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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구촌 오지의 강남스타일
10월 21일, 주일
오전 9시 간호사 덴의 안내로 교회를 가려고 보건소를 나서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도로를 꽉 메우며 내가 가려는 방향에서 내가 서 있는 큰길 쪽으로 걸어 나온다.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데모하는 것처럼 밀려나와 무슨 일이 있나 덴에게 물어보니 천주교회에서 1부 미사를 마친 분들이 집에 가는 중이란다. 쉽게 헤아려도 500여 명은 되는 사람들이 차를 타고 혹은 3,4,5 짝을 이루어 시청 앞 도로를 점령하고 걸어간다. 이 좁은 지역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회에 다닌단 말인가! 평소엔 전혀 교인 같아 보이지 않는데 주일이 되면 모두 성당엘 가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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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부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천주교회 신도들 |
덴과 교회를 가는 도중에 마침 그들이 다닌다는 천주교회가 보인다. 큰 학교 운동장만 한 곳 안쪽에 성당 건물이 잘 들어서 있고, 고목들이 울창하여 보기 좋은 모습이다. 잠시 예배당 가까이 들어가 본다. 마침 2부 미사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이라 신부가 입장하려고 문 옆 신도들 사이에 서 있다. 덴이 인사를 시킨다. 덴은 사실 이 성당에 다니는 데 오늘은 나를 교회로 안내하기 위하여 미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거였다. 30대 후반 정도 된 젊은 신부가 예배위원들과 입장하려다 문 앞에서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악수를 청한다. 그러면서 그 짧은 순간에 느닷없이 “강남 스타일 아느냐?”고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여 답변도 잘 못하고 빙그레 웃기만하다. 처음 만나는 한국인에게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표현이리라! 그의 눈빛은 ‘지금 바빠서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꼭 다시 만납시다’ 하는 듯이 나를 진하고 기분 좋게 바라본다.
‘강남 스타일’은 아직 빌보드 차트의 순위 5위에도 오르지 못한 상태이고, 나도 잘 모르는 음악인데 이 깊은 산 속 성당의 주임신부까지 알고 있다니! 그리고 수많은 신도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신부가 거룩한 성당 앞에서 미사를 집례하려고 입장하는 중에, 그것도 많은 신도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목사에게 이런 세상적인 이야길 하다니! 우리의 입장에선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일은 신부와 신도들 간에 강한 신뢰가 없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천주교 신도들은 신부를 아버지(Father)로 부르며 신부가 하는 행동은 모든 것이 무흠하다고 여긴다. 그래서인지 평상시 신부들의 행위와 복장은 개신교목사들에 비해 매우 자유스러운 편이다. ‘강남스타일’을 묻는 신부의 태도에서 대중문화를 지나치게 ‘성과 속’으로 구별하지 않으려는 신앙모습을 보게 된다. 그의 친절한 태도에 마음이 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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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부 미사를 집례하기 위하여 입장하는 신부님 |
덴이 나를 안내한 교회는 마침 지난 4월에 갔던 조그만 교회이다. 지난봄에는 교회 건물이 없어 밖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동안 형편이 좋아졌는지 주일학교로 사용하던 조그만 주택에 천장을 이어 내어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아 조용히 앉아 묵상기도를 하고 있으니 몇 몇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어른 아이 약 20여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다. 천주교회에 비해 양적으론 보잘 것 없고 미약하지만, 영적으론 충만하고 활기찬 예배를 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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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약한 교회이지만 영적으로 충만한 예배를 드리는 모습 |
오후에 간호사 덴과 렌이 나를 수영장에 데리고 가다. 아마 내가 혼자 지내는 것이 지루해 보인 모양이다. 보건소직원들과 경찰관들이 서로 옆 건물에서 사이좋게 지내는 바람에 간호사의 부탁으로 경찰서에서 백차를 내 주어 백차를 타고 수영장을 가다. 내가 앞좌석에 앉고 간호사들이 뒷좌석에 앉아 백차를 타고 가니 길 가던 모든 사람들과 차들이 비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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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차를 타고 수영장 가다. |
수영장은 보잘것없는데 예상외로 사람들이 많다. 입장료가 한 사람당 150페소(4500원) 치인 셈이다. 꾸버(원두막)를 빌렸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밥 한 팩을 사는데 10페소(300원)와 비교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리는 이유는 이 지역에 갈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도 없고, 오락장도 없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인터넷 게임장도 없어 이곳으로 몰리는 모양인데, 이나마 돈 있는 공무원이나 교사들 가정이나 올 수 있는 곳이다.
