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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결의서 NO.371’
2013년1월 4일 금요일.
지난 4월 세르반테스를 방문하고 바랑가이 컨셉션에서 의료봉사를 하였을 때 바랑가이 캡틴이 자원하여 약속한바 있다. 다음에 오면 바랑가이 컨셉션 홀을 3층으로 증축하여 게스트 하우스와 클리닉 룸을 마련하겠으니 꼭 다시 와 달라고. 그러나 가난한 나라에서 늘 예산부족으로 허덕이는 공무원들이 그런 약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10월에 그 약속이 어느 정도 시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다시 방문하였다. 그들이 약속을 지키려고 컨셉션 홀의 반을 헐어 지붕을 뜯어 논 상태이지만 아직 건축비가 마련되지 않아 건축을 추진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도네이션을 받으러 다니는 중이다. 그러던 차에 시의회 의장인 아브라함씨가 나를 시장과 시의원들에게 소개하고 보건소에서 진료를 하도록 하는 바람에 지난번보다 더 많은 공무원들과 시민들의 호응을 받으며 나의 의료선교사역이 확장되고 탄력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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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반테스 시청사 전경 |
전립선 비대증과 노인성 질환으로 고생하시던 연로하신 부시장님이 치료를 받은 후 좋아져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내가 다시 와서 지속적인 의료봉사를 해 줄 것을 원하신다. 하여 이참에 몸값을 좀 올리려고 “내 맘대로 올 수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소속한 교단의 어른이 승낙을 하셔야 올 수 있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므로 그냥 해 본 말이다.
“나에게도 윗분이 계신 데 그 분이 허락을 해야 또 다시 올 수 있습니다.”
“윗분이 누구십니까?”
“내가 속한 감리교단의 감독회장님이 허락을 하셔야 됩니다.”
“어떻게 하면 그분의 허락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나를 이곳에 보내 달라고 ‘초청장’을 보내면 됩니다.”
“어떻게 보내면 되는가요? 주소를 알려 주십시오. 그러면 서류를 만들어 보내겠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해 본 말인데 68세나 되신 부시장님이 너무 진지하게 내 말을 받아들이신다. 마침 옆의 내 책상에 인터넷이 열려 있어 감리교 본부의 주소를 알아내어 알려주며, 우편으로 붙이면 오래 걸리니 이메일로 보내라고 이메일 주소도 알려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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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장(좌)과 시의회 사무국장(우) 그리고 간호사들 |
그러고 나서 10월 30일 세르반테스를 떠나 바기오 J선생 집에 와서 일주일 머물다 11월 6일 귀국하였다. 그 후 약 한 달이 지나 세르반테스에 대하여 잊어갈 즈음이다. 본부 선교국 과장이 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필리핀에서 내 앞으로 편지가 왔는데 어떻게 처리하였으면 좋겠습니까?’ 하는 전화였다. 그제야 다시 세르반테스에서 부시장님과 이야기 하였던 것이 생각나다.
“아마 나를 다시 보내 달라는 초청장인 모양이니 뜯어보고 알아서 처리하십시오.”하며 전화를 끊다.
약 20분 후 본부 선교국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편지를 뜯어보니 세르반테스 지자체에서 지속적으로 내가 의료봉사사역을 해 줄 것을 요청하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지자체에서 지원하겠다는 ‘결의서’를 보내왔다. 이 서류는 본부에서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고 이목사님이 가지고 있어야 할 중요한 서류이니 우편으로 보내 주겠다”고.
본부에서 등기 속달로 내게 보내온 봉투를 열어보니 세르반테스에서 보내온 공문서에 ‘결의서 NO. 371’ 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나의 의료선교사역을 돕기 위하여 시의원들이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결의서 용지 좌측에는 10명의 시의원이 사인하였고, 아래 부분엔 부시장, 사무국장 그리고 맨 밑에는 시장이 사인을 하였다. 그리고 세르반테스 시의 고무인도 찍혀있다. 누구나 믿을 수 있도록 완벽한 공문서로 ‘지자체 결의서’를 보내왔다.
그 편지를 받고 약 2주가 지난 후 세르반테스 시의회 사무국장이 주한필리핀대사관에서 나에게 요구한 초청장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그리고 금년 1월-2월 미국과 캐나다의 의료진들이 와서 의료봉사를 하는데 나도 함께 참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과 금년 4월 10일부터 12일까지 있을 타운축제행사에 다른 의료봉사 팀들이 오는데 그 때도 참여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서신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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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회 의원들이 만장일치로 가결한 '결의서' |
나를 초청하기 위한 결의를 하기 위하여 모든 시의원들을 소집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게다. 그리고 참석한 모든 시의원들이 만장일치로 가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역시 마닐라에 도착하여, 루손섬 북부 마우틴 프로빈스 방향으로 버스로 1박 2일을 꼬박 달려가야 하는 그 먼 오지까지 비싼 항공료와 여비를 자부담해 가면서 헌신적으로 자원봉사 가는 것도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감동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태초에 수면위에 떠돌던 하나님의 감동은 바람을 타고 바다를 건너 세르반테스 산골자기를 운행하고 있다.
