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21세기 선교와 세계관의 변화


저자 : 폴 히버트
역자 : 홍병룡
요약 및 사진 : 이강무


머리말

그리스도께 회심하는 일은 다음 세 가지 차원을 모두 포함해야한다 행위와 믿음,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세계관이 그 세 가지 차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다르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가 기독교적인 믿음이 아니라 전통적인 믿음에 주로 기초해 있으면 그 행위는 이교도적인 의식이 되어버린다. 회심이 믿음의 변화를 수반해야 하지만, 행위는 변하지 않고 믿음만 변할 경우에 그것은 거짓 신앙에 불과하다(약2장). 회심이 믿음과 행위의 변화를 포함하더라도 세계관이 변하지 않을 경우에는, 장기적으로 보면, 복음이 거꾸로 뒤집어지고 기독교의 모양은 있으나 알맹이가 없는 혼합주의 종교를 초래하게 된다. 기독교가 일종의 새로운 마술과 아주 미묘한 형태의 우상숭배로 변질되는 것이다. 행위의 변화가 19세기 선교 운동의 초점이었고, 믿음의 변화가 20세기 운동의 초점이었다면, 21세기에는 세계관의 변화가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각 세대는 자기가 처한 특정한 상황에서 기독교적인 삶에 성경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1장
세계관의 개념


세계관이란 “한 집단이 사물의 본질과 관련하여 형성하는 근본적인 인지적, 정서적, 평가적 전제들로, 자기 삶을 정돈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세계관은 한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이미 주어진 실재로 취하고 있는 것이고, 삶을 위해 사용하는 실재에 관한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세계관의 기능
한 문화의 밑바탕에 있는 가정들을 모두 묶은 것이 세계관이고, 세계관은 그 민족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어느 정도 정합성 있는 방식을 제공한다.


2장
세계관의 특징

선교학적 함의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의 세계관을 진지하게 취급해야 한다. 그들에게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복음의 좋은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하려면 그들을 잘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관은 한 공동체가 그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고 똑바로 정열 시기키 위해 꾸며낸 상상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민족은 자기가 가진 신념들이 쓸모 있는 허구 이상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그 세계관은 사물의 진정한 존재 방식, 곧 궁극적인 의미에서 사물의 진면목을 분명히 밝혀 주는 하나의 초석이다.

세계관을 변화시키기 위해 세계관을 연구하는 일이 중요하다. 회심의 경험을 관찰해 보면, 그것이 행위와 신념의 피상적 수준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런데 만일 세계관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복음이 이교도적 세계관에 비추어 해석될 터이고 그것이 결국에는 기독교적 이교주의를 낳게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와불 - 길이 67미터 (2004년 미얀마, 양곤)

3장
인간이 처한 상황과 세계관

신화

신화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표면 아래를 본다. 그것은 사유의 언어일 뿐 아니라 상상의 언어이기도 하다. 신화는 그냥 두면 인간이 듣기 아주 어려운 것들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가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를 때”까지 열심히 상상력과 사고력을 동원하여 그 의미를 발견하도록 강요한다. 뿌리 신화는 이야기 형식으로 전해지는 인간 존재의 원형이므로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세계관에 의문을 품는 일은 곧 삶의 토대 자체에 도전하는 것이고, 그런 도전을 받으면 사람들은 강하게 감정적으로 반발한다. 질서 의식과 의미의 상실만큼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4장
세계관을 분석하는 방법들

교차문화적 비교
비교를 통해 우리는 양쪽 문화에서 그동안 의식적으로 발굴하지 않았던 특정 분야의 유사점과 대조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세계관들 사이의 “대화”는 두 문화에 있는 유사한 주제 집합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이 과정은 세 개 이상의 문화에도 확대할 수 있다.

비교는 특정한 세계관을 이해하도록 도울 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계관에 일어나는 변화 현상도 이해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람들의 세계관에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를 알게 해주고, 또 심도 깊은 회심이 정말 일어났는지 여부도 검토하게 해준다. 아울러 문화 상호간의 의사소통과 잘못된 의사소통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두 분야는 전 세계를 복음화 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해발 3500미터, 히말라야 랑탕계곡 티베트 난민 촌(2010년, 8월)

 
5장
소규모 구술사회의 세계관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소규모 사회들의 세계는 살아 있고 역동적이다. 인간은 온갖 살아 있는 생물체와 비가시적 세력들로 이루어진 세계의 일부다. 그런 세계에서는 구획화가 있을 수 없다. 즉 종교, 과학, 인문학 등으로 나누지 않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구분하지도 않고, 사회, 경제, 정치, 법과 같은 분야로 구획을 나누지도 않는다. 이 총체적인 세계관이 모든 삶의 중심에 있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 - 어떻게 먹을지, 누구와 결혼할지, 어떻게 씨를 뿌릴지, 어디에 묻힐지 등 - 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세계는 초자연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서로 구별하지 않는다. 모든 형태의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식물과 동물이 서로 친척이요 토템이요 영적인 도우미라는 것을 경험하고, 자연의 세력도 의료, 마술, 다양한 힘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주술의 논리

우리 현대인은 주술을 무의미하고 유치한 공상으로, 또 논리 이전의 사고방식으로 간주하고픈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주술의 논리는,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그리고 세계의 한 부분에서 일어난 사건이 다른 부분들에 변화를 일으키는, 그런 조화로운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사람들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통제한다. 이런 상호연관성은 생물리학적 연결성에만 기초한 것이 아니고, 세계의 밑바탕에 흐르는 초물리학적 실재에 기초하고 있다.

세계관들에 관한 연구는 우리의 근대적 세계관과 포스트모던 세계관이 전통사회의 세계관과 성경적 세계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깨닫도록 도와줄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상 부족의 세계관이 그들을 섬기려고 온 선교사들의 근대적 세계관보다 여러 면에서 성경에 더 가깝다. 

랑탕계곡의 추수하는 여인들(2010년 8월)

 
6장
농경사회의 세계관

작은 범위의 공동체/국가

대부분의 부족은 땅이 신에게 속해 있다고 보고, 부족, 씨족, 가계에 사용권이 주어졌다고 믿는다. 그래서 땅을 사거나 팔지 못한다. 농경 사회는 이와 정반대다. 땅은 궁극적으로 국가에 속해 있다. 개인도 땅을 소유할 수 있지만, 국가가 세금을 부과할 수 있고 월등한 권리를 행사해서 그것을 압류할 수도 있다. 게다가, 개인이 땅을 사고파는 것도 가능하다. 땅은 신이 물려준 유산이 아니라 경제적인 상품인 셈이다.

하나로 존재하는 공동체

마을은 땅과 거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기에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다른 많은 것도 포함되어 있다. 조상들, 그 지방에 뿌리박은 영들, 동물, 역사적 기억이 담긴 고목과 같은 식물, 어떤 산과 강, 성자의 무덤 또는 어떤 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들을 모시는 신전과 같은 특별한 성지 등. 이 모든 것은 그들을 이웃 마을과 구별시켜 주는 신성한 경계선 안에 위치하고 있다. 그 지방의 영들은 마을의 경계선을 벗어나면 힘을 못 쓴다. 바로 거기서 마을들 사이의 관계와 연관된 의례가 거행되곤 한다.
소규모 사회의 공동체 의식은 구성원들 사이의 친밀한 앎과 그 지방 역사에 대한 공감대에 기초를 두고 있다. 입에서 입으로 소식이 전해지고, 축제가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주고, 시장이 농부와 함께 장인, 종교 지도자, 거지를 한곳으로 모은다.

