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적인 신앙을 반성함 - 여태천의 시 '너무나 관념적인 사건'

당신은 구체적으로 세상을 살았으니
이제 그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를 지나 관념의
그 아버지에게로 가십시오

'천국행 테이프 이천 원' 옆에서
불빛에 점점 더 단단해져 가던 당신의 얼굴

차갑게 굳은 당신의 허리는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 이제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일생의 잠을 편히 주무시는군요 그 바닥이 더 이상 굳지 않도록 제게 소금물을 뿌리게 하시고, 두 손이 소금에 절어 썩지 않게 하시고, 저를 구체적으로 증거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어둠이 깊은 그곳에서 보았습니다 당신에게 지독한 관념의 냄새가 난다는 것을, 그러니 철없는 제가 단돈 이천 원으로 당신과 함께 싸늘한 콘크리트 바닥에 누울 수 있을까요

부디 당신은 굽은 허리를 펴고
암癌처럼 일어나 백서白書의 이 단단한 거리를 걸어가십시오
하늘의 구름을 뜯어버리고
썩어가는 관념들에게 주사를 놓고
죽음들을 움직이게 하십시오
오늘도 수십 번이나 당신의 누추한 자리를 지나칩니다
구름에 대해 자꾸만 굳어져 가는 것에 대해
아는 척하는 것으로 그 아버지의
그 나라로 갈 수 있을까요
지금 다녀 온 밤바다의 짠 냄새가
당신의 침대 밑으로 조금씩 스며들고 있습니다
(여태천·시인, 1971년 경남 하동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