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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종교다원주의자한국 교회 교우님들께 드리는 류상태의 주일편지 - 2013년 3월 10일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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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3월 09일 (토) 09:14:41
최종편집 : 2013년 03월 09일 (토) 22:25:10 [조회수 : 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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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우님들께 저의 이력과 신앙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올해 첫 주부터 <한국 교회 교우님들께 드리는 류상태의 주일편지>를 매주 인터넷 매체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 글들을 보시면서 저의 정체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는 교우님들도 계셨고, 이단자의 글이기에 올리지 못하도록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며, 기독교를 떠났으면서도 어떤 목적을 위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위장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하여 지난 세월 제가 걸어온 삶과 신앙의 과정을 정직하게 밝혀 교우님들의 의문을 풀어드리고, 오해가 있으면 해소하고, 잘못이 있었다면 사과하는 것이 그동안 저의 편지를 읽으시면서 신뢰와 격려를 보내주신 교우님들 뿐 아니라 저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고 계신 교우님들에게도 마땅한 도리이며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내용은 지난주(3월 3일자)에 올린 저의 주일편지 <왜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신다면>에 대해 어느 교우님이 남기신 댓글에서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제가 과거에 쓴 글에서 인용한 것이기에 정확히 저의 글입니다.

“나는 지금, 기독교 신앙을 모두 잃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떠난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지금 분명 기독교인이 아니다. 나는 이제 비로소 기독교로부터 자유롭다. 기독교에는 아무런 미련도 애정도 희망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절망과 분노는 남아 있다. 그리고 기독교로 인해 벌어지는 해악을 막기 위해 해야 할 일도 남아있다. 나는 그 일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할 것이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것은 세상이 아름답게 되기를 바라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이 글은 제가 2007년 12월에 인터넷에 올린 글인데, 이 글을 인용하신 교우님은 기독교를 완전히 떠났다고 고백한 사람이 어째서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듯이 보이는 글을 쓰는지 의심하고 계셨습니다. 다음은 그분이 쓴 댓글의 일부입니다.

“님께서 언제 다시 기독교로 돌아오셨는지 아니면 전략적으로 바뀌셨는지 의심스럽습니다.”



1. 저는 교리기독교를 떠났고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한국의 주류 교회에서 이단으로 여기는 종교다원주의자입니다.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믿는 소위 보수정통 교리에 동의하지 않으며, 기독교가 다른 종교보다 객관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주류 교회들이 옳다고 가르치고 믿는 교리기독교, 소위 ‘보수정통 기독교’가 복음의 원형이라면 저는 지금도 기독교인이 아니며 앞으로도 기독교로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1985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광중고등학교 교목실장으로 일하던 2004년에 발생한 학교 내 종교자유 사건, 이른바 ‘강의석 사건’으로 학교를 떠나면서 목사자격도 교단에 반납했습니다. 학교와 교단을 떠나면서 저는 평생에 걸쳐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겠다고 사회와 약속했습니다. 제가 올해 주일편지를 매주 쓰는 건 그 약속에 대한 실천입니다.

교우님들은 저의 글에서 ‘교리기독교’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됨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이 용어는 기독교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아닙니다. 배타적인 ‘교리의 기독교’를 그냥 ‘기독교’라고 칭하면서 발생하는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몇 년 전(2008년 이후)부터 제가 구분하여 사용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 27일자 주일편지 <배타 교리 넘어서야 기독교 영성 회복할 수 있다>에서, 저는 기독교의 세 줄기, 즉 ‘교리의 기독교’와 ‘영성의 기독교’ 그리고 ‘운동의 기독교’가 있다고 교우님들께 소개해 드렸습니다. 한국의 교우님들은 교리기독교를 기독교의 전부로 또는 중심으로 알고 계시는 분이 많지만, 예수께서 삶과 말씀으로 가르쳐주신 복음의 원형은 기독교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배타적 교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자세히 알고 싶은 교우님들은 저의 1월 27일자 주일편지 <배타 교리 넘어서야 기독교 영성 회복할 수 있다>와 2월 3일자 주일편지 <복음의 원형은 하늘의 뜻을 땅에 이루려는 예수운동이었다>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가 부정하고 극복하려는 기독교는 교리의 기독교이며, 영성의 기독교와 운동의 기독교야말로 진정 우리가 되찾아야 할 복음의 원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던 2007년 전후에는 교리의 기독교 뿐 아니라 영성의 기독교와 운동의 기독교까지도 부정했고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가 세상에서 소멸되기를 원했습니다.