후견인-수혜자/시장경제

후견인-수혜자 경제에서는 돈을 빌리는 것이 후견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강화한다. 한 사람이 후견인을 갖자마자 그에게 돈을 빌려 둘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더 높인다.

농촌 마을과 근대성

구술 중심의 전통적인 농촌마을은, 글을 쓰는 것이 필수적인 도시 및 국가의 세계와 불편한 관계를 맺어 왔다. 마을에 학교가 있는 경우는 주로 특별한 소명을 위해 종교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였다. 그런데 식민지 지배가 도래하면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식민지 지배와 함께 계몽주의 가치관이 들어왔다. 이 가운데 하나는 정부와 선교사가 세운 학교들을 통해 모든 사람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글과 지도는 시간과 공간의 기본 범주를 바꾸어 놓았다. 농경 생활은 계절의 순환에 의해 좌우된다. 밭가는 시기, 씨 뿌리는 시기, 추수하는 시기 등. 그런데 문자문화가 연대기적 감각을 영입했다. 계절과 늘 조화되지 않는 주, 월, 년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하루를 시간, 분, 초로 나누었다. “흔히 글을 사용하지 않는 사회들은 그 둘(태양의 순환과 달의 순환)을 대충 얼버무리는 식으로 조정한다. 추석 보름달이 추수할 때가 되면 나타난다는 식이다. 글을 사용하는 사회들만 달에서 월을 또는 태양에서 년을 억지로 빼내야 한다. 글은 또한 전문적인 역사 감각을 도입했다.

지도는 땅을 측량하고 기록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더 이상 그 강, 저쪽 구석에 묻힌 바위, 언덕 아래에 있는 고목 등을 기준점으로 삼지 않았다. 그런 지점들은 이제 남북극과 적도에 의해 정해지는 격자들-지구의 공간 전체를 포괄하는 지구적 격자-에 의해 기록되었다. 
 

터키 이스타블, 아야 소피아 성당(1997년)

 
7장
근대적 세계관

역사상 가장 큰 세계관의 변화 중 하나가 17세기에 근대 과학과 근대성의 출현으로 일어났다. 근대성은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지구적 문화다.

4세기에 기독교가 승리의 깃발을 올린 이후 서양의 정신은 유신론적 사상으로 점철되었다. 모든 생명과 자연은 인격적인 하나님, 곧 인간을 향해 완전한 목적을 갖고 계시 분이요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감독 아래에 있다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기르시는 사랑의 아버지시고, 자기 뜻대로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하시는 분이었다. 자연도 그분의 명령에 순응하고, 그분은 일상적 삶에도 특별히 개입하는 분이었다. 그리스도인에게 인생은 하나님의 목적을 실행하는 통로였다. 그와 같은 세계에서 사람들은 역사의 목적과 인생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들은 자연 세계를 알려고 나서지 않았고,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제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 세계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 아래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근대성이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원론이 서양 사상에 다시 도입된 현상이 있다. 중세 유럽은 창조주와 창조세계의 의존적 이원론이 지배했다. 전자가 궁극적 실재로서 만물을 지배하는 영원한 존재였고, 후자는 본질적으로 전자에 묶여 있었다. 이로 인한 한 가지 결과는 “다른 세계를 지향하는” 경향, 곧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일은 높이 받드는 반면에, 돈을 벌고 지상의 안락을 구하는 일은 멸시하는 풍조였다. 이 견해는 또한 선한 천사들과 타락한 천사들을 모두 창조세계의 영역 내에 두었다.

15세기의 지구는 예루살렘이라는 거룩한 도시를 중심으로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로 구성되어 있는 하나의 섬이었다. 이 거룩한 공간은 깊은 물들로 이루어진 어둡고 비인간적인 악한 허공에 둘러싸여 있었다. 바다를 가로지르고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모험이 유럽인들의 지구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세계가 대륙들과 대양들로 덮여 있고, 균일하고, 서로 이어져 있는 세속적 공간임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타자들”은 더 이상 “타락했기” 때문에 구속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17세기 말에 이르러, 유럽 지식인의 심상에서 하늘의 영역과 땅의 영역이 서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갈수록 비실재적 존재로 변했고, 물질적인 우주가 궁극적 실재가 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이 자연에 개입한다는 사상을 다수가 포기했고, 그분이 법으로 질서를 부과한다는 일반 섭리만 견지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천사와 귀신은 모두 다른 세계로 추방되고, 종교는 하늘의 문제로 국한되고 말았다. 자연은 이제 영적인 거주자가 자리를 비운 이 세계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실재를 오로지 에너지와 물질의 견지에서 보게 되었고, 자연 역시 완전히 독립적이고, 자충족적이고,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로 간주했다. 초자연적 영역은 공상적인 믿음, 감정, 도덕으로 전락했다.

이와 같은 이원론 - 자연과 초자연, 과학과 종교, 사실과 믿음, 자연법칙과 기적, 몸과 영 - 이 대다수 근대인의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관념은 종교를 개인적인 믿음의 문제로 치부하고 일상생활의 세속화를 초래한다. 과학주의는 이른바 자연이 실재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주의적 형태를 띤 근대성은 마침내 종교적 초월성과 계시를 부정하고, 모든 것이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질서정연한 자연 시스템 속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다. 종교는 맹목적인 믿음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비합리적이다.

근대성은 천국이나 지옥과 같은 다른 세계들이 아니라, 이 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갈수록 이 세계를 생명이 없는 입자들-원자, 쿼크, 지금은 끈이나 고리-로 구성된 물질적 우주로 보고, 세계의 움직임을 하나님과 무관한 자연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세계는 신비와 초월이 들어설 자리가 거의 없다. 하나님이나 영과 같은 비물질적 실재들은 사실이 아닌 신앙의 문제로 밀려난다.

이제 근대성의 지배적인 타당성 구조로 군림하게 된 과학은 주로 합리적 방법을 사용하여 물질세계를 연구한다. 유물론은 과학자들이 몸담고 헤엄치는 물과 같고, 이 교리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많은 근대주의자는 이 세계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고, 영적인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형이상학적 가정을 하게 되었다. 세속주의의 일차적 교리는, 인간에게 유익한 궁극적 선은 이생에서 도달 가능한 그 무엇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가 배척당하는 것이다. 종교는 인간에게 선한 것을 이생에서는 완전히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초점이 다른 세계에서 이 세계로 맞추어지면서, 관심사도 영원에서 현재로 바뀌었다. 중세는 우주 역사에 뿌리박고 있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교회 역사의 일부이므로 중요한 존재였다. 교회의 역사는 하나님과 창조로 시작해서 영원한 세계로 끝나는, 신적인 역사의 일부였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 근대성은 과거 세대의 이야기나 장래 세대의 안녕보다도 오늘의 행복을 더 중요시한다. 지난 역사에 매혹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당장의 뉴스에 홀려 있다.

인간 중심/하나님 중심

초자연/자연의 이원론과 함께 신 중심적 세계가 인간 중심적 세계로 바뀌었다. 중세의 서양문화는 하나님과 그분의 사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분이 다스림 아래에 인간 공동체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사람들에게 정체성과 안식처를 제공해 준 교회가 우뚝 서 있었다. 교회를 섬기는 일은 고귀한 가치가 있었으며, 성당은 도시생활의 심장이었다.

