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밝혀놓고 그대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어제 주일에 2012‘성탄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큰딸 진명부부, 둘째딸 은범 아들 해범이가 와서 집에서 봤습니다. 요셉부부와 아기예수 그리고 동방박사 세 사람, 이렇게 6명이 조촐하게 모인 베들레헴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여섯 명이었으니까요. 사위가 네덜란드인이라서 영어로 진행했습니다.

“기쁘다구주 오셨네” “고요한밤” “저들밖에”를 부르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오 솔레미오”는 이태리어로, “들장미”는 독일어로 노래해야 음악성이 살아납니다. 크리스마스 캐롤도 오리지널을 찾아 영어로 부르니 감동이 새롭습니다.

3년 동안 미국교회 나가면서 미국인들과 부를 때보다도 더 진하게 말입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은범이가 기도를 인도했습니다. 사위 마이클이 동박박사 세 사람 이야기가 나오는 성경(마태2:1-12)을 읽었습니다. 장인인 저는 “동방박사가 아닌 괴테의 파우스트박사 이야기”를 설교했답니다.

파우스트박사가 삶의 회의에 빠져 교수연구실에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새까만 삽살개 한 마리가 기어들어왔습니다.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데, 펑! 소리가 나면서 연기가 터져 나오는데 삽살개는 사라지고 악마 머피스트가 연기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하하하하, 파우스트박사, 나는 그대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 학문과 도덕으로 교수하기도 이젠 질려버렸지? 속에서 꿈틀거리는 관능과 쾌락으로 한번 멋들어지게 살고 싶지? 자! 나에게 피로 사인한 네 영혼을 다오. 그러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

악마가 내미는 계약서에 파우스트는 엄지를 베어 피로 싸인을 했습니다. 그 후부터 그의 인생은 승승장구합니다. 사업 마다 성공하여 재벌이 되고 정계에 진출하여 수상이 됐습니다. 미녀들이 나비 떼처럼 몰려와 밤마다 주지육림을 즐깁니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늙자 돈도 여인도 권력도 모두가 떠나가 버렸습니다. 남아 있는 건 죽어가는 늙은 병자 파우스트 단독자 뿐입니다. 오늘밤에 내가 죽는구나! 그때 악마 머피스트가 껄껄 웃으면서 나타났습니다.

“파우스트, 약속한데로 그대는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이제 나를 따라 지옥으로 가자”

머피스트에게 끌려가면서 파우스트는 죽음과 지옥에 대한 공포로 발버둥 칩니다. 그래봤자 소용없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기쁘다 구주오셨네/ 만백성 맞으라”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날 밤이 크리마스이브였습니다. 백악관, 양로원, 감옥,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새벽 송을 불러주던 성가대원들이 파우스트박사집을 찾아온 것입니다. 성가대의 크리스마스캐롤에 악마 머피스트는 혼비백산 도망쳐버렸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로울 때 어려울 옥으로 끌려가던 파우스트는 영혼의 구원을 받고 천당으로 올라갔습니다.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도+마스의 합성어입니다. 크리스도에게 미사(예배)드린다는 의미이지요. 동방박사 세 사람은 보물을 바치면서 예배드렸습니다.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으로 해답을 찾지 못할 때 그분에게 기도하면 문제가 신기하게 해결 받습니다. 그러다가 그분을 구주로 믿게 되지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성탄절 예배와 새해소원은 응답 받습니다“

“한국어설교보다 당신이 영어로 설교하는 게 더 감동적이고 설득력이 있어요.”
처음 하는 영어설교에 아내는 놀란 모양입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한국어로야 하도 많이 들어서 마이동풍처럼 흘러가 버리지요. 저는 매일 아침 영어로 신구약성경을 읽는데 서툴러도 구구절절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어제 주일은 밤늦도록 즐거웠습니다. 점심먹고 4시면 가던 애들이 밤 11시가 되도 갈 생각을 안 합니다. 윷놀이, 포커, 음악 감상을 하면서 떠들어 댑니다 . 저는 살며시 빠져나와 내방으로 피난 왔습니다. 갑자기 고독이 몰려왔습니다.

촛불을 켜놓았습니다. 이름을 부르고 싶었습니다. 일 년 동안 제 돌섬통신을 읽어준 이름들을 불러봅니다. 다정한 이름들, 그리운 이름들입니다.  은총의 계절이 돼서 그런지, 세모가 돼서 그런지, 지나간 일들이 모두 아름답습니다.  시인 고은은 만인보(萬人譜)를 노래했지만 등촌은 그저 메일친구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그래도 행복합니다. 하늘거리는 촛불사이로 숨어있는 그리운 이름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