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에 두 차례 허리케인 이 미대륙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중 하나는 사 년마다 정기적으로 치루는 人風,
미국 대통령 선거이고,
다른 하나는 미 동부를 휩쓸고 간 天風 샌디다.
알량한 신학자들의 이분법적 논리로는
人風은 가이사 것이고, 天風은 하나님 것이다.

하루는 경건한 세 신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헌금에 대한 열띤 논쟁을 벌렸다.

한 신학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모세 율법에 따라 내 소득의 십분의 일은
꼬박꼬박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러자 두번째 신학자가,

"그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하나님 것이 겨우 소득의 십분의 일이라니!

나는 땅바닥에 둥근 큰 원을 그려 놓고 내 소득 전부인 동전들을
하늘에 던집니다. 그리고 그 원 안에 떨어진 것은 내것으로,
원 밖으로 떨어진 것들은 동전 한 닢도 속이지 않고 하나님께
모두 바칩니다." 하고 첫번째 신학자의 인색함을 꾸짖었다.

세번째 신학자가 하늘을 쳐다보며 경건한 성호를 그렸다.
그리고 나서 엄숙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 다, 무슨 망언된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두 분들은 저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두렵지도 않으십니까?
나는 나의 소득 전부를 하느님께, 저 하늘에 바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취하시지 않으시고
땅에 떨어진 동전들만을 내것으로 챙깁니다."

그들은 세상을 가이사 것과 하나님 것으로 이분했던
로마시대의 권력형 신학자들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세상을 내 것과 하나님 것으로 이분하는
제법 인본주의적인 진보신학자들이다.

그들은 돈에 "IN GOD, WE TRUST" 라는 말을 세겨 놓고
돈을 신으로 신봉하고 있는 현대 월스리트 신학자들 보다는
훨씬 경건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다.

신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가이사, 나와 너 사이에 소유권을 두고
벌리고 있는 탐욕의 전쟁이 아닌가?


2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데카르트의
주장은 무지치고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
인간이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굳이 철학이란 이름으로 자기의 무지를
밝힐 필요까지 있겠는가?

차라리,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서로 싸운다." 라고 말했더라면
말의 본전이라고 찾았을 법 한데.

우리 가정은 각기 다른 세파의 신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탓으로 하루도 다툼과 말싸움이 바람잘 날이 없다.

처, 케롤은 첫번째 신학자처럼 모세율법을 신봉하는 신학파요,
아들 제임스는 두번째 신학자처럼 약간 합리주의적인 듯 하면서도
약은 기회주의 신학파다. 나는 세번째 신학자처럼
하나님 것은 모두 내것이고, 내것은 모두 하나님 것이라는
막가파 신학파다.

우리 가정은 두 허리케인에 대한 견해차이로
며칠간 심한 전쟁을 겪어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들 제임스는 처음부터 이 전쟁에
아예 끼어들지 않았었다. 제임스 라고 나름대로
속 생각이야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약고 눈치 빠른 전형적인 요즘 젊은이다.
괜히 서슬이 퍼런 두 사람 간의 싸움판에 끼어 들어
득 볼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을 것이다.

자칫 잘 못 끼어들었다가,
뒤늦게라도 그의 머리에 떨어질 불이익의 날벼락을
감수해야하는 위험한 모험에 목을 맬 제임스가 아니다.



3

첫번째 전쟁은 허리케인 센디에 대한 준비, 대처방안을 두고
케롤과 나 사이에 벌어졌다. 우리 가정이
허리케인 센디 소식을 처음 접한 때는 바로 전날 늦은 오후였다.
탐욕스런 미국인들의 人災 싹쓰리 허리케인이
슈퍼마켓을 이미 할퀴고 간, 몇 십발짝이 늦은 시간이었다.

케롤은 유비무환의 미국교육으로 완전 무장된 사람이다.
조금 늦었기로 서니 그 기질을 포기할 그녀가 결코 아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고 했다. 더구나 그녀는
부지런함과 억척으로 소문난 한국여성의 후예가 아닌가.

암튼, 케롤은 이른 아침부터 자정까지 이틀간을 이미 바닥이 나
텅텅 비어있는 슈퍼마켓들을 누비고 쏘다니며 비상식품들과
일상용품들을 모아들였다.
우리 가족이 석 달 동안을 족히 버틸 수 있는
양이라며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반면 나는 본시 천성이 비교적 무사안일한 사람이다. 유비무환이니
사전준비니 하는 단어들에 별로 익숙치가 않다. 이 정도 허리케인
소식에 지리 겁을 먹고 천성을 바꿀 내가 아니다.