기독교 전체를 부정한 이유는, 영성의 기독교와 운동의 기독교가 교리기독교의 숙주 역할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이 땅에 영성과 운동성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교회들이 없다면 우리 사회가 교리기독교의 폐해를 좀 더 명확히 인식하고 극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역설적으로 소수의 아름답고 소중한 교회들이 존재함으로 인해 극복되어야 할 교리기독교가 면죄부를 받고 더욱 발흥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러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다음은 당시 기독교 전체에 대한 저의 분노가 어떠했는지를 잘 나타내는 글이기에 부끄럽지만 교우님들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마음 속 분노를 제어하지 못했던, 또는 풀어놓았던 시기의 글이기에 거친 표현이 많은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그만 은퇴하십시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죽어주십시오.)

예수님,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제 그만 은퇴해 주십시오.

무슨 말이냐구요?
벌써 은퇴를 하셨다구요?

아니,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신다고 하던데요?

보세요.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부르는 노래를요.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게다가 주님은
언젠가
모든 인류를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고
약속까지 하셨잖아요.

누가
그런 해괴망측한 말을 하느냐구요?
주님께서 하신 일과 말씀은
언제나 현재적인 것이었다구요?

천국도, 구원도,
모두 현재적인 것이었다구요?
미래로 도망간 적이 없다구요?

예수 믿으면 천국 가고
예수 안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미래적 구원론은
예수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거라구요?

천국도 지옥도
지금 여기에서
우리 각자가
선택하는 거라구요?

에이~!!
아무리 주님이시라지만
2천년 동안 고백되어온
정통 교리를
무시하시기는 힘들텐데요.

사도신경에도
분명히 나오잖아요.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느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에서(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

왜 말이 없으시죠?
부정을 못하시는군요.

그 고백이 맞다구요?
정말로 주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구요?

그럼 죽었던 시체가
다시 일어난 건가요?
아니라구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듯이
주님의 삶과 가르침이
죽음을 넘어
제자들의 가슴에 살아
펄펄 끓는 생명수가 되어
세상을 뒤집은 것이라구요?

사건을
못된 무리들이
박제된 교리로 만들었다구요?

그러니까 예수님,
그만 은퇴해 달라는 겁니다.

2천년 동안
이용만 당해오셨으니,
제발 이제는 더 이상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마시고
은퇴해 주십시오.

할 수만 있다면
예수님도
은퇴하고 싶으시다구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구요?
그럴 힘도 없다구요?

이미 체포되어 있다구요?
감옥에서
나오실 수가 없다구요?

아니, 어떤 못된 놈이
우리 주님을 가두었나요?

요상한 교리를 만든
바로 그 놈들이라구요?

주님 팔아 장사하는
그 놈들 말이로군요.
그럼 할 수 없네요.

죄송하지만
은퇴하실 수 없다면,
교리주의자들에게 체포되어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되었다면,
죽어주시는 길 밖에 없겠네요.

지금 저들 가운데 부활한 예수는,
2천 년 전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신
또한 몸소 생명의 길을 보여주신
내 주님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 갈등을 심고
기독교 조직을 위해
사람을 가두고 죽이는
괴물로 부활한 예수이니
주님께서 죽는 길 밖에 없네요.

주님께서 죽지 않으면
교리로 부활한
허깨비 예수도 죽지 않으니
주님,
죄송하지만
죽어주십시오.

온갖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그 무자비한 괴물과 함께
차라리 죽어주십시오.

오로지
기독교 조직을 위해서만 봉사하는 예수,
먹사들의 생계를 위해 존재하는 예수,
수많은 인생을 속이고 세뇌시켜
교회조직 안에 종속시키는 예수,
인류의 자유를 빼앗아가는 허깨비 예수,

그 괴물과 함께,
나의 주님,
애석하고 슬프지만,
당신도 죽어주십시오.

참으로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는
저 허깨비가,
저 괴물이 죽지 않을 터이니
주님, 죄송하지만
죽어주십시오.

제가 이 글을 인터넷에 올린 건 2006년 12월이었습니다. 지금도 검색을 통하여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제가 지은 책 <당신들의 예수>(2007년 7월 7일, 도서출판 삼인 출간)에도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거칠고 공격적인 글로 인해 아픔을 느끼셨을 교우님들께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교우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거친 표현에 대해 드리는 사과이며, 내용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2. 교리기독교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이후, 교회에 대한 그리움이 찾아왔습니다.