근대성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삶을 거꾸로 뒤집어서,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을 우주의 중심과 만물의 척도로 삼는 그런 세계로 대치했다. 인간들이 진리의 중재인이었다. 그들은 사회와 문화를 만들었고 역사에 대한 책임을 졌다. 세계는 그들의 눈에 비친 “그림”으로 변모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운영하던 세계가 인간들이 조작하는 세계로 바뀐 것이다. 이런 인본주의는 데카르트의 글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제 자유의지는 그 자체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고상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해주고, 우리를 그분의 신하의 직분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옳게 사용하는 일은 우리가 소유한 것 가운데 최고의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소유 가운데 그보다 더 큰 것은 없고 더 중요한 것도 없다”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전환은, 근대인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다. 인간은 이제 우주의 중심이므로 인간의 본성 자체가 변하게 된다. 그들은 이제 세계를 연구하는 자율적 주체들이다.

마침내 계몽주의는 하나님을 죽였다. 마르크스와 같은 다수의 사람에게 이것은 종교의 도덕적 사회적 횡포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했다. 니체는 이 느긋하고 자기만족적인 무신론을 고뇌에 찬 무신론으로 대치했다.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와 함께 자유와 평들의 교리, 자유와 인권에 대한 강조, 사유재산권과 자본주의를 중시하는 사상도 도래했다.

과학/종교

계몽주의 이후, 과학은 종교를 자신과 정반대되는 것으로 규정지었다. 과학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경험적이며 만민에게 진리인 대 비해, 종교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며 개인적 신앙의 문제라고 했다. 과학자들은 표면적으로는 서로 의견을 달리할지 모르지만, 밑바탕을 보면 모두 똑 같은 세계관을 갖고 있고, 그들의 수고로 진보가 이룩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믿었다.

“과학의 자연 지배는 결핍, 부족, 그리고 전횡적인 재해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했다. 합리적인 사회조직과 합리적인 사고방식의 발달은 신화, 종교, 미신과 같은 비합리적인 것으로부터, 그리고 우리 본성의 어두운 측면과 권력의 자의적 사용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줄 것을 약속했다. 오직 그러한 프로젝트를 통해서만 모든 인간의 보편적이고, 영원하고, 불변하는 특질이 드러날 수 있었다”

과학은 경험과 이성의 탄탄한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 근대성의 주장이다. 이에 비해 종교는 믿음 위에 세워져 있다. 과학은 물질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법칙들, 곧 신과 무관한 법칙들을 찾는다. 종교는 초월적 실재가 존재한다는 증거로 기적을 찾고 있다. 과학은 갈수록 자연의 신비를 더 많이 설명하고 있는 데 비해, 종교는 갈수록 더 작은 영역으로 후퇴하고 더욱 적실성을 잃고 있다. 땅 위의 사건들을 설명함에 있어서 하나님, 천사, 마귀와 같은 초월적인 영적 존재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주술이나 마법과 같은 이 세계의 영과 세력들도 부정한다. 이는 우리 주변의 세계를 탈신비화하고 탈신성화하려는 세속주의를 더욱 부추겼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으로부터 실재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을 듣는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은 새로운 종교라고 할 수 있다.

현대과학이 낳은 발전상(2008년 강남대로변)

 
기독교에 미친 영향

근대의 신플라톤주의적 이원론은 수많은 서양 그리스도인에게 영적인 분열증을 안겨 주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창조, 타락, 구속, 최후의 심판, 새 창조로 이어지는 우주의 역사를 믿는다. 이것이 그들에게 인생의 궁극적 의미와 목적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몸담은 일상 세계에 대해서는 자연주의적 견지에서 설명한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있을 자리가 없다. 그들은 차를 운전하고, 전기를 사용하고, 약품을 복용한다. 이 모든 것은 과학 지식이 낳은 산물로 과학적 사고방식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런 내면의 긴장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읽을 때 더욱 고조된다. 거기서는 초자연적 현상과 자연 현상의 뚜렷한 구별 없이 하나님이 인간 역사 가운데 일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면에서 성경적 세계관은 영적인 실재를 부정하는 근대의 세속적 설명과 잘 맞지 않는다.

근대의 이원론은 많은 선교사로 하여금 그들이 섬기는 주민의 일상에서 중요한 것들 - 영들, 마술, 주술, 점, 사악한 눈과 같은 실재 -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선교지의 어린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영적 실재들을 계속 믿고 있지만, 선교사들이 그런 현상을 믿지 않기 때문에 선교사들에게 그런 믿음을 숨겼다. 그 결과 “이층으로 분열된” 기독교를 낳았다. 즉 어린 신자들이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고 신앙고백을 하는 등 공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이지만, 평일에는 마술사와 점쟁이와 무당을 찾는 등 사적으로는 전통적 종교인인 것이다. 서양은 이처럼 천사와 마귀를 다른 세계로 배치한 결과, 이 땅에서 영위되는 일상생활에서는 그들이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 것으로 믿게 되었다.

기계론적 뿌리 은유/유기적 뿌리 은유

그리스 이원론의 재도입으로 말미암아 유기적 세계관이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바뀌었다. 중세의 유럽인은 세계를, 온갖 생명체들이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생명으로 충만한 곳으로 보았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계는 천사, 인간, 동물, 그 밖의 여러 존재가 서로서로 관계를 맺으며 사는 그런 곳이었다. 세계는 인간들을 위해 존재했고, 그것은 인간의 정신이 금방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세계를 이해하는 데 사용된 범주는 질량, 에너지, 속력, 운동량, 물질적 공간, 비인격적 시간 등과 같이 측량 가능한 것들이 아니었고, 본질, 형상, 아름다움, 도덕과 같은 것들이었다.

르네상스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도입했다. 갈릴레오, 데카르트, 라플라스 같은 과학자들이 자연을 연구하면서, 진짜 세계는 정확한 수학 공식에 따라 시공간에서 움직이는 천체들의 세계라고 주장했다. 지구는 천구의 중심에서 추방되어, 천억 개의 별로 구성된 천억 개의 은하계로 이루어진 우주에서 작은 별 하나의 둘레를 도는 자그마한 유성으로 전락했다. 뉴턴의 법칙들이 이 물리적 세계를 설명했다. 이는 어느 주어진 순간에 모든 원자의 위치와 운동을 완전히 파악한 존재라면 장래의 움직임을 예측할, 완벽한 기계와 다름없었다. 달리 말하면, 이 세계는 그 작동방식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진 자들이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세계라는 뜻이다.

유기적 뿌리 은유에서 기계론적 뿌리 은유로의 전환은 주변 세계를 보는 방식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세계는 더 이상 살아 움직이는 곳도 아니고, 인격적인 관계들로 가득 찬 곳도 아니었다. 갈수록 이 우주는 생명이 없는 은하계들과 별들로 가득 찬 비인격적인 공백상태로 변모했다.

결정론/선택

유기적 세계관이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전환됨에 따라 인과관계의 개념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와 관련된 존재들, 그들의 의도, 그들의 행위에 의거해서 그것을 설명했다. 그런데 지금은 법의 지배를 받는, 곧 관계가 규칙적으로 변하는 작고, 생명이 없는, 기초적 단위들의 관점에서 설명해야 타당한 설명이 된다. 버트는 이렇게 말한다.

“중세］과학자가 자연세계를 내다보았을 때는 그것이 무척 사귀기 쉬운 인간적인 세계로 보였다. 그것은 제한된 크기를 가진 유한한 세계였다. 그것은 자신의 필요를 채우도록 만들어진 세계였다. 그것은 이성적 능력으로 즉시 살펴볼 수 있는, 명료하고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세계였다. 즉 그것은 즉각적 경험 가운데 가장 생생하고 강렬한 속성들 - 색깔, 소리, 아름다움, 기쁨, 뜨거움, 차가움, 향기, 목적과 이상에 반응하는 유연성 - 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런 속성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세계였다. 이제는 세계가 하나의 무한하고 단조로운 수학적 기계로 변했다. 그래서 우주의 목적 내에 있던 자기 자리를 잃고 말았을 뿐 아니라, 학자의 눈에 물리적 세계의 본질로 비쳤던 그 모든 것들이 - 세계를 생명력 넘치고 멋지고 영적인 곳으로 만들었던 - 이제는 한 덩어리로 뭉쳐져서, 이른바 인간의 신경계 및 순환계 안의 작고 변화무쌍한 위치로 쑤셔 넣어졌다.”

