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 혹은 ‘낯섦’

에피소드 #1.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신학대학에 입학 후 맞은 첫날. 처음이라는 긴장감에 밤잠을 설치다가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첫날부터 지각이었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버스로 다섯 정거장. 그러나 첫 수업부터 늦을 수 없던 나는 과감히 버스를 생략하고 택시를 타기로 마음먹었더랬다.

“어디까지 가세요?” 택시 기사가 물었다.
“OOO 신학대학이요.”
“네?”
못 들었나 싶어 또박또박 천천히 다시 한 번 알려줬다.
“OOO 신학대학이요.”
“음... 그게 어디 있는 거죠?”
‘아니 이럴 수가? 서울 시내에 100년을 자리 잡고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대학을 모르다니...’ 밀려오는 실망감.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난 학교까지 가는 방법을 기사에게 자세히 설명해 줄 수밖에 없었다.

나의 신학대학 시절은 그렇게 시작됐다. 세상으로부터의 ‘익명성’과 함께......  

에피소드 #2.

신학을 전공하면서, 목사 안수를 받기 전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교회 밖의 사람들과 만날 때면, 자주 듣는 질문이 있었다.

“신학대학엔 왜 가신거예요?”

그런데 이 질문은 대답하기가 아주 고약했다. 자주 듣는 것에는 간단하게 대처하는 요령이 생길법도 한데 유독 이 질문엔 대답이 쉽지 않았다. 이유는 이랬다. 집안에 목회자가 없던 나로서는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상대방은 호기심에 혹은 지나가는 말로 물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거기다 대고, ‘어렸을 때부터 집안환경이 어떻고’,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어쩌고 저쩌고’ 말하는 것이 이른바 ‘주책’처럼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자기방어본능도 한 몫 했다.

‘익명성’ 그리고 ‘낯섦’

이 두 가지가 신학생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이다.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는 말이다.

신학생...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확실히 신학생이란 무수히 많은 대학의, 여타의 다른 전공자들과는 뭔가 다른 존재이긴 하다. ‘소명’과 ‘헌신’이라는 사명에 대한 자기 확신 이외에, 외부적으로는 적어도 2가지 정도의 상반된 시선이 존재한다.

‘성직자’가 될 귀하신 몸이거나, 아님 공부를 못했거나...

그래서일까? 조사한 바는 아니지만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에 비해 목사님들은 학위가 참 많다. 일단 기본적으로 목사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석사 이상이어야 한다. 유학도 많이 간다.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가짜 외국 박사 학위의 대부분도 목사님들의 차지다.

지금은 청년들의 취업대란의 시기라 많은 대학생들이 스펙에 목숨을 거는 실정이긴 하지만,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은 대체로 대학만 졸업하면 취직을 한다. 그리고 만약 취업에 성공하기라도 하면, 그걸로 더 이상의 학위와는 안녕인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유독 목사들은 학위에 대한 욕심이 많다. 박사학위 소지가가 모두 대형교회의 담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형교회의 담임은 거의 전부, 여지없이 박사들이다. 난 목사들의 학위취득에 대한 열정이 그 기저에는 ‘자신은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무의식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한 객관적 증거로서의 학위취득 같은 것 말이다. 물론 모든 사회적 현상이 다 그렇듯, 학위를 취득하려는 목회자가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전공자들에 비해 훨씬 많은 학위를 취득하려는 현상 속에는  분명, 그런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다.

신학생들에게는 다른 학위 전공자들에 비해,  ‘학업 성취’ 이외에, 요구되는 기타의 조건들이 존재한다. 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은 ‘수학’만 잘하면 된다. 거기다 그가 좋은 성품까지 갖추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좋은 성품은 사실 수학자로서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수학자로서의 능력과 그의 인격은 별개의 문제란 말씀. 수학자는 수학으로서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면 된다. ‘성품’이 안 좋은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그의 수학실력이 외면 받지는 않는다. 
 

이런거다. 극도로 이기적인 한 수학전공자가 있다고 치자. 그는 대학졸업을 앞두고 맹렬히 공부를 했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임용고시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그는 잘 나가는 수학선생이 돼 있었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이기적인 성품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인격이 수학선생으로서의 그의 업무를 방해하지는 않는다. 그의 ‘수학 선생’으로서의 능력과 지위가 그의 이기심 때문에 영향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단지 국가가 정한, 교사로서 지켜야할 몇 가지 법률적 제한을 넘지만 않으면, 그는 자기가 원할 때까지, 혹은 법으로 정해진 기간 동안 ‘수학선생’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것도 잘 말이다.

