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보고 똑순이 아줌마래유”

“왜요?”

“너무 억척같이 일만 한다고 해서.......”

안성에서 20년 넘게 홀로 식당을 해온 이옥재(59세)씨다. 그녀를 만났을 때, 두 번 놀랐다. 그녀가 들려준 영화 같은 이야기에 놀랐고, 귀티 나는 얼굴에 놀랐다.

▲ⓒ 이옥재 씨의 사진을 보고 어느 누가 고생한 얼굴이라고 하랴. 그 미모 덕분에 손님들도 첨엔 "저 아줌마, 3개월도 못 버티고 갈 사람"이라 했단다. 지금은 오히려 "좀 쉬어 가며 하라"걱정 해준다니 인생사 모를 일이다.

“아이들 불쌍해서 이 짓 못하겠다.”

옥재씨 부부는 처음 강원도 탄광촌에서 뿌리내리려고 했다. 사람 두 명이 겨우 자는 좁은 방에 살아도 좋았다. 열심히 벌면 보금자리를 마련할 거라는 희망이 있어서였다. 안성에서 온 신발장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사람의 권유에 따라 안성으로 이사를 했다. 신발장수에 도전하기 위함이었다. 트럭에 아이들과 연탄 가득 싣고 안성으로 왔다. 탄광촌 연탄으로 연탄 때고 살려고. 트럭으로 장돌뱅이 신발 노점상을 했다.

어린 자녀들이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다. 엄마 없는 집보다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에이, 장사고 뭐고 아이들 불쌍해서 이 짓 못하겠다.”며 그만뒀다. 집 바로 옆에 식당이 하나 났다. 아무래도 아이들 밥은 잘 챙겨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밥 굶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심정이었다.

자녀 삼남매는 좋아했다. 대신 엄마의 밥을 매일 잘 얻어먹는 대가가 따랐다. 학교 갔다 오면 식당 설거지, 청소, 식당용 만두 빚기를 주구장창 해야 했다. 식당에 딸려 있는 단칸방에서 식구 5명이 생활해야 했다. 3남매의 고교시절까지 한방에서 온 식구가 살아야 했다. 지금은 대학 나와서 시집장가 갔으니 참 다행이다.

11세부터 ‘남의 집’으로 팔려 다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할 이야기가 있어야지”라고 했다. 그러던 그녀가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보따리를 풀려고 하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강원도 시골 출신 옥재씨. 화전민(땅을 태워 밭농사 짓던 사람들)의 딸로 태어났다. 그 시절 밥 굶는 게 일상이었다. 5세부터 동생들을 업어 키워야했다. 늘 일만 하는 어머니 대신. 그리 살아도 천국이었단다. 10세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군대에서 당한 구타, 그 후유증으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그 1년 뒤 시댁의 구박에 못 이겨 가출 해버렸다. 남은 동생들과 옥재 씨. 그녀도 다른 집에 맡겨졌다. 칼국수 식당 하는 친척집이었다. 어쩌면 식당 할 팔자(?)가 이때부터였을까. 어린 나이에 거기서 주구장창 식모살이만 했다. 보수는 전혀 못 받은 채로. 그 후 갈비 식당, 일식집, 횟집 등을 전전했다. 옥재씨는 그 때를 “팔려 다녔다”고 표현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해 글을 몰랐다. 동생들이 그리워 편지를 보내고 싶어도 글을 몰라서 답답했다. 주인집 또래 아이들이 공부할 때 어깨 너머로 글을 배웠다. 겨우 배운 솜씨로 편지를 보내면 동생들은 “누나 글은 알아 볼 수가 없다”며 놀리곤 했다. 정식으로 배운 글이 아니니 오죽했으랴.

“쉬어가며 하라”해서 쉬어가며 하긴 하는데.......

주위에서 “똑순이 아줌마 이야기는 책 한권 내도, 영화 찍어도 되것어”라 한단다. 그런 그녀도 식당 초창기엔 주위 사람들이 “저 아줌마 잘해봐야 3개월 못 버틸 걸”이라 했단다. 왜? 귀티 나는, 즉 고생 전혀 안 해봤을 거 같은 외모 탓인 듯.

성격도 쾌활하다. 화날 땐 불쑥 내지만, 뒤끝이 없다. 사람 좋아하고, 술자리도 좋아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술 한 잔 먹고 다 풀어버린다. 이런 그녀의 성격도 ‘3개월 못 넘길 거’라는 선입견에 한몫했으리라. 진득하게 못 붙어 있을 것처럼 보였나보다.

그러던 손님들이 언제부턴가 이랬다. “똑순이 아줌마, 좀 쉬어가면서 일해유”라고. 어쩌면 “야야! 사느라 욕봤다. 이젠 좀 쉬어가며 하거라"는 옥재씨 모친(81세)의 심정과 통했으리라. 식당 18년차까지만 해도 연중 명절만 쉬었다. 매일 새벽 일찍, 밤늦게 일했다.

덕분에 8년 전에 ‘내 집’을 지었다. 그것도 3층 건물로. 평소 꿈이 ‘3층집’이었단다. 신기하게 꿈대로 되더란다. 집이 완공 되던 그날, 그녀는 펑펑 울었다. 평생을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으로 떠돌던 자신이 생각났으리라. 지금도 ‘내 집 맞나’라며 신기해할 정도라고.

이젠 “좀 쉬어가며 하라”는 말을 듣기로(?) 작정했다. 몇 년 전 심한 ‘오십견’이 왔다. 쉬지 않고 일만 하다 보니 골병이 든 게다. 주위의 권유로 헬스장을 찾았다. 운동을 해야 푼다기에. 덕분에 몸이 정말 좋아졌단다.

요즘은 일요일도 쉰다. 산악회에 가입해서 산을 따라다니느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문을 닫는다. 헬스장으로 운동가야 하니까. 손님들도 으레 그런 줄 안다. 쉬어가며 하라 했으니 손님들도 할 말(?) 없다.

▲ⓒ 탄광촌 시절부터 연탄 때는 게 몸에 익어서 요즘도 식당에서 연탄을 땐다. 지금은 연탄을 갈고 있는 이옥재 씨.

옥재 씨는 “이제 내 몸과 내 인생도 좀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참 결정 잘했다”고 박수쳐줬다. 여러분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 믿는다. 죽을 때까지 일만 하는 ‘희생하는 어머니’보다 ‘자신의 삶도 돌아보는 어머니’라야 자식들도 한스럽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그녀는 요즘 새집보다 식당 단칸방에서 더 자주 잔다. 새벽밥 먹는 손님들 챙겨 주느라고. 간혹 노숙자가 오면 밥 몇 그릇이라도 더 챙겨주느라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