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준비한 그릇대로

뜨러빼앙 끄러완 마을사역 3일째 되는 날이다.
바쁘다 보니 금방 3일이 지나갔다.
오늘 오전사역을 마치면, 오후에는 각자 흩어졌던 모든 팀들이
베이스캠프가 있는 깜뽕츠낭 진리교회로
다시모여 다른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오늘도 새벽기도 하러 내려가니 어제처럼 갑자기 설교를 맡긴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하여 늘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듯이
목자는 늘 말씀을 준비하고 있다가 영혼이 목마른 자들을 만나면
영의 양식으로 배부르게 하여야 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열심히 말씀을 증거하다.

지난 저녁 성경 묵상하던 것을 회상하며
마태복음 6: 31-34 말씀을 함께 읽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하나님나라 왕국 건설’에 관하여 말씀을 전하고
모두들 한 목소리로 이 마을을 위하여
그리고 남은 선교사역을 위하여 통성기도를 드렸다.

오늘 아침식사는 후완목사님 부인께서 특별히 신경을 써
그동안 먹던 한국음식을 철회하고
빵과 국수로 캄보디아식 식사를 준비하였다.
아마 마지막 날이라 캄보디아 전통음식을 선보이고 싶었나보다.
보기보단 샌드위치도 맛있고 고기를 넣어 삶은 국수도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조촐하지만 차려준 성의를 위하여 맛있게 먹다.
오랜 동안 프랑스 지배를 받아 건축양식이나 음식이
프랑스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식사 후 부인께서 여러 가지 기도를 부탁하다.
이곳을 괴롭히는 사단마귀의 권세를 물리치기 위하여
정신병자들의 건강을 위하여
그리고 며느리인 디나 사모 부친의 건강을 위하여 등 등.

이곳엔 특히 정신병자들이 많단다.
형편이 어려워 여자들이 도시로 돈 벌러 가게 되면
시골에서 올라온 배우지도 못한 어수룩한 어린아이들을
성추행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이렇게 당한 여자아이들은 정신병자가 되는 경우가 많단다.
이곳 농장에도 이런 불쌍한 사람들을 데려다 돌보고 있다.
앞으로 내가 이곳에 와서 의료사역을 하면,
이층 게스트 하우스도 주고,
망고 농장에 병원도 지어 줄 테니 꼭 오라고 당부한다.

지금까지 우리들이 심방하고 전도하는 것을 지켜보던 후완목사가
오늘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다.
교회 나오는 어린아이들 중에 불신자 부모들을 심방해 달란다.
그냥 무작정 아무 가정이나 방문하는 것 보다 상당히 효과적일 것 같다.
교회에 출석하는 어린이들이 약 100여명 되는 데
그 중에 몇 가정을 선별하여 심방하기로 하다.
외국인 목사가 방문해서 그런가?
비록 불신자 부모들일지라도 우리가 방문하니 모두들 반가워한다.
아니, 이들의 심성이 남을 박대하지 못하고 선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같다.
우리 대원들은 이제 제법 숙련된 심방요원이 되었다.
가자마자 알아서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전하고 기도를 하고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이 일사불란하게 잘 이루어진다.

심방 간 가정의 아이들

쁘레아 어 머짜 영 러어 나
쁘레아 어 머짜 영 톰 나
쁘레아 어 머짜 영 쓰머 뜨렁 나
쁘레아 엉먼 쁘라 애 쁘루얼
쁘레아 어 머짜 영 러어 나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아주 좋으십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대단히 위대하십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난 혀가 안돌아가 아무리 따라하려고 해도 안 된다.
젊은이와 아이들이 노래 부를 때
그냥 응얼응얼 거리다 다 끝나고 만다.

오늘 심방하던 중 너무나 불쌍한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제 겨우 30세도 안된 젊은 여인이 임신 한 몸으로
힘없이 세 자녀를 데리고 서서 우리를 맞이하는데
불과 2주전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거다.
아직 남편이 죽은 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 덤덤한 표정이다.
내 일은 아니지만 큰 한숨이 절로 나고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안됐고 답답하기만 하다.
주위에 보니 연세 드신 어른들도 없다.
이 연약한 여인이 어떻게 혼자 힘으로 아이 넷을 키우며 산단 말인가!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고 서 있는 그녀 앞에서
우리 일행은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주고 간절히 기도를 하였다.

요한 1서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세상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열심히 살 것을 권면하다.
마침 지갑에 달러가 조금 있어 손에 쥐어주다.
넉넉하게 주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쉽다.
힘내서 잘 살라고 격려하며 주일날 꼭 교회 나오라고 당부하다.
우리 일행은 그 집을 나서며 착잡한 심정을 떨치지 못한 가운데
또 다시 다른 가정을 열심히 심방하며
오전 중으로 모든 심방을 마치고 농장에 돌아와 점심식사를 하다.

남편을 잃고 세 자녀와 힘없이 서 있는 임산부를 위로하며

식사 후 일행이 한유한 맘으로 잠시 쉬는 중에
지난 번 아침에 식당에서 먹은 캄보디아 냉커피가 생각 나
참 시원하고 맛있었다고 말했더니
옆에 있던 디나 사모가 듣고
슬며시 오토바이를 타고 어딘가 한 참 후 다녀오더니
비닐봉지에 얼음을 넣은 냉커피를 사 왔다.
지난 번 식당에서 마신 바로 그 커피다.
이곳 시골에서는 전혀 먹어볼 수 없을 것으로 여기고
그냥 이야기 해 본 것인데 이렇게 어려운 수고를 하였다.
모두들 비닐봉지에 든 시원한 커피를 한 봉씩 입에 물고
즐겁게 마시며 피곤을 풀다.