단테와 밀턴 같은 작가들이 시공간적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 묘사했던 그 영광스럽고 낭만적인 우주는 이제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가고 말았다. 이 세계는 더 이상 생각하며 행동하는 존재들로 가득 찬 그런 우주가 아니다. 이제는 공간을 기하학으로 파악하고, 시간을 숫자의 연속으로 규정하는 세상이다. 한 때 사람들이 자기가 몸담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런 세계 - 다양한 색채와 소리를 지니고, 향기로 가득 차고, 기쁨과 사랑과 아름다움이 충만하고, 어디서나 합목적적인 조화와 창조적인 이상을 이야기하던 세계 - 는 이제 여기 저기 흩어진 유기적 존재들의 두뇌 속 작은 구석으로 쑤셔 넣어졌다.

바깥에 있는 중요한 진짜 세계는 딱딱하고, 춥고, 색깔이 없고, 조용하고, 죽은 세계였다. 그것은 양적인 세계요, 기계적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수학적 계산이 가능한 세계였다. 우리 인간이 직접 인식하는 질적인 세계는, 저 바깥의 무한한 기계가 내는 신기하고 사소한 효과에 불과하다. 뉴턴 안에서,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은, 애매모호한 해석과정을 거치고 진지한 철학적 고려를 요구하던 그 독특한 목소리가 묵살당한 결과, 마침내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뒤집어 버리고 근대의 우세한 세계관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중세 유럽의 경우, 인생은 의미와 목적으로 충만한 무한한 것이었다. 근대인이 보기에, 인간은 맹목적이고, 목적이 없는 자연이 낳은 우연하고 일시적인 산물일 뿐이다. 파커 팔머(Parker Palmer)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와 우리 세계는 ‘진리’라고 불리는 복잡한 책임성의 망 안에서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들과 자기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똑바로 줄을 서고, 수치로 계산되고, 조직되고, 소유되는 그런 대상이 되고 만다”

그런데 완전히 결정론적인 세계는 인간의 선택을 배제시키고, 그와 더불어 모든 이성과 의미에 대한 감각도 없애버린다. 근대성에 내포된 반주제는 인간 정신의 자율성이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과학자와 근대적 이성의 자율성이다. 만일 우주가 하나의 합리적 질서이고, 인간 정신이 정확한 추론을 통해 그 질서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은 더 나은 세계를 꾸며낼 수 있다. 따라서 근대의 프로젝트는 객관적인 과학, 보편적 법칙, 내적 논리에 따른 자율적 기술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테크닉/관계

기계론적 실재관의 중심에는 테크닉에 놓인 초점이 있다. 테크닉은 효율성과 속도에 초점을 맞추고 자발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은 모두 줄임으로써,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산출하도록 고안된 합리적인 기계적 절차다.

테크닉은 관례화(routinization)를 요구한다. 즉 어떤 과업을 여러 부분으로 쪼개되, 고도의 효율성을 창출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정돈되고 관례적으로 반복될 수 있도록 나누는 것이다. 제조업에서는 이것이 자동화된 조립 라인을 낳았다. 정부, 사업체, 교육기관, 심지어 교회까지도 포함되는 관료제에서는 노동의 분업을 낳았고, 자기 분야에서는 전문가지만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그런 전문가들을 갈수록 많이 배출했다.

테크닉은 도덕과 관계가 없다. “왜”가 아니라 “어떻게”에 초점을 맞춘다. 목표는 이미 전제되어 있고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성취하는가 하는 점이다. 진보와 혁신은 좋은 것이므로 거기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효율성과 이윤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를 갖고 있다. 테크닉은 도덕적 절대가 아니라 공리주의와 실용주의에 기초해 있다. 그 결과 삶 전체를 기계론적 분석으로 축소시키는 공학적 “땜장이 식” 정신상태가 생겼다. 그래서 막스 베버의 말처럼, 근대성이 “철 새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개인/집단

계몽주의의 중심부에는 존재의 중심이 하나님에게서 인간과 자아로 전환되는 현상이 있다. 임마누엘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계몽주의는 사람이 스스로 자초한 보호감독에서 해방된 것을 뜻한다. 보호 감독이란 남의 지도가 없이는 자신의 깨달음을 활용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력을 일컫는다. 자초했다는 말은 그 원인이 이성의 결여에 있지 않고, 남의 지도 없이 그것을 사용하겠다는 결의와 용기기 부족한 데 있다는 뜻이다. ---- ‘당신의 이성을 활용하겠다는 용기를 가져라!’”

계몽주의는 이처럼 참된 추론과 지식의 기반으로서 비합리적인 감정이 아니라 자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앤서니 후크마는 이렇게 말했다.

“근대의 첫 순간은 합리성과 개인적 책임을 소개했던 데카르트와 칸트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 개인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막강한 존재가 되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한 그 어떤 것도 참 믿음이나 바른 도덕이라고 할 수 없다’는 식이다. 그 결과, 영원한 권위는, 원칙적으로, 불합리한 기초로 변했고, 개인적 판단은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가 되었다”

근대 사회에서, 개인은 개인적으로 또 언제든지, 자기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리, 또는 남이 하는 것과 똑 같이 할 수 있는 권리를 고집한다. 전통적 공동체의 성스러운 뿌리들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로운 관용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무대에서 몰아낸 다음에는 인간들이 지구의 신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마키아벨리는 논리적 수순을 밟아 사람들에게, 당시에 이미 그 명료성과 절박성을 많이 잃어버린 구원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라고 촉구했다. 그 대신에, 여기 이 땅에서 인생을 즐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만이 당장 생생하게 와 닿는 것이라는 이유를 제시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개인의 건강, 안락, 번영 등이 근대 문화의 일차 목표가 되었고, 과학은 그것들을 이루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심신단련을 통한 하나님과의 영적 교감- 경락체조(기체조)

 
자아/영혼

근대 철학자들은 의미를 느끼는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영혼의 개념을 대체할 자아(self)라는 용어를 창안했다. 중세는 개인을 하나님 및 다른 인간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영적인 존재로 보았다. “바다에서 스무 명의 영혼들을 잃었다”는 식으로 사람이 “영혼”으로 지칭되었다. 그런데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영혼”이란 용어가 신의 형상과 불멸성을 내포한다고 해서 그것을 거부했다. 대신에 “자아”라는 용어를 도입한 것이다.

