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최고의 뮤지컬 최고의 영화가 되다

영화의 후반, 장발장이 그의 양녀인 코제트와 청년혁명가 마리우스 앞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장면.

아내는 감정에 북받쳐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의 울음에 비로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많은 생각과 옹졸한 분석으로 영화 자체를 즐기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 인간과 예술 사이의 이상은, 분석이나 평가 따위의 피드백을 통한 이질감의 확인 보다는, 인간 본연의 감성에 충실함으로써 인간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일치감 자체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몇 줄의 감상문이 감정의 지속력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확신에 몇 자 적어본다.

디지털 시대에 다시 찾은 아날로그식 감성

이 영화의 가장 큰 동력이 빅토르위고의 원작 '레미제라블'이라면, 이른바 '손 맛'의 촉각을 자극하는 아날로그식 음악녹음은 원작의 감성과 의도를 한 층 빛나게 했던 가장 완벽한 선택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수 많은 영화들은 3G를 넘어 4G의 기법으로 피부의 자극마저 조작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조금 떨어지는 피치(Pitch)의 부정확함이나 발성의 불안정에 기계적 튜닝을 더하는 것은, 현대 대중 예술의 필수적인 기법이 되어있다.

하지만 영화 '레미제라블' 속의 연주들은, 인간의 목소리가 낼 수 있는 부정확함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미세한 음의 떨림마저 인간 감성의 일부라는 원칙을 확인시켰다. 때문에 이 영화는 왜 인간의 목소리가 가장 완벽한 악기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음악에 무지한 자들이라도, 이 영화 속 배우들의 노래에 어떤 인공적인 튜닝도 가미하지 않았음을 쉽게 눈치챌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근래에 있었던 뮤직컬 영화 중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에서 시작되어 믈랭루즈(Moulin Rouge), 그리고 인기 드라마 글리(Glee) 시리즈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뮤지컬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함이 이 영화에 담겨져 있다.

이 영화는 인간의 목소리에 가미된 기계적 개입을 최소화시키는 이른바 '복고'를 표방했고, 또 '복고'란 소재가 인간의 감성을 최대치로 증폭시키는 하나의 좋은 기법임을 확인시키는 영화다.

뮤지컬로의 복고

뉴욕의 브로드웨이로부터 시작된 미국식 대중문화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19세기 말, 미국은 유럽식 예술문화의 불모지였다. 유럽에서 심포니와 오페라로 대표되는 유럽의 음악예술을 즐길 수 있었던 부류는 '대중'이 아닌 이른바 '특권층'이었고 '지배계급'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20세기 초, 미국의 산업화는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일 수 있고, 서민적일 수 있는 문화적 ‘패러다임 쉬프트’의 본거지로 만들었고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브로드웨이였다.

오페라 얘기를 간단하게 해야겠다. 1955년,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던 오페라가수였던 레나타 테발디(Renata Tebaldi)는 신성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등장으로 로마의 산마리노 극장에서의 입지가 좁아지자 돌연 미국행을 선택한다.

그녀는 미국 메트로폴리탄에서 오페라가수로서 새로운 입지를 굳히기를 원했다. 그러나 미국에는 이미 유럽과 다른 미국식의 예술문화가 깊게 뿌리 내린 이후였다. 미국에서는 오페라 시대의 전성기가 꽃피지도 꽃필 수도 없었다.

오페라 문화는 미국식의 뮤지컬에 의해 대체되고 배척당했다. 1980년대 미국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하는 명품 뮤지컬의 전성시대를 맞이한다. 이 때 등장했던 작품이 바로 뮤지컬로 각색된 '레미제라블'이었고,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 칼라스가 테발디를 대신했고, 미국식 뮤직컬이 유럽의 오페라를 압도했듯이, 20세기 후반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문화는 헐리우드 중심의 영화문화에 의해서 철저하게 짓밟힌다.

마이크의 기술이 압도적이지 않았을 때에는 넓은 극장의 맨 뒷좌석까지 얼마나 파괴되지 않은 정확한 음가와 발음을 전달하는지가 오페라 가수의 힘이었다. 그러나 뮤지컬이 등장한 이후로 오페라식 가수의 발성과 능력은 마이크, 음향, 무대장치, 효과음, 무대연출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었다.

가수들은 좋은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는, 보다 인간 본연의 감성을 연기하는데 충실할 수 있게 된다. 현대 영화에서는 이런 기계적 편집에 대한 의존이 더욱 뚜렷해졌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현대영화의 상당한 기계적 기법들을 의도적으로 배척하고 있다. 그리고 분명히 이런 제작방법은 스토리의 현실성과 감성을 극대화시키는데 일조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점, 아쉬웠다

다른 문화를 흡수해서, 120% 자기의 것으로 재탄생 시키는 힘. 역사의 부재를 영웅 만들기의 노력으로 해결하는 영악스럽기까지 한 지혜로움. 이 두 가지 요소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프랑스의 문학이 아닌, 미국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우리는 비행기보다 자동차를 훨씬 많이 탄다. 그러나 비행기를 만든 사람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라이트형제라는 사실을 알아도, 자동차에 4기통의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이가 독일의 오토라는 사람인걸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점은 몇몇 프랑스식 문화와 역사가 노골적으로 미국화 된 것이었다. 물론 주관적 판단이다.

