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갑을관계는 사랑과 은혜의 관계로 재정립되어야독재개발지상주의 시대의 유령이 갑을관계로 떠돌고 있는 것!
방현섭  |  racer69@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3년 05월 10일 (금) 16:51:07
최종편집 : 2013년 05월 10일 (금) 16:51:48 [조회수 : 2094]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지금은 강원도에서 농사를 짓고 사시는 나의 아버지는 은퇴 직전인 2005년까지 트레일러, 정확하게 말하면 카캐리어 운전을 하셨다. 카캐리어는 승용차를 싣고 다니는 트레일러이다. 초기에는 카캐리어를 가지고 기사를 둔 업체에서 일을 하셨었지만 나중에 이 회사가 차를 기사들에게 불하해주면서 개인사업자 면허를 가진 자영업자가 되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분명히 아버지 차이고 아버지가 차량 납입금을 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차는 아버지 차가 아니었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법이 개인사업자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종의 지입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셨는데 차의 실소유주는 아버지였지만 법적인 소유주는 회사였다. 회사가 몇 차례 바뀌면서 사주는 자기 마음대로 차량을 담보로 잡았고 아버지의 권리는 박탈되었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발생하자 같은 처지에 있는 카캐리어 소유주 겸 기사들이 해당지역의 관청에 트레일러 앞부분을 끌고 가서 집회를 하시기도 하였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일을 그만두실 때까지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이상했다. 왜 내 차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고 소유자의 의사와 관계 없이 회사에 소속되어야 하며 또 회사가 멋대로 차량의 권리를 주장하는지 말이다. 그런데 그때 느낀 바로는 법령의 문제였던 것 같다. 요즘 한창 유행인 단어로 따지면 이상한 갑을관계이다.

요즘 갑을관계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사용하는 갑과 을이라는 단어 때문에 나온 말인 것 같은데 부당하게 조성된 상하의 계약관계를 의미한다. 이를 놓고 유명한 코미디 프로에서도 코너를 만들어 연기하기도 한다. 이미 이런 코너가 생겼다는 것은 사회에서 갑을관계가 부당하다는 인식이 팽배한데다 이런 불만들이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본다.

요즘 한 유가공회사의 영업직원이 대리점주에게 강제로 납품을 요구하면서 욕설을 하는 음성파일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음성파일은 이미 3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데 들리는 소리가 지금도 그런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그렇고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게다가 이런 강제납품 관행이 단순하게 해당업체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계약관계라고 한다.
모든 사업체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택시회사는 택시기사에게 사납금을 통한 갑을관계를 강요하는 것 같고, 대기업과 중소납품업체, 프랜차이즈업체와 지점, 제조업체와 대리점, 편의점 본사와 점주, 학교 교장과 교사, 정규직과 계약직 혹은 임시직, 선배와 후배, 남성과 여성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사회적 관계에 갑을관계가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폭로되고 있다. 그런데 최상층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런 갑을관계가 뒤엉킨 이상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블랙코미디이다. 갑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소비자라는 지위에서는 때로 을의 지위를 갖게 된다. 갑의 지위에 있는 부모라 할지라도 그의 자녀는 처참한 을의 지위에 놓여서 갑의 행패에 노출돼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한 가지는 한국 사회 모두가 갑을관계를 그저 삶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이상한 사회가 되었을까? 내 생각에는 한국역사의 성장지향주의 때문인 것 같다. 박정희(평가가 어떻든지 간에 독재자였고 헌법을 유린한 과오가 있기 때문에 전대통령이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않겠다) 시절에 경제개발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기업 중심, 개발 중심, 국가 중심으로 만사를 처리했다. 정치와 유착한 기업은 최고의 특혜를 누렸다. 최근에 퇴임한 대통령조차도 기업친화, 컴퍼니 프렌들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기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각종 혜택과 특혜를 줄 정도로 기업우선 정책은 한국 사회에서 매우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국민들의 경제보다는 기업경제를 우선으로 하는 국가경제를 더 먼저 챙겼고 이런 과정에서 빚어지는 국민들 혹은 서민들의 피해와 손해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강요되었다. 일례로 대기업의 총수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며칠 구치소에 있다가 휠체어를 타고 나와 보석되고 솜방망이 처벌만 받는다. 그 이유는 항상 한국경제에 미치는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만 대만 삼척동자도 알아듣는 대기업의 총수는 대통령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 이제는 개발 구호, 기업중심 마인드만으로는 성장을 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에 맞닥뜨렸다.

