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시대 이후의 한국교회
- 통일운동과 민족자주화운동을 중심으로

                                                        조이제(새누리교회 목사)

1. 머리글

1987년의 민주화운동으로 자율적인 정치적․사회적 공간이 확대되면서 시민운동이 본격화되었고 그 활동 영역도 분화되어 전문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한국교회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했다. 우선 이전까지 추진해오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서도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했고, 교회 자체의 문제들도 개혁해야 했다. 1987년 이후에 등장한 교회의 개혁 과제들은 교회 제도의 민주화, 담임목사직 세습, 금권선거 등과 같은 교회 내적인 문제들도 있었으나 통일과 민족자주화 문제가 더 우선적이었다. 사정이 이와 같았기에 한국 교회는 민족사의 진통기에 나타난 민족의 과제를 짊어지고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보여준 교회의 역량과 헌신성은 통일운동을 개척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로 인해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통일운동에도 기반 마련을 위한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었고 일정 정도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과 마찬가지로 통일운동도 초기에는 한국 교회의 진보 진영으로 불리는 한쪽만의 참여에 그치고 말았다. 보수 진영에서는 반공적인 북한 선교론에 젖어 있었기에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 이후 한국 교회가 행한 것이 많이 있지만 여기서는 논제가 주어진 대로 통일운동과 민족자주화운동으로 제한하고자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민족자주화운동은 그 활동도 미미하고, 그것도 선언적 의미 이상을 지니지 못하였기에 그 흐름을 별도로 잡기가 어려웠다. 이로 인해 여기서는 통일운동 속에 함께 포함하여 다루었다. 먼저 통일운동의 역사를 살펴보고 그 과정 속에 나타난 의제들을 논의하고자 한다.

