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절차를 모두 마친 후 친척이나 지인들이 돌아가 버린 뒤 유족들만 남고 때로는
배우자만 남아있을 경우에 그들이 단계적으로 겪고 있는 비탄에 대한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유족들이 어떤 형태의 고통을 겪고 있는가에
대하여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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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저자 알폰스 데켄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갚
라는 책자의 내용 중 일부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그동안 예수 믿다가가 죽으면 천국에 갔으니 슬퍼 울지 말라고 위로했던 나의 지난 행동들이 요즘처럼 창피하고 쪽팔린 적은 없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었는데....
책 내용은 모두 17장으로 나누어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 성도들이 기독교적인
사후관에만 치우쳐서 남아있는 유족에 대한 정서적인 배려는 전혀 고려치 못한 실수가 있었음을 고백해야 할 것 입니다.
무시당하는 고통,
자살을 생각하는 고통, 환자에게 얼마 살지 못한다는 말을 해야 할 때의 가족들의 고통과 정서 등과 같이 믿음과 신앙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의 정황을 잘 이해하여야 할 것 입니다.
질병의 발견 순간부터 임종, 정례절차까지 교회에서 개입할 것 같으면 철저히 준비된 개입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 정신적인 타격과 마비상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마주치면, 충격에 의해 일시적으로 현실 감각이 마비상태에 빠집니다. 머리 속이 진공상태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것도 분별할 수 없게 됩니다. 이는 심리학에서 방어기제라 부르는 상태입니다. 몸과 마음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고자 하는 생명의 본능적인 활동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한동안 그런 상태에 빠지는 것을 굳이 막을 필요는 없겠지만,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은 건강상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 부인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성적으로도 인정하려 하지 않게 됩니다. 저 사람이 죽었을 리가 없다. 틀림없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 반드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식으로 굳게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그런 추억이 있습니다. 일본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깊은 밤 독일에서 형이 느닷없이 국제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제 머리 속에는 지난번 찾아뵈었을 때 건강하시던 어머니의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이다, 이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악몽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전화기 옆에 갈겨쓴 메모를 보아도 여전히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서서히 인정하게 되었지만, 아무리해도 마음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믿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누구나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전해들으면 쉽사리 인정할 수 없고, 그 사실을 부인하려는 기분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패닉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직면했던 두려움 때문에 극도의 패닉상태에 빠집니다. 비탄을 겪는 과정의 초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만,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이것을 미연에 막는 것이 비탄교육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4) 부당함에 대한 분노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자, 슬픔과 함께 부당하게 고통을 감내할 수 없다는 분노가
격렬하게 솟구칩니다. 암처럼 상당히 오랫동안 간병한 경우에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 분노의 감정이 약하고 비교적 부드럽게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그러나 심장발작 등 갑작스러운 발병, 화재, 사고, 폭력, 자살에 의한 돌연한 죽음을 겪은 뒤에는 특히 강렬한 화가
폭발하게 됩니다.
교통사고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간 직접적인 책임자가 있는 경우에는
가해자에 대해 참을 수 없을 만큼 격렬하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왜 나만 이런 불행을 겪어야 하는가라는 부당함이 늘 따라다니기도
하고, 자기에게 잔인한 불행을 강요한 사회나 신에 대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또한 남겨진 사람의 성격이나 상황에 따라 분노의 감정이 밖으로 솔직하게 표출되지 못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화를 언제까지나 마음속에 쌓아두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몸과 마음을 해치게 됩니다. 무리하게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적당하게 발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탄을 겪는 과정에는 분노라든가 부당함을 강하게 느끼는 시기가 있다는 사실을 평소 잘 이해하고 있다면, 이런 상태를 극복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5) 적의와
원망
남겨진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죽은 사람에 대해 적의나 원망의 감정을 마구 터뜨리기도 합니다. 남겨진 사람의 이러한 비난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감정으로, 상대가 누구인가에 관계없이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체로 불합리한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적의 표출의 대항자는 이런 행동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이해와 동정심을 갖고 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러한 적의는 특히 마지막 순간까지 죽은 사람의 곁에 있던 의료관계자에게 향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환자의 죽음을 다루는 병원 측과,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육친의 죽음을 맞이한 가족간에 감정 차이에 의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부인은 5년간 매일 남편을 간병하기 위해 병원을 출입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자마자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알지도 못하는 젊은 의사가 와서 시신의 사후처리를 위해 가족은 곧바로 병실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후 10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천천히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 볼 겨를도 없이 병실에서 쫓겨난 아쉬움은 일생동안 잊을 수 없다” 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 자신의 아이가 자살한 책임이 담임교사나 같은 반 학우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감정에도 절실한 한탄과 원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며, 큰 어려움이 동반됩니다.