나는 항상 한국 경제 성장의 조명에서 국민이자 노동자인 존재들에 대한 인식이 빠지는 것이 불만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경영이라 할지라도 노동자가 없다면 결코 성장할 수 없다. 한국이 이처럼 성장한 과정에는 국가와 기업, 노동자라는 삼박자가 두루 역할을 했을 진대 정작 노동자는 그저 부차적인 역할로만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가 곧 소비자이고 임금이 곧 한 사회를 움직이는 자금이라는 기본적인 원리를 외면하였다. 지금 한국의 임금이 상승하면서 공장들이 외국으로 자꾸 빠져나가고 있는데 과연 예전과 같은 성장의 단물을 빨아먹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동자는 언제라도 갈아 치울 수 있는 기계부품이 아니라 한 기업, 더 나아가 한 국가의 성장을 떠받치는 주인공의 하나로 인식되어야 한다. 국가, 기업, 노동자 혹은 국민은 갑을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라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일들이 한국에서 버젓이 발생하고 있다는 인식을 나는 하고 있다.

자급자족의 사회가 아닌 이상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서 그 지위가 뒤바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관계는 서로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 만드는 사람 없이 파는 사람 없고, 사는 사람 없이 만드는 사람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갑을관계라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자가당착이고 모순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사회가 각 구성원 간의 관계를 갑을관계가 아닌 유기적 공생관계라는 것을 발견하고 대대적인 의식의 전환과 더불어 제도의 정비를 해나가지 않는다면 결국은 공산주의에서 주장하는 자본가-노동자 간의 유혈투쟁을 피할 수 없지 않을까!

성서학자에 따르면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신-인 관계를 흔히 중세시대의 봉건적 계약관계라고 한다. 구약, 신약 할 때 쓰는 ‘약’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약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covenant)을 의미한다고 본다. 신은 인간에게 안전과 보호, 더 나아가 복을 약속하는 댓가로 인간은 신에게 전적이고 배타적인 충성과 헌신을 약속해야 하는데 이것이 봉건시대 땅을 주는 영주와 군사적 충성을 바치는 기사 사이에 맺는 계약과 같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은 충성과 헌신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인간에게 징벌을 내려, 가장 심할 때는 자기 자식을 잡아 먹는 처지에 빠지게 한다. 불행하게도 구약에서 신-인 관계는 갑을관계이다.
그러나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예수는 전혀 새롭게 신, 하나님을 해석한다. 갑을관계에서 신-인 관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부모-자식의 관계로 재정립한 것이다. 징벌보다는 사랑으로, 계약관계가 아닌 전적인 은혜의 관계로 재해석되었고 이것이 신앙의 혁명으로 인류사회에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의 정신이 2,000년이나 지속되어 계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관계가 아닌 갑을관계에 더 목을 매고 있다는 현실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그러고보니 교회 안에도 갑을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무엇보다도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관계가 그렇고 목사, 장로와 교인(평신도)의 관계, 노년층과 젊은 층의 관계도 적지 않은 경우 갑을의 관계가 아닌가!

뉴스를 보면서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우리가 동네 앞 작은 구멍가게에서조차 1+1 등의 상품으로 값싸게 구입하는 제품이 결국 대리점주들의 고혈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갑이었고 공범이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어떤 백화점에서는 백화점과 입점주 사이의 계약서에서 갑과 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는데 단순하게 단어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핵심이 아니다. 갑을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한 사회가 병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갑을관계는 강제적이고 권위적인 관계로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동기유발을 하지 못한다. 결국 최종적인 생산성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생산성이 제고된다면 그것은 단기적인 효과이거나 기적일 것이다. 질서와 전체성만을 유독 강조하는 한국 사회, 특히 기업문화에는 미래가 없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갑을관계는 국가가 개발지상주의에서 파생한 기업우선이라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수십 년 간 개발, 발전, 번영, 성공이라는 단어들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정작 그 모든 것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우리들 개개인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오류에 빠졌다. 이제는 갑을관계인 구약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의 관계인 신약의 하나님을 만나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야 할 때이다. 개발이 능사는 아니다. 사랑이 필요한 때이다.

방현섭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070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