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민의 정부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대략 얼마나 될까? 예를 들어 한국의 국민들은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할까, 국가 기관이 공정하게 권력을 집행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신뢰할까 하는 것 등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 제1조에 명시돼 있지만 국민들은 정말로 국민이 주인된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권력 잡은 이, 예를 들어 여당, 대통령이 그 권리를 누리고 국민은 그저 오히려 세금수입원이나 통치의 대상으로만 대한다고 생각할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답은 ‘국가, 정부, 국가기관이 국민을 중심에 놓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선동하고 군림한다’이다. 물론 나의 비판적인 성향에 다른 생각이겠지만 이것이 정말 단순하게 내 개인만의 생각일까 하는 것에는 여지를 남겨두고 싶다.

국가정보원(국정원), 그리고 원세훈이라는 인물이 계속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이유인 즉슨 한 국가의 정보를 비밀리에 다루고 조사하는 대표적인 기관인 국정원이 정보를 수집하고 취급하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론을 호도하고 조작, 선동하고 있다는 정황이 계속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원세훈이라는 전 원장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에 국정원은 인터넷 사이트에 수십 개의 아이디를 만들어 여론을 조작하였다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국정원 직원의 인터넷 댓글 달기와 추천 클릭 활동이 밝혀졌는데 이 정황을 본 국민들은 다들 기가 막혔다. 그런데 어제는 국정원에서 작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공작과 여론조작 등의 대처방안을 담은 문건이 발견되었다. 이 사건들을 통해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종북’이다. 종북주의자들이 한국의 여론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국가는 국민들의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 그것을 정치에 반영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이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런데 한국의 정보기관은 국민의 여론을 평가하고 그 여론을 조작하였으며 또 어느 특정한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비밀리에 진행하였다. 이것은 국민의 의견이나 여론을 수용의 대상이 아니라 개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매우 시건방진 관점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아직 그 인격이나 사회성이 온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른 생각을 가르치고 바르지 못한 것을 교정하기 위해 교육을 실시하고 처벌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은 어린이의 인격도 중요하게 여겨서 가급적이면 어린 아이일지라도 그 의견을 존중하고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가 신경을 쓰면서 눈높이 교육을 강조하는 실정이다. 하다못해 어린 아이에게도 인격이 있고 그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을 갖는데 국가의 정보기관이 국민들, 국가의 주권을 가진 국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교정의 대상으로 보고 선동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서울시장에 대한 대처방안을 담은 문건의 공개는 더욱 기가 막히다. 박 시장이 정식적인 투표에 의해서 선출되었는데 그를 종북주의자로 내모는 것은 국민의 주권 행사인 투표를 그에게 했던 서울시민들을 모두 종북주의자 혹은 종북주의에 동의하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니, 좀 더 곱게 봐줘서 국정원은 국민들을 종북주의자인지(사실 종북주의자는 얼마 전까지 위세를 떨쳤던 빨갱이라는 단어의 현재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아닌지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바보집단으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기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박원순 후보를 선택한 국민들이 그저 계도의 대상이고, 가르쳐야 할 어리석은 존재들이며, 때로는 때려잡아야 하는 적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박 시장의 시정이 그동안의 나쁜 관행들을 바로 잡고 서민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어서 시민들의 호응을 받고 있는데 그런 시장을 빨갱이로 몬다는 것은 이념의 논쟁을 떠나서 상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국가가 정상적으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 한국은 그저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고 여당이 되면 무엇이나 다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오로지 자기들을 뽑아준 이들만 국민으로 생각하고 다른 생각,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그저 종북이라는 두 글자로 매도하고 제외하고 거부한다. 한국사회의 남남갈등은 결국 정치인들이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리 중에는 대화와 타협의 원리가 있다. 서로 다른 입장이라 하더라도 설득하고 흡수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허울뿐이다. 그런데 툭하면 종북이니 하면서 마치 외국에서 보낸 간첩이라도 되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국가와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먹고 사는 나무이다. 그런데 국민이 국가와 정부, 국가기관에 대하여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 국가는 불신과 거짓, 도덕적 해이가 판을 치게 될 것이며 살아남기 위한 무한경쟁의 사회가 될 것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국정원의 도를 넘는 행태들은 매우 위험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특정정권이나 특정이념을 지지하기 위해 사적인 용도로 국가정보기관을 이용한 원세훈은 매우 엄중하게 다스려야 한다. 이념은 언젠가는 변하게 돼 있다. 남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서로에 대한 신뢰이다. 그런 신뢰가 모여 국가를 지탱하게 한다는 면에서 볼 때 국정원과 원세훈의 행태는 국가전복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차후에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일벌백계한다는 차원에서도 매우 필요한 일이다. 국가와 국가기관이 국민에게 복무하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문제는 결코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