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섬 스타일 부조금

딸 부부가 10월 4일 11시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1시에는 아내가 한국여행길에 오르고. 혼자 남은 나는 해방군사령관이 되어 자유로운 휴식을 즐기게 됐다. 5일전 가든 에서 치렀던 결혼대작전의 전장을 회상하면서 말이다.

전쟁에서 이기면 전리품을 챙긴다. 결혼식이 끝나자 아내는 들어온 부조금액수가 궁금해 안달이다. 딸애에게 전화로 살짝 물어보는 모양이다. 웃음이 나왔다. 어릴 때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고향의 어린 시절 우리 동내에 “쩝쩝이“라는 구두쇠가 살았다. 그의 아버지가 죽어 장례를 치렀다. 쩝쩝이 형제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애고애고 곡을 하면서 문상객들을 맞아드렸다. 문상객들은 장남인 쩝쩝이에게 조문을 하고 나가면서 막내에게 조위금을 전달했다. 쩝쩝이는 애고애고 하면서도 안달이다. 얼마나 내고 가는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애고 애고 답답해서 미치겠네. 막내야 살짝 일러다오”
“1만원 이오”
“애고애고 면내부자 최첨지가 1만원이 웬 말이냐? 너무하고 야속하다. 애고애고 쩝쩝 쩝쩝”
“이번에는 5만원이오”
“애고 애고. 가난뱅이 이서방이 5만원이나 냈으니 이런 경사 어디있나. 큰소리로 애고지고”

쩝쩝이는 애고애고 호곡을 하면서도 부조금을 계산하느라 쩝쩝거렸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쩝쩝이라고 불렀다.

쩝쩝이만 그런 게 아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아버지도 그랬다. 단지 속으로 쩝쩝거려서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재보다 잿밥에 더 마음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딸애 결혼식에 얼마나 축의금이 들어왔을까? 아무개는 얼마를 냈을까? 겉으로는 점잔을 뺐지만 궁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못 이기는 체 하면서 아내가 전해주는 딸애 결혼식 부조금액수를 모두 알아봤다.

5백불 짜리가 있는가 하면 20불을 낸 분도 있었다. 친척들은 천 오백불을 내기도 했다. 예식장과 식당비 그리고 모든 경비를 지불하고 나니 2천불이 남았다. 그러나 계산에 들지 않은 돈이 더 많았다. 신랑부모는 아들에게 1만 5천불을, 내 아내는 딸에게 1만 불을 줬기 때문이다.

고맙다. 많이 낸 분에게는 많이 감사, 적게 낸 분에게는 적게 감사. 신기하게도 액수만큼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감사 끝에 서운한 마음이 찾아왔다. 꼭 와야 할 사람들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남편 살아생전 그렇게 가깝게 지냈는데... 평소 매월 찾아오는 우정이었는데...동우회를 생각해서도 그럴 수는 없을 텐데... 그새에 얼굴만 늙은게 아니라 마음도 늙었단 말인가?’

배신감 비슷한 감정. 그럴수록 축하금을 내준 분들이 고마웠다. 이 은혜를 뭐로 갚을까? 생각하다가 깜짝 놀랐다. “이는 이, 눈은 눈으로...”했으니 돈은 돈으로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받을 때는 좋았지만 지나고 보니 부조금은 부채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부조금 낸 분들의 애경사 때 갚아야할 빚들이다. 아내가 딸에게 준 1만불 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죽으면 장례식 때 되 돌려받을 보험이다. 자녀들이 우리장례를 치러줄 것이기 때문이다.

‘부조금 이라는 게 외상으로 황소 잡아먹고 좋아하는 꼴이구나.’
그러자 마음이 바뀌어졌다. 부조 안 해준 분들이 고마웠다. 마음으로 축하를 보내준 분들에게 받은 것도 없으면서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딸 시집보내고 그분들이 미안해 할 것 같아서 전화도 못했었다. 그런데 고마운 생각이 들자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모두들 명랑하게 전화를 받았다.

육군헌병감을 지낸 윤장근퇴역소장은 나의 주일학교선생님이다. 후일 우리는 목사와 장로가 되어 만났다. 장로님의 자녀결혼식에 K그룹의 조회장이 2천만원을 부조하더란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한국에서 2천만 원은 로또당첨액수다.

“아들 결혼식장에서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셨겠네요. 얼마나 기쁘셨습니까?”
“이목사, 그런 말씀 말아요. 2천만 원 빚을 진 셈이지요. 그 집 애들 결혼하면 그 돈을 도로 토해내야 하니까요. 아마 집을 팔아야할 것 같아요. 상류사회와 어울려 살려면 부조가 여간 고민이 아니 랍니다”

뉴욕의 대형교회 이장로는 6백명을 모아놓고 초대형결혼식을 치렀다.
“교인이 많이 모이는 대형교회에 헌금이 많이 거치듯 하객이 6백명이나 왔으니 부조금 수익도 굉장했겠군요?”
“말도 말아요. 시장바닥처럼 시끄럽고 요란하기만 했지 실속은 없었어요.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여기저기 돈을 쓰다 보니 부조금으로 겨우 때웠을 뿐입니다. 빚 좋은 개살구예요. 그 대신 6백 명에게 되갚을 걸 생각하면 앞길이 망망해요”

강남스타일로 하는 결혼식들이 대개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딸애의 결혼식을 돌섬스타일로 해본 것이다. 청첩장도 안 보냈다. 뷔페도 아니었다. 금강산갈비에 송편을 내놓았다. 돈이 별로 들어가지 않았다. 뒤 끝도 개운했다.

*몽은이 편지로 보낸 결혼식 참관기*

“지금까지 결혼식 주례도 좀 해 보았고 하객으로 참석도 좀 해 보았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낭만적인 혼인예식은 난생 처음 봅니다. 퀸즈 식물원의 아름다운 풍광도 풍광이려니와 그 보다 더한 것은 선남선녀 한쌍의 선하고 진실해 보이는 인상이 참 보기가 좋았습니다.

아울러 푸짐한 성찬의 피로연은 화룡점점입니다. 하객 모두가 흡족한 얼굴로 돌아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혼인식장에서 느끼는 결론은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는 오누나...갈 준비를 잘 하자"벌써 손자 셋을 둔 이 늙은이는 이리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새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늙은이 몽은은 나보다 열한 살이나 아래인 신재영목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