2.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역사

먼저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역사를 민족자주화운동과 연관하여 살펴본다. 통일운동의 역사를 알아야만 그 속에 숨어서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고 있는 의제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최대 소원은 통일이다. 한국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으로 민족자주독립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곧바로 강대국들의 세계 질서 재편을 위한 구도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 38도선을 경계로 나라가 분할되었다. 그 결과 해방 후 나타났던 민족국가 수립운동은 실패하고, 상호 대립적인 이데올로기가 형성되었다. 곧이어 우리 민족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겪게 되었고 이 전쟁으로 민족 분단이 고착화되어 지금까지 그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4.19혁명 직후 일시 민족통일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이것도 5.16쿠데타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혹독한 군사독재의 통치가 계속되면서 한국교회는 민주화운동에 진력하든가 아니면 정권과 유착하든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통일 논의도 정부가 독점하고 말았고, 그것도  반공주의에 입각한 것이었다. 사정이 이러했기에 한국교회는 북한 지역을 복음화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편 해외에 거주하는 기독자들은 1978년 초부터 “신앙에서 남북과 그리고 해외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루 속히 한 자리에 모여 ‘화해와 평화의 다리’를 놓는 사귐”을 시작하였다. 1979년에는 “불신, 오해, 반목을 초래하는 악감정과 사상을 제거하는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남북의 사상, 신앙과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 ‘조국 통일 해외 기독자회’(기통회)를 발족하고 <통일과 기독교>를 발간하였다. 이후 기통회는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대화를 신학적으로 정리하며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에 힘입어 기통회와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1981년 11월 3일부터 6일까지 오스트리아 빈에서 허정숙, 고기준,  최덕신, 이화선, 이영빈 등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국통일에 관한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간의 대화”를 개최하였다. 회의는 서로 대화 상대자를 다시 발견한다는 전제에서 주로 상대방의 말을 듣는 대화로 진행하였다. 참가자들은 회의를 마치면서 자주적 통일, 평화적 통일, 민족의 단결, 자치적 연합체 구성 등에 합의한다는 ‘공동 성명’과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일본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 ‘해내외 전체 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대화 모임은 친북 인사들의 종교 행사를 가장한 ‘정치 집회’로 인식되어 한국 교민들의 반대 시위를 불러 일으켰고, 한국교회에서도 이를 교회 행사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모임은 1982년, 1984년, 1985년에도 계속되었다. 대화 모임은 해외와 북의 기독자들이 통일 문제를 민간 차원에서 최초로 논의하였다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또 이 모임은 한국교회가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는 단서를 제공했다.
한국교회에서 통일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부터이다. 1981년 6월에 “죄의 고백과 새로운 책임”이란 주제 아래 서울에서 개최된 제4차 한․독 교회협의회에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분단된 조국의 통일이다”는 선언을 하고 통일문제를 다루는 위원회나 기구를 설치할 것을 건의한 것이 통일운동의 첫 발걸음이 되었다. 이 건의에 따라 1982년 9월 16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통일문제운영위원회를 조직하면서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질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교회의 자기반성과 민족 문제를 적극적으로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통일 문제에 대한 입장도 이전까지 한국교회를 지배하던 선교적 태도에서 민족 해방의 관점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민주화운동의 발전과 함께 그 한계를 분명히 깨달은 것이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곧 한국 교회의 “인권운동은 통일운동을 낳았고 여기서 재야의 통일운동이 시작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통일운동은 그 출발부터가 쉽지 않았다. 당시 통일 문제는 정부 당국만이 다룰 수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통일 문제를 다루는 위원회를 조직한다는 것 자체가 정부에 대항하는 일로 비쳐져 통일 문제에 관한 협의회의 개최가 무산되는 등 활동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 그렇지만 통일문제연구원 운영위원회는 이에 굴하지 않고 “성서적이고 신학적인 자세를 새로이 할 것은 물론 교회 내부에 깊이 침투하여 온 분단 의식을 극복하는 화해와 통전의 복음적 실재를 경험하고 증거해”간다는 입장에서 이후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을 주도하고 민간 차원의 통일 논의의 물꼬를 트는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통일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무렵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도 통일을 향한 기초적인 연구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연구자들과 담당 간사가 당국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게 되고 또 이 연구에 관련된 리영희 교수, 강만길 교수와 기사연 원장인 조승혁 목사가 연행․구속되어 이 사업은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구속 이유는 이들이 ‘6․25 남침은 정통성을 지닌 민족 국가 형성을 위한 반제 투쟁’이라는 북괴의 주장에 동조하고, 반국가 의식화 교육을 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의 구속으로 표면화된 ‘통일 문제에 관한 교과서 분석 사건’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민족적 과제인 통일에 적극적으로 공헌하기 위해 조사연구 사업을 진행하면서 비롯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분단 극복을 위한 교회의 사명이 부각되어 교회 단체들이 통일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세계 교회도 한국의 통일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이후 정부 당국과 직접적인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분단 극복을 위한 논의를 계속하여 1985년 2월 28일 ‘한국교회 평화통일 선언’이란 제목의 첫 번째 통일 관련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문은 “모든 악의 근본이 조국과 민족의 분단에 있음을 인식한다”면서 “강대국에 의한 민족분단을 해결하지 못한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었음을 고백하고 회개”하였다.