그러나 신학생은 그렇지 않다. 신학생은 신학에 관한 ‘학업성취’ 이외에도 다른 여타의 소양들을 갖추어야 한다. 먼저 인격. 신학생의 이기심은 그의 업무 영역인 ‘목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기심의 크기만큼 목사로서의 ‘목회’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시 말해 목회자의 인격은, 그의 업무인 목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정리하자면, 거짓말하는 선생은 여전히 선생일 수 있지만, 거짓말하는 목사는 더 이상 목사를 할 수 없다는 거다. 물론 요즘엔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당위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니 신학생은 참 할 일이 많다. 아직 목사가 되기 전에, 신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 자신의 지적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넓은 인격과 심지어 깊은 영성까지도 갖추어야 한다.(영성에 대해서는 글쓴이가 그것을 논할 자격도, 위치에 있지도 않음으로 패스다.) 그런데 현실은 신학생들이 자신의 인격을 절차탁마하기에 그리 녹녹치가 않다.

좋은 인격은 ‘생존’의 영역이 아니라 ‘공동체성’에서 나온다. 살아남아야 하는 ‘무한 생존 경쟁 체제’에서는 건전한 인격이 형성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단 말이다. 전쟁을 생각해보면 쉽다. 전쟁에 내몰린 사람들의 최대 목표는 생존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만인은 만인에 대한 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전쟁 가운데 피어나는 감동적인 인간애의 스토리가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그 자체로, 그 감동 스토리가 전쟁의 일상이 아니라는 것의 반증이다.
 

오늘날 목회는 가히 전쟁과 비견할만하다. 쏟아져 나오는 신학생들과 엄격한(?) 개교회주의... 교회들 간의 무한 경쟁체제다. 다른 교회의 교인을 뺏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가득하다. 혹자는 이를 두고 ‘수평이동’이라는 가치중립적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즐겨하지만, 그것은 단지 현학적 허세일 뿐이다. 실제로 현실은 약육강식의 정글의 세계다. 골목 구석구석까지 교인들을 실어 나르는 대형교회의 버스들을 보라. 물론 제 교회 교인들에게 편의와 안락함을 제공하고 싶어하는 그 목회적 충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 친절의 심리적 기저는 그저 ‘생존에 대한 불안감’일 뿐이다.

이를 ‘공동체성’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더욱 자명해진다. 교인이 멀리 이사를 갔다. 물리적으로 내 교회에서의 매주일 성수가 어렵다. 그렇다면 그 교인의 고충을 개선해 줄 방법은 그 교인을 실어 나를 좋은 버스를 구입하기 위한 지출결의서가 아니라, 근처 가까운 교회에 출석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 캐톨릭과 비교해 보라. ‘공동체성’이 무엇인지 그 단초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대형 교회의 입장에서야 교인을 실어 나르는 것에 대해 얼마든지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심 생각이 ‘생존’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자신들의 인격도야에 힘쓸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 중국을 능가하는, 세계 철학사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한 이황, 이이, 기대승과 같은 인물들을 배출하고 찬란한 유교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공부하고 인격도야에 힘쓰는 양반들을 떠받치고 있던, 노비제도로 대표되는 견고한 사회적 하부구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장지상주의’가 한국교회의 그릇된 목표와 환상이라면 무한경쟁 체제의 ‘개교회주의’는 목사들을 ‘성장지상주의자’가 되게 만드는 구조적 원리다.

오늘날 신학생들이 직면한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신학교를 졸업한 지 한참 지났기 때문에 그 내부의 자세한 속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심심찮게 들려오는 얘기는 요즘 신학생들은 ‘역사의식’이 없다는 거다. ‘1592년 임진왜란’ 같은 연대기적 역사지식 말고, ‘나는 어디서부터 왔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는 어디이며’, ‘지금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같은 것들 말이다.

‘역사의식’과 같은 인문학적 소양은 돈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의식은 ‘지성인’으로서의 필수요소다. 좀 더 심하게 말해 ‘역사의식’이 부재한 인간은 그저 말하는 동물에 다름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창궐로 인해, 대학생들이 점점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기를 소홀히 여긴다는 염려가 가득하다.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인문학은 사회적 공기다. 세계관과 역사의식의 부재는 인간세계를 표피적이고 감각적 쾌락에만 머물게 하는 동물의 왕국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만다.

그래도 만약, 모든 대학생들이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게 된다면, 신학생은 그것을 맨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것이 타인의 인격적, 영적 성숙을 책임지려고, 돈과 권력을 포기하고 출가(?)를 결심한 사람들의 올바른 태도다.

그러나 신학생들이 졸업 후에, 자신이 갈고 닦은 것의 ‘적용의 장’이 아니라 ‘생존의 장’으로 내몰리게 되는 지금과 같은 현실 속에서는 ‘인격적 성숙’이나, ‘역사의식의 의식화’ 같은 것들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신학생들이 ‘교회 성장의 스킬’ 외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이 현실구조는 개교회주의의 원리에 기인한다. 성장지상주의의 무비판적 수용은 참담한 미래를 담보할 뿐이다.