위의 글을 쓸 당시, 저는 한국에서 교리적으로 가장 열려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고 모범적인 교회라고 생각하는 한 교회기관의 신학연구원 겸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 후 저는 이 교회마저 떠나고 말았습니다. 한국 교회에 대한 절망과 분노가 극에 달해 교회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글을 인터넷에 올린 건 2006년 12월이었습니다. 지금도 검색을 통하여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제가 지은 책 <당신들의 예수>(2007년 7월 7일, 도서출판 삼인 출간)에도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거칠고 공격적인 글로 인해 아픔을 느끼셨을 교우님들께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교우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거친 표현에 대해 드리는 사과이며, 내용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의 글을 쓸 당시, 저는 한국에서 교리적으로 가장 열려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고 모범적인 교회라고 생각하는 한 교회기관의 신학연구원 겸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 후 저는 이 교회마저 떠나고 말았습니다. 한국 교회에 대한 절망과 분노가 극에 달해 교회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2007년을 전후한 그 시기는, 저로서는 한국 교회와 교리기독교는 물론이고, 기독교 전체에 대한 실망감으로 견디기 어려운 마음의 병을 앓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의 저에게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가 아니라 예수를 배반한 종교였으며, 인류의 행복을 위협하는 흉측한 괴물일 뿐이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저는 교회를 떠났고, 기독교에 관한 진실을 알리는 데 매진하기로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삶과 말씀으로 전해주신 복음의 원형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가 아니라 인류애에 기초한 따뜻한 포용정신이었으며, 약하고 소외된 이웃을 끌어안는 생동적인 운동이었음을 세상에 증언하고 싶었습니다.

하여 교회를 떠나 시간의 여유와 생각의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된 저는 그해 봄부터 다음 해 봄까지 약 1년 동안, 언젠가 꼭 해야 할 숙제로 여겼던 <소설 콘스탄티누스> 집필을 위해 자료 수집과 독서에 몰두했습니다. 기독교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정치적 책략에 의해 선택된 것임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2007년 12월에는 <내가 기독교 신앙을 가질 때부터 기독교를 떠나기까지>라는 칼럼을 인터넷에 발표했습니다. 바로 서두에서 문제를 제기한 교우님이 인용한 칼럼이며, 지금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전문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그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당시 저는 교리기독교 뿐 아니라 기독교 전체와 인연을 끊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며, 기독교가 세상에서 소멸되기를 진정으로 바랬습니다.

2008년 봄과 여름, <소설 콘스탄티누스>를 집필하면서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분노하며 울었고 그리움에 울었습니다. 기독교를 혹독하게 비판하면서도 결국은 변호하고 마는 저 자신을 고통 속에 확인해야 했습니다. 마침내 탈고를 하고 후기를 쓰면서 저는 다음과 같이 한국 교회에 화해를 요청하는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은 <소설 콘스탄티누스>(2008년 10월 10일, 인물과 사상사 발간) 후기에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저는 이른바 ‘강의석 사건’이 발생했던 2004년까지 제가 근무했던 대광고등학교와 관련된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어울리는 꿈, 선생님들과 함께 지냈던 다정다감한 추억들로 빠져드는 꿈, 그런 꿈들이 자주 제 잠자리를 방해했습니다.

잠자리에서의 꿈은 어느덧 저에게 현실의 꿈이 되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대광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 나이 만으로 쉰하나, 학교 교직원의 정년퇴임은 62세, 아직 11년이란 세월이 남았습니다.

앞으로 개신교는 급격히 허물을 벗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광고등학교에서, 강의석 사건은 객관적 범죄가 아니라 서로 다른 견해로 인해서 발생한 것이기에 학교로 돌아와도 좋다는 편지를 저에게 보내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정년을 일 년 앞둔 시점이든, 한 달 앞둔 시점이든, 기꺼이 대광고로 돌아가 대광학원의 교목으로, 또는 종교 교사로 은퇴하고 싶습니다.