1988년 2월 29일에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채택하여 한국 교회의 통일운동을 질적으로 한 단계 높였다. 이 선언은 1982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통일문제연구원 운영위원회가 설치된 이후 공개적인 토의와 합의 도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공식 문서로 한국교회의 통일을 향한 노력의 첫 결실이었다. 비록 보수 진영 교회와 단체들이 비난 성명을 내는 등의 반발이 있었지만,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보장되고 민족 구성원 전체의 민주적 참여가 보장되는 통일 논의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통일 열망을 국민 가슴에 깊이 새겨준 역사적 쾌거’로 평가되는 이 선언으로 통일에 대한 열기가 전국 교회와 전 국민에게 확산되었으며 교회 통일운동은 그 방향을 지시하는 확실한 이정표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 통일논의의 내용과 형식에서의 수위와 지향점을 결정할 수 있었다.
1988년 11월 25일에는 남북한 교회가 공동으로 합의한 ‘글리온 선언’이 발표되었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주선한 이 회의에서 채택한 글리온 선언은 ‘서론’, ‘신앙적 결단’, ‘건의’의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특히 ‘건의’에서는 8개의 합의 사항을 명시하고 이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을 다짐하여 기독자들의 합의라는 형식적 제약성에도 불구하고 7.4공동성명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글리온 회의에서 채택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공동기도문’은 이후 남북한 교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회에서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글리온 선언은 우리 민족 통일운동사에 남을 만한 문건이다. 어느 일방의 선언이 아닌 남북한 교회가 공동 입장을 밝힌 것으로 민간 차원에서 발표된 최초의 남북한 공동 선언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선언을 계기로 통일운동은 ‘일방의 선언’에서 ‘상호 협의와 교류’의 단계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남북한 교회 서로의 상호 편견과 상호 불신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사회주의 체제하의 교회에 대한 이해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선언은 남북한 교회의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남북한 교회가 주체적으로 회의를 주관하지 못하고 국제 기구를 통한 외국 땅에서의 만남이라는 제약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는 한국교회 통일운동이 갖는 취약한 구조 및 한계이기도 하다.
1989년에는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이 통일의 물꼬를 트기 위해 방북하는 일이 일어나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문익환 목사는 3월 25일 북경을 경유해 항공편으로 평양에 도착하여 평양봉수교회의 부활절 행사와 장충성당의 주일 미사에 참석하였으며, 김일성 주석과도 단독으로 회담하여 남북 통일 방안에 대해 환담하였다. 그리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관계자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문익환 목사 방북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논의 쟁점은 문익환 목사가 정부 허락 없이 방북하였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국은 노태우 정권의 중간평가 연기를 둘러싸고 사회 각층이 대립하고 있는 실정이었기에 문익환 목사 방북은 각계각층이 자신들의 이해를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노태우 정권은 이 사건을 빌미로 검찰, 안기부, 경찰, 보안사 등 권력 기관을 총망라하여 공안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하여 민주화운동, 민중생존권운동, 통일운동 등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이른바 공안 정국을 이끌어갔다. 이로 인해 문익환 목사 방북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졌다. 방북을 환영하는 측에서는 문익환 목사의 행동이 민족통일운동의 일보 전진이며 특별히 목회자로서의 예언자적 사명을 실천한 위대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반대하는 측은 문익환 목사의 방북은 오히려 통일 논의의 혼란과 국론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임수경은 일본의 도쿄, 독일의 베를린을 거쳐 6월 30일 평양에 도착하였다. 임수경은 평양축전 참가, ‘남북청년학생공동선언문’ 채택 등의 방북 활동을 하다가 8월 15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파견한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을 통과하여 귀환하였다. 임수경은 한편에서는 “통일의 꽃” 혹은 “통일 천사”라는 찬사를 받았고, 다른 편에서는 “철없는 여대생”으로 매도되었다. 이후 한국 교회의 통일운동은 1995년을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하고 이를 상징화하는 ‘남북 인간띠잇기 대회’를 가졌지만 통일을 향한 실질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였다.
반면 1990년대에 시작된 보수 진영의 통일운동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반공주의에 얽매여 민족통일보다는 북한 복음화에 궁극적 관심이 주어졌다. 그 운동방식도 대북지원 방식을 채택하여 1990년 7월 3일 “정치와 무관하게 화해와 사랑과 평화의 뜻으로” 쌀 1만 가마를 부산항에서 선적한 것을 그 시작으로 하였다. 이러한 대북지원 방식은 한국교회 통일운동에 새로운 틀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 운동은 1992년에는 보수와 진보 진영을 하나로 묶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나눔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남북나눔운동은 남북교회가 경건과 절제의 신앙적 기초 위에 영적, 물질적 자산을 나누고 공유하며,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의 선교적 사명을 다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이후 북한 식량난이 계속되면서 한국교회 통일운동은 북한 사회 실상을 알리는 사업과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임박한 통일에 대한 기대로 북한 선교, 구체적으로는 북한 지역에 있던 교회의 회복 또는 복구 사업, 곧 예배당 건축을 위한 기금확보 사업으로 연결되었다.
비록 2002년 8월에 개최된 ‘8.15민족통일대회’에서 강영섭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원장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들이 분단 후 처음으로 남한에서 만남을 가지는 일이 있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한국교회 통일운동이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정부 차원의 통일논의가 교회 논의를 앞서가고,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등 공식적인 전담기구가 생겨나면서 교회를 통한 남북교류가 큰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된 것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한국교회가 북한 교회와의 만남과 교류, 북한 지원에만 집착하여 통일운동과 관련된 의제 설정이나 운동 과제 모색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였기 때문이다.

