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가 거지였다는 사실을 한 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흙투성이의 옷을 입고 보건소 대기실에 와서 매일 텔레비전을 보고 앉아 있어도 부모를 잃은 고아 거지였다는 사실을 늦게야 알았습니다. 아이가 젖먹이 시절 부모가 경제적으로 살기 힘들어 아이를 버리고 멀리 다른 곳으로 달아나, 그는 어쩔 수 없이 이 집 저 집 빌어먹으며 살았고, 마을 사람들은 그 아이의 불쌍한 처지를 아는지라 아무도 그를 박대하지 않고, 때가 되어 아이가 찾아오면 접시에 밥을 덜어 주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자란 아기가 벌써 열 살 정도는 돼 보이는 큰 아이로 성장하였습니다. 잠은 경찰서에서 재워주고 식사는 매일 돌아다니며 얻어먹는다는 것으로 봐서, 경찰서에서는 아마 범죄예방차원에서만 보호해 주는 듯합니다. 그 불쌍한 거지 아이가 간호사들에게 혹시 업신여김을 받을까 염려되어 어느 날 간호사들 앞에서 즉흥설교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저 거지 아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시기도 합니다. 저런 불쌍한 아이를 돌보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마음 착한 간호사들이 나를 마치 성인군자처럼 바라보며 내 말에 “아멘” 하고 화답합니다. 립 서비스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이를 좀 깨끗하게 씻겨주어야겠다 생각하고 노천 온천에 데리고 가 목욕을 시켜 주기로 하였습니다. 목욕시켜 주기 전에 먼저 새 옷을 한 벌 사 주려고 간호사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시장에 갑니다. 거지아이가 고은색깔에 예쁜 무늬로 수놓아 만든 제일 비싼 어린 아기 옷을 집어 들고 입고 싶어 합니다. 가게 주인과 간호사들이 그 옷은 어린 아기가 입는 옷이라고 큰 아이들이 입는 옷으로 바꿔 줍니다. 거지아이는 어린 시절 예쁜 옷을 입어 보지 못하고 자라서인지 열 살이나 되어서도 꼬마 아기들이 입는 옷을 입고 싶어 합니다. 슬리퍼도 가장 비싼 것으로 집어 들어 주위 사람들이 내 눈치를 보며 싼 것으로 바꿔 주어도 막 무가내로 비싼 것으로 신고 싶어 하여 그냥 그가 좋아하는 노란 색의 푹신한 것으로 샀습니다.

노천 온천까지 자동차로 약 20분 정도 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간호사들이 목사님이 거지 아이를 목욕시켜 주려고 하는데 차가 필요하다고 경찰관에게 부탁하니 경찰서에서 차를 빌려 줍니다. 모두 함께 백차를 타고 아이를 데리고 노천 온천을 갑니다. 아이는 생전 처음 몸을 씻어 보는지 몸 씻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하는 수 없이 나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가에 서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양팔을 붙들고 억지로 목욕을 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힙니다. 난생처음 새 옷을 입어 본 거지아이가 그동안 전혀 웃지도 않더니 처음으로 웃음을 웃어 보이며 나를 가까이 하려합니다.

거리에서 흙장난을 하는 거지아이

그 후 그 거지아이는 내가 가는 곳마다 계속 나를 따라 다닙니다. 어느 날은 시장님을 비롯하여 유지들을 만나 식사하는 자리에도 따라와 내 옆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칭얼거려 난처하게 만듭니다. 물론 새로 사 입힌 옷은 이미 걸레처럼 더럽게 변하였고 더러운 손으로 내 몸을 만지며 점잖은 자리에서 나를 무안하게 만듭니다.

어느 날은 환자들을 돌보는 방에까지 마구 들어와 더러운 손으로 침대를 만지고 나를 만지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 그런지 그 아이는 유난히 사람 만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그의 행동이 조금씩 싫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아이에 대한 나의 처음사랑이 차츰 식어지기 시작합니다. “저런 거지아이를 돌보는 것이 예수님을 돌보는 모습입니다”라고 설교하듯이 간호사들에게 가르쳤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간호사들 앞에서 다시 젊잖게 수정하여 설교합니다.

“우리가 불쌍한 아이를 돌보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거지 아이들은 몸에 병원균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수간호사가 묻습니다. “무슨 병원균이 있나요?”
“특히 간염을 지니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아 주되, 그냥 돌보지만 말고 청결한 생활을 습관들여 주어야 합니다!”

아이에 대한 순수했던 나의 사랑은 이제 조건적인 사랑으로 바뀌었고, 어느 듯 그 아이를 피하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간호사들이 그런 나를 위로나 하려는 듯 내 말을 지당하다는 듯이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화장실에 데려가 손을 씻겨주고 나오는 모습을 본 후부턴 자기들도 거지아이의 손을 자주 씻겨 줍니다. 그러나 거지 아이는 잠시 지나면 또 더러운 모습을 하고 다닙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살아 온 습관을 바꾸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내가 그를 피하는 눈치를 보여도 아이는 눈치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자꾸 나를 따라 붙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 표정은 굳어지며 그 아이를 어떻게 하면 따돌릴까 생각합니다.