저는 또 하나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23년 전인 1985년에, 저를 목사로 안수해 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이하 예장통합) 교단에서, 종교다원주의도 하나의 사상으로 존중하며 목사자격증을 반납한 것도 객관적 범죄가 아닌 종교사상문제로 발생한 것이기에 반려하기로 했다는 편지를 저에게 보내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정년을 일 년 앞둔 시점이든, 한 달 앞둔 시점이든, 기꺼이 교단으로 돌아가 예장통합 목사로 은퇴하고 싶습니다. 예장통합 교단에서 정한 목사의 정년은 만 70세, 19년이나 남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제가 계속 황당한 꿈을 꾸다가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제 꿈의 실현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이러한 노력의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모두 졸업했겠지만 제가 가르쳤던 대광고 학생들이 보고 싶습니다. 함께 어울려 한솥밥을 나누며 서로 격려하고 의지했던 동료 교사들이 보고 싶습니다. 젊은 시절,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겠다며 꿈과 사명을 함께 다졌던 저의 사랑스런 동기 목사들과 동료 교목들이 보고 싶습니다.

한국 교회라는, 제가 살던 고향으로, 저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니, 제 마음은 이미 고향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돌아왔다”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교리기독교와 화해하거나 타협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교리기독교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이 생각은 대광고에 재직할 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글의 행간을 정확히 읽으신 교우님은 느끼셨겠지만,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교회가 진정으로 주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으며, 그걸 전제로 저 역시 한국 교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밝힌 것입니다. 아, 저의 꿈이 이루어져 한국 교회와 하해하고 여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3. 올 한 해 동안 주일편지를 쓰기로 한 이유에 대하여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강의석 사건이 터졌을 때 저는 저의 하나님과 우리 사회에 한 가지 중요한 약속을 했습니다. 제 평생에 걸쳐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겠다고 서약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9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힘들 때도 많았고,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였으며, 좌절하여 주저앉을 때도 있었지만, 한 시도 그 약속을 잊은 적은 없었습니다.

하여 기독교에 관한 진실을 알리는 글을 꾸준히 썼고, 인터넷에 발표했으며, 5권의 단행본을 출간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삶의 분량을 다 채우고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글을 통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이 일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제가 쓴 글 중에는 한국 교회와 목회자를 비판하는 거칠고 분노에 찬 글도 많았고, 교회 개혁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 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하여 이제는 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칠고 도전적인 글보다, 한국 교회의 교우님들과 진정 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소통하고 싶습니다. 제가 주일편지를 매주 쓰기로 한 이유입니다.

돌발적인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저는 적어도 올 한 해 동안은 주일편지를 계속 쓸 생각입니다. 새로 쓰는 글도 있고, 과거에 썼던 칼럼들을 다듬어 다시 나누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제가 대광중고등학교와 기타 교회에서 했던 설교를 지금의 상황에 맞게 다듬어 교우님들과 나누는 글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국 교회의 여느 교우님들처럼 예수님을 제 인생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지금도 믿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떳떳이 저의 신앙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 없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으며, 여전히 제 신앙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고백은 교리기독교가 말하는 십자가와 부활신앙과는 매우 다릅니다.

이 편지의 제목이 <나는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종교다원주의자>인데, 제 글에 동의하는 분이건 동의하지 않는 분이건, 종교다원주의자인 제가 정직하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뿐 아니라 종교다원주의자들이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여 다음 주일(3월 17일) 편지에서 이 주제와 관련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교우님들과 가정에, 또한 하시는 일과 삶 가운데 늘 함께 하시기를 바라오며...


류상태 두손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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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3-10 00:13:14
늘 그랬듯이 류목사님의 진실하고 솔직하신 말씀을 오늘 가슴으로 받습니다.

소원하시는 모든것이 빨리 성취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극단적인 근본주의 꼴통들이 그동안 많이 힘들게 하였지요?

그들은 자기네들이 이해하는 교리안에 있지 않으면 적으로 속단하고 상대의 속내마음까지 반드시 뒤집어 까내서 알아내야만 즉성이 풀리는 인간들입니다.

이런 사람들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냥 흘려 버리십시요.
그리고, 믿음대로 지금처럼 앞으로 굳굳하게 나가세요.

년말까지는 글을 계속 올려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많은 기대와 기다림이 앞서지만
한편 앞으로 9개월 동안 이곳 당당에서 긴 영적전쟁을 치루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합니다.

주님이 류목사님과 함께 하십니다.