3. 극복해야 할 죄책들

과거 역사를 평가하여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써 “과거사 극복을 위한 죄책고백”을 진행하려는 이 심포지엄의 큰 틀을 생각해야 했기에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유효하고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는 의제를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최근 활동을 다루어야 했기에 작업이 쉽지 않았다. 새로운 관점에서 최근 활동을 평가해야 하는데 최근 활동은 완성형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형이라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정 때문에 다소 무리와 비약을 해가면서 논의를 위한 한 시도로 의제를 설정하였다. 이것들은 한국교회 통일운동에 있어서 걸림돌로 역할하기에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된다. 읽는 이의 양해와 질책을 부탁한다.

1) 반공주의
한국교회는 통일에 대한 염원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고, 또 통일을 이루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염원은 반공주의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북한을 없어져야 할 세력으로 생각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입장을 가지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반공주의적 태도는 한국교회의 구조적 특성의 하나로 굳어져 있다.
한국교회의 반공주의적 태도가 형성되는 것은 1920-30년대로 소급된다. 당시 새로운 이념으로 대두된 사회주의 사상이 한국에도 유입되고, 사회주의자들이 기독교를 비판하며 반기독교운동을 벌이면서 기독교와 충돌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는 그들을 회유, 선도하고 한국교회 자신의 결점을 보완 개혁하려 하기보다는 그들을 배척하는 반공산주의, 반사회주의 노선을 택하였다. 이같은 선택은 이후 사회주의, 공산주의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태도는 해방 후에도 계속되었고, 특히 북한 지역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특히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선’과 ‘악’이란 이원론적 구도로 상대방을 적대시하게 했는데 한국 교회도 이러한 입장에서 북한의 김일성 집단을 ‘적그리스도’와 동일시하였다. 그 동안은 한국교회 반공주의를 한국전쟁 시기에 국한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반공주의는 그 이후 오늘까지도 한국교회의 중요한 성격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교회의 분단 극복을 위한 노력은 정부의 ‘멸공통일론’처럼 북한 땅에서 ‘공존할 수 없는’ 공산세력이 없어지고 북한의 교인들이 구출되도록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 한 예를 감리교가 발표한 “이북 감리교도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철의 장막 속에서 신앙의 자유를 잃고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신음하고 있는 이북 형제들을 생각할 때에 우리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감격의 모임을 가지는 순간에 우리는 우리 가슴 속에 서리어 있는 회포를 다 풀어 놓을 수 없어 몇 말씀만 추려서 우리의 문안과 위로와 격려의 부활절 메시지로 북한 하늘을 향하여 외쳐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입장은 4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크게 변화되지 않고 한국교회 주류를 형성하는 흐름으로 작용하고 있다. 곧 ‘반공주의의 종교화’ 과정이 진행되어 종교적 신념체계의 측면에서는 ‘사탄론’이 등장하고 여기에 ‘종말론적’ 성격과 ‘선민의식’이 결합되면서 반공담론 자체가 ‘구원론’의 일부로 발전해 간 것이다. 사정이 이와 같았기에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작업은 거의 나타날 수 없었다. 그리하여 1960-70년대의 한국교회 통일 논의는 북한 지역에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반공주의 일변도의 입장을 지니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기독교사회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은 정부와 한국교회 보수 진영으로부터 용공으로 매도되기 일쑤였다. 특히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을 지원하는 산업선교 활동은 그 경우가 심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 진보 진영은 민주화운동이 통일운동과 관련되어야 함을 깊이 인식하게 되고, 반공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 돌파구는 통일운동으로 나타났고, 통일을 이루기 위한 첫 걸음으로 그 동안 한국교회가 지녔던 반공주의를 고백하고 회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죄책고백은 1988년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에서 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분단과 증오에 대한 죄책 고백’이란 부분은 다음과 같다.

