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입력 : 2013년 01월 01일 (화) 19:48:39
최종편집 : 2013년 01월 01일 (화) 21:26:21 [조회수 : 2800] |
|
너 자신을 알고 있는가
1
버지니아 숲 속에 첫눈이 내렸다.
세상이 모두 가난한 마음으로 잠든 그날 밤,
엉뚱하게도 나는 돼지꿈을 꾸었다.
신년길조를 약속해 주는 大舶꿈이다.
장자는 나비 꿈을 꾼 후
"내가 나비 꿈 꾼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가?" 하고
실없는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나는 장자 같은
道人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다.
아침 일찍 동네 구멍가게에 들려
복권이나 몇 장 사두어야 겠다.
아비돼지가 된 나는
아홉 마리 새끼돼지들과 함께 눈 구경을 나갔다.
들판에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세상이 온통 하얗다. 눈사람 되어 아장아장 걷고 있는
새끼들의 귀여운 모습들, 황홀하기만 하다.
한참을 걸었다. 제법 깊어 보이는 개울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인원점검을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아홉..."
분명히 열 마리여야 하는 건 데, 머리 수 하나가
부족했다. 당황해졌다.
몇 차례고 거듭 세어 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한 마리가 부족한 아홉 마리였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금싸래기들 같은 내 자식들을
한 마리라도 저 눈보라 속에 버려둘 수는 없지"
다른 새끼들을 독려해서 수색작전을
막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가장 어린 막내 돼지가 헐레벌떡거리며
내 앞으로 달려 나왔다.
"아빠! 혹시, 아빠를 빠뜨린 거 아니야?"하고
말했다. 맞은 말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나를 세지 않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나만은 늘 예외였다.
사람이고 동물이고 어린 것들은 순진하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할 줄 아는
용기가 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도 이와 비슷했다.
사기꾼들에게 속아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니던 임금님에게
"야,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벌거벗고 거리를 지나가신다!" 하고
외쳤던 것도 바로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이었다.
사기꾼 옷장사들과 아부꾼 신하들이
"와, 정말 멋있고 아름답군요.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하고 감탄사를 한참 늘어놓고 있었을 때.
2
이 우화는 돼지의 꿈 이야기가 아니다.
한 인간돼지의 꿈 이야기다.
인간들은 한결 같이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너만을 계산하고 비판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나의 잘 못은 念頭, 眼中에도 없고
너의 잘못들과 허물들만 어른거린다.
샤르트르 의
"나는 늘 천국이고 너는 늘 지옥이다."라는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이 세상을 내가 아닌 네가
불러들인 싸움판이고 지옥이라고
철통같이 믿고 있는 것이 인간들이다.
서구철학은 " 너 자신을 알라"는
희랍철학자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 서구철학이 나온 이래,
이 세상은 너와 나, 천국과 지옥의
전쟁터 일 수밖에 없었다.
무지한 철학, 철학자들의 탓이 크다.
사실 소크라테스 자신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어린애들처럼 눈에 보이는 모습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순수함과 용기도
겸비한 지성인이었다.
"나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했던 것을 보면.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세상물정도,
세상이 무섭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실전경험이 부족한 어리숙한 학자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세상을 향해서 감히,
"너 자신을 알라" 고 선전포고를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 외침은 처음부터 죽음을 각오한
일종의 자살행위였다.
3
이 세상에 "너 자신을 알라" 는 말을 듣고
관용으로 상대를 용납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가 않다.
철학을 떠나서 인간들은
"나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
본능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알려고
하는 것과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가 자기라고 믿고 싶어 하는 자기,
세상의 거울에 비쳐진 자기는
진짜 자기가 아니다. 가짜고 모조품이다.
대부분 인간들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죄의식을 느끼며 무의식 속 깊숙히
감추려고 하고 있을 뿐이다.
예수는 진리를 밝히는 선지자들은
자기 고향사람들로 부터 배척을 당한다고 말했다.
아주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고향사람들 이전에
자기 아내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것이
일반적인 선지자들의 삶이다.
소크라테스가 그 좋은 예다.
소크라테스 부인 크산티페의 는 세계 삼 대 악처로
알려져 있는 악명 높은 여인이었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펄펄 끊는 물을
소크라테스 얼굴에 쏟아 부었다고 하니
그런 악평의 주인공이 될 만도 하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녀를 그렇게
악평할 것만도 못된다.
그녀는 한 평범한 주부였다. 경제적으로
남들보다 더 잘 살아보자고
소크라테스를 들볶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보수적인 남자들의 관전평이었을 것이다.
요즈음 생각으로는 그녀도 그를 혹평했던
남자들도 모두 보수적인 사람들이었다.
보는 관점만 다를 뿐.
솔직히 경제적 현실을 무시하고 허구헌 날
"너 자신을 알라" 고 잔소리를 해대는
남편과 함께 살 여성들이 이 세상에
과연 몇 명이나 있겠는가?
요즈음은 사랑한다는 말을 밥 먹듯 하고
경제적으로 잘나가는 남편들도 한 순간에 걷어차이는 세상인데.
4
인간들은 "너 자신을 알라" 는 말에 알러르기성
반응을 보인다. 마치 자기더러 당장 죽으라는 말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럴 만도 하다.
진짜 자기를 알려면 여태껏 자신이 믿고 의지해 온
허구적 자기를 내려놓아야 한다.
이는 모든 기득권들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사수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세례 요한만 해도 그렇다.
