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마당에 나뒹구는 낙엽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글이다. 이미 이 글은 나의 삶속에 낭만과 진리로 군림한 지 오래다. 해마다 이맘때면 그 달콤함에 빠지기 위해 일부러라도 낙엽을 태우곤 한다. 교회 마당 한 귀퉁이에 가지런히 모아 놓은 낙엽에 불을 댕긴다. 낭만이와 커피 향과 개암 냄새들과 친구하고파서.

그러나 올해는 사뭇 다르다. 그건 글이고 현실에선 낙엽 타는 냄새가 그리 상큼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그저 연기가 달라붙어 눈만 맵게 하고 썩은 두엄 타는 냄새만 난다. 가을비에 젖은 낙엽이 반은 두엄으로 변하다가 불을 만났으니 달가울 리가 없다. 역한 냄새만 뿜고 심술궂은 연기만 방귀처럼 발산한다.

낙엽을 태우며 낭만과 짝하려던 나는 마음에 생채기를 안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꽤 오래 연기 곁에 서 있어야만 했다. 왜냐고? 이미 불을 질러 놨으니 다 타기 전에는 그 곁을 물러날 수 없지 않은가. 바람에라도 불씨가 날려 큰 사고를 일으키면 안 되지 않겠는가.

눈을 비벼가면서 거의 다 탈 때까지 낙엽더미 곁을 지키는 건 한마디로 고역이다. 연기가 날더러 연애하자고 바람을 가려가며 이리 피하면 이리 쫒아오고, 저리 피하면 저리 쫒아온다. 현실과 이론의 괴리? 아마 이런 상황을 두고 나온 말인가 보다.

이효석이 갓 볶은 커피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그건 내겐 익숙한 냄새다. 아침에 한 잔 정도 드립 커피를 즐기고 있기에. 커피는 맛으로 먹는가, 냄새로 먹는가? 당연히 난 후자다. 갓 볶아 놓은, 갓 갈아 놓은 커피는 그 향이 정말 요즘 젊은이 말로, ‘쥑인다’ 냄새만 맡아도 행복하다.

냄새가 꿀꿀할 때 커피 가루를 여기저기 놓으면 방향제가 필요 없다. 우리 교회 예배실에도 여름 동안 곰팡이 냄새가 당천하여 사용한 적 없는 커피를 갈아 여기저기 놓았다.

당장은 그럴 듯한 냄새가 교회에서 났었다. 지금은 이미 오래 되어 유효기간이 지난지라 커피 향은 사라졌지만.

그런데 그걸 아는가? 커피가 오래되면 담배 냄새가 난다는 걸. 커피가 썩으면 담배 냄새가 난다. 혹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우리 집에 오면 목사님이 성도들 몰래 담배를 피우나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낙엽을 태우다 이번에 경험한 냄새는, 커피 향이 좋아 커피 가루를 놓았다가 담배 냄새를 맡는 것과 같은 경우가 아닐까. 무엇이든 중간에 변질되면 향기는 사라지고 악취가 남는 법.

성도들이여! 혹시 당신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라 썩은 악취가 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