분단 체제 안에서 상대방에 대하여 깊고 오랜 증오와 적개심을 품어 왔던 일이 우리의 죄임을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고백한다.
1. 한국 민족의 분단은 세계 초강대국들의 동서 냉전체제의 대립이 빚은 구조적 죄악의 결과이며, 남북한 사회 내부의 구조악의 원인이 되어 왔다. 분단으로 인하여 우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마 22:37-40)을 어기는 죄를 범해 왔다.
우리는 갈라진 조국 때문에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을 미워하고 속이고 살인하였고, 그 죄악을 정치와 이념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이중의 죄를 범하여 왔다. 분단은 전쟁을 낳았으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전쟁방지의 명목으로 최신최강의 무기로 재무장하고 병력과 군비를 강화하는 것을 찬동하는 죄(시 33:16-20, 44:6-7)를 범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반도는 군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각 분야에서 외세에 의존하게 되었고, 동서 냉전체제에 편입되고 예속되게 되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민족 예속화 과정에서 민족적 자존심을 포기하고 자주독립 정신을 상실하는 반민족적 죄악(롬 9:3)을 범하여 온 죄책을 고백한다.
2. 우리는 한국교회가 민족분단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침묵하였으며 면면히 이어져 온 자주적 민족통일 운동의 흐름을 외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분단을 정당화하기까지 한 죄를 범했음을 고백한다. 남북한 그리스도인들은 각각의 체제가 강요하는 이념을 절대적인 것으로 우상화하여 왔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대한 반역죄(출 20:3-5)이며, 하나님의 뜻을 지켜야 하는 교회가 정권의 뜻에 따른 죄(행 4:19)이다.
특히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우상화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적대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우리와 이념을 달리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기까지 하는 죄(요 13:14-15, 4:20-21)를 범했음을 고백한다. 이것은 계명을 어긴 죄이며 분단에 의하여 고통받았고 또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이웃에 대하여 무관심한 죄이며 그들의 아픔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하지 못한 죄(요 13:17)이다.

