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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한국에 갔다가 한국 교회 현실을 톡톡히 경험 하고 왔다. 첫 번째는 50 년 만에 중학교 시절의 여자 친구를 만난 일이었다. 반세기를 넘어서의 만남이니 의당 외모야 우연히 옆에 앉아 있어도 알아 볼 수 없을 것이 분명할 터이어서 정말 궁금한 것은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것 보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십대 초반에 만나고 50년이 지났으니 피차간에 세상의 때가 묻었을 것은 틀림이 없겠지만 얼마나 때가 묻은 속물이 되었을까 하는 것이 자못 궁금했던 것이다.
우선 가장 신경이 쓰이는 점은 평범한 강남의 가정부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그녀가 결코 평범하다고는 할 수가 없는 길을 걸어온 나의 삶에 대하여 과연 얼마나 이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만나고 보니 그녀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모습이었다. 우선 그녀는 대표적인 보수교회인 충현 교회의 권사로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겠으나 특이하게도 그녀는 자기의 신앙적 신념에 입각해서 강남 갑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두 번이나 출마를 했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내게 보여준 선거 팸플릿을 보니 미국의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사라 페인과 비슷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페인은 미국의 정치 구조에서 정략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출마를 한 것이겠지만 친구의 경우는 전혀 현실적이 아닌 오로지 개인의 신념에 의한 행동으로 보였다. 그렇게 되고 보니 내가 그녀에게 어떻게 이해가 될 수 있을까 하던 염려가 졸지에 오히려 내가 그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국면으로 바뀌었다.
중학교 때도 집 주소를 모른다고 학교로 ‘3학년 지성수’라고 써서 사귀자는 편지를 먼저 보냈던,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담한 행동을 했던 그녀였기 때문에 여전히 간 크고 대담할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지만 평범한 가정주부가 보수적 종교적 신념에 입각한 정치적 활동이라니? 그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비록 어렸을 적부터 정치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었고 그래서 대학에서도 정치외교학을 택했다지만 정말 엉뚱하게 생각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신념이든 내부적 신념을 외부로 표현 한다고 하는 것은 전 생애에 걸친 엄정한 과제가 아닐 수가 없지만 내 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당당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코믹한 캐릭터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녀가 그렇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은 대화 도중에 화장실에 가서 변기 수도 3 분 끝에 그녀가 가진 관념적 신앙체계 때문이라는 답을 얻었다. 그녀가 수 십 년간 믿어온 보수적 한국 기독교의 관념적 신앙체계가 그녀에게 전혀 비현실적인 접근을 하게 만든 것이라는 것이었다. 신앙이란 묘한 것이어서 어떤 신앙형태를 갖느냐에 따라서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유치원생 같은 의식구조를 갖게 만들 수 있고 유치원도 졸업 못한 사람을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보다도 더 의식을 깨우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는 것이다.
K여고, S 대학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출중했던 S의 변해 버린 모습에서 나는 듬성듬성, 대강 대강 쌓인 한국 교회의 싸구려 신앙의 희생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의 선거 팸플릿에는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고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힌 보수적 신앙의 허세가 분명했다. 갸륵하기는 하지만 불쌍한 중생을 구제한다는 영적 우월의식에 젖어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불안정한 모습인 것이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물질적으로 얼마나 속물이 되었을까를 걱정했었는데 정작 만나고 보니 한국 교회의 값싼 신앙에 의해서 물질이 아니라 영적으로 속물이 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하기는 이런 모습은 세상과 신에 대하여 폼은 진지한 것 같으면서도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진지하지 못한 단순 무식한 한국의 평균적인 기독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다음으로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JMS 졸업생들과 인연이었는데 그 경험은 이제까지 살면서 산전수전 공중전 한국전(아기 때), 월남전, 온라인 전까지 거쳐 온 나로서도 전혀 겪어 보지 못했던 귀중한 경험이었다. 신흥종교 공부를 철저히, 몸서리치게 했던 경험을 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했던 신앙생활을 돌이켜 보면 나는 그렇게 진지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는 청소년기에 그저 심심해서, 혹은 갈 곳이 없어서 교회를 다녔고 일반대학을 다니다가 돈이 없어서 신학교를 갔었고, 목회를 하다 보니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신흥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의 특징의 공통점은 보통 사람들 보다 훨씬 진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자칫하면 하나님 때문에 인생이 피곤해 질 수가 있다. 어렸을 적부터 보수적 신앙에 의하여 꾸준히 각인이 되다보니 현실에 대한 모든 해석이 신앙적 견해 일변도가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일을 신앙과 연결시켜 생각을 하는 소위 심리학에서 말하는 ‘종교중독’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신앙의 기본인 자기를 닦는 것 보다 남을 구원 하느라고 바쁜 사람이 된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가 열심히 하다가 자퇴한 사람도 많았다. 헌금, 전도, 봉사 등등 교회에서 하라고 하는 것은 모두 다하는 목회자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신자였지만 하는 일이 잘 안 풀리자 하나님, 교회, 목사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바뀐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밑바닥에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항상 찌꺼기로 남아있어 자신을 괴롭혔다. 그래서 나는 반어법적인 방법으로 그에게 ‘신이 없는데 왜 쓸데없이 신 때문에 고통 받느냐?’ 고 해주었다. 즉 신이 없으니까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더 정확하게 표현 하자면 ’그런 신은 없다. ‘는 뜻이다.
나는 그의 경우 일단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보았다. 마치 지저분한 칠판을 깨끗이 지우고 다시 시작하듯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에 대한 관념을 철저히 파괴할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신’의 저자 도킨스의 공헌이 큰 것이다. 도킨스의 책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귀신 볍씨 까먹는 소리’ 밖에는 안 되는 소리지만 그런 정도의 수준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효과 100%의 항생제인 셈이다.
신천지에서 광명을 찾고 열심히 공부중인 옛날 교회 후배도 만났다. 그는 오랜 신앙생활, 진리를 찾기 위한 방황 등등 익히 들어왔던 스토리를 쏟아낸 뒤, 총회장님(이만희)을 만나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며 신천지말씀이 얼마나 달고 오묘한지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는 신천지의 역사에 대해서 대충만 알고, 신천지 교리가 그동안 바뀐 것에 대해서 모르고, 교주 이만희 씨가 무수히 말을 바꾼 것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이만희 교주가 어디서 말씀을 배우고 짜깁기해서 신천지 교리가 만들어졌는지, 바뀌어 왔는지, 또 앞으로도 바뀔 수밖에 없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후회 하는 날이 올지 모르니 헌금만 좀 아껴서 하라”는 말 밖에는 해줄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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