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도 잠들지 않는 돌섬

도둑 섬 양산박에 손님이오면 산채주인 송강은 잉어를 잡아 대접했다. 물귀신처럼  수영을 잘하는 완소이 형제들이 양산박을 휘돌아 흐르는 강물에 뛰어들어 잉어를 낚아왔다. 싱싱한 잉어회를 안주삼아 말술을 즐기다 보니 친구들이 자꾸만 늘어났다. 108명의 도적들이 모이자 결의형제를 하고 부패한 송나라를 향하여 거사(擧事)한다. 그게 108호걸들이 무용담을 펼치는 수허지 이야기다. 서양의 산적소설 로빈 후드보다 수허지가 더 웅장하고 재미있다. 

소동파는 친구가 찾아오면 양자강에 배를 띄우고 적벽으로 노를 저었다. 낚시로 잡은 물고기로 요리하여 술잔을 들이키다가 취흥이 도도하면 시를 읊었는데 그게 유명한 적벽부(赤壁賦)다. 서양에 쉴리의 서풍부(西風賦)가 있고 동양에는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가 있다. 적벽부가 훨씬 낫다.

수허지나 적벽부나 친구 대접하다가 세계명작이 탄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보, 모래 안목사님 부부가 돌섬에 놀러온다고 해요. 우리 내일 꽃게를 잡아뒀다가 모래 대접하면 어떨까?”  

돌섬을 찾아오는 동갑내기 친구목사에게 난 양산박 도둑들처럼 좀 호기를 부리고 싶었다. 잉어대신 꽃게를. 아내도 좋아했다. 아내는 조각 밭에서 거둬들인 오이 호박 가지 고추 미나리 상추로 만든 자영식단으로 손님을 대접해오고 있다. 같은 메뉴를 계속하기가 지루했던 것이다. 그보다 꽃게잡기가 얼마나 즐거운데.

월요일 아침 8시. 우리부부는 5분운전거리인 48가 포구로 달려갔다. 금년은 워낙 불황이라서 두 시간에 다섯 마리 잡기가 힘들다. 그런데 오늘은 23마리가 잡혔다. 대박이다. 23마리는 너무 많은데 이걸 어쩌지? 그때 전화가 울렸다. 

“등촌선생님 동강입니다. 김택용목사부부를 만나고 있는데 잘 계신가요?”
“꽃게가 너무 많이 잡혀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잘됐네. 김목사 부부하고 지금 돌섬으로 달려와요. 그사이에 우리는 꽃게탕을 만들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꽃게 열 마리에 호박 고추 감자 두부를 숭숭 썰어 넣었다. 그 위에 된장 고추장을 풀어 끓였더니 빨간 꽃게탕이 됐다. 우리는 술 대신 커피를 마셨다. 꽃게맛과 커피향에 취하여 돌섬은 금방 양산박이 되고 적벽이 됐다. 우리는 소동파를 흉내 내어 적벽부 대신 팝송을 틀었다. 

매사추세츠의 남성5인조 보컬 "The G-Clefs"가 부른 “I understand". 늙어서 그런가보다. 나는 요즘 조영남이나 가곡보다 흘러간 미국팝송을 더 즐겨듣는다. 가사도 멜로디도 서툴기만 한데 가슴을 짓누르면서 무겁게 깔려오는 아메리칸 사운드가 좋은 것이다.

그런데 노래가 흘러나오자 유창한 영어발음으로 따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김택용목사 사모 유혜경이였다. 얼굴이 유관순동상처럼 생겨서 이상하다 했더니 바로 유관순열사의 친정손녀란다. 유혜경사모의 아버지가 바로 유관순열사의 남동생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팝송을 줄줄이 외우다니?

“대학시절에 김건모 조갑경과 보컬을 했었어요. 두 사람 모두 가요계의 톱으로 뜨는 바람에 전 학교로 돌아가 미술공부에 전념했지요”
“I understand just how you feel/ Your love for me, why not reveal?
It's over now but it was grand/ I understand, I understand
If you ever change your mind/ Come back to me and you will find....“

음악에 취하다 보니 아파트창가에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누가 서둘렀다.
“바닷가로 가요. 돌섬에 와서 바다를 보지 않고 갈수야 없잖아요?”
남쪽으로 8분을 걸었으면 바다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도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어둠속에 묻혀있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 걸음을 멈추고 속삭였다.  

“잠깐! 밤 물결소리가 들려오고 있어요. 밤바다가 우리를 부르고 있어요”
살금살금 보드워크로 올라서자 밤바다가 달려오고 있었다. 일행은 탄성을 질러댔다.

“와! 돌섬의 밤바다”
어둠속에서 물결은 속사이면서 몰려오고 있었다. 검은 물결로 다가오다가 가까이 와서는 우리들의 가슴에 안기려는 듯 하얗게 부서져 버리고 있었다. 아름답다.
동강이 어느새 테너로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었다.  

“달 밝은 외로운 밤 물가에 홀로서서/ 출렁이는 밤마다 밤물결소리 들리네/ 한 없이 그리운 그대...”
돌섬바닷가는 새벽부터 만원이다. 아침에는 건강을 달리는 젊은 남녀들로 활기가 넘친다. 점심에는 노인아파트에서 휠체어와 지팡이노인들이 많이 나온다. 정오의 햇볓과 대서양에서 올라오는 무공해 오존을 받으면 만병이 치료되기 때문이다.   저녁나절에는 건강노인들과 퇴근한 직장인들의 마라톤 코스가 된다. 서산으로 해가 기울듯 저 멀리 스테이트 아일랜드 섬 너머로 저녁 해가 사라져 버리면 노인들은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노을을 바라본다. 그리고 노인아파트로 돌아간다.

이렇게 낮이 가고나면 만상이 잠드는 밤이 돌섬을 찾아온다. 그런데 돌섬바다는 밤에도 잠들지 않는다. 활처럼 굽은 채로 해변을 돌고 있는 30리 보드워크에 총총히 서있는 가로등이 불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면 대낮인줄알고 갈매기들이 날라 와 바다 위를 날라 다닌다. 갈매기들의 울음소리에 잠이 깬 바다는 밤물결소리로 속삭이면 밤바다를 수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돌섬바다는 밤에도 잠들지 않는다.   

밤물결소리, 밤하늘을 날고 있는 갈매기울음소리, 가로등사이로 만리장성처럼 뻗어나가고 있는 30리 보드워크. 돌섬의 밤은 아름답다. 그래서 돌섬의 밤은 연인들로 만원이다. 벤치마다 젊은 남녀들이 서로 손을 잡고 몸을 기댄 채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옆에서 걷던 아내가 슬며시 팔을 끌어당긴다.

“저기 벤치를 봐요. 우리보다도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부부가 사랑을 나누고 있어요. 우리도 벤치로 가자 구요”

"그건 부부가 아니야. 불륜이거나 늦게 재혼한 노 신혼 부부일거요. 45년을 부부싸움하면서 살아왔지만 그래도 죽지도 않고 이혼하지도 않은 우리가 더 행복한 거요“
우리는 서로 보면서 멋쩍게 웃었다. 밤바다는 속삭이면서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