이러한 죄책고백 선언은 “선언에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민족 앞에 떳떳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고 다른 통일선언과 구별되는 기독교적인 차별성도 있었지만 한국교회의 반공주의에 대한 도전이었기에 보수적인 그룹의 격렬한 반대를 불러왔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속한 교회와 관련 인사들까지 동요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처럼 한국교회의 반공주의는 한국 사회에서 반공주의가 점차 위력을 잃어왔던 1980년대 이후에도 크게 약화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1980년대 이후 보수세력의 헤게모니 강화라는 방향으로 교회 내부의 종교권력 구조가 변화되어 온 결과, 1990년대 이후에는 이를 바탕으로 반공주의적 담론과 행동이 더욱 증가했다. 2000년대에는 한국교회의 반공주의자들이 정치 무대로 뛰어들어 한국의 보수세력 전체를 견인해 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반공주의는 통일운동의 걸림돌로 작용하였기에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2) 친미주의
한국 교회는 그 출발부터 미국 기독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였다. 미국 출신 선교사들이 내한하여 한국 교회를 형성하였고, 그 이후에도 선교사들은 한국교회를 지배하며 한국교회 신앙양태를 결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는 ‘힘의 종교’로 인식되었고, 선교사들은 ‘양대인’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사정이 이러했기에 교인들은 외세의존적인 ‘양대인 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들의 의식과 행동 양식을 닮으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 경향은 선교 초기뿐 아니라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어 한국교회의 종속성을 드러내었다. 특히 해방 후에는 ‘친미의식’으로 더욱 노골화되어 한국교회와 미국의 상호 신뢰관계가 한층 높아졌다. 또한 한국교회의 권력과의 유착 현상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특히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에서 한국에 들어온 막대한 원조금품 및 미국 대중문화는 한국교회의 친미주의(숭미주의)를 공고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교회가 미국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는 것은 광주민주화운동에서부터이다. 민주화운동 세력들은 광주 학살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의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규명하고 미국의 본질을 폭로하기 위해 본격적인 반미투쟁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이제까지 ‘해방자’, ‘혈맹의 우방’, ‘구원자’로 동경의 대상이 되어 왔던 미국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고 ‘점령자’, ‘억압자’, ‘군사 독재 정권을 지원․조종하는 제국주의 국갗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특히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이 일어난 후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가 1982년 4월 15일 발표한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에 대한 우리의 견해”란 제목의 성명서는 교회뿐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논쟁거리가 되어 정부 당국과 언론의 집중 포화를 당하였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가 1984년 9월에 발표한 ‘역사현실에 대한 목회자의 입장’에서 “우리는 이 민족의 자주적인 역량에 의한 평화적 통일이 아닌 그 어떤 통일도 참된 통일일수 없다고 믿는다”고 선언하였다. 또 미국의 수입개방 압력이 거세어지고 한반도의 미국 핵기지화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농민들의 수입개방 반대시위와 학생들의 반전․반핵투쟁이 나타나고 김세진․이재호가 1986년 4월 분신하면서 반미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이후 이를 반영하는 통일에 관한 논의가 진전되면서 강대국, 특히 미국의 영향을 벗어나야 하는 민족자주화 문제가 제기되고 이를 수렴한 결과 한국교회가 분단 극복과 통일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의무와 권리, 자유가 있음이 선언되었다. 이러한 논의는 19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선언’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남북한 상호간의 신뢰회복이 확인되며 한반도 전역에 걸친 평화와 안정이 국제적으로 보장되었을 때, 주한미군은 철수하여야 하며 주한 유엔군 사령부도 해체되어야 한다”는 구절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통일운동의 방향, 특히 미군 철수 주장은 한국교회 보수 진영의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1989년부터 용산 미군기지를 대전, 평택으로 옮긴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미군기지 문제가 공론화되고, 곧이어 ‘미군기지 반환운동’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그리고 불평등한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개정운동도 시작되었다. 1992년에는 미군에 의한 윤금이 살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미군 범죄를 알리고, 미군 범죄로 인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도 이루어졌다. 2000년에는 경기도 화성의 매향리 미공군 폭격장에서 발생한 오폭 사고를 계기로 폭격장 철폐운동이 일어나 매향리를 평화마을로 조성하는 결실을 얻기도 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이에 대한 응징으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고 한국군의 파병이 연계되면서 미국을 비난하는 활동과 반전․평화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신효순․심미선 사망사건’이다. 이 사건은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의 지방도로에서 신효순․심미선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어 죽은 사건이다. 사건이 일어나자 미군은 단순한 사고라면서 진상규명에 소극적이었고, 재판 과정에서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이에 한국교회를 비롯한 사회단체의 저항이 나타났고 결국에는 전 국민의 반미 시위로 연결되었다. 이후 이 사건 자체만이 아니라 SOFA의 불평등성을 문제 삼게 되었고 SOFA 개정을 요구하게 되었다. 12월에 들어서는 광화문 등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재판 판결의 무효, SOFA 개정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특히 이 문제는 연말에 불거진 이른바 ‘북한 핵 문제’, ‘미국의 이라크 공격 준비 문제’ 등과 겹쳐져,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반미 의식’과 반전평화운동을 확산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편 이 문제는 동시에, 대선 패배 등으로 움츠려 있던 국내 보수층의 반발을 유발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특히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한국교회의 보수 진영은 광화문의 촛불시위를 ‘반미 시위’로 규정하면서 미국 국기를 들고 ‘미군 철수 반대’ 등을 주장하는 ‘평화기도회’를 가짐으로써 보수 세력 재집결의 선봉에 섰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동조하는 측면에서 북한 인권을 문제 삼고 있다. 이처럼 한국교회의 친미주의는 한국교회를 지배하는 흐름으로 아직도 자리잡고 있다.