믿어라. 박사학위보다, 교회 성장의 스킬보다 ‘역사의식’이 훨씬 중요하다. 그래야 한국 교회의 예정돼있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고, 내일은 어제의 오늘이기 때문이다.

살길은 공동체성의 강화뿐이다.

한국 교회의 부흥 원인에 대한 여러분석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미국과 유럽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시대를 살았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일본의 침략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전래된 기독교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 민족에게는 대한민국 독립의 조력자요, 암울한 현실에 대한 해방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기독교에 대한 호감이 결국은 한국교회의 부흥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거창한 역사적 사건을 들 필요도 없이, 쉽게 말하면 이런 거다. 가령 필리핀을 지배하고 있던 미국 경찰이 길에서 필리핀 사람을 폭행 중이라고 상상해보자. 그 모습을 본 필리핀 사람들은 미국인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될 것이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서양으로부터 전래된 기독교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진다. 당연한 수순이다. 시어머니가 미워지면 시금치도 싫어진다는 것과 같은 이치.

반대로, 종로 한 복판에서 한국인이 일본 순사에게 얻어맞고 있다. 그런데 우연히 지나가던 미국인 선교사가 이를 보게 됐고, 그 자리에서 그 순사에게 엄중 항의하며, 그 사람의 목숨을 구해준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를 목격한 한국인들에게, 서양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분석은 오늘날에도 가능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캐톨릭은 꾸준한 성장세, 1990년대의 정체기를 거쳐 개신교회는 마이너스 성장 시대를 맞고 있다. 이런 현상은 80년대 민주화의 성지 ‘명동 성당’과 독재의 시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활약상으로 대표되는 천주교의 반독재 투쟁에 기인한다.  

역사의 한 복판에서 힘겹지만 옮은 역할을 담당했던 캐톨릭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천주교의 실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대중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에 비해 한국 개신교회의 대다수는 - 물론 독재에 항거하는 빛나는 역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신교회의 그것은 너무나 파편적이었다. – 일제 식민지에 버금가는 암울한 독재의 시대에 침묵으로 일관했고, 한걸음 더 나가 2000년대 들어서는 극보수적인 행태를 보이게 된다.

개신교가 흔히 개독교라고 욕을 먹는 작금의 현실은 흔들리던 시대, 침묵의 카르텔로 일관하며 교회의 성장과 목사 자신의 안위에만 몰두했던 것에 대한 처절한 대가다.

왜 그 두 비슷한 종교가 서로 다른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됐을까? 특별히 천주교회의 사제들이 개신교회의 목사들보다 더 자기희생적이고 인격적으로 더 훌륭해서였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인격과 소양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물적, 인적 구조’ 때문이다. 천주교 사제가 독재투쟁을 하다가 잡혀가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천주교 전체’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반대로 개신교회의 ‘목사’가 반독재투쟁의 현장에서 체포되는 것, 그것은 그 자신과, 그와 뜻을 같이 했던 몇몇 지인들의 문제다. 어느 교단의 소속 목사가 체포됐다는 말에, 교단 차원에서 대응했다는 말을 내 짧은 인생에서 들어본 역사가 없다.

‘민주화의 살아있는 성자’로 불릴만한 감리교의 조화순 목사가 젊은 시절 중앙정보부에 잡혀갈 때, 같은 지방 감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했다가 ‘나에게 다시는 이런 전화 하지 말라’고 전해들었다는 일화는 그 자체가 개신교의 구조적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실체적 증거다.

이런 분석은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신학생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떤 면에서는 목회적 스킬을 준비하는 것보다, 공공의 선을 위해 헌신하려는 사고와 노력이 교회 선교에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세상이 이 시대의 성직자들에게 보다 더 헌신적이고, 자기희생적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시대정신’이다. 살인적인 빈부격차와 부정의가 판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좀 더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해 헌신하라고 하는 것은 깨어있는 지성인들의 외면만을 초래할 자기기만일 뿐이다.

진보한 사회의 ‘종교의 내면화’는 필연이다.

아주 옛날에는 사제가 사회의 모든 영역의 기능을 담당했었다. 사제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분쟁을 해결했으며, 제의를 통해 예술가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다. 심지어 나라를 다스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사제가 담당하던 치료의 영역은 의사가, 분쟁의 해결은 판사가, 종교적 예술의 영역은 예술가가,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의 영역은 정치가들이 담당한다.

사회적 진보의 역사는 성직자의 대사회적 역할 축소와 그 궤를 같이한다. 이는 필연이다. 그렇다고 종교가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옛날엔 종교의 역할이 보다 가시적이었다면, 현대에는 보다 내면화됐을 뿐이다.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종교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실체로서의 종교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모양과 역할이 변할 뿐이다.

