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기지촌 할머니들의 연극공연 현장 리포트

이양구 (극단해인 대표, 사단법인 햇살사회복지회 자원봉사자)

밝고 당당하게 살자!
―기지촌 할머니들이 직접 연극 무대에

지난 7월 10일(화) 팽성국제교류센터에서는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사) 햇살사회복지회(우순덕 대표)의 할머니들이 “숙자 이야기”을 공연했다. 너무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기지촌 할머니들의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연극치료 워크숍 - ‘밝고 당당하게 살자! ’ 라는 프로젝트(경기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공간 - ‘해(解)’)의 노지향 대표와 김현정 박사의 지도로 지난 3월 15일부터 6월 14일까지 총 16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추가로 총 5회에 걸쳐 집중연습(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공간 - ‘해’, 사)행복공장 지원)도 했다. 70대를 전후한 기지촌 여성노인들이 체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워크숍 과정에서 기지촌 할머니들은 서로의 삶의 여정을 고백하고 그 줄거리로 연극을 만들었다. “숙자 이야기”가 그것이었다. 공연 며칠 전에 또 한 명의 할머니가 홀로 세상을 떠난 지 사흘 만에 발견되었지만 빈소도 없는 장례식을 우순덕 원장과 자원봉사자 몇 명, 팽성읍 복지담당 직원만이 지켜보았다는 이야기가 그녀들을 더욱 슬프고도 용감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올라가서 직접 연기하였다. 대사는 미리 외울 필요도 없었다. 그녀들이 살아온 삶의 여정이 숙자의 여정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사실 할머니들 중 몇 분은 한글을 읽을 줄도 모른다. 연기하는 중 울고 흐느끼는 숙자를 보며 관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숙자이야기
―기지촌 할머니 모두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영상과 함께 막이 올랐다. 1971년 기지촌정화위원회가 생기고 국가가 기지촌 여성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들이 기지촌에 제 발로 걸어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스스로 선택한 만큼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가 포주처럼 여성들의 성병 관리까지 체계적으로 하였으며 그녀들을 외화벌이 역군으로 칭송하였다는 사실 앞에서 당황하곤 한다.

연극 내용은 우리 할머니들의 스토리를 짜깁기 한 것이다. 숙자의 어린 시절도, 안정리로 흘러와서 처음 만났던 미군도, 몸 아플 때도 숙자를 계속 찾아와서 괴롭혔던 미군도, 안정리에서 함께 일했던 또 다른 여성들도, 무대 위에 오른 다른 할머니들이 연기하였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그녀들이 또 다른 숙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극중 숙자가 기지촌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려하자 고향 사람들이 쫓아내는 장면이 있었다. 고향의 사람들에게 기지촌 여성들은 부끄러움의 대상이다. 기지촌 여성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한다. 이 날의 무대는 죄의식에서 벗어나라고 말했다. 자랑스러울 것도 없지만 부끄러울 것도 없다고 말했다. 국가가 부끄러워하고 배상해야 할 책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 7월 1일 홀로 별세한 할머니의 영정 사진이 무대 위에 놓여졌다. 예산이 부족하다며 장례비조차 제대로 책정되지 못한 현실 또한 고발되었다. 어떤 할머니는 “해도 너무 하잖아요. 해도 너무 하잖아요.” 라는 말을 무대 위에서 계속 반복했다.

무엇보다 이 연극의 아름다움은 영정 사진 앞에 장미꽃을 놓는 장면이었다. 영정 속 할머니는 빈소도 없이 안치실에 안치되었다가 쓸쓸하게 이 세상을 퇴장하였는데, 연극 무대 위에 다시 올라 여러 사람들의 전송을 받은 것이다.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맡은 역할은 너무나 외롭고 불우한 것이었는데, 다행히 마지막은 무대 위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장미꽃을 선사받는 역할이었다. 비록 영정 사진 속에서 지켜보는 것이었지만. 객석에 앉아 있던 할머니들이 너도 나도 무대 위로 올라가서 장미꽃을 놓았다. 그녀들은 자기 영정 사진에 꽃을 바치는 사람들 같았다.

한편 이 연극에는 기지촌 할머니들이 젊었을 때 사진도 프로젝트로 투사되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였다. 이 늙고 병든 여성들이 저렇게 예쁜 어린아이였다니. 무대 위를 왔다갔다하는 노인 여성들의 등 뒤 벽면에 투사된 젊은 여성들이 무대 위에서 흘러가는 세월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

연극이 끝나고 노지향 대표는 관객들에게 지금 연극에서 펼쳐진 장면 중에서 현재의 상황에서 한 번 바꿔보고 싶은 대목이 있는지 물었다. 기지촌 할머니들 중에서 몇 명이 손을 들었다. 그래서 숙자가 엄마 곁을 떠나던 장면은 떠나지 않는 장면으로 바꾸어 보았다. 숙자가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기지촌에서 다시 일하던 장면은 “엄마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해!”라고 엄마를 야단하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엄마가 숙자를 보내지 않았다면 숙자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관객들은 가난했던 시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분을 이기지 못한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이렇게 소리치기도 하였다. “일본군 위안부들은 나라가 없어서 남의 나라에 끌려갔다지만, 우리는 나라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남의 나라 군대에 몸을 팔았다”, “나라는 왜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나?”, “최소한 늘그막에 먹고 잠자는 걱정 정도는 챙겨줘야 하는 것 아니냐?”, “예전에 어느 국회의원은 9평 아파트라도 지어준다고 했는데.... 말로만 하지 말고 제대로 해 달라.” (최근 미군기지 평택 이전으로 인근 땅값이 오르면서 할머니들의 방값도 오르고 있다.)고 했다.

노지향 대표가 “이 연극이 너무 과장 되었나요?”라고 물었다. 객석의 할머니들은 “현실은 더 끔찍했어요!”라고 너도 나도 소리쳤다. 연극이 끝나고 할머니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아무튼 속이 다 시원하다.” “시원 섭섭하다.” 이 시원 섭섭한 마음은 할머니들에게는 각별한 것이다. 연극치료 워크숍이 있기 전에는 할머니들은 사진을 찍거나 영상에 출연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이름 석자가 공개적으로 언급 되는 것도 꺼려했다. 부끄러웠으니까. 하지만 “숙자 이야기”, 실명까지 내건 제목으로 연극을 했다. 할머니들이 죄의식에서 벗어나서 당당한 삶으로 전환되었을까?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또한 이런 기회가 더 늦기 전에 다른 할머니들에게도 주어져야 한다.

또 다른 연극 하나 「일곱집매」그리고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출범

(사) 햇살사회복지회는 이번 공연-숙자 이야기-뿐만 아니라 기지촌 할머니들의 삶을 소재로 다른 연극 하나를 더 기획하고 있다. 이번에는 전문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 경기도여성발전기금의 지원으로 제작 준비 중인 “일곱집매”가 그것이다.

「일곱집매」는 대학로의 연우소극장에서 8월 30일 ~ 9월 9일까지 공연한다. 김지원, 김시영, 조시현, 최설화, 한철훈, 나다래 등 극단 해인과 공상집단 뚱딴지의 배우들이 출연한다. 연출은 대학로의 중견 여성 연출가 문삼화 씨가 맡았다. 미군기지 앞 기지촌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방이 일곱개가 있는 집이 무대다.

이 연극이 무대에 오르는 날은 <기지촌여성인권연대>의 출범식 날이기도 하다. 이 단체는 앞으로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국가의 법적인 책임과 보상, 그리고 사과를 요구하는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출범식은 8월 31일 금요일(오전 11시) 대학로의 흥사단에서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