개월은 치료받아야 될 듯싶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하지도 않고 포기할까봐 열 번 정도 맞으라고 권면하였다.

그녀가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총 네 번 정도 침과 뜸을 받고 나선 요즈음 오질 않았다. 하여 오늘 만난 김에 왜 요즈음 침 맞으러 오지 않느냐고 물으니, 이젠 아프지 않아서 안 갔다나. 그러면 진작 말했어야지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왜 안 오나 하고 궁금해 하지 않았는가! 어쩐지 요즈음 그녀가 숙직하는 날에는 특별히 저녁을 잘 차려 대접하드라 했더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랬었나보다. 그렇게 빨리 나을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내성적인 그녀가 자기지역을 방문한 나에게 특별한 환자를 한명 되리고 왔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인데 아이 낳게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아니 내가 신인가? 어떻게 아이를 낳게 만들어 준단 말인가! 수년간 아픈 허리를 침뜸 네 번 맞고 고침 받더니 아마 나를 되게 신통한 능력이 있는 치유선교사로 생각한 모양이다.

데려온 젊은 여인은 36세고, 6년 전에 결혼 하였으나 아직 아이가 없어 걱정이라고. 하여 어떻게 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중인데, 마담 리사가 오늘 한국에서 오신 치유선교사님이 오시는데, 꼭 와서 뵈라고 해서 찾아 왔다고. 병원에 가서 체크는 해 보았느냐 물으니, 남편과 둘이 가서 검사해 보았으나 둘 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지금 남편은 뭐 하느냐 물으니, 2개월 전에 외국에 돈 벌러 갔다나. 그럼 남편도 없이 혼자 어떻게 아이를 만드느냐며 우스갯소리를 하니, 그냥 남편이 올 때가지 몸이나 건강하게 돌보려 한다고.

그녀의 증세를 들어보니 그녀는 멘스 할 때 마다 큰 고통을 격고 있었다. 손발이 매우 찼다. 단서를 잡았다. 그녀가 자주 허리가 아프다는 것과 종합해 볼 때 이는 분명히 신장과 간과 방광의 경락에 문제가 생겨서 오는 증세이다. 지금부터 6년 전 서초동에 사는 48세 된 이런 환자를 한 번 치료한 경험이 있다. 그녀는 중학교 시절 처음 멘스를 시작할 때부터 약 30여 년 동안 심한 월경통으로 고생을 하였었다. 병원과 한의원과 약방을 안 다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수없이 많이 다녔으나 고치지 못하고 여전히 매월 달거리를 할 때쯤 되면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약 2주 동안을 고생하였었다. 신기하게도 그녀는 나에게 침과 뜸을 서너 번 받고 나서 모든 통증이 사라졌다. 그 후 지금까지 그녀는 통증을 느끼지 않으며 잘 지내고 있다.

그녀를 치료한 경험을 생각하며 자신감을 가지고 치료를 시작하다. 한 번으로 치료 되는 게 아니니 매주 1회 정도 RHU에 와서 치료받으라고 권하다. 그리고 멘스하기 전에 오는 통증은 멘스하기 전 3-4일 전에 피내침을 맞으면 통증이 없으니 꼭 날짜를 맞추어 오라고 일러주다. 남편이 1년 후에나 올 것이니 그동안 몸조리 잘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 아이를 낳게 하는 실력은 없지만, 신장과 간을 보하고 몸의 기혈순행이 잘 되도록 몸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역할은 충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이상은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는 일이다.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신데 감히 어찌 연약한 한 인간이 생명이 생기고 안 생기고를 결정할 수 있으리오. 하나님의 은혜로 놀라운 생명의 축복이 그녀의 가정에 있어지길 기도하다.
주는 우주만물의 창조주시요, 생명의 주관자이시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