그리도 이런 적의가 죽은 당사자를 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인의 부주의가 직접 혹은 간접적인 사망원인이 된 경우, 무모한운전, 과로, 불규칙적인 생활, 지나친 음주와 흡연 등 죽은 사람의 생전의 행동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저런 일을 했을까, 어찌하여 가족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등, 무책임한 행동을 책망하는 형태로 출구 없는 적의를 나타내게 됩니다.
6) 죄의식
죄의식은 비탄의 감정을 상징하는 반응으로, 남겨진 사람이 과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책망하게 됩니다. 저 사람이 살아있을 때 이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걸, 그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건강했을지도 모르는데 하고
후회하면서 자기 자신을 질책합니다.
다음과 같은 슬픈 사례도 있습니다. 어느 부모가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별장에서 축하파티를 열기로 계획했습니다. 부모는 졸업식이 끝나자마 별장으로 갔고 아들은 집에 들렀다 가기로 했습니다. 아버지가 별장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아들에게 빨리 오라고 재촉했습니다. 전화를 끊은 아들은 차를 급하게 몰며 별장으로 향했습니다.
30분 뒤 별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모에게 아들이 과속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죽고 말았다는 비보가 경찰로부터 전해져 왔습니다. 아들의 사고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는 전혀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볼 때, 아버지가 그때 전화로 빨리 오라고 말했기 때문에 아들이 무모하게 운전하여 사고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소중한 아들이 죽게 된 원인이 모두 남편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죄의식으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노이로제 상태에 빠졌고 마침내 두 사람은 이혼했습니다.
7) 공상과 환상
공상을 통해 죽은 사람이 아직 살아 있는 듯한 생각에 사로잡혀 실제 생활에서도 이처럼 행동합니다. 제가 강연을 마친 뒤 제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 기다리고 있던 어느 부인은, 남편이 죽은 지 벌써 1년 반이나 되었지만, 매일 밤 남편의 식사까지 준비해 식탁에 나란히 놓고 9시 무렵까지 줄곧 기다려왔다고 말했습니다.
또 몇 년 동안 죽은 어린아이의 방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언제 돌아와도 곧 갈아입을 수 있도록 침대 위에 잠옷까지 준비해놓는 사례도 있습니다.
8) 고독감과 억울함
장례식이 경황없이 끝나고 찾아오는 사람도 차츰 줄어들면 극복하기 힘든 고독한 적막감이 온몸을 휘감게 됩니다. 점점 사람이 싫어지기도 하고 기분이 가라앉아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일이 많아집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권유해도 외출할 힘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도 대개는 남은 사람이 겪어야만 하는 비탄의 과정의 일부이지만, 하루빨리 벗어나려는 본인의 노력과 주위사람의 도움이 중요합니다.
9) 정신적 혼란과
무관심
하루하루 생활목표를 잃어버린 공허함으로 인해 무언가 할 수 있는 기력을 잃어버린 상태에 빠집니다. 어느 부인은 지게 이렇게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8월 전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후부터 남편은 단 하루도 일을 하러 나가지 않았다. 방문을 닫고 아들의 죽음만 한탄할 뿐이다. 죽은 아들 밑에 딸이 있지만 딸에게는 전혀 관심도 두지 않고 냉랭할 뿐이다. 딸마저도 점점 성격이 어둡게 변해간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될지,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
이러한 정신적 혼란이라든가, 인생의 모든 일에 무관심한 상태도 정상적인 비탄의 과정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경우에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거나 카운슬링을 받는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10) 체념과 수용
이 단계에 이르면 사랑하는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쓰라린 현실을 ‘분명하게’ 응시하며 상대의 죽음을 수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됩니다. 수용이란 운명에 따라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사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행위 입니다.
11) 새로운 희망-유머와 웃음의
재발견
고뇌에 찬 비탄의 과정을 겪는 동안, 누구나 암흑처럼 어두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이는 희망의 빛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잊고 있던 미소를 되찾고, 따뜻한 유머 감각이 되살아나면서부터 입니다. 유머와 웃음은 건강한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웃음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슬픔을 극복하고 새 생활을 향해 한 걸음 내딛고자 하는 희망을 뜻합니다.
12) 회복의 단계-새로운 아이덴티티의 형성
비탄의 과정을 극복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기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획득한 사람은 더욱 성숙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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