자아의 본질을 둘러싼 물음이 제기되었다. 로크와 데카르트 같은 일부 철학자는 그것을 이성이라고 믿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생각하는 존재라는 데 있다. 인간은 이성을 사용해서 행복하고, 평화롭고, 의미 있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루소와 니체 같은 인물은 다르게 생각했다. 그들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만들어 주고 또 그들의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삶을 체험하는 능력이라고 믿었다. 즉 더 낳은 세계를 꿈꾸고 그것을 창조할 역량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간은 문화를 건설하는 존재다. 그들은 자신과 관련된 꿈을 실현하는 데서 의미를 찾는 도덕적인 존재다. 하지만 이 두 견해는 자기 성취의 지점에서, 지금 여기서 잘사는 삶에서 의미를 발견한다는 점에서 서로 만난다. 영원이 아니라 실존적 현재가 일차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자아실현/구원

자율적 개인에 초점을 맞춘 결과, 사람들은 주도적으로 스스로의 안녕을 확보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 입장은 통제보다는 자유를, 책임보다는 권리를 강조해야 했고, 안락함과 소비주의와 오락으로 규정되는 자아실현과 잘사는 인생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자아와 자아실현에 맞춰진 초점은 19세기 말 근대 사회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전통적인 개신교의 가치들 - 구원, 도덕, 고된 노력, 절약과 희생, 시민의 책무, 남의유익을 위한 자기부인 등 - 은 새로운 가치들로 대치되었다. 여기에는 개인적 성취, 건강, 물질적 안락, 즉각적 욕구충족, 정기적 여가생활 등이 포함된다. 이런 목표들은 물질적 상품을 구입하고 부를 축적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종교적 믿음은 사람들에게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의미를 제공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런데 자기부인, 희생, 노력, 공동의 책임감 등을 통해 인생의 목적을 제공했던 종교적 믿음이 이처럼 서양에서 내리막길을 걷게 되자 개인적 의미의 위기를 초래했다. 개인은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존재가 그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 근대성은 자아성취에 기초하여 새로운 초월적인 틀을 제공했다. 구원은 더 이상 내세와 연결되지 않고, 이생에서 잘 사는 삶과 연관되게 되었다. 근대가 낳은 새로운 이상은 자아성취와 정기적 여가생활, 충동적 구매를 통한 즉각적 욕구충족, 그리고 허용적인 도덕이다. 한마디로, 개인적 성취가 예전에 추구하던 초월성이란 목표를 대체한 셈이다. 개인들은 인간의 인위적 노력을 통해 스스로를 창조하라는 부추김을 받았다.

민주주의/사회주의

자율적 개인에 대한 강조는 사회생활의 조직화와 관련해 심각한 물음을 제기한다. 개인이 집단보다 더 중요하다면, 어떻게 집단을 형성할 수 있을까?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윌리엄 윌리몬은, 삶을 조직화하는 근본 원리는 민주주의 정신, 곧 집단은 자율적 개인들의 계약에 의해 다함께 묶어진 것이라는 관념이라고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 실체는 개인이고, 사회는 그 개별성이 옹호되도록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사회는 우리의 필요가 무엇이든 그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 형성되었다. 우리 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필요를 잘 판단하게 하고 올바른 요구를 바르게 길들이도록 돕기보다는, 일종의 거대한 욕망의 슈퍼마켓으로 변한다”

기독교에 미친 영향

근대 선교 운동은 복음을 개인들에게 전파하고, 그들로 예수그리스도의 주되심에 지적으로 동의케 하여 개인적 회심을 경험하도록 촉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개인주의를 강조한 결과, 교회를 신앙의 가족들로 된 가족이라는 이해를 약화시켰다. 구원이 자기와 하나님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샬롬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별로 강조하지 않았다.

개인에 대한 강조는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 곧 예수가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다는 사실을 경시하게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선교의 초점은 개인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도하는 복음전도라고 본다. 그들을 모아 교회를 조직하는 일은 부차적인 것이고, 그 나라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개척을 목표로 삼는 이들조차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행하는 선행으로 볼 뿐,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시작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도덕적 주제들

중세 시대에는 도덕이 신성한 기초 위에 세워져 있었다. 도덕적 원칙보다 앞서는 거룩한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그것을 명했다는 믿음에 기초했던 것이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도덕을 순전히 세속적 견지에서 이해했고, 그 기반을 합리주의와 시민의 의지에 두었다. 그 결과 도덕과 관련하여 신을 완전히 배제 시키는 세속적 민족국가가 출현했다.

근대적 합리성은 세계를 “탈마법화” 시켰고, 종교와 도덕을 비합리적인 영역으로 밀어냈다.

자유와 권리/책임과 억제

근대성의 중요한 가치들 가운데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있다. 사람들은 선택의 권리를 원하고, 자기를 억제하는 모든 전통에서 해방되고 싶어 한다. 전통사회에서, 선한 사람은 남을 돌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신세계에서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사람을 선하다고 부른다.

근대성의 신화들

진화와 진보의 신화

진화의 신화는 서양 세계관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첫째, 이 신화는 진보에 대한 깊은 믿음을 부추긴다. 앞으로 성장이 계속 이어질 터이고, 이에 경쟁할 만한 다른 가설은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기술적 발전이 불가피하다는 신앙을 품고, 합리화와 지식의 표준화, 진보를 통해 진보를 이룰 대규모 기술적 사회적 통합 시스템의 기획을 강조한다.

진화론은 중세의 “구원”개념을 대치한 “진보”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켰다. 이 이론은 사회의 악의 존재를 죄나 인간의 타고난 무능력, 또는 사물의 본질 탓으로 돌리지 않고, 무지와 편견으로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황을 개선하고 유토피아에 도달하는 것(즉 천국)은 무지를 계몽하고, 오류를 제거하며, 지식을 증대시키기만 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진보에 진보를 거쳐 인간 사회가 계속 향상될 것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죄인이 아니라 계몽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이 아니고, 어떻게 더불어 조화롭게 살지, 또 어떻게 이 땅을 낙원으로 바꿀지 그 방법을 알도록 계몽시키는 일이다.

근대인은 “문명화된” 사람들이고, 문명화는 의심의 여지없이 선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뒤떨어진 상태에 있지만, 그들도 근대적 테크놀로지, 공식 교육, 서양식 의료제도를 도입하는 “개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얼마든지 문명화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이 계몽주의의 의제를 낳았는데, 내용인즉 “토착민”을 교육하고 문명화시켜 근대성의 용광로 속으로 데려오는 일이 “백인의 부담”이라는 것이다. 이런 동화가 가져올 결과는 동질적이고 지구적인 근대 문화의 비전이다. 이 믿음이 서양의 식민주의와 함께, 유럽인들이 토착민 유익을 위해 그들의 세계를 관리할 책임이 있다는 관념을 정당화 시키곤 했다. 그들이 문명화되어도, 근대성을 창조한 서양이 여전히 진보의 선두주자가 될 터이고, 매우 오랜 세월 동안 그 위치에 머물러 있을 것으로 믿었다.

진보의 신화는 “신세계”의 개념이 만연되어 있던 북미에서 특히 강한 양상을 보였다. 르네상스는 유럽에 인간의 능력에 대한 새로운 자신감을 불어 넣었고, 북미 대륙의 발견은 인류에게 신세계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했다. 북미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특별한 사명이 있어서 선택된 자들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복을 받았다고 여겼다. 일부 사람들은 “신세계”를 가난이나 불의 또는 핍박이 없는 인류의 중생의 땅으로 보았다. 이 신화는 청교도와 정착민을 뉴잉글랜드로 몰고 갔고, 뉴욕과 뉴헤이븐 같은 도시들을 건설하게 했다. 동부 해안에서의 정착이 끝나자 서부가 새로운 개척지로 떠올랐고, 탐험가, 사냥꾼, 개척자들은 고립된 삶을 자랑스럽게 살아 냈다. 이어서 카우보이와 목동들이 그 뒤를 따랐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도시 - 필리핀 루손섬, 비간(2012년 4월)

 
근대성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

근대성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막대하다. 그것을 오스 기니스는 이렇게 표현한다.

