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진정한 치유는
(10월 19일 금요일)

보건소 2층에 마련된 숙소에서 잠을 잘 자고 새벽에 산책 겸 시내를 돌아보다. 언제부터인지 보따리 선교사의 나그네 생활이 익숙해져 어디 가나 짐을 풀면 내 집이요 안식처이다. 어떤 경우에는 순박한 현지인들과 함께 지내는 나그네 생활이 집 보다 더 즐거울 때가 많다.

수백 년이나 됐을 듯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마을 여기저기에 즐비하게 늘어서 이른 아침을 찬양하는 산새들을 품고, 신선한 산소를 내 뿜으며 상쾌한 아침을 준비한다. 그러나 거리에는 사람들이 어지럽힌 쓰레기로 온통 쓰레기 더미나 마찬가지다

어디가나 공해의 주범은 인간이다. 아름다운 아파트에 살면서도 치울 줄을 몰라 거지처럼 해 놓고 사는 사람처럼, 이들은 사시사철 꽃이 피고 나무가 무성하고 각종 아름다운 새들과 곤충들이 무도회를 여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살면서도 가꿀 줄 모르고 정리할 줄 몰라 쓰레기장처럼 더럽혀 그 속에 묻혀 산다. 마치 돼지에게 진주를 준 모양이다.

시장 옆을 지나니 아직 장사꾼들이 나오지 않은 이른 아침이지만, 스무 살 좀 넘어 보이는 부지런한 청년이 남보다 먼저 나와 과일 가게의 포장을 열고 손님맞이할 준비를 한다. 과일 가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바나나 1킬로에 600페소(1800원), 귤 1개에 15페소(450원), 계란 1개에 5페소(150원)이다. 사과 1개에 20페소(600원)이다. 한국 재래시장과 맞먹는 비싼 가격이다. 이유인즉 이곳에서 생산되지 않아 거의 모두 바기오에서 가져오기 때문이다. 시골이라 물가가 쌀 줄로 기대하였더니 오산이었다. 20페소 하는 반딧살(빵)도 하나 사서 들고 경찰지서 앞을 지나니 경찰관들이 아는 척하고 반갑게 인사한다.

숲으로 둘러쌓인 마을 거리

지난 밤 숙직한 직원들과 함께 아침 식사대신 먹으려고 과일 보따리를 풀어 놓으니, 어제 시의원 아브라함씨가 약속한 대로 내 식사가 이미 배달되었다. 여기 머무는 동안 숙식과 경호를 그들이 모두 책임지기로 한다드니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이곳에서 시의원은 시행정의 견제세력이 아니다. 법적으론 그렇지만 실제로는 부와 권력을 거머쥔 시장이 자기 맘에 맞는 사람들을 모두 시의원으로 세웠기 때문에 모두가 한 통속이다. 하여 시의회 의장인 아브라함씨는 시청에서 부시장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사람 행세를 한다.

오전 9시 수 간호사가 네 명의 간호조무사를 데리고 나의 치유사역을 돕기 위해 이층 내 방에 와서 지시를 기다리다. 그들에게 환자 접수하는 요령과 뜸뜨는 요령을 가르쳐 주고, 직접 내 몸에 뜸을 떠 보라고 실습을 시키다. 그 동안 담이 결려도 뜸떠줄 사람이 없어 뜸을 못 떴는데 이참에 뜨려는 심산에서다. 옆에 있던 전선생이 뜸뜨는 시범을 간호사들에게 보여 주고 간호사들이 따라서 돌아가며 내 몸에 뜸을 떠주다.

환자 한 명 치료하는 데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므로 매일 10명씩만 받고 오후 1시까지만 일하기로 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지칠 뿐만 아니라 나를 돕는 간호사들도 지쳐서 지속적으로 나를 도와주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금번에는 치료목적이 아니고 선교지 리서치가 목적이므로 관계공무원이나 사람들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므로 오후 시간을 비워 놓았다.