3)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 문제는 앞의 반공주의, 친미주의와는 성격이 좀 다른 것이다. 앞의 것들이 의식에 관한 것이라면 국가보안법은 그것들을 지탱해주는 실제적인 도구인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보안법은 통일의 한 주체인 북한을 ‘반국가단체’, ‘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통일 문제에 대한 평화적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악법 개폐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그 중에서도 냉전 시대의 가치 기준인 국가보안법이 가장 큰 쟁점이 되었다. 1948년에 제정된 이후 국가보안법은 이 땅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로 존속해 왔기 때문이다. 역대의 독재 정권은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 국가보안법을 수많은 정치적 반대자들과 민주화․통일운동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정권 연장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1991년 9월 18일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1992년 2월 19일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됨으로써 남과 북은 적대 관계에서 평화 공존의 관계로 전환하였다. 그렇지만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조항이나 ‘불고지죄’, ‘찬양고무죄’ 등 수많은 독소 조항을 지닌 국가보안법은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등은 통일운동의 진전을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와 이 법으로 구속되어 재판에 계류 중이거나 형기를 치루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가기로 하여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1995 평화와 통일 희년선언’의 “민족 대단결의 원칙(신뢰와 교류 우선의 원칙)”에서 “남과 북은 상대방을 반국가단체나 적으로 규정하여 신뢰와 화해에 장애가 되고 있는 모든 법률체계를 개폐하여야 하며, 남한의 국가보안법이나 이에 상응하는 북조선의 법률들이 조속히 개폐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었다.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은 그 제정 50년이 되는 1998년 들어 더욱 가속화되어 캠페인과 서명운동 및 단식농성 등을 진행하였다. 이와 함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장기복역 출소 양심수들(비전향 장기수)의 가족생사 확인, 편지왕래, 고향으로의 귀향 등의 사업을 추진하였다.
특히 2000년에는 남북정상의 만남과 ‘남북공동선언’(6.15 선언)이 이루어짐으로 대결과 반목의 낡은 시대가 가고 화해와 평화의 새 시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시민인권단체들은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7월 21일 232개 단체가 참여한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를 발족시키고, 냉전시대의 유산이며 반통일적 악법의 대명사인 국가보안법은 “더 이상 법일 수가 없으며 이미 죽은 법”임을 선언하고 국가보안법 폐지 활동을 전개하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2004년에는 송두율 교수 재판과 헌법재판소의 국가보안법 합헌 결정,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견해를 밝힌 것을 계기로 다시 국가보안법이 쟁점이 되었다. 10월 6일 기독교원로들의 선언이 이루어졌고, 10월 15일에는 ‘민족의화해와국가보안법폐지 기독교운동본부’를 출범시키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입니다”는 선언을 하였으며, 11월 22일에는 목회자 2004인의 이름을 명기하여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였다. 반면 보수 언론과 보수 진영의 교회들에서는 시국기도회를 갖고 안보불안 심리를 조장하면서 국가보안법의 존속을 주장하고 있다.

4. 맺음 글

지금까지 민주화운동으로 새로운 시대의 계기를 만든 1987년 이후 현재까지의 한국교회의 역사를 통일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 시기는 권위주의가 붕괴하고 새로운 민주주의적 가치관이 요구되던 변화의 시기였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도 자체 문제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등 사회적 참여도 확대해 나갔다. 민주화시대를 이끌었던 한국교회의 열정과 헌신성은 곧바로 반공주의․친미주의․국가보안법의 극복을 위한 통일운동으로 전환되었기에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한국교회 통일운동은 한국의 다른 부문에서의 논의를 선도하고 자극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1988년 2월 29일에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특히 분단에 대한 죄책을 고백하여 통일에 대한 열기를 교회와 전 국민에게 확산하였으며 한국 사회의 통일운동을 질적으로 한 단계 더 높이면서 분단의 시대를 끝내고 통일의 시대를 여는 디딤돌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1990년 중반 이후 한국교회는 시대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였다. 이전까지의 주체적이지 않은 낡은 사고와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새 시대에 대처했기에 효과적이지 않았다. 우선 한국교회의 진보․보수 진영의 대립을 극복하지 못해 각 진영과 각 교단에서는 경쟁적으로 별도의 통일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이란 정체성을 갖는 활동의 전문화도 이루지 못하고, 전문인력도 양성하지 못하여 그나마 활동하던 인력도 다른 부문으로 빼앗겼다. 그리하여 한국교회 하면 떠올리게 되는 반공주의, 친미주의라는 대표적인 성향을 극복해내지 못하였고, 통일운동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활동에 있어서도 선언 이상의 활동을 보이지 못했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북한 인권 문제, 북한이탈주민 문제, 식량지원 등 개별적인 문제에 매달려 통일운동에 관한 논의까지도 실종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제라도 민주화 시대 이후의 한국교회 활동을 한국교회 전체 역사, 그것도 통일운동과 민족자주화운동이란 관점에서 정리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