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설교(2012.12.02./양미강목사/yangmk00@empas.com)

제목 : 기다림
본문: 갈라디아 4:4-5


교회력에 의하면 12월 첫주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교회는 성탄절 전 네 주일을 대림절로 지내는데, 원래 대림절은 라틴어 아드벤투스(adventus)에서 유래된 말로 로마제국에서 황제가 즉위한 후에 각 지역에 있는 부하들을 방문하는 공식행사에 사용한 말이었다고 합니다. 4-7세기에 대림절 기간은 약 3주부터 7주까지 지역마다 다양하게 융통성을 가지고 지켰습니다. 로마에서 대림절 기간을 40일로 지키도록 한 사람은 교황 그레고리 대제였는데, 오늘날 4주간으로 최종 확정된 것은 11세기 그레고리 7세였습니다.

대림절 기간은 초 4개를 만들어놓고 매주 하나씩 더하여 밝힙니다. 한 주일에 촛불 하나를 더해 밝히는 이 전통은 독일 루터교에서 유래되었는데 청교도들과 로마 천주교가 확산시켰고, 미국으로 이민을 온 독일인들이 보급했다고 합니다. 촛불을 밝히는 행위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통인 수전절에서 기원했습니다. 수전절이란 유대 마카비 전쟁 시기인 주전 165년 시리아에 의해 이스라엘 성전이 모욕당했었는데 후에 다시 성전을 회복하여 정화하고 자유를 되찾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8일간 열었던 빛의 축제를 가리킵니다. 초를 하나씩 밝히는 것은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에 소망을 염원하는 상징입니다.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기대 없는 기다림은 없습니다. 우리의 기다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기다림이 완성되리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대감이 없다면 기다림은 고통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다림은 우리에게 희망을 갖게 하고, 그 희망은 오늘 여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주게 됩니다.

대림절에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대림절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예수의 태어나심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시간인 동시에, 또 다른 의미는 다시 올 예수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마가복음은 1:15에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때가 찼다는 말은 아주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가 찬다는 것은 가장 적절한 시기가 되었다, 가장 알맞은 때가 되었다,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이제 완성될 때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어로 시간을 의미하는 말에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일상적인 시간의 흐름이 크로노스라고 한다면, 하늘의 뜻이 드러나는 질적인 시간인 카이로스입니다. 자동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크로노스라면,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따라서 카이로스는 객관적인 시간이 아니고 지금이 어떤 때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어떻게 판단해야지 적합한 행동인지를 아는 인식 속에 있는 시간입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와 징조를 제대로 파악하고 인지할 때 가능한 시간적 개념입니다. 그것이 카이로스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태어난 그 때는 일상적인 시간 속에 흘러간 크로노스가 아닌 하나님이 세상에 전적으로 개입한 카이로스입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4: 4절은 “때가 차서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가 태어난 때야말로 하나님이 개입한 카이로스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태어나게 하신 이때야말로 우리가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우리와 관계된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한 곳에서 현재화될 때, 하나님과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하나로 통합된 것같이 느끼는 그 순간이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 대림절의 기다림은 바로 카이로스를 기다리는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셨던 그 접점, 그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카이로스, 때를 기다리는 것은 막연한 미래에 내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닌 지금 여기의 순간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군가가 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수동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 이 시간, 이 공간에 가장 충실하게 몰입하면서 철저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여기라는 현재성은 기다림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는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나를 내어놓고 기다리는 그 인내를 말입니다.

기다림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처음의 마음과 처음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처음 가졌던 그 절박한 심정의 마음을 유지하는 것, 간절하게 카이로스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처음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한 일입니다. 초보자의 심정은 겸손합니다. 열려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되어있습니다. 처음의 마음, 처음의 태도는 기다림을 유연하게 만들고 기다림을 배움의 과정으로 받아들입니다. 내가 완벽하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할 때 남과 공감하는 깊이와 넓이가 나오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에세이스트인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의미”에 대해 말하면서 기다림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유롭고 무한히 넓은 미래의 가능성이 자신에게 열려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자. 내가 꿈꾸는 것이 삶 속에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조바심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기다리면 미래는 곧 눈앞에 활짝 펼쳐질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기다린다는 것은 남과 공감할 수 있는 수용적 신앙이고 공감적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나눌 수 있는 선물은 꼭 돈이라는 경제적 가치로만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갑에 든 돈을 나눠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내 생활 속에 있는 기쁨과 가치를 나눠줄 수 있고, 나의 평안함을 나눠줄 수 있고, 내 감정이 머무는 그 자리를 보여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내 인생은 나의 소유물이 아닌, 내가 나눠줄 선물인 셈입니다.

11월 28일자 연합뉴스 사회면에 짤막한 단신이 실렸습니다. 7개월 치 월세를 밀린 모녀가 동반자살을 했다는 기사입니다. 70대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는 40대 여성은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5만원 아파트에 살면서 7개월 동안 월세를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집 주인으로부터 월세 독촉 내용증명서가 날아들었고 300여만원의 빚을 갚지 못해 독촉장도 받았는데,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월 9만여원의 기초노령연금 외에는 별 다른 소득이 없었던 모녀는 결국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는 것입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도 아니어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이 모녀에게 대림절은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요?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2년 대림절의 기다림은 신경이 곤두선 채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성서가 증언하는 그대로, 정말 보잘 것 없고 낮고 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마음은 초조함이 아닌 넉넉함이며, 동시에 우리를 카이로스의 때로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올해 특히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살기 힘들고 어렵다고 하소연합니다.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우리가 기다리는 아기예수는 남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말구유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저희들이 잊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지금 여기, 하나님 당신의 개입을 믿고 기다리는 저희들은 온전히 당신의 뜻을 함께 펼쳐가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참고자료 : <기다림에 관한 고전 – 고도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