숙련된 간호사들이라 한 번만 가르쳐 주어도 뜸을 작고 예쁘게 잘 뜬다. 그리고 스스로 남자와 여자 진료실을 구별하여 마련하고 환자를 받는다. 오래전부터 함께 사역하던 팀들처럼 금세 손발이 맞아 질서정연하게 환자를 돌보게 되다. 공무원들이라 한 번 말하면 곧 어김없이 시행한다. 지구촌 오지 마을 어디를 가든지 이렇게 나를 돕는 스텝들이 준비되어 있으니, 하나님의 힘과 백이 대단하다. 돈을 들여 이만한 건물을 렌트하고 간호사를 채용하고 경찰관들을 불러 경호를 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경비가 필요하겠는가! 마음을 비우면 우주 삼라만상 만물이 나의 것이요, 또한 내 것도 모두의 것이다. 예수신앙은 공동체정신의 회복이다.

“단지 꿈으로만 생각했던 것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

이 문장은 고등학교 시절 광증(미치광이)이란 별명이 붙은 영어 선생님이 외우라고 숙제 내준 영어문장중의 하나이다. 그 선생님은 숙제를 안 해오면 미친 듯이 몽둥이로 아이들을 막 때렸다. 그래서 학생들이 ‘광증’이란 별명을 붙였다. 내가 고등학교시절 광증선생님에게 몽둥이로 맞지 않으려고 외운 영어문장 중에 기억하는 것은 이 문장 하나밖에 없다. 지금도 가끔 나는 그 광증 선생님을 생각하며 이 문장을 외우곤 한다.
문장의 말대로 단지 꿈으로만 꾸어 오든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상의 공간인 온라인에만 건축하던 비실체의 것들이 상상하던 대로 실체로 드러나고 있다.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가르면 물속에 난 길을 걸어 홍해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모세의 믿음이 나에게서 실현되고 있다.

가자! 홍해가 갈라지고 길이 날 것이다.
아니, 홍해는 갈라졌고 난 이미 가나안 땅에 입성해 있다.

수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간호사들이 정위치하고 환자들을 접수하여 차트를 들고 온다. 뜸자리를 마크하고 침을 놓아주고 나면 간호사들이 환자 한 명에 두세 명씩 붙어서 열심히 뜸을 떠 준다. 환자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신기하고 새로운 침뜸요법을 받는다. 선교사가 이 일을 하니 더욱 신기하다. 생전 보지도 못한 가는 바늘을 들고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처럼 여긴다.

아니 실제로 성령께서 개입하셔서 이 일을 이루신다. 나의 존재는 온전히 사라지고 하늘의 존재가 이상야릇한 가는 바늘로 사람의 몸에 손놀림을 하면서 치료한다. 지름 0.5mm, 길이 5cm의 가는 바늘이 공중회전을 하며 오른손 엄지와 검지에서 한 바퀴 돌더니 사뿐히 나비처럼 가볍게 환자의 몸에 접촉하여 시침을 한다. 환자들은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않고, 침을 맞았는지도 모르고 가만히 누워 있다. 환자들이 통증을 느끼지 않으니, 침놓는 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간호사들이 더욱 신기해한다.

치유의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는 무의미 해진다. ‘무아’요 ‘비아’의 상태에서 비존재가 된다. 아트만은 브라만이 되고, 오직 존재하는 이는 한 분이시다. 하늘의 신령한 기운만이 움직이며 자신의 피조물을 치료하는 순간이다.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여 친히 성령께서 주관하여 치유하신다. 내가 목사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나의 치유사역을 자연스럽게 영적인 사건으로 결부시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은 주일이 되면 나를 따라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어떤 질병이든지 마음치료가 중요하다. 내상병의 70%는 모두가 마음에서 오는 병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우리의 마음뿐 아니라 육신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이는 요즈음 현대의학을 넘어서서 새로운 미래의학을 지향하는 면역학자들의 주장이다. 진정한 치유는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의료인들은 오직 치유의 도구로만 사용될 뿐이다. 의사가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도 있지만, 고칠 수 있는 이는 오직 한분 하나님뿐이다. 나고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께 달린 것이니 그 문제로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이다. 우리 인생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