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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10월 01일 (월) 16:32:41
최종편집 : 2012년 10월 01일 (월) 17:31:05 [조회수 : 3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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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섬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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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촌 이계선 |
“목사님댁에 가보면 행복이 넘쳐흐르는 게 보여요. 목사님내외분의 표정에도 집안구석구석에도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소복하게 싸여있는걸 알겠더라고요”
돌섬을 다녀간 롱아일랜드의 부잣집 마나님 천여사의 과찬이다. 이번여름 캐나다의 시인 석천 이상묵부부가 돌섬을 찾아왔다. 뉴저지남부에 사는 친구 집을 경유했지만 캐나다로부터의 자동차운전 방문은 여간한 우정이 아니다. 우리는 5년간 이메일을 나눈 펜팔친구다. 만나기는 처음인데도 죽마고우 고향친구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 배운 한문구절이 딱 들어맞는다.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혁락호)
‘친구가 있어 멀리서 스스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 한가!’
그런데 이날 석천의 진짜 유붕(有朋)이 찾아왔다. 멀리목포초등학교 동창 김송희시인이 온 것이다. 둘은 공주와 왕자로 실력을 다투던 경쟁자였다. 남학생은 서울대 공대로 여학생은 이대국문과로 진학했다. 인생유전을 거쳐 70넘어 이국에서 만나보니 두 사람 모두 시인이 돼 있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그 자리에 김송희시인의 선배 천추자 시인이 함께했다. 내가 장난삼아 춤 추자로 부르는 천추자는 나의 연상친구인 셈이다. 그녀가 돌섬을 행복의 섬으로 본 것이다. 그녀의 순진무구에 난 현문우답(賢問愚答)으로 응수했다.
“우리부부는 행복하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생각해 봐요.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90퍼센트가 흑인들이 사는 지저분하고 무시무시한 시영아파트예요. 우리는 원 베드룸에서 사는 가난뱅이 은퇴노인이구요. 그러니 행복하지 않으면 무슨 수로 이런데서 견뎌 낼 수 있겠어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야지요. 부자도 행복하지 않으면 돈이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그녀는 톨스토이의 행복논 같은 얘길 했다.
“그렇지 않아요. 부자는 행복하지 않아도 됩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던지 할 수 있는데 구태여 행복할 필요가 있겠어요? 삼성의 이건희를 봐요. 딸이 자살하고 형님과 여동생들은 아버지유산 내놓으라고 떼거지로 몰려와 고소하여 집안이 마귀들이 들끓는 복마전입니다. 뭐가 행복하겠어요? 죽을 맛이겠지요. 그 많은 재산 중에서 새 발의 피 만큼만 떼어내어 형제들에게 나눠주면 형제간 싸움 안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지낼 겁니다. 그런데 일전 한 푼 안 주지 않아요? 그걸 보면 돈 많은 부자는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아유 목사님, 그렇지 않아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게 생명인 것처럼 돈 보다도 귀한 게 행복이에요”
“정말 그래요? 그럼 우리 이렇게 합시다. 이 자리에서 서로 바꾸는 거예요. 나는 천여사에게 내가갖고 있는 행복을 몽땅 드릴 테니 천여사는 천여사의 전 재산을 나에게 주는 거예요. 그리할 수 있겠어요?”
내가 날강도처럼 나가자 어안이 벙벙해진 그녀는 대답을 못했다. 남편이 의사인 그녀는 고급주택과 빌딩을 갖고 있는 부자이기 때문이다. “하하하하, 말도 안 되는 내말에 놀라지 말아요. 목사인 나라도 내가 부자라면 행복을 얻기 위해 전 재산을 내놓는 바보짓은 절대로 안할 테니까”
행복은 물물교환처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산 야곱처럼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만들어 내는 것이다.
부자라고 행복이 없을까? 단지 부자는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갈 뿐이다. 부자들의 행복 만들기. 여행은 특등석침대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빈다. 커피는 호텔커피숍에서 마신다. 운동은 필드에 나가서 금박이 상아골프채를 휘둘러댄다. 부인하나로는 만족 할 수 없어 밤마다 미녀사냥을 나간다. 여간 귀찮은 게 아닐 것 같다.
나의 행복 만들기는 커피 두 잔이면 된다. 달콤한 일은 레귤러커피로, 씁쓸한 일은 블랙커피로 마셔버리는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레귤러모닝커피를 끓인다. 잔이 못 생겼다. 쑥빛바탕에 허옇게 목을 뺀 채 피어있는 민들레가 그려있다. 크기가 사발만하다. 입을 대면 혀가 긁힐 정도로 거칠고 투박하다. 이 잔으로 커피를 마시면 유난히 커피가 부드럽고 향기롭다. 난 이 커피잔을 계형배(戒盈杯)라고 부른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에 나오는 조선거상(巨商) 임상옥의 계형배. 아무리 부어도 7홉이상 차지 않는 신비의 술잔. 넘치는 것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계형배. 난 커피를 계형배식으로 마신다. 단번에 크게 들이마시고 7홉을 남겨둔다. 7홉이 계형배의 정량이니까. 책을 보면서 글을 쓰면서 창밖을 내다보면서 조금씩 마신다. 커피향 처럼 세상은 즐겁다. 오전에 조각밭으로 나가서 채소농사 일을 한다.
오후에 바닷가를 산책하고 돌아와서는 꼭 블랙커피를 마신다. 새로 끓이지 않는다. 아침에 끓여낸 커피찌꺼기를 그대로 남겨뒀다가 포트에 물을 부어 재탕을 하면 한잔이 나오기 때문이다. 블랙커피잔은 작고 예쁜 고려청자색이다. 잔에 입술을 대면 여인의 입술처럼 부드럽다. 신기하다. 다른 커피잔으로 블랙을 마시면 쓰고 까칠한데 청자색으로 마시면 고소하고 부드럽다. 블랙커피를 마시면서 석양으로 넘어가는 해 그림자를 감상한다. 어둠속으로 날아가는 갈매기 떼들을 바라보면서 세월을 뒤 돌아본다. 슬픔에 젖어보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난 행복을 말할 자격이 없다. 70평생을 살면서 성공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8명이 달리는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죽어라고 뛰어봤지만 3등 안에 들어가 본적이 없다. 앞집에 사는 개발짝이라는 친구는 뛰었다하면 일등을 했다.
군대에서는 졸병제대요 미국 와서도 말단목회였다. 생전에 내 집을 가져 본적이 없다. 남의 자식들은 하버드 장학생으로 잘만 들어간다는데 우리자식들은 법대 의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애들 성적표를 검사해본 적이 없다. 저들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방목주의교육이었다. 삼남매는 그래픽디자이너 알키텍쳐 컴퓨터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그래도 은퇴생활이 즐겁다. 은퇴는 과거를 내려놓고 벗어버리는 것이다. 미래를 받아드리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는 행복하게 마련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산다. 그래도 가끔 점검해본다. 우리부부는 정말 행복한 것인가.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눅6:20)가난한 행복도 복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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