한 번은 음식점에서 나 혼자 점심을 시켜 먹고 있는데, 어떻게 알고 거기까지 찾아와 내가 식사하는 테이블 앞 빈자리에 와 앉아 밥을 먹고 싶어 합니다. 물론 씻지 않은 더러운 손에 악취가 나는 때 묻은 옷을 걸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그 아이에게 처신할까 멀리서 눈여겨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 앞자리에 앉아 한 참 눈치를 보던 거지아이가 용기를 내어 내가 당연히 갚아줄 것으로 생각하고 고기와 밥을 한 접시 사들고 와 내 앞에서 겸상을 하며 먹습니다. 외국인 노인과 거지 아이와의 겸상을 먼 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 반찬이 더 많은 것 같아 내 접시의 고기 한 덩어리를 그 아이의 접시에 넣어주고 아무 말도 없이 둘이 앉아 점심을 먹습니다.

거지아이가 나에게 큰 짐이 되었습니다. 올무가 되었습니다.
‘정말 내가 불쌍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남들 앞에서 거룩한 사람처럼 사랑하라고 설교한대로 살 수 있을까?’

거지아이는 계속 ‘당신이 말한 대로 한 번 살아 보시오’ 하며 나에게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간호사들 앞에서 “거지 아이를 예수님을 대하듯이 하라”는 말을 그 아이는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영어를 배워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집요하게 ‘당신이 말한 대로 한 번 살아 보시오’하며 계속 치근대며 내 앞에 다가오는 듯합니다. ‘사랑’은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가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던 평소의 내 주장이 구호일 뿐인 위선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조산원에 입원한 임신부가 아기를 낳았습니다. 서른여섯 살 된 젊은 여인이 여덟 번째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 더 이상 아기를 기를 수 없어 아기를 낳자마자 보건소에 버려두고 가버렸습니다. 아마 거지 아이도 이런 식으로 어릴 때 버려진 모양입니다. 이곳 필리핀에는 이렇게 아이를 낳자마자 버리는 경우가 많아 간호사들도 별로 놀라질 않습니다. 필리핀 정부는 이렇게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아, 버려진 아이들을 임시로 수용하는 시설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아이들이 버려지는 바람에 정부에서 감당을 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착한 간호사들이 버려진 아기가 불쌍하다고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아이에게 예쁜 옷을 사다 입히고, 노랑 모자에 노랑 장갑과 양말도 신기고 서로 안아주며 귀여워합니다. 나도 귀여워서 안아주었습니다. 아기는 자기가 버려진 사실도 모르고 잠만 곤하게 잡니다. 마음속으로 이 불쌍한 아이를 아무도 데려가지 않으면 내가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떻게 기를까 방도를 생각하다가 아기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길은 아기 엄마가 기르게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엄마에게 아기를 기르게 하고 내가 양육비를 대어 주면 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간호사들에게 아기의 친부모에게 내 생각을 전해 주라고 했습니다. 간호사들이 아기의 부모에게 알아보더니 양육비를 대 주어도 기르지 않겠답니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면 그렇게 까지 하는지 상상이 안갑니다.

막상 내가 그 아이를 기르려 생각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유모를 구하여 길러야 하는 데 그러려면 경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혹시 누가 내 대신 길러줄 사람이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길 며칠이 지난 후 대도시 바기오에서 기쁜 소식이 왔습니다. 결혼 후 10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는 부부가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겁니다. 아이를 기르겠다고 신청한 분은 비교적 살기가 넉넉한 의사 부부였습니다. 간호사들과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비록 부모가 자식을 버렸을지언정 하나님은 그 아이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양부모에게 넘겨지던 날, 내 마음은 왠지 홀가분한 기분입니다. 아이를 멀리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고, 홀가분한 마음이 듭니다. 아이를 길러보겠다고 마음을 먹고도 한 편으론 큰 부담을 가졌던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음으로는 선한 생각을 하되 실제로는 실천하지 못하는 나약한 나의 존재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립서비스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 예수님의 긍휼과 자비를 실천한다고 선교사역을 시작한 나조차도 결국엔 별로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며 나약한 마음이 듭니다. 
 

버려진 아기를 귀여워하는 간호사들

그러나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용기를 가져 봅니다. 한 가지 가능성은 있습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일을 할 때는 전혀 나약하지 않습니다. 아픈 이들을 치료할 때마다 난 늘 힘이 솟고 보람을 느낍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모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동등한 서비스를 합니다. 힐링사역은 혼자 하긴 매우 힘든 일이지만, 현지의 간호사들이 잘 도와주므로 기쁨으로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헌신적으로 아픈 이들을 캐어하는 행위를 환자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였던 이들 중에는 마음이 서서히 열리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주일이 되면 그들은 떠났던 교회를 다시 찾아가 예배를 드립니다.

처음 사랑이 식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내 마음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여전히 나약한 존재임을 이해해 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년 3월 1일
                                                                                              힐링미션 프로젝트를 구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