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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텃밭 농사꾼이 되다벌써 하늘의 얼굴을 살피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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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6월 28일 (화) 00:00:00 [조회수 : 2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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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 뽑느라 여념이 없는 김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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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공사 드라마 '별들의 고향' 촬영장 맞은편 너른 벌판에는 여러 잡초들이 주인 행세를 해 왔다. 일 주일 전부터 거기에다 노 부부 한 쌍과 부자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쪼그리고 풀을 뽑기 시작하더니 잔돌을 쌓아 밭을 일구는 것이었다. 길가 밭에는 벌써 콩잎이 나오고 있었다. 아, 이맘때가 콩 심을 때로구나 싶었다.
이 땅은 부천시 소유라서 언제라도 시에서 건물을 세우면 보상도 없이 갈아엎어 버릴 곳이다. 2, 3년 전에도 상동신도시에 입주한 부지런한 노인들이 가지가지 푸성귀를 심어 놓고도 수확을 못 거둔 적이 있었다. 그 일을 겪은 사람은 감히 농사 지을 엄두가 안 났을 텐데 아마 부평 삼산동 새 아파트 단지에 입주한 분들이 이 일을 벌이는 모양이다.
작년 말부터 삼산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버스노선이 생겼다. 그 동안 버스로 부개동에서 내려 호수공원을 통해 걸어다녔다. 부개동에서 588번 버스를 환승하면 평소보다 10분쯤 더 단축되므로 출근길을 바꾼 것이다. 때마침 새 아파트로 입주한 김 선생님과 길벗이 되었다. 얌전한 김 선생님은 나보다 5년 선배지만, 겸손하게도 내게 풀과 나무 이름을 배우는 학생이다. 걸어오면서 이런저런 풀이나 나무를 물어 보시면 가르쳐 주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었다.
오늘 아침에도 저만치 떨어져 김을 매는 두어 쌍의 농부들을 보니 부러웠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우리도 텃밭을 만들어 콩이라도 심으면 어떨까 하고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도 대찬성이다. 누구든 먼저 심으면 임자인 신천지에다 우리의 땅을 만들자고 하니 가슴이 부풀었다. 학교 오는 길에는 심어놓은 것들을 둘러보고, 퇴근하면서는 김을 매 주면 공짜로 전원 텃밭을 가꿀 수 있을 거라고 입을 맞추었다. 혼자 하면 힘들지만 둘이서 가꾸면 심심하지 않을 거라고, 게다가 흙을 손으로 매만져 보고, 땅의 힘도 체험해 보는 것으로 즐거우면 성공이라고 뒤질세라 서로를 격려했다. 그러니 우리가 만들 밭은 풀과 나무를 좋아하는 취향이 같은 중늙은이들이 소꼽장난하는 놀이터가 될 것같다.
퇴근하면서 교실에서 폐품 묶는 붉은 비닐 끈을 잘라왔다. 밭의 맞은편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따라 흐르는 인공강 둔덕에서 나무 받침대 네 개를 주워 잘랐다. 그것으로 말뚝을 삼아 정사각형 땅에 끈으로 둘렀더니 끈이 짧아 반만 둘렀다. 하지만 '여기는 우리 땅이요'라는 영역 표시를 해 놓으니 뿌듯했다. 둘은 마파람에 게눈 감추 듯 어엿한 협동 농장의 공동 주인이 된 것이다.
내친김에 둘이 마주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아 버리자고 했다. 손발이 척척 맞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신이 났다. 어제 내린 비로 땅이 부드러웠다. 무릎만큼 자란 싸릿대 모양의 풀들이 지천이었지만 다행히 쏙쏙 맥없이 빠졌다. 일단 만 원씩 투자해서 내가 씨를 사 오기로 했다. 집에 가는 길에 부평시장 종묘원에 들러 흰콩과, 피마자씨, 총롱무씨, 잎들깨씨를 샀다. 호미도 두 자루 샀다.
내일엔 나머지 부분을 둘러치고 돌도 골라 내고 이랑도 만들고 파종을 끝낼 셈이다. 두 사람 다 농사 일은 처음이므로 큰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지만 파종할 내일 날씨 뉴스가 궁금해진다. 벌써부터 하늘의 얼굴을 살피려는 걸 보아, 나도 농사꾼이 되기는 된 모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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