간호사들이 수영장에 오기 전에 네 군데나 다니며, 돼지고기, 생선, 콜라, 밥, 숯 등을 사서 잔뜩 싸들고 오더니, 뒤 따라 온 남자들이 숯불을 피워 바비큐 파티를 벌인다. 이들은 나이가 어려도 어릴 때부터 해 본 가락이 있어 모두들 요리를 잘한다. 다른 곳에서 온 팀들도 그렇게들 준비하여 각자 파티를 벌인다. 수영장 한편에선 노래방 기계를 틀어 놓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한편에서 물속에서 게임을 하며 즐겁게들 논다. 한 참 시간이 지나니 수간호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먹을 것을 잔뜩 싸들고 온다. 아마 내가 여기 온다고 윗분에게 보고를 하여 백차를 보내고 수간호사까지 온 모양이다. 한참 흥이 돋워 지니 이곳의 젊은이들도 아침에 성당에서 만난 신부처럼 느닷없이 ‘강남스타일’을 가르쳐 달라며 한술 더 떠 핸드폰에 녹음해 놓았던 ‘강남스타일’ 음악을 틀어 놓고 내 앞에 모여 선다. 어디가나 이곳 깊은 산속마을의 젊은이들이 모인 곳에는 ‘강남스타일’ 타령이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속으로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싸이 덕분에 한국 국가브랜드 가치가 한껏 올라가고 있다. 원체 무용과 노래에 무딘지라 춤을 잘 칠 줄 모르지만 몇 번 텔레비전에서 본 것을 흉내 내어 춤추는 시늉을 하니 모두들 나를 따라 하느라 야단들이다. 그리고 어느새 핸드폰으로 녹화를 하여 자기들끼리 동영상을 보며 키득거리며 좋아한다. 진작 이 춤을 배워 뒀더라면 심심할 때 천주교 신부네 집에 찾아가서 둘이 함께 신나게 춤춰보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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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숯불을 피워 바비큐 파티를 하는 간호사들과 경찰관들 |
글로벌 시대에 세계인들과 함께 잘 어울리기 위해선 우리문화를 잘 알아 그들에게 보여 줄 수 있어야겠다. 우리 것은 알지 못하고 외국 것만 알고 있으면 그들을 기쁘게 해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의 정체성도 잃게 된다. 그들의 것을 존중하고 배우되 내 것을 버리지 않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세계화시대의 시민정신이다. 생긴 모습은 한국 사람인데 한국문화도 모르고 한국말도 못하고 영어만 하면, 그는 한국 사람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국제미아가 된다. 세계인들은 그런 국제미아에게 배울 것이 없어한다. 선교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다운 복음 선교사가 될 때 그들에게 큰 관심을 자아낼 수 있다.
언젠가 터키 이스탄불에 갔을 때이다. 한국인 선교사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터키인들이 아이의 얼굴을 만져보고 바라보며 매우 신기해하고 귀여워한다. 코가 납작하고, 보일 듯 말 듯 옆으로 찢어진 작은 눈이 그들이 보기엔 너무 신기하고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
네팔에 갔을 때이다. 코가 오뚝하고 얼굴이 갸름하고 눈이 동그랗고 크고, 눈썹이 짙은 아주 잘 생긴 미남 병원장 닥터 케이씨와 기념사진을 찍는 중이었다. 우리가 사진 찍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케이씨 부인이 나를 계속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베리 마치 핸썸!”하며 나를 칭찬해 준다. 나도 농담으로 “미인은 잘 생긴 사람을 볼 줄 안다”고 말하며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사실 나는 키도 작고, 얼굴도 넓적하고, 코도 낮고, 광대뼈도 튀어나오고, 몸도 마르고 게다가 이제 늙기까지 하여 머리도 다 빠져 정말 볼품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네팔인 들은 나를 상당한 미남으로 바라본다.
스리랑카는 아시아의 니그로들이 사는 나라이다. 거의 모두 얼굴이 까맣고 이빨만 하얗게 드러나 보인다. 그 나라에 가면 어린아이에서 어른들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길을 가다가도 나를 바라보면 빙그레 웃는 모습으로 대한다. 나 같은 미남을 보는 것이 그들에겐 가장 행복한 일중의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은 모두가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싸이의 세계적인 명성은 그의 음악성이 뛰어나거나, 율동이 상당하거나, 인물이 유별나게 잘 생겼거나, 영어가 능통해서가 아니다. 창의적인 독창성과 보편성 그리고 자존감이 이루어 낸 결과이다. ‘나’라는 존재는 이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독특하고 유별나며 볼만하고 자랑할 만한 값진 존재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 지구촌 오지 세르반테스의 젊은이들이 ‘강남스타일’ 춤을 가르쳐 달라는 말을 들으며 내가 느끼고 배우는 것은, ‘강남 스타일’의 노래와 춤을 배워 그들을 웃겨주어야겠다는 것이 아니다. 남의 길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힘차게 걸어간 싸이의 올곧은 정신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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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곳의 유일한 엔터테인먼트 수영장 |
정상을 정복하는 자들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처럼 두 갈래의 길 중에서 사람들이 별로 가지 않는 길을 택하였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남이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걷지 않으려한다. 새로운 도전정신을 위험한 발상이라 생각한다. 디지털문화에 힘입은 한국 젊은이들은 지금 세계를 향하여 발돋움하고 싶어 한다. 그들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지구촌 사람들은 한국을 가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남과 북의 긴장관계가 세계인들의 발걸음을 어렵게 만든다. 만일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평화를 이룬다면 그 시너지효과는 온 지구촌을 깜짝 놀라게 할 놀라운 변화와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래 발전을 위하여 가장 큰 문제는 통일의 문제다. 이를 이루기 위하여 남과 북의 긴장관계를 풀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국민들의 성숙한 정치의식이 필요하다. 이제 이념논쟁의 시대는 지나갔고 영토국경논쟁의 시대도 무너져 가고 있다. 글로벌시대에 지리상의 국토개념은 그 의미를 잃어가고 정신적인 개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지구촌 어디에 살든지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을 품은 자들이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하여 하나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에 이를 수용할 새로운 정치 지도자가 요구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은 성전에 머물러 앉아 있지 않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꾸준히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심한 박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난 지금 복음은 전 세계에 퍼졌다. 올바른 길은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 결국 역사는 선을 향하여 변증법적 발전을 이루어 나간다. 속도가 느린 이유는 이해하지 못하여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설득시키느라고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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