“근대성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몰래 다가온 새로운 종류의 세속성이다. 우리는 근대의 힘을 우리의 종으로 삼으려고 했으나, 부지중에 우리 자신이 그 영향을 받고 말았다. 우리는 우리 사회 안의 세상적인 요소를 간파하려고 끊임없이 순찰을 돌았으나, 마귀는 바로 우리 코앞에서 이 새로운 세속성의 수레를 끌고 교회 속으로 들어왔다”

이 점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전반적으로 해당된다. 이는 보수적인 그리스도인에게도 해당된다. 아니, 어쩌면 근대성의 영향을 종종 인식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더 해당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교회에게 커다란 기회인 동시에 커다란 위협이기도 하다. 오스 기니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상기시킨다.

“기독교 교회는 근대 세계의 발흥에 기여했고, 근대 세계는 거꾸로 기독교 교회를 약화시켰다. 따라서 교회가 무비판적으로 근대 세계에 들어가고, 관여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만큼, 교회는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꼴이 된다”

근대성이 17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선교에 미친 영향도 그만큼 막대했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운송수단, 무역, 식민주의 등이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도록 문은 열어 주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그리스도인 대다수가 비서구 지역에 살고 있다. 한편, 복음과 함께 교육과 의술도 보급되었고, 이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더욱 더 지구적 세계 체제에 참여하도록 해 주었다. 다른 한편, 성경이 각 지역 언어로 번역됨에 따라 그 지역의 문화가 근대성의 포화에 살아남게 한 촉진제가 되었다.

부정적인 면에서 보자면, 기독교가 비서구인들의 마음속에서 근대성과 종종 동일시되었다. 선교사들은 세계를 기독교화 하고 문명화화 하는 일을 자기 과제로 보았다. 이는 서양에 있는 교회를 모델로 삼게 했고, 그 지방 특유의 기독교를 질식시키곤 했다. 또한 근대적인 이원론(초자연/자연)을 도입함으로써, 영적인 실재를 부정하게 하고 많은 사람들의 세계관을 세속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근대성의 영향으로 친구가 된 세계인들 (2003년 10월, 하가이 연구소)

 
8장
근대 후기 또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세계관

지금 현대 세계는 대규모 변동이 일어나는 중이다. 포스트모더니티는 18세기 말에서 중반까지 지속되었던 계몽주의 프로젝트가 붕괴된 뒤에 이 세계가 몸담게 된 지적인 환경이다. 계몽주의 프로젝트는 세계의 다양한 민족에게 똑같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보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 이제는 그것이 의문시되고 있다. 과거에 확고한 기초로 여겨졌던 것이 이제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사물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근대적 인식은 이성과 경험적 증가에 근거한 지식이 아니라, 실은 권력 있는 자들이 만들어 낸 자기 위주의 이데올로기요, 자기와 동조하지 않는 자들이 만들어 낸 자기 위주의 이데올로기요, 자기와 동조하지 않는 자들을 주변화시키는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이처럼 근본적인 세계관의 전환은 하루아침에 발생하지 않는다. 근대성은 아직 풀코스를 완주하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이런 변화는 지배적인 문화 안의 반문화 운동으로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뿌리는 프리드리히 니체, 마르틴 하이데거, 자크 데리다, 미셀 푸코, 장 프랑스아 리오타르 등에게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문화인류학에서의 뿌리는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말리노프스키와 래드클리프-브라운이 인류학자들에게 근대의 분석적 이론을 수입하지 말고(에틱의 관점), 연구 대상인 그 사람들의 눈으로(이믹의 관점) 세계를 보라고 촉구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접근은 문화적 상대주의 개념을 소개했고, 시간이 흐른 뒤에 전 세계 여러 만족의 관점에서 근대성을 연구하는 방식도 새롭게 도입했다.

포스트모더니티가 강력한 패러다임으로 출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하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계몽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다. 19세기에 유럽과 북미에서 풍미하던 중심 개념은 “문명”이었다. 서양 국가들은 스스로를 전 세계로 확장되는 문명의 표준 국가로 인식하고, 문명이야말로 자기를 서로 묶어 주고 또 원시적이고 미개한 나라들과 자기를 구별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이 서양의 통일성과 진보의 환상을 완전히 깨어 버렸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역사는, “근대성이 과연 진보를 도모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혁신과 개발과 진보의 환상에 사로잡혀 길을 잃은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을 제기 하면서 기존의 환멸감과 의심을 더 한층 악화시켰다. 소위 미국인들이 아니라 스스로 문명국이라고 자랑하던 나라들이 일으킨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진보의 관념을 왕창 깨뜨려 버렸다. 식민주의의 몰락과 이른바 문명국가로의 세계적인 인구 이동도 현 상태를 흔들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은 근대성이 인간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데 실패했다고 믿고 있다. 근대성의 구성은 식민지 지배와 산업적 압제를 통해 유례없는 고통을 낳았다. 근대정신은 인간의 지성이 삶의 능력을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자신한 반면에, 포스트모던 정신은 그와 비슷한 어떤 주장도 믿지 않게 되었다. 후자는 인간의 지능이 인생의 미로를 헤쳐 나갈 능력이 없으므로, 그저 하루하루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의 합리성은 우리에게 인위적인 추상작용과 물질적 풍요를 선사했지만, 동시에 심리적 사회적 영적 빈곤도 안겨 주었다. 지식은 더 늘어나고 있으나, 삶의 의미는 더 줄어들고 있다.

포스트모던 학자들이 근대성을 비판하는 이유는, 첫째로 근대가 지식의 기초를 추구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보편화하고 전체화하는 주장 때문이고, 넷째로 그것이 주장하는 그릇된 합리주의 때문이다. 이들은 반과학적이고 반테크놀로지적인 입장을 옹호하면서, 모든 지식은 특정한 관점과 개인적 의제를 지닌 관찰자가 인지적으로 구성한 것이라고, 또 모든 지식은 권력이라고 주장한다. 거대이론과 거대내러티브가 특히 의심의 대상이다. 이와 반대로 근대 이론의 방어자들은 포스트모던 상대주의, 비합리주의, 허무주의 등을 공격하고, 의심의 해석학을 포스트모더니티에 적용한다.

이데올로기 비판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공격 목표의 하나는 근대 인식론인데, 이는 그동안 누적된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가치중립적인 참 지식이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초연하고 객관적인 지식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모든 지식은 자기 위주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종교를 해체했다. 지금은 이와 동일한 비판이 마르크스주의와 과학을 해체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한 사회의 종교와 이데올로기들이 권력자의 이익을 시중들 뿐 아니라, 또한 지배계급의 관념이 곧 그 사회를 지배하는 관념이라고 주장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는 과학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특권적 지위를 부정하며, 이것 역시 학술기관 종사자들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본다. 이들 역시 자신의 연구결과에 그 기득권이 달려있고, 실은 꼼꼼히 검토해야 할 어떤 사유방식을 그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회의주의는 과학적 비판을 거꾸로 과학자들과 과학 자체에 적용해서 나온 결과다. 과학자들은 이전의 합리적 체계들을 파괴해 버린 새로운 의미의 합리성 -과학적 합리성-을 구성했다. 막스베버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은 ‘지적 무흠결성’이란 미명하에 자기가 이 세계에 대한 유일한 합리적 견해를 대표한다고 주장했다. 지성도 모든 문화적 가치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윤리적 속성과 일체 무관한, 합리적 문화의 소유에 바탕을 둔 일종의 귀족정치를 창조했다”

이제는 과학이 근대성의 지배적 요소가 되어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섬긴다. 그러므로 더 이상 과학이 이데올로기의 환상을 드러낸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베버는 다른 합리화된 세계관들도 존재한다고 언급하면서, 이것들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근대성은 전통적 지식에 대한 회의주의에 기초해서 세워졌다. 포스트모더니티는 근대성에 대한 회의주의에 기초해서 세워진다.