어디든 현지인들이 사는 시골 마을에 가서
그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면 새롭게 느끼는 게 있다.
그들은 도시사람들과 사는 모습이 다르고 생각하는 게 다르다.
없어도 항상 마음의 여유가 있고
가난할지언정 조그만 것이라도 있으면 함께 나눈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순박한 그 무엇이 있다.
그들과 생활하다 보면 잃어버렸던 영혼을 다시 찾는 기분이다.
밤이 되면 도시인들이 텔레비전을 켜 놓고
각자 바보상자 앞에서 울고 웃고 하는 시간에
시골에서는 밤하늘에 쏟아지는 수많은 별들과
주위에 떠다니는 수많은 반딧불을 바라보며
가족들이 정답게 마주앉아 스킨십을 하며 밤을 맞이한다.

그리고 도시의 자녀들이 옆집 자녀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하여
잠도 안자고 눈이 벌겋도록 밤늦게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시간
시골 아이들은 내일 사냥이나 낚시 갈 준비를 하든가
산과일이나 산나물을 캐기 위하여 서로 도와가며 장비를 점검한다.
철저하게 개인주의적 삶을 사는 도시 아이들과
공동체적 삶을 사는 시골아이들은 너무나 서로 다른 세계관 속에 산다.
요즈음 도시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일등시민으로 키우느라 무진장 애쓰며 살면서도
노년에 그 자녀와 함께 산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불확실한 예감을 갖는다.
그러나 저개발국가의 현지인들은 여전히 노인들의 권위와 보호 속에서
평화로운 가족공동체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도시인의 시각으로 보아 그들이 불쌍해 보일 뿐이지
그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다.
도시인들이 그들을 도와야 할 것들은 도시의 발전된 문명이 아니고
도시인들이 과소비하여 낭비하는 과잉소비에너지와
잉여 생산물일 뿐이다.

마을 길을 지나가고 있는 소떼들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경, 롬머를 타고 꼼뽕츠낭 베이스캠프로 왔다.
우리 1조 이외엔 아직 다른 팀들은 도착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우리가 가장 가까운 지역을 맡은 거였다.
아열대 지역의 우기철 기후는 예측할 수 없다.
벌건 대낮에 갑자기 심한 폭우가 쏟아진다.
폭우 속에 비를 흠뻑 맞으며 2조, 3조가 약 30분 간격으로 도착한다.
연약한 자를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조가 도착할 때가지
비를 멈추게 하셨나보다.

평가회를 하며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를 다시 한 번 느껴본다.
처음 봉사 장소를 정할 때, 제비뽑기를 하여 정하였다.
제비뽑기를 할 때 마침 내가 화장실 간 사이라
앞의 두 팀이 이미 제비를 뽑았고
나는 마지막 남은 것을 그냥 받은 것이 1조였다.
그리고 그 1조는 가장 연약한 사람들만 모인 조였다.
그런데 3일간의 봉사를 마치고 돌아와 사역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이루어 졌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성향을 보고 일을 맡기셨다.

2조는, 힘깨나 쓰는 건장한 청장년들로 구성되었는데
그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논에 나가 일을 하는 바람에
심방이나 전도를 하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이 일하는 논에 찾아가서
경운기를 운전하여 모를 나르고, 모를 심는 노동을 하며
주로 몸으로 때우는 일들을 많이 했다.
잠자리도 마련되지 않아, 밤에는 시골교회 바닥에 자며
모기들과 싸우며 선잠을 자기도 했다.

비를 흠뻑 맞고 들어서는 2조 팀원들

3조는 기도상담원을 운영하는 여자목사님과
늘 기도 많이 하시는 신실한 장로님이 계시는 조였다.
하여 낮에는 열심히 심방하고, 밤에는 교회에 모여 영적 집회를 하며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영적으로 바르게 세우는 일을 주로 하였다.
마침 영어를 잘하는 사모도 있어 통역도 하게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충분히 발휘하기도 하였다.

영적 집회로 큰 은혜를 끼친 3조 팀원들

우리 조가 할 수 없는 사역을 다른 조들이 하였고
다른 조들이 할 수 없는 사역을 우리가 하였다.
만일 우리 조가 모심는 곳에 배정되었다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구경만 하다가 돌아왔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망설이거나 염려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받길 원하며
성실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면
언젠가 하나님이 적당한 곳에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한 그릇대로 쓰신다.
투박한 질그릇은 질그릇대로 사용하시고
정교한 그릇은 정교한 대로 쓰신다.

이 교회의 담임목사이신 후완목사님과 1조 팀원들

디나 사모가 평가회 때 여러 사람들 앞에서 몇 번이나 강조하여
나의 심방설교통역을 하며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소개한다.
역시 말씀사역이 노력봉사 보다 더 효과가 있다.
의료봉사로 하루 종일 일을 하고나면 피곤에 지쳐 쓰러지는데
말씀으로 공궤하니 몸도 별로 피곤하지도 않고
은혜 받았다는 말도 듣게 된다.

제1차 미션(현지교회 심방사역)을 마치고 베이스 캠프에 돌아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