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감사할 것도, 기쁠 일도 없는 요즈음의 농촌에서 부쩍 빈집이 늘어가고 있다. 쓸쓸한 농촌의 현실을 대변해 주는 듯한, 이제는 이미 폐허가 되어 버린 빈 집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느끼는 그 황량함이라니···.

그렇지만 빈집보다 더 진한 외로움과 쓸쓸함이 베어 나오는 곳은 바로 홀홀단신 혼자서 살아가시는 분들의 집인듯 싶다. 어찌어찌하여 일가친척, 자식들 모두 곁을 떠나가고 이제는 세상에 의지할 데라고는 자기 자신 밖에 없는 분들, 그나마 대부분 이미 고질이 되어 끊임없이 늙은 육신을 괴롭게 하는 질병과 그보다 더 아픈 외로움과 고독을 안고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분들이다. 우리 교회에도 이렇게 혼자 사시는 분들이 세 분이 있고 별로 크지 않은 우리 동네에 서너 분이 더 계신다. 이따금 그분들 집을 심방하고 돌아설 때면 웬지 모를 쓰라림에 가슴이 저려올 때가 많다. 깊디 깊은 그들의 아픔과 외로움을 감싸안기엔 젊은 전도사의 가슴은 늘 작고 부족하기만 하다.

서공순 성도도 혼자 사시는 할머니다. 올해 나이 75세, 재산이라고는 삼년전, 세상을 떠난 두번째 남편이 남겨 놓은 다 쓰러져 가는 집 한 채가 전부이고 당신의 말대로 자식 복도 더럽게 없어서 하나 있던 아들 자식은 어려서 병으로 먼저 보냈고 지금은 천안에 살고 있는 54세 된 딸이 그의 유일한 혈육인 셈인데 그 따님 역시 변변치 못한 집안에 시집을 가서 여태껏 고생만 하고 있다고 늘 안타까워 하신다. 나이에 비해 그래도 정정한 외모이지만 오래전부터 앓아온 심장병과 해소 때문에 어떤 때는 얌전히 걸어다니는 것 조차 여의치가 못하다. 그래도 몇해 전, 죽음을 코앞에 두었을 때를 생각하면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그 당시 자신의 병을 고쳐 주었던 순청향대학 병원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병원이라고 아직도 우기시고 있다.

서공순 할머니가 교회에 다니시게 된 것은 지병으로 인해 한바탕 난리를 치루신 후, 오래전부터 신앙생활을 해왔던 따님의 강력한 권유도 있었고 또 자신도 모르게 교회라는 곳에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생기고 해서 다니게 되었는데 이제 1년 반이 되었고 지금은 교회에 한 주라도 나가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하는 골수(?) 신자가 되었다. 할머니는 처음 교회에 나오실 때부터 젊은 사람 못지 않은 열정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알려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시고 글을 깨우치지는 못했어도 찬송을 부를 때면 꼭 볼펜을 가지고 한자한자 더듬어 나가신다. 어느날인가는 주일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다른 성도님하고 성경가방이 바뀐 일이 있었다. 그런데 궂이 돌아가서 자신의 성경가방을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도 고집하시길래 결국 그 길로 돌아가서 찾아오게 되었는데 차에 같이 타고 있던 다른 분이 “다음에 만날 때 찾으면 되지, 글도 모르는 노인네가 성경가방은 뭐할려고 그렇게 찾느냐”고 은근히 타박을 하자, 할머니께서는 “내가 그거(성경) 틈날 때마다 떠들어 보는데, 그리고 머리 맡에 꼭 있어야 편히 잠을 잘 수 있어”라고 당당히 말씀하셨다. 늙어서 총기가 부족해 아무리 다녀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성경책도 줄줄이 읽고 찬송도 막힘없이 부르는 것이 소원이라 시는 서공순 할머니, 그래도 이제 주기도문 정도는 떠듬 거리 면서 암송하시고 요즈 음에는 사도 신경을 익히려 고 애쓰시는 중이다.

특별히 신앙적인 열 정에 관한한 너나 없이 빵점인 기존의 우리 교인들에게는 좋은 모범이 되시고 있는 그래서 올해 전반기에는 먼저 믿은 교인들을 제치고 당당히 우수평신도 1등으로 뽑히셔서 평소에 그리도 갖고 싶어 하던 예배 상(床)을 상품으로 받으시기도 했다.

당신의 댁에 속회가 돌아오는 날에 할머니께서는 으례껏 아침 일찍 첫 버스를 타고 시장에 다녀오신다. 그래서 속회가 끝나고 나면 거의 잔치상에 가까운 음식들을 내어 놓으시며 무척 흡족해 하신다. 당신 집에 와준 것이 고맙고 당신은 이렇게 대접하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하신다. 그럴 때마다 살림 궁색한 것을 뻔히 아는데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자꾸만 그러신다고 타박을 하지만 워낙이  남을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는 할머니의 기쁨을 막아 낼 도리는 없다. 어쩌다 무슨 별식이라도 하  게되면 꼭 집집마다 한 접시씩 돌  려야 직성이 풀리고 성치 않은 몸으로 하루 종일 갯벌에 나가 잡은 바지락, 굴  따위를 고스란히 전도사에게 가지고 올 때 면 그 큰 사랑의 마음에  가슴이 애려 온다.  이게 어떻게 마련한 건 데 내가 이런 것을 받아 먹을 자격이나 있는 겐지···.

얼마전에 감기 몸살을 호되게 앓아서 또 한 번 위험한 고비를 넘기신 적이 있었다. 찾아가서 기도하고 얘기를 나누던 중에 “할머니, 이제는 하나님이 계신 것 같아요?” 하고 여쭤 봤더니 “그러믄, 내가 하나님 도움으로 사는디요.”라고 자신있게 대답하신다. 그러면서 “우리 딸이 번듯하게 사는 꼴을 한번 보고 죽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죽으면 너무 억울한데···” 하시며 자꾸 약한 말씀을 하셔서 전도사의 속을 쓰리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는 이미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끝없는 탐욕을 부림으로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이들이 점점 늘 어가고 있지만 서공순 할머니는 세상이 부여해 주는 혜택 중 지극히 적은 것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으로 인하여 늘 감사할 줄 아는 멋있는 분이다.

자기가 가진 여러가지 것들을 함께 나누기 보다는 자신의 것은굳게 움켜 쥐고 오히려 남의 것을

하나라도 더 빼앗아 보려 혈안이 된 이 세상에서 서공순 할머니는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더불어 나누고 함께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참 신앙인이다.

그의 남은 생애 가운데 늘 우리 주님이 동행해 주심으로 지금까지 누리지 못했던 놀라운 기쁨과 영광을 그리스도를 통해 체험케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푸른언덕      지동흠(홍성, 성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