근대성이 낳은 우리민족의 아픈 상처(압록강 단교, 2010년, 8월)

해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근대성에 깊은 환멸을 느끼고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생태계 붕괴의 위협, 점점 벌어지는 빈부격차, 핵무기와 핵무기로 인한 파멸의 위험 등은 미래가 과거보다 더 낳아질 것이라는 19세기 낙관주의와 믿음을 점차 무너뜨린 채,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를 낳았다.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이성, 자유, 진보에 대한 근대 이론가들은 지식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을 진보와 해방의 근본 요건으로 간주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든 형태의 지식이 권력과 지배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라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주장에 따르면, 지식, 논리, 정의의 모든 체계는 문화적 역사적 산물로 객관적 실재와 관련이 없으며, 진리와 도덕에 관한 어떤 주장도 특권적 지위를 가질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체계들은 사람들의 자기 이익에 의해 창조된 것인 만큼, 모두가 의심의 대상이 된다. 진리와 권위로 주장되는 것은 무엇이든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니체를 따라, 이성이 아닌 권력이 사회의 지배적 관념을 결정한다고, 또 권력자가 이런 관념을 규정짓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실재에 관한 대통일 이론이란 근대적 개념에 도전하고, 그것을 콜라주, 절충주의, 불확정성, 혼돈, 놀이, 아이러니, 냉소주의 등으로 대체한다. 차이와 복잡성이 통일 이론과 단순화 이론보다 선호된다.

이성에 대한 불신

이성은 더 나은 세계를 세우는 데 실패했고, 그 과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따랐다. 그 결과, 모두를 이성의 한계를 더 많이 인식하게 되었다. 합리화의 증대는 더 낫고 더 의미 있는 삶과 더 큰 개인적 자율성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지식의 분야를 더 크게 분화시키고 전문화와 파편화를 가중시켰다.

거대한 내러티브의 배격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단일한 철학 체계 안에서 실재 전체를 체계적으로 파악하려는 철학적 노력을 배격했다. 즉 한복판에 있는 초연한 지점에서 모든 것을 조망하려는 노력을 거부한다. 우리 인간의 실재 인식은, 부분적으로, 우리가 처한 특정 상황과 우리의 세계관에 의해 결정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실재 전체를 이해하려면, 여러 차원에서 여러 방법을 사용하는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데 거대 내러티브는 단일 문화적이고, 제국주의적이며, 억압적이라고 지적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과학을 공격하되, 주로 경험의 통일성에 대한 믿음과 지식의 통일 이론에 대한 추구를 그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포스트모더니티는 과학자가 바깥에 서서 현실을 조망할 수 있는 그런 초연한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도 상당한 정도로 자기가 연구하고 있는 그림의 일부이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검토 대상인 그 현실에 변화를 준다. 이 엄연한 사실은 모든 거대내러티브를 거부하게 만든다. 또 우리가 가진 모든 내러티브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나온 것인 만큼, 그 모두가 똑같이 타당하다는 것을 뜻한다. 지역적 내러티브와 주변적 내러티브도 이야기하도록 격려하고 또 그것들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포스트모더니티가 전체화를 획책하는 근대적 거대내러티브를 배격하면서도, 스스로 그와 다름없는 새로운 거대 내러티브가 되려고 한다는 점이다. 케네스 게겐(1994)이 지적 하듯이, 이 사조는 남성, 이성애자, 자본주의자, 공산주의자, 경험론자, 도덕주의자 등이 각각 자기 담론으로 지배권을 장악하려 한다고 그들을 비방하면서, 그들의 관점에 귀를 기울이기를 거부한다. 이들의 목소리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공격 목표가 되었고, 또 헤게모니 장악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변두리로 밀려났다. 이에 반대하는 자들은 “배타주의자란 딱지를 얻었고, 반대 의견은 정치적 올바름의 미명하에 무시당하곤 한다. 하지만 결국 포스트모더니티는 다른 포괄적인 이론들을 배격함으로써 자신의 진리 주장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다.

민주화

포스트모더니티는 권위에 종말을 고하고 그것을 자기표현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한다. 인간의 모든 목소리를 귀담아 듣되, 바깥에 있는 어떤 권위가 아니라 직접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대로 그것을 들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티는 전문가와 외부의 관점을 불신하고, 어느 누구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상대주의

많은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한다. 그들은 진리, 수사(rhetoric), 선전을 서로 구별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자들이 벌이는 권력 놀음이라고 본다.

에고 중심주의

포스트모더니티는 관심의 초점을 인간 중심에서 에고 중심으로 옮겼다. 중세적 의미의 “영혼”이란 단어가 “자아”라는 단어로 대치되었다. 전자는 하나님과의 관계, 영원한 존속, 도덕적 본성을 내포하고 있고, 후자는 고유한 특성과 권리를 가진 자율적 개인을 함축하고 있다. 관계는 부차적인 것이다.

자기 신격화

포스트모더니티는 곧 자기 숭배다. 자기가 현실의 중심이고, 자기 결정이 최고의 가치를 갖고, 자유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이며, 자기 성취가 최종 목표이다. 자율적 자아가 등장하면서 여러 가지 믿음을 갖게 했다. 자기를 하나의 재귀적 프로젝트로 세우기, 자기 성취, 자기업적,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권리, 자기보존을 위해 행동하고 필요시에는 자기방어를 위해 상대를 죽일 수도 있는 도덕적 특권 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우리가 존재의 중심이므로, 우리는 오늘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포스트모던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보다 더 고상한 관심사가 없다.

이 같은 “자아”에 대한 추구는 인간을 탈인격화한 근대성에 대한 반동이다. 라민 사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새로운 정통교리가 이제 구성되었는데, 이는 심리적 고양, 자존감, 여러 형태의 감정적 응급처치 등과 같은 이름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이런 것을 위해서 우리는 교회와 동료에게 내놓기를 꺼리는 제물까지 기꺼이 바치고 있는 중이다”

거대한 내러티브의 붕괴와 함께 시작하는 사조가 자아의 붕괴로 막을 내린다. 처음부터 과학은 “자아”를 정의하는 일을 버겁게 느꼈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보편적 인간 본성을 가진 영존하는 개별적 자아라는 것은 없고, 일련의 많은 자아가 연이어 구성되고 또 늘 변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은 불멸의 영혼이 아니라, 여러 기능이 합쳐진 덩어리와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자기결정을 주장하게 되면 점점 더 우발성과 함께 사는 길을 피할 수 없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려면, 여러 대안이 있다는 것과 자기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불확정성과 애매모호함, 그리고 “만족을 기대하던 부푼 마음을 욕구불만에 찬 좌절감으로 변질시키는, 일견 지칠 줄 모른 역량”(Smart 1993.99)을 가져온다. 이는 확실성을 약속하는 근대적 관념과, 인생은 예측과 통제가 가능하다는 근대 사상에 도전하는 한편, 실존적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자기결정과 공동의 질서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는 근대적 해결책은 사회적 공학을 더 많이 적용하고, 잘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남발하는 것이다. 반면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반응은 우발성, 애매모호함, 역설, 딜레마 등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정서적 주제들

근대성의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포스트모더니티는 문화의 정저석 차원을 다시 긍정하게 된다. 이 사조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데카르트의 금언을 “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로 바꾸어 놓는다. 삶의 정서적 차원에 대한 탐구는 18세기에 시작되었고, 마침내 포스트모던 시대에 와서 열매를 맺었다.

