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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일기1장마에 씨조차 못 뿌린 초보 농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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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7월 03일 (일) 00:00:00 [조회수 : 3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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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화)
학교 선배 김 선생님과 KBS '별들의 고향' 촬영지 맞은편 빈 땅, 말뚝 먼저 박으면 임자가 되는 데다 붉은 비닐 끈을 둘러 놓았다. 종묘상에 가서 잎들깨씨와 흰콩, 피마자씨, 총롱무씨, 호미 두 자루를 샀다. 한 줌도 안 되는 종자 값이 턱없이 비싸다. 총 일만 오천 원을 투자했다.
6월 29일(수)
하루 건너 비가 오고 개기를 반복하는 징검다리형 장마철이다. 오후에도 구슬구슬 비가 내렸다. 씨앗 봉지를 들고 씨를 뿌려 보려고 밭에 들어서니 자작자작 물이 고여 있다. 그냥 귀가하기 섭섭해서 눈에 띄는 돌멩이라도 주워 버리기로 했다. 발이 쑥쑥 들어가는 물렁물렁한 흙에 박인 돌은 잘도 빠졌다.
6월 30일(목)
날이 갰다. 김 선생님이 가져온 붉은 비닐끈으로 밭을 모두 둘렀다. 바람에 팔락거리니 멀리서도 우리 밭이 가장 잘 보인다. 호미로 밭을 고르고 있는 옆 밭 아줌마를 처음 보았다. 오늘 씨를 뿌려도 될까요? 하고 물었더니 풀밭에 뿌리면 싹이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친절하게도 호미로 땅 파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급한 마음에 물 구덩이에 씨를 뿌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다. 손가락 길이만한 잡풀은 내버려두고 씨를 심을 생각이었는데 낭패감이 들었다. 김 선생님과 나는 마주 보고 앉아 서툰 호미질을 했다. 삐질삐질 땀이 났지만 바람이 불어 오히려 시원했다.
땅을 팔수록 큰 돌이 많이 나왔다. 주변 밭마다 돌 무더기를 쌓아 둔 까닭을 알만 했다. 돌을 떠 내면 웅덩이에 물이 고이고 흙은 진창이다. 물구덩이에 구두가 빠져 흙범벅이 되고, 출근복에 벌써 흙탕이 튀겨 벌건 흙물이 들었다. 사람들이 경사진 길 가장자리에 밭을 일구고, 왜 가운데 자리를 비워 두었는지 깨달았다. 밭의 생명은 물빠짐이구나 싶었다.
김 선생님은 한 평 남짓 파 놓고는 물집이 잡혔다고 울상이다. 돌을 고르다 말고 물길 먼저 만들어 주기로 했다. 이웃 밭 아줌마가 와서 물길 트는 일을 돕는다. 그녀는 갈산동 이마트 부근에 산다는데 부천에서 청소 일을 마치고 자전거로 집에 가는 길에 밭을 일군다고 했다. 그녀를 갈산동댁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흙탕물이 새로운 물길로 빠져 나가는 걸 보니 스스로 대견스럽다.
텃밭을 갈면서 땅이 저주 받았다는 것이 뭘까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끊임 없이 돋아나는 잡초요, 둘째는 파도 파도 계속 불거져 나오는 잡석이요, 대책 없는 물이구나 싶다. 저주 받은 아담의 후예들이 이렇게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을 빵을 구할 수 있게 하셨구나 하고 생계를 위한 노동이 얼마나 힘드는지 몸소 체험했다. 교실에서 분필이나 컴퓨터 마우스만 잡고 살아 온 내가 텃밭을 가꾸려고 하면서 비로소 땀의 의미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7월 1일(금)
출근하면서 우리 밭을 쳐다보니 괜히 뿌듯했다. 아무것도 심긴 게 없는 빈 밭이지만 사방을 둘러친 붉은 줄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 어린 콩잎이 나기 시작한 이웃 밭에 비둘기 네 마리가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콩을 파 먹고 있었다. 내 밭은 아니지만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작은 돌멩이를 하나 집어 던지니 후루루룩 날아오른다. 이놈들도 자기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음을 아는지 혼비백산하여 영화 '야인시대' 세트장 너머로 숨어 버린다. 어제 갈산동 댁이 들려 준 말이 떠올랐다. 비둘기 네 마리가 콩을 다 파 먹어 콩심기가 겁난다고 했었다. 날씨와 돌, 게다가 비둘기떼도 농사의 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저녁에는 날이 다시 갰지만 두 사람 각기 모임이 있어 밭을 돌보지 못했다. 장마비에 씨를 심으면 썩어 버린다니, 언제나 장마가 그쳐 파종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농사 일에는 사람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하늘의 변수가 있구나 생각하니 또다시 인간의 무력감을 깨닫게 된다.
7월 2일(토)
김 선생님은 약속이 있어 못 나오신다고 하셨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혼자 밭으로 왔다. 갈산동 댁 밭에 꼬리 깃만 까만 흰비둘기 한 마리가 무언가 파 먹고 있어 돌로 쫓아 버렸다. 그 놈은 부리나케 외곽순환고속국도 쪽으로 날아갔다. 앞으로 우리 콩밭도 해칠 놈 같아 눈여겨 두었다. 이젠 길가에서 모이를 쪼는 비둘기조차 달리 보인다.
가는
비가 젖은 땅을 적시고 있었다. 밭 귀퉁이 돌 파낸 자리에 숨겨 둔 호미를 꺼내 혼자 땅을 갈았다. 말벗도 없이 혼자 하니까 따분하고 힘들었다. 손발을 씻고 나와 어서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좀 더 갈아놓자고 마음을 다독였다. 둘이 부지런히 일구어도 이틀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오늘도 신발과 옷이 엉망이 되었다. 고인 물에 호미와 구두를 씼었지만 얼룩은 잘 지지 않았다. 바쁜 사람이 쓸데없는 짓 한다고 핀잔 받을까 봐 아내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다. 혹시 옷을 빨다가 눈치 챌 것 같아 들키기 전에 여벌 옷이나 신발도 갖추어야 할 모양이다.
파종조차 못 해 보고 일 주일을 보냈다. 밭에다 씨앗만 뿌려 두면 저절로 열매를 맺을 줄 알았는데, 씨앗 뿌리기 전에도 할 일이 이렇게 많다니 난감하다.
2005-07-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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