할렐루야! (이건 저의 맘을 실은 진정한 할렐루야 쌰우팅입니다. ^^)
리플달기
7 2
상태좋아 (67.243.28.165)
2013-03-19 12:48:13
류상태 목사님
아직까지도 글을 쓰시고 계시군요. 그 마인드도 변함없구요.
근데 그거 아세요. 당신께서 강의석군을 지지했지만 그래서 학교도 그만뒀는데, 그 강의석군은 뻘짓꺼리 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튼, 목사님의 글 읽으면서 제 신앙관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리플달기
0 2
summum (59.18.136.195)
2013-03-18 22:10:51
교리 기독교 - 기독교
본인이 만들어놓은 기독교의 새로운 정의와 기준으로 기독교를 논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교리라는 말은 부정적인 말이 아니라 매우 중요하고 또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후에 글쓰신 이 본인이 스스로 정한 교리기독교의 반대되는 기독교의 개념도 교리가 됩니다.
물론 그것도 알고 계시겠죠?
교리는 악하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용어 사용을 잘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종교다원주의자라고 본인을 소개하셨는데, 본인이 지킬과 하이드처럼 혹은 아수라백작처럼 그렇게 보여진다고 생각하시지는 않는지요?

글쓰신이의 생각의 많은 부분은 기독교 종교 개혁주의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기존 기독교는 마치 중세의 카톨릭 같은 느낌이고 본인은 그것을 깨뜨리는 종교개혁자말입니다.

그런데 이미 기독교는 정말로 많은 신실한 목회자와 성도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개혁되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 글쓴이의 말따라 현재 기독교의 바리새적인 부분들이 있겠죠. 하지만 성령을 사모하는 많은 선한 목자들, 성도들이 기도하며 스스로를 깎고 다듬고 어떻게든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개혁한다고 해도 종교다원주의로 가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의 개혁의 결과가 종교다원주의로 간다는 것은 본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입니다. 서로 다름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 세계가 존재하고 그 종교 세계가 무시못할 거대한 영역임을 우리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개혁자들은 예수님을 오직 유일한 구세주로 고백합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교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며, 끝없이 우리들의 삶을 개혁하며 교회를 개혁하며 성도들을 개혁하며 살아가는 종교개혁주의자들입니다. 결코 종교다원주의자가 아닙니다.

부디 스스로의 모습을 다시 점검하시고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진리와 가치를 가지고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글쓰신 분의 그 노력은 개혁이 아닌 독을 쏟아 놓는 일이 될 뿐입니다.
리플달기
2 2
박정국 (124.153.200.42)
2013-03-16 22:19:06
스스로 무엇을 말하지는 혼돈하는 분에게
참 불쌍한 분입니다.
자신이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알지 못하고, 무엇을 향하여 가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목자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예수 그리스도 만이 왜 유일한 길인지 알지 못하시는 군요.

성경도, 하나님도 잘 모르신다는 생각을 글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만 가지고 본다면 성경을 류상태님이 믿지 않든지, 믿는다면 위에서 하신 말들은 다 허울좋은 괴변에 불과합니다.

류상태님이 종교다원주의를 믿는 것에 대해서 무엇이라 할 말은 없습니다. 제가 믿음을 주관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고, 믿음을 주관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믿는 하나님, 유일하신 예수님, 유일한 구원을 믿기에 다른 사람이 거부한다고 해도 복되고 생명의 길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류상태님이 어떻게 하나님도 거부하고, 예수님도 거부하면서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목이 되었는지, 한국 교회의 현실이 아프고 안타깝기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믿는 사람이 거짓말과 거짓과 섞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위선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은 다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틀린 것도 맞은 것처럼 말한다면 그 사람은 마음이 넓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도 틀린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더 많은 생각들이 있지만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만 줄입니다.

류상태님이 진정으로 성경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분이라면 회개하시고, 그렇지 않는 분이라면 자신이 믿는대로 사시길 바랍니다.

류상태님이 제가 확신하고 있는 믿음을 흔들 수 없고, 저도 류상태님이 다 옳다고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 간절한 소망은 류상태님도 목사라는 거짓 허울을 벗고 진정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다면 자신이 믿는대로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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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4.24)
2013-03-10 00:46:05
글을 읽으며 마치 내 일같이 마음이 아픕니다.

대광고등학교 이야기가 나와서 더욱 그런 친근감을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안암동 개운사 뒤에서 몇년간 살았거든요.
아직 대광고등학교가 존재하고 있겠지요?.

생명이 있는 씨앗은 뿌려 놓으면 언젠가
싹이트고 자라지요.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지요.
생명없는 씨앗은 금방 썩어서 사회를 부패케 하고.