그는 현행법상 흉악한 짓이나 죽을 만한 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었다.
헤롯왕이 휘두른 칼에 무참히 목이 두 동강이 날만한
아무런 그럴 듯한 이유가 없었다.
보수수구권력들을 향해
"너 자신의 죄상을 고백하고 회개하라" 고
광야에서 겁 없이 외쳤던 것이 고작이었다.
어찌 그 뿐인가? 예수는 어찌 했는가.
예수가 무슨 정부전복 반역죄라도 저질렀는가?
아니면 예수와 함께 십자가형을 받아 처형되었던
죄수들처럼 흉악한 죄를 범했는가? 둘 다 아니었다.
굳이 죄를 따지자면 공공장소에서
"잘 살아 보자" 는 노래를 불렀다는
고성방가 죄밖에 적용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모두 잘 살아 보세.
빵만 먹지 말고 하나님 말씀도 먹으며
우리도 모두 잘 살아 보세.
갖은 자 못 갖은 자
잘 난 사람 못 난 사람
서로서로 나누고 사랑하며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이런 잘 살아 보자는 새마을 노래가
그리도 귀에 거슬렸는가?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할 만큼
5
인도의 붓다는 소크라테스 나 예수와는
사뭇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우선 숙명론에 물들어 있는 동양 선지자였다.
출신성분도 그들과는 대조적이었다.
붓다는 왕자로 태어나 궁중에서 왕재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다.
그런 탓으로 그는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도 더
빤히 알고 있었다.
보수 세력의 비위를 거스른 말을 했다가는
왕이나 왕자라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너무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바로 붓다였다.
그래서 위험한 "너 자신을 알라' 가 아니라
안전이 보장된 "나는 누구인가"로부터 구도의 길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는 지극히 보수적이고 외교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요절을 했던 대부분 서양의 예언자들과는 달리
80이 넘는 천수를 누리고 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으리라.
6
역성혁명으로 이조를 세운 이성계와 그를 도와
서울로 도읍지를 택하게 했던 풍수지리설의 대가
무학 도사 사이에 이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전해온다.
어느 날 새 궁터 자리를 이곳저곳 둘러 본 후
이성계와 무학이 저녁상을 함께 했다.
술을 몇 잔 걸치고 은근히 취기가 오른 이성계가
"내 눈에는 당신이 돼지로 보이는데, 당신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입니까? " 하고 진 담반 농담 반으로 무학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이성계는 솔직담백한 무사출신이다.
또 그는 선가에서 높은 道의 경지로 여기고 있는
궁술의 달인이었다.
그런 이성계의 눈에는 비친 타락한 중, 무학의
모습이 사실과 크게 빗나갔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중이란 작자가 절간을 지키며 佛道는 닦지도 않고
권력에 빌어 붙어 살생을 부추기며
惑世誣民 짓거리들이나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성계의 눈으로 본
돼지 무학의 모습이었으리라.
"저의 눈에는 주군이 부처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입니다"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교활한 무학의 대답이었다.
만일 그가 "당신도 나처럼 돼지처럼 보입니다." 하고
막말을 했더라면 그의 운명이 어찌 되었겠는가?
당장 이성계가 쏜 화살이 그 날 저녁상을
그의 제사상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으리라.
몇 시간 후면 이 해도 마지막이다,
그리고 찬란한 해가 숲 속에 떠올라
새로운 한 해를 다시 열어 갈 것이다.
내가 돼지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돼지가 내 꿈을 꾼 것인지?
자꾸 머리가 헷갈리기만 한다.
애라 모르겠다.
아침에 복권이나 몇 장 더 사 두어야겠다.
|
|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
|
 |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072 |
 |
|
|
|
|
|
|
|
| 신성남
(49.50.206.22) |
 |
|
|
| 새해를 의미있는 이야기로 열어주시는군요^^ |
박 선배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새해에도 온 가정에 주님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
|
|
리플달기 ▼
|
|
|
|
|
|
|
|
|
|
|
| 등촌
(72.229.159.118) |
|
|
|
| 하얀돼지 |
| 간밤에는 하얀돼지 싸이가 맨해튼 타임스퀘어 무대를 점령하는걸 티브이로 봤지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하얀돼지 꿈"이 실렸네요. 새해 운수대통하소서! |
|
|
리플달기 ▼
|
|
|
|
|
|
|
|
|
|
|
|
| 윤재봉
(116.126.59.153) |
|
|
|
| 예수님 꿈 |
| 돼지꿈, 용꿈, 개꿈... 꿈들도 많은데 왤케 예수님을 꿈속에서라도 한번 만나고 싶은건지... 기껏해야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뿐일테데... |
|
|
리플달기 ▼
|
|
|
|
|
|
|
|
|
|
|
| |
| 박평일
(72.196.234.24) |
|
|
|
|
에수님의 실존이시니 꿈 속에서가 아니라
순간순간 우리 삶 속에서 만나는 것이 이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
|
|
리플달기 ▼
|
|
|
|
|
|
|
|
|
|
|
| 이강무
(182.210.127.44) |
|
|
|
|
복권이 꼭 담첨되길 기대합니다.
당첨되면 선교헌금으로 십일조를 꼭 보내 주십시오.
필리핀 세르반테스 산악지역에 아픈 이들을 위해
힐링쎈터를 하나 세우고 싶어서요. |
|
|
리플달기 ▼
|
|
|
|
|
|
|
|
|
|
|
|
|
|
|
|
| 박평일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