세르반테스에서 온 ‘결의서’를 읽으며 문득 지난번 민도로에서의 사역이 기억나다. 3년간 민도로 의료봉사 사역을 할 때 미국에서 오신 한국인 K선교사님을 만났다. 그 때 나는 보따리 선교사 노릇을 하며 여기 저기 망얀족들이 사는 산속과 해변으로 가방을 메고 의료봉사를 하며 복음을 전할 때 이다. 미국에서 오신 선교사님은 미국 의료진들의 협력을 얻어 약 6천여 평의 대지에 병원을 크게 짖고 미국에서 의료기구들을 들여와 멋진 의료선교센타를 건립 중에 있었다. 2010년 12월에는 공사 준비 중이었고, 2011년 1월에 갔더니 병원 건물이 거의 완료되어 병원을 시작하려고 행정적인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12년 1월에 갔더니 병원을 운영하지 않고 빈 병원에 먼지만 잔뜩 쌓여 있다. 알고 보니 관계 당국(시청)에서 허락을 하지 않아 병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비싼 돈을 들여 건물과 시설을 갖추었지만 시장이 허락을 하지 않아 폐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후진국이라지만, 맘대로 의료사역을 할 수 없다. 누가 말한 것처럼 필리핀은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나라이다. 지역자치단체의 의결을 거쳐 시장이 된다고 결정하면 안 될 일도 되게 되어 있다. 아무 백도 없는 내가 세르반테스에서 의료사역을 할 수 있도록 시장님을 비롯하여 시의원들이 만장일치로 가결하여 허락하고 초청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개입하시고 도우시는 힘이 아니면 이렇게 쉽게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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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캐나다 의료팀에 합류해 달라고 보내 온 시의회 사무국장의 서신 |
결의서의 내용은 물론 내가 묵는 동안 언제고 숙식을 제공하며 봉사처와 협력할 간호사를 붙여준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시청에서 지원해 주지 않고 내 스스로 자비를 들여 자원 봉사할 경우에는 내 형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요구된다. 지금까지의 단기선교사역은 익명의 선한 손길들이 십시일반 헌금하여 그나마 잘 감당 하였지만, 장기 선교사로 나갈 경우, 매월 들어가는 이 많은 비용을 모두 후원의 손길로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허름한 롯지에서 하루 묶는데 800페소(약 24.000원)나 든다. 그리고 하루 세끼 식사비가 현지식으로 최소한 1만원은 들어야 한다. 합하여 하루 3만원만 잡아도 1개월 체류하기 위하여 숙식비만 90만 원 정도 든다. 거기에다 세탁비와 활동비 등 다른 부대비용을 더하면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그리고 봉사처를 렌트하고 간호사를 두 명만 두어도 1개월 체류하는 데 약 200만원은 들어야 된다. 시에서 협력하면 이 많은 비용을 개인적으로 부담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시설이 갖추어진 더 좋은 환경에서 사역할 수 있다. 지난번처럼 시 보건소 2층을 모두 내가 사용하게 될 경우, 의사 1명, 수간호사 1명, 사무원 1명, 간호사 6명, 간호조무사 12명이 나의 스텝이 되어 의료봉사 사역을 진행하게 된다.
보건소 의사 가우덴쇼우씨는 마침 나에게 치료를 받은 분이고 앞으로도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할 분이므로 너무나 잘 되었다. 그리고 수간호사의 아버지 되시는 부시장님 역시 나의 환자이므로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며,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시장님도 내가 떠나 온 사이에 방광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니 보양차원에서 계속 뜸을 떠야 할 분이다. 나를 그곳에 소개한 시의회 의장 아브라함씨도 물론 나의 환자이다. 앞으로 그곳에서의 치유사역은 주민과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나는 몸만 가면 되게 되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걸로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이렇게 수월하게 이루어 질 수 없다.
외국인 목사가 그곳에 가서 불쌍하고 아픈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행위는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전통적인 천주교 국가에서 개신교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선교사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이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근본주의적인 개신교 선교사들의 도전적이며 과격하고 배타적인 선교사역으로 말미암아 개신교선교사와 천주교인들과의 사이에 마찰을 빚는 사례도 많았다. 나의 헌신적인 돌봄 사역을 통하여 개신교 선교사들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이 누그러지게 될 것이다. 또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도 심어주게 될 것이고 한국을 자연스럽게 홍보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오직 예수님의 긍휼과 자비를 실천하는 마음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환자들을 돌보니,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시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움직여 도우시는 줄로 믿는다. 나의 형편과 처지를 바라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니 일이 잘 풀리고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늘 깨어서 기도하며,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듯 아픈 이들을 섬기는 일이라 생각한다. 성령이 내게 임하시면 내가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들의 요구에 의하여 새해 2013년 1월, 미국의료진 그리고 캐나다 의료진들과 합동으로 행사하는 세르반테스와 마운틴 프로빈스 지역의 의료봉사활동에서 나의 침뜸 면역요법이 선을 보이게 되었다. 동양의술을 처음 접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침뜸시술을 바라보며 신기해 할 것이다. 약도 사용하지 않고 수술도 하지 않으며 단지 가느다란 호침과 쌀알 반 크기의 작은 쑥뜸으로 사람들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모습을 보며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로인해 그들은 한국의 고유한 전통의술과 문화를 존중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교사는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홍보대사나 마찬가지다. 경제인들이 사업을 잘 하고 수출을 많이 하여 한국경제가 크게 발전하였지만, 외국 각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한국의 국가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주는 선교사들의 숨을 공로도 적지 않다. 한류바람은 이러한 모든 일들이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따뜻한 바람이다. 국가발전은 어느 특정부류의 사람들만이 이루는 것이 아니고 온 국민이 함께 이루어가는 공동체적 과제이며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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