저는 "예수님의 좁은 길로 가라" 말씀을
아주 좋아합니다.
좁은 길을 험하고, 호적하고, 거칠고,
외롭고, 위험하기까지 하지요.
.
그런 어려움들은 견딜만 하지요.
인류역사에 나오는 모든 선지자들도
생전에 그런 길을 택하고 걸었거든요.
목슴을 담보로 했지요.
.
사약을 마시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도 했고,
기존권력의 총칼받이가 되기도 했고,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되기도 했었지요.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고독감이지요.
좁은 길 때문에 고독한 것이 아니지요.
모든 존재계들이 그 좁은 길의 친구이고 벗이기
때문이지요. 존재계는 그자체가 사랑이거든요.

정작 고독감을 가져다 주는 것은
예수진리인 사랑의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하는
친구, 이웃 신앙인들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선지자는 이웃으로 부터
환영을 받지 못 한다고 하시며 가족,이웃, 친지들의 곁을
떠나셨겠지요.

그래고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들에 비해서
순수하고 순지했지요.
자기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며 부끄러워 할 줄도 알고
양심도 있었거든요.

간음을 한 여인을 향해서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하고
슬그머니 뒷걸음을 쳐서 현장에서 사라졌던 것을
보면.

요즘 세상 사람들은 달라요. 우선 그런 말을
하시는 예수님에게 돌팔매질을 시작하지요.
예수님도 간음한 여인도 신앙인들이 던지는
돌더미에 묻히고 말겠지요.

그리고 그 돌무덤위에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교회를 세워지고, 그 꼭대기에는
네온 십자가가 번쩍거리며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고 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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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3-09 12:27:22
감사합니다
서론격인 내용이라 아직 무엇이라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다음 내용을 기다립니다.
많은 의문이 있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필자가 믿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교리기독교'가 말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다음 글에서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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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84.101.163.239)
2013-03-11 09:32:21
로빈 마이어스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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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84.101.163.239)
2013-03-11 11:46:04
로빈 마이어스
로빈 마이어스
한국기독교연구소 출판, 로빈 마이어스 지음,김준우 옮김
'예수를 교회로 부터 구출하라'를 꼭 읽어 보시기를 ...
교리에 대한 견해 정말 명쾌하고 뛰어납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의 교리적인 주제들을 어떻게 생각해야하며,,,어떻게 거부하며 어떻게 말을 해야하는지... 꼭 읽어볼만한, 읽어야할 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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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3-09 23:55:58
앞과 뒤에서 감사한다는 말은 하긴하는데,
이건 안개작전이고.
내용은 어찌된게 왠 심판관이 누구를 신문하는 스타일로 보이오.

이랴도 되는 것이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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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3-10 03:08:55
처음 다신 댓글이 보이지 않군요.
이번 것은 그래도 순하십니다.

당연히 믿음에 대한 생각이 다르니 묻고 싶은 것이 많지요.
저와 다르니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지요.
특히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다르다 했는데 필자가 밝히지 않았으니 꼭 알고 싶은 마음에 다음에 꼭 말씀해 주십사 부탁한 것이 신문하는 것으로 여기시다니 참 어이 없습니다 그려.

전에도 밝혔듯이 필자의 정직함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이 안개작전이라구요?
이것이 왜곡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지적하지 않았지만 다시 필자의 글을 보세요.
인용한 "예수님, 그만 은퇴하십시오"라는 글의 필자의 어투.
그것이 지금 많이 바뀌었지요?
그동안 마음이 많이 변화하였지만 목표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여 어투가 많이 부드러워졌지요.
저는 이런 변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전략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목적의 근거가 합당한지 이 분은 밝히고 있고 저는 계속 저와 다른 내용이 나오기에 알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혹 그러다가 열렬한 지지자로 바뀔지 누가 압니까?
처음부터 너 옳다 하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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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3-11 13:54:32
형제님의 마지막 그 말씀
정말 마음에 와 다았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처음부터 너 옳다 하는 사람
사실 누가 있겠습니까?

만약 내가 믿어왔던 것이 지나치게 한정적인 것이었다면
주저하지 않고 과감하게 접겠다는 그런..
형제님의 의지를 여기서 짐작해 봅니다.

짜를건 짜르고 바꿀건 바꾸겠다는 님의 의지가 강렬해 보여
참 좋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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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상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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