뉴스조차도 그 역사적 닻을 잃어버렸고, 시청자가 먼발치에서 초연한 태도로 보는 프로그램이 되고 말았다. 방금 수백 명이 전쟁에서 사망했다는 보도를 본 직후에, 칫솔 광고를 보고, 최근 축구경기의 점수에 주목한다. 이 모두가 우리를 유인해서 즐겁게 해주려고 선정된 것인 만큼 똑 같은 수준에 있는 것이다. 색다름, 액션, 다채로움, 동향 등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데 사용된다. 어떤 진지한 논증과 반론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단일한 내러티브도 중요한 의미도 없다.

뉴스는 우리의 경험 바깥에 있는 가상현실로 환원되었다. 비극, 대규모 굶주림, 살상 등은 흔히 있는 대수롭지 않은 “사건”으로 여겨진다. 또 배경음악이 흘러나와 우리에게 무슨 감정을 느낄지를 일러 주고, 크게 놀랄 필요가 없다고 우리를 안심시킨다. 돌아가는 뉴스를 알고 있으면 남과 나눌 이야깃거리가 생기고, 내가 시대에 뒤지지 않았음을 보여줄 수는 있으나, 그것이 의미 있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인생은 하나님이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시고, 성령이 복을 주신 생명이건만 그만큼 고귀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그저 “뉴스거리”정도로만 여겨질 뿐이다. 어느 생명도 존엄성이 없다. 인간의 경험이 보잘것없는 대우를 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포스트모던 교회는 오락의 형태를 띠기 시작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종교를, 다른 모든 것처럼, 아주 단순하게, 한마디 변명도 없이, 오락으로 반영한다. 거기서 종교를 역사적이고 심오하며 신성한 활동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모조리 벗겨지고 만다. 종교의식도, 교리도, 정통도, 신학도 없고, 무엇보다 영적인 초월의식도 없다. 이런 쇼에서는 설교자가 주인공이고, 하나님이 조연으로 등장할 뿐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크나큰 악은 지루함이다. 오락은 그게 없으면 무의미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의미를 제공해 준다. 오락은 용서 못할 대적, 곧 지루함을 달래 주는 일시적인, 때로는 강렬한, 체험을 선사해 준다. 오락이 우리의 새 종교가 된 셈이다.


도덕적 주제들

포스트모더니티는 근대성과 과학의 무도덕적 성격을 비판한다. 이 사조는 주로 자기 자신과 느낌에 뿌리를 둔 도덕을 제공한다.

미얀마 힐링 미션 (2008년)

치료/구원

포스트모더니티의 주제들 중 하나는 건강과 치료에 대한 강조다.
중세는 영원한 구원을 강조한 데 비해, 근대와 포스트모던 시대는 현세적 건강을 중요시한다. 죄에서 질병으로, 회개에서 치료로 초점이 바뀐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문제가 되는 것은 죄가 아니라 질병이다. 건강은 병으로부터 자유하게 할 뿐 아니라, 활력이 넘치는 원기 왕성한 삶을 선사한다. 구원은 이제 자기절제로 도달하는 것이 아니고, 인생에서 가능한 모든 체험을 함으로써 얻는 것이다. 이런 풍성한 삶은 바로, 정서적 갈망의 충족, 생동감, 해방감, 자기성취감을 제공하는 치료를 통해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몸, 마음, 사회를 치유하는 의사들이 새로운 전문가로 등장하여, 절망이 있는 곳에는 희망을, 질병이 있는 곳에는 치유와 건강을, 인생에는 의미를 주는 등 구원을 베푸는 자들이 되었다. 종교지도자들도 판단을 내리고 조언을 줄 때 종종 의학적 모델을 사용하곤 한다.

근대가 말하는 구원의 동산은 회복된 에덴동산이 아니라, 지상의 즐거움으로 가득 찬, 도덕적으로 까다롭지 않은 동산이다. 이처럼 “죄” 와 “구속”이 “질병”과 “치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치료는 새로운 악과 권력의 신학, 곧 교회와 공동체가 국가로 대치되는 그런 신학이 된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든지 생명의 연장은 정당화된다. 죽음은 우리가 부정해야 할 최대의 적이다. 치료적 종교는 실로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 가족, 기관, 국가를 위해 안정감과 행복감을 제공하는 정신 안정제와 같다.

심령주의/물질주의

근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과 신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 한때 존재했을지 모르지만 - 탈 마법화된 세계라고 말한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티는 신들과 하나님을 포함하여 영적인 실재들에 관해 다시 이야기하도록 허용한다. 새로운 영성들로 들어가는 문은 열렸으나, 그 가운데 다수는 교리의 역사가 아주 오래된 위대한 종교 전통들과 상관이 없다. 일부 사람은 사회 정의와 평등을 위한 투쟁을 추구하고, 또 어떤 이들은 환경 보존을 위한 싸움을 주관심사로 삼는다.

자포자기, 외로움, 소외감과 같은 정서가 포스트모던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요즈음의 문학, 음악, 철학에 나오는 문화적 아이콘은 파편화, 소외, 버림받은 느낌, 자포자기 등을 그 주제로 취한다. 정통파 그리스도인들조차 하나님을 일상생활 속으로 모셔오기가 어려울 정도다. 지금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시대임이 분명하다. 포스트모던 종교들은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우리가 정말 하나님과 비슷하다고, 아니 본성으로나 우리 나름대로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배적인 신화들

끝없는 진보의 신화는 점차 다가오는 묵시의 신화로 대치되어 왔다.
묵시적 주제들이 기독교 사상에서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은 것은, 특히 아우구스티누스가 요한계시록의 애매한 플롯을 인간 운명에 관한 직선적이고 점진적이고 보편적인 내러티브로 바꾸어 놓은 이후였다. 이 흐름의 한 줄기는 전천년설로, 이는 역사의 과정이 조만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로 귀착된다고 보고, 오늘날의 정치적 사건들을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예언들의 성취로 보는 견해다. 전천년설자들은 테러에 대한 전쟁조차도 장차 아마겟돈 전쟁과 불가피한 예수의 재림을 불러오기 위한 역사적 계획의 일부로 해석한다.

진보의 관점을 가진 근대성과 묵시의 관점을 지닌 포스트모더니티 사의의 싸움이 종말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종말

역사를 단지 이데올로기로 연구하는 일이 중요한데, 그것은 역사가 가장 중요한 시기인 현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래는 장차 예상되는 현재일 뿐이고, 과거는 이전의 현재일 따름이다. 이런 관점이 “역사의 종말” 철학을 낳았다.

포스트모더니티는 근대의 지배적인 세계관에 도전하였는데, 근대적 세계관의 오만함, 실재의 정서적 도덕적 차원의 배제, 초월적 실재에 대한 부정 등을 겨냥했다. 그러나 갈수록 여러 위기에 더욱 말려들고 있는 세상에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포스트모더니티는 비교적 물질과 시간의 여유가 있는 이들의 사치품과 같다. 세상의 상당 지역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기본적인 생필품이 없어서 고생하고 있고, 학계에서 일어나는 철학적 논쟁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러면 포스트모더니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에 대한 분명한 해답은 없지만, 최근에 지구적 세력의 영향력과 그에 대한 지역적 문화의 반응을 둘러싸고 갈수록 많은 토론이 일어나고 있다.

                                                   (9장부터 11장 끝까지는 다음 편에 올려 드립니다)

 
도서명 : 21세기의 선교와 세계관의 변화
저자 : 폴 히버트
역자 : 홍병룡
출판사 : 도서출판 복 있는 사람
발행일 : 2010년 12월 20일 초판 2쇄 발행
쪽수 : 700쪽
가격 : 2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