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개그콘서트가 재밌다. 그 중 '정여사'가 참 재밌다. 개그맨들이 자신의 개그가 딸리면 남자가 여자 분장하고 나온다지만, 그런 차원이 아니다.  자꾸 보다 보니 길들여진 건가. 개그맨 정태호는 그냥 '정여사'였다. 유행어도 감칠맛 난다. "바까죠", "너~무", "브라우니 물어" 등. '바꿔줘'도 아니고 '바까죠'에 더 눈길이 간다. 인생 살다보면 '바꿔줬으면'하는 거 많지 않은가. 그녀가 '너~무'라고 할 때, 따라하면서 괜한 쾌감을 일으킨다. 한마디로 '너~무' 좋다. '너무 좋다'가 아니라 '정말 좋다'라고 해야 맞춤법에 맞지 않느냐는 생각은 엿 바꿔 먹게 된다. "브라우니 물어"라고 할 땐, 나도 그 개한테 한 번 물려봤으면 하는 충동이 들 정도다.

그런데 '헐', 이런 '정여사'가 세상 밖으로 나와 '난동질'을 부린단다. 겨울용 모피코트를 구입한 여성이 겨우내 입고는 철이 지나 반품을 요구했다네. 그것도 실밥이 느슨하게 봉제되었다는 이유로. 2013년 1월, 어느 자동차 회사에서 일한 지 17년 된 영업과장이 SNS에 하소연했다. 고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동차 타이어 펑크가 났으니 차를 바꿔달라고. 정비업체에서 차량에 문제가 없다고 진단해줘도 불안해서 더 이상 못 타겠다는 부연설명과 함께. 아니 '정여사'는 부지런도 하셔라. 어느새 여기저기 활동하시나 몰라.

앞선 '정여사'는 황당한 차원이다. 하지만, '정여사'를 업으로 하는 인간들도 많단다. 지인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통신사로부터 대당 40만원의 수당을 받아낸 뒤 스마트폰은 환불한다네. 138차례나 그렇게 해서 1억원 상당을 챙겼단다. 스마트폰 수리 기사들이 '정여사'로 돌변해 통신사와 전자업체를 상대로 '바꿔줘' 행각을 벌여 돈을 뜯어냈다네. '정여사'는 머리도 좋으셔라.

[KBS 정여사 코너 화면 캡쳐]

대한상공회의소가 '정여사'의 만행을 발표했다네. 2012년 동안 314개 기업 중 83.4%가 '정여사'를 경험했다고.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기업은 23.2%나 된다고.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에 부쩍 극성이라고 하니 개그콘서트 작가가 좀 찔리겠다. 

이번에 알았다. '정여사'의 영어 이름을. '정여사'니까 'madam jung'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였다. 성이 '컨슈머'였고, 이름이 '블랙'이었다네. '정여사'는 '너~무' 위장도 잘하셔. 사전에는 '보상 등을 목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블랙 컨슈머라고 한다는구먼.

개그콘서트 작가야 '정여사'가 꼴불견이니 그러지 말자는 의도로 글을 썼겠지. 설마 우리 모두 '정여사'를 본받아 아무데서나, 어디서나 '바꿔줘'를 외쳐보자고 그랬을까. 그 개그에서 작가의 핵심 메시지는 '바꿔줘'도 아니고 '브라우니 물어'는 더더욱 아니다. 바로 개그맨 송병철이 마지막 외치는 대사다. "있는 사람들이 더 하네". 작가는 송병철을 통해 사회에 각성을 촉구하고 있었을 터. 사람일이 의도한 대로 안 되는 건 익히 아는 바지만, 세상 참 요지경은 요지경이다. 그 작가가 부추긴 것도 아닌데, '정여사'들은 더 난리라니.

그 전 개그 중 '정여사'와 같은 내용이 많았다. 대부분 몰지각한 사람이나 꼴불견인 사람들을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테면 '쩍벌남, 된장녀' 등이다. 그런 개그를 보는 일반 시민들은 "맞다 맞아. 그건 너무했어"라고 했고, 당사자들은 어쨌든 당당해 하지 못했다. 그게 풍자 개그의 맛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정여사'는 개그를 해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더 많이 그렇단다.

이건 단순히 몇몇 '정여사'의 문제가 아닌 듯도 하다. 누군가 풍자를 하고 비판을 해도 끄덕도 하지 않는 사회가 됐나 싶어 섬뜩해진다. 자고로 풍자와 비판은 사람들의 최소한의 양심에 호소하려 했거늘. 이제 그런 풍자의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사회가 되었나 싶어서다. 사회의 자정 능력까지 거들먹인다면 너무 나간 걸까. 어쨌거나 '정여사'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분명한 듯싶다.

이쯤 되면 '정여사 코너'를 폐지하라는 둥 '정여사' 때문에 기업이 어렵다는 둥 '정여사'가 부추겼다는 둥. 이런 악플들이 난무할 텐데. 이제 개그콘서트에서 '정여사' 못 보면 무슨 재미로 보나. 하지만, 무엇보다 '정여사'가 외친 외침이 헛된 메아리가 안 되면 좋을 텐데. 이 세상에 나와 판치는 모든 '정여사'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애타게 외칠 건데 말이다.

"니네들 해도 해도 '너~무'해. 그러니까 '정여사' 좀 바꿔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