유럽 사람들은 교회에 잘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신앙을 저버리고 타락했다는 식의 접근은 너무나 유치한 발상이다. 사회를 보자. 유럽사회는 한국 사회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정의롭고, 개인의 자유가 보다 더, 잘 보장된다는 사실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의 해답은 기독교 신앙의 내면화에 있다. 공산주의가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초했다고 하지만,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삼권분립제도는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라는 성서의 메시지가 그 근간이다. 보다 견고한 사회보장제도 역시 마찬가지. 그것은 약자를 돌보라는 일관된 성서적 가르침에 그 철학적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주일날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 곧 종교적 타락을 의미한다는 도식은 너무나 단편적인 지적이다. 보다 더 중층적 차원에서 유럽사회를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에는 주일마다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살벌한 사회 속에서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전쟁 같은 ‘생존투쟁’에 나서야 하는 한국사회와, 비록 그 반대지만, 기독교적 가치가 사회의 작동원리로 작용하고 있는 유럽사회 중에서 어떤 사회가 좀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모습’일지는 따져보아야 할 일이란 말이다.

사회가 진보할수록 종교는 내면화의 길을 걷게 된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 솔직히 현실 한국 교회는 성직자의 숫자가 너무 많다. 성직자가 이미 포화 상태를 넘은 것뿐만 아니라, 2012년도 자료에 의하면 한해 학사학위를 수여받는 신학대학의 졸업생의 수가 6000명을 넘는다고 한다. 거기다 비인가 신학교를 더하면, 그 숫자는 실로 가늠하기 어렵다. 요즘은 시쳇말로 발에 차이는 게 목사다. 웬만한 기독교 집안에는 한 다리를 건너면 집안에 목사가 한 사람쯤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에 비해 교회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이미 교회가  너무 많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그것은 당연히 신학대학의 정원축소다. 신학대학이 목회자가 되기 위해 밟는 유일한 과정이라면, 현 실태에서 신학대학 정원은 당연히 축소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신학 대학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신학생들의 등록금이 주요한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종교장사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는 까닭이다.

신학교들은 이 목사 후보자 과잉공급 현상에 대해 손을 놓고 있거나, 그나마 다른 분야로의 진출을 돕고 있는 미봉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 전부다. 이 문제는 각 교파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현실과제다. 신학생의 과잉공급을 해결하지 않는 한, 세습 문제와 교회매매와 같은 선교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는 문제들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일까? 내가 졸업한 신학대학을 예를 들면, 요즘은 재학생 거의 대부분이 목회자 자녀라고 한다. 감리교에서 세습금지법이 통과됐을 때, 이를 기뻐하며 전하는 한 신학생에게 보여줬다는 급우들의 냉담한 반응을 전해들었을 때 참 가슴이 답답했었다. 목회자의 과잉공급이 빚어낸 웃지 못 할 촌극이다.

신학교에 목회자의 자녀만 넘쳐나는 이 현상은 개인으로 보면 신앙의 가업을 잇는 숭고한 자기 헌신으로 여길 수 있겠으나,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개신교가 점점 ‘게토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의 반증일 따름이다.

이제는교회와 교단이 나서야 할 때.  

신학을 한다는 것은 자기희생적 결단의 길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고 신학대학에 들어갔었다. 세상으로부터 주목받지 못하는 ‘익명성’과 ‘낯섦’을 감내하고서라도 꼭 가야만하는 소명의 길이라 여겼다. 요즘의 신학생들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믿고 있으나, 그들 다수는 신학교와 교단의 돈벌이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목사가 되겠다는 젊은이들에게 ‘일반대를 가라. 사회경험을 쌓고 그래도 꼭 목사가 돼야겠으면, 그 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중이다.   

*최소한의 초상권 보호 위해 노이즈 처리함/ 편집자

심하다고 생각해도 별 수 없다. 교단이 먼저 나서서 신학교 정원을 축소하고, 그들의 미래를 담보하라. 그리고 교회의 공공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면, 백번이라도 무릎 꿇고 사과할 용의가 있다.

개교회의 공공성 강화와 교단 차원의 공교회적인 제도의 도입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병에 걸린 한국 개신교회를 위한 꼭 필요한 처방전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미자립 교회가 40~50%가 넘는 참담한 현실과, 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만 명의 교인을 거느리고도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히딩크적 발상으로 ‘성장지상주의’와 ‘개교회주의’의 노예가 돼버린 한국교회는, 이제 변하지 않으면 모두 죽게 되는 공멸의 수순만을 남겨놓고 있다. 기억하라. 그토록 견고하던 예루살렘성전도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모두 무너져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심을 담아, 이 땅에 재학 중인 모든 신학생들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임하시기를...

® 이 글은 글쓴이가 기독교 사상 2013년 5월호 "특집 한국교회의 그늘, 그들의 자리 - 신학생 그들은 누구인가"에 실었던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