원작이 프랑스의 작품이라고 해서 프랑스 배우만이 이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거나, 영어로 공연되는 레미제라블을 졸작이나 아류라고 비하할 의도는 없다. 다만, 죄수와 노예의 몸에서 풀려난 장발장이 시장으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던 모습은 흡사 미국의 노예해방을 이끌었던 아브라함 링컨의 모습에서 턱수염만을 제외시켜 놓은 듯 했다.

지나치게 축소시킨 프랑스 시민혁명은 뮤지컬을 영화로 옮겨놓은 장점을 극대화시키는데 실패했다. 이런 점은 원작이 19세기 프랑스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여, 단순한 개인의 갱생이라는 타이틀에 묻히지 않게 노력했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최고의 한 컷 - 변하지 못한 자의 최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가장 인상 깊은 명장면으로 장발장이 성당에서 마지막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라든지, 판틴 역을 맞았던 앤 해서웨이의 가장 유명한 테마 'I dreamed a dream'이 흘러나오는 장면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베르 경감의 독백과 이어지는 그의 죽음의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백미라 여긴다. 영화에서의 이 장면은 전체 극의 갈등의 최정점에 도달하여 무참히 깊은 다리 밑으로 곤두박질친다.

영화는 그 장면을 자베르에 대한 장발장의 승리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뛰어난 영상미와 충분한 시간적 여백을 살림으로서, 자베르를 최소한 그 장면의 주인공으로 탈바꿈 시켰다. 아내는 자베르의 자살 장면에서 내게 한 마디를 던졌다. "나는 자베르가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어. 당신은?" 나는 "글쎄"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 내 모습을 자베르의 삶과 철학 속에 투영시키고 있었다.

이 신(scean)은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갈등과 대립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다. 장발장과 자베르 경감은 저마다 각자의 확고한 신념과 신앙관에 타오르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동선은 정 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장발장은 한 마디로 변하지 않으면 죽어야 했었던 인물이다. 그는 한 때, 좀도둑이었고 죄수였던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휴머니스트로 또한 인격적인 시장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의 모습을 철저히 변장한 채 살아가는 것이 그에게는 인생의 큰 목적이자 생존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자베르는 달랐다. 자베르는 확고한 법치의 신념에 사로잡혀있는 인물이다. 그는 장발장의 과거의 행적을 쫓고, 새로워진 장발장의 모습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한 번 죄수는 영원한 죄수라는 신념으로 장발장을 쫓는 그의 책무를 다하며 살아간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장발장은 프랑스 시민혁명의 일부가 되었고, 자베르는 혁명의 진압자가 되었다.

현실의 삶과 이상에서 장발장은 가장 극단적인 진보의 모습을, 자베르는 가장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모습을 취한다. 변화, 그것은 주인공 장발장이 그토록 꿈꾸던 새 세상의 갈망이었고, 자베르에게는 어떻게든 저지해야 할 책무였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두 사람의 테마들에서 이 두 사람은 각자의 신념에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신앙의 모습을 싣고 있었다는 것이다. 장발장이 그랬듯이 자베르의 테마 속에서도 그가 얼마나 확고한 '신념의 인물'이자 '신실한 신앙인'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자베르를 향한 장발장의 용서는 자베르 자신이 목숨처럼 신봉했던 소명과 신념을 무너뜨렸다.

단순히 두 남자의 대결과 갈등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신앙의 축이 무너졌을 때 자베르는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법질서의 수호와 혁명의 진압은 자베르를 자베르답게 만드는 가장 튼튼한 철학이자 소명이었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삼십 여년의 세월 동안, 장발장은 끊임없이 변화와 변장을 꿈꿔왔고, 반대로 자베르는 삶의 양식과 신념에 거의 변화가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결국 변화라는 엄청난 동력 앞에서 자베르는 무너진다.

아마도 빅토르위고는 장발장이라고 하는 한 사람의 드라마틱한 삶의 전개보다는 20세기 급격한 변화에 진통을 겪고 있는 프랑스 사회에 변화의 동력에 대항하지 말고 오히려 변화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듯 하다. 그런 면에서 자베르의 죽음은 프랑스의 계급적 관료주의의 몰락과 시민계급의 부상을 교차시키는 '골든크로스'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변화를 꿈꾸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메인테마 'I dreamed a dream'에 대한 가장 올바른 해석에 감사한다. 물리도록 아름답고 달콤한 운율, 그리고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Britain's got talent를 통해 익살스럽게 등장했던 수잔 보일의 선택곡이기도 했기에, 알게 모르게 이 테마의 가사가 가지는 절망과 회한에 대한 착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야 말로 여주인공인 판틴의 처절한 절규를 가장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개인적으로는 코제트를 열연한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목소리가 가장 미국적이고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였다고 생각하지만, 판틴역의 앤 해서웨이의 목소리와 감성은 아만다 사이플러스가 가진 기술적인 완벽함을 뛰어넘을만한 연기력과 감성의 최고치를 선물한다.

이 겨울, 나는 조조할인 5000원의 가격에 최고의 성탄선물을 받았다. 영화 레미제라블이 내게 준 감정선은 아마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다. 두 가지 중요한 삶의 교훈을 선물하면서..."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변화라는 가장 위대한 꿈을 꿔라. 그리고 그 전에, "예술, 닥치고 그냥 즐기시기를".

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가 개봉 된 다음 날, 대한민국은 붉은색을 상징적 로고로 사용한 새누리당이 새로운 5년의 권력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반대로 피와 혁명을 상징하던 19세기 프랑스의 붉은 빛은 그 정신만을 남긴 채 정부권력에 짓밟힌다. 바리케이트 저 건너의 참 자유의 꿈을 뒤로 미룬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