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외국에 나갔다가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작업(?)을 걸어 결혼을 한 사람이 있다. 이렇게 작업은 아무 때나 걸 수 있는 것이지만 전쟁은 강한 쪽이든 약한 쪽이든 어느 한 쪽이 필사적이라고 판단할 때 하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 곱게(?) 죽은 영국의 마가렛 대처 마냥 국내 정치의 국면 전환용으로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경우도 있지만. 1982년에 일어난 포클랜드 전쟁은 전쟁이라고 해보았자 한달 반 정도의 미니 전쟁이었지만 그래도 전쟁이라고 군사독재 시절에 징집을 당한 나라인 아르헨티나 군인들은 가난한 나라 군대답게 무척 고생하고 사상자도 많이 생겼었다.

남북간 전쟁 위기 국면에서 필사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쪽은 어느 쪽일까? 단연코 북한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는 전쟁을 벌이는 바보는 없을 터이니(오판을 하지 않는 한)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다. 그러므로 북한이 하는 전쟁 동작은 시비를 거는 일이다. 강자가 약자에게 거는 시비는 심심풀이나 괴롭히기 위한 것이지만 약자가 강자에게 거는 시비는 땡깡이다. 그런데 그 땡깡이 단순히 깽판을 부리는 것이 아니고 '제발 내 말 좀 들어달라.'는 절박한 몸부림인 것이다.

시비가 붙어서 육박전으로 발전 했을 때 힘 센 편이 약한 편의 멱살을 잡고 숨통을 조이면 약한 편에서는 저항을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말로 합시다, 말로! ‘를 다급하게 외치게 된다. 최근 북한이 벌리는 막가파식 외교는 미국의 목조르기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북한의 '말로 하자!'의 표현이다.

북한의 외교는 국제사회에서 소위 아슬아슬한 ‘벼랑끝 전술’로 이미 상표 등록이 되어 있다. 기술은 간단하다. 배짱에 안 맞으면 "못하갔어! 쌍!"하고 인상을 쓰고 나오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의 이러한 외교를 깽판 외교, 악동외교라고 비난 하지만, 나는 북한의 이러한 외교 전략을 ‘포스트모더니즘 외교’라고 생각 한다.

자고로 외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힘을 바탕으로 해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힘을 바탕으로 한 강자의 논리만 통하는 외교가 지금까지의 외교였다면 북한은 약자의 논리를 개발한 셈이다. 아무리 강한 자라도 시비에 걸려들면 기분이 나쁘지만 국제 사회라는 것이 남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체면 때문에 강자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할 수 없는 분위기를 북한은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다.

북한은 국제 사회로부터 온갖 저주와 돌팔매를 맞아가면서도 어떻든 핵주먹에 위성발사 실력까지 갖춤으로써 초강대국 사이에서 ‘전쟁억제력’으로서 가지고 있던 핵의 의미를 약소국이 강대국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는 ‘자위권’ 개념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무튼 북한이 국제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동무들! 불만 있으면 핵무기 만들라우! 기래서 미국과 협상하는 기야.”
뱃심이 약해서 중도에 핵개발을 포기한 리비아의 가다피의 말로를 보고 그들은 더 분발했을 것이다. 물론 핵무기 만드는 동안 주민은 굶어 죽는다. 그러나 역사에 어느 정권이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서 정권을 포기한 사례가 있던가? 이것이 권력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그래서 요즘 한미, 북한은 서로 상대방이 하는 행동과 말의 숨긴 뜻을 파악하느라고 분주한 것이다. 양 쪽 모두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잘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씨름판의 선수들의 삿바 싸움처럼 치열한 신경전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일생 동안 자신이 시비거리로 산다고 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가 결국 시비에 걸려서 죽은 사람이 바로 예수이다. 예수는 일생동안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려는 사람들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긴장 속에서 살아야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분위기로 볼 때 예수는 엉뚱한 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지배계층, 기득권자의 시각에서는 예수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시비거리일 수 밖에 없었다.

예수의 생애 마지막에 세상의 힘의 상징인 로마 총독인 빌라도가 벌였던 시비를 한 번 복기해 보자. 빌라도가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고 물었을 때 예수는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라고 대답 했다.

이를테면 모더니즘적 질문에 포스트모더니즘적 대답을 한 것이다. 즉 시비거리를 뛰어 넘는 답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