또, 나는 그녀처럼 허리케인을 하느님의 분노라고 믿고 있는
근본주의적인 신앙인이 아니다.
오히려 허리케인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허리케인이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이라면
인간들이 용을 튼다고 해서 별 수가 생기겠는가?
차라리 감사한 마음으로 허리케인을 마음껏 누려 보자는 것이
나의 심사였다.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를 믿고 있는
아들로써의 효도일 것이고.

그 이름도 아름다운 여자이름 센디가 아닌가?
이런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한 태평한 태도가 그녀의
분노를 수차례 터뜨리게 했다.

4

나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정치, 종교, 이념이 아니다.
생명이다. 나에게는 생명이 곧 신이고, 우주이며,
종교이고, 삶이다.
또, 나는 이 우주에 생명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고
믿고있는 사람이다.

허리케인을 전후해서 몇 차례 숲을 찾았다.
혹시라도 잃어버렸을 지도 모를
숲속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해서였다.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
찢어지고 꺾인 나뭇가지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허리케인도 순간순간 변하고 순환하는
자연질서의 일부일 뿐이다.
숲 속은 언제나 생명들의 신비와 경이로 흘러 넘친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가을하늘이 흐르고,
먹이를 찾아 분주히 숲속을 휘졌고 나르는 산새들,
갈잎을 뒤적거리는 다람쥐들의 모습도 여전했다.
이전과 조금 다른 풍경이 있다면,
무거운 여름옷을 홀랑홀랑 벗어 버리고
따사한 늦가을 햇살을 즐기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이었다.
강물은 변함없이 여울져 흐르고 있었고, 그 강변 낙엽더미 속에
한 송이 야생화가 고즈너기 미소짓고 있었다.

4

나는 숲을 찾을 때마다 인간이라는 오만한 명찰을
홀가분하게 떼어 버린다. 그래야만 자연들의 신비한 숨소리,
경이로운 속삭임들, 박동치는 생명의 심장소리들을
가슴으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 어! "

허리케인 중에 생긴 조그만 웅덩이에서
손바닥만한 붕어 한 마리가 아가미를 힘없이 헐떡거리며
내 발걸음을 가로 막고 있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웅덩이 속을 샅샅이 훌터갔다.
15여 마리가 넘은 아기 붕어들이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잠시 후 밀어 닥칠
자신들의 목숨에 대한 위협도 모른체....

"곧 물이 마르면 죽을텐데."

강물에 넣어 주는 구출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마지막으로 죽은 듯 가만히 누워있는 어머니(?) 붕어를
두 손으로 쥐었다. 따뜻한 생명의 체온이 느껴졌다.

"너, 아직 살아있었구나" 하고 소리쳤다.
꼬리 지느러미를 흔들어 대며 대답했다.

" 아! 네가! 어린 붕어새끼들의 생명을 구해 냈구나!
그것이 네가 죽을 각오를 하고 매마른 땅에 나와 있었던 이유였어!
내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어.
우리들의 인연이야! 인연 ! "

내 영혼이 사랑으로 전율하기 시작했다.
두 눈에 눈물방울이 고여갔다.

5

다음날 퇴근 길에 벌어진 한 사슴이야기다.

자동차 엑셀레이터 를 힘주어 밟으며 퇴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아니, 저럴 수가 ! "

내 자동차 바로 앞에 사슴 한 마리가 죽은 듯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에 아름다운 뿔이 달린 나이먹은 숫사슴이었다.
퇴근길 운전자들이 교통체증을 투덜대며
자동차 속도를 줄이고 사고현장을 피해가고 있었다.

사슴이 쓰러져 있는 하이웨이 선상에
무작정 차를 세웠다.
사슴을 일단 길 옆으로 옮겨 놓고 동물보호국이나
경찰서에게 연락을 취할 생각이었다.
양쪽 도로를 달리 던 차들이 길 가운데 서 있는
나를 보고 일제히 속도를 줄였다. 차를 멈추고
나와 사슴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흥미로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숫자도
점점 늘어갔다.

살아서 숨쉬고 있는 사슴에게 무방비로 다가갈 수는 없다.
그것은 사람을 구하겠다고 무작정 불속에 뛰어드는 것과
다름없이 무모한 짓이다.
사슴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힘이 센 야생동물로
알려져 있다. 운전 중에 자동차가 사슴과 충돌을 하면
자동차가 전파되고, 운전자들이 심한 부상을 당하는 것이 예사다.
운전자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더구나 머리에 뿔을 달고 있는 숫사슴이니
조심스러울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