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의 자유 
  1

"오해는 이해 이전의 문제다." 라는 말이 있다.
 "착각은 자유다"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다.  
 
며칠 전 토요일에 일어난 사건이다.
오전 10시, 고객과 약속대로 시간에 맞추어 그의 집을 방문했다.
초인종을 몇 차례 누르고 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차고에 주차되어 있는 차도 없었다.
 
"혹시 약속을 잊었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역시 응답이 없다.  
시큰둥한 목소리로 음성을 남겼다.
"집 앞에서 몇 십 분 동안 기다리고 있다"
한참 후에 전화가 걸려왔다. 약간 성난 목소리다. 

약속시간 8시 30분부터 1시간을
더 기다리다가 다른 약속 때문에 집을 떠났다고 했다.
내 스케줄 북을 확인해 보았다. 분명히 약속 시간이 오전 10시였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오해가 발생한 것이 분명했다.
사업상 고객은 영원한 왕이다.
내 실수라고 일단 정중히 사과를 하고
오후 늦은 시간으로 재약속을 했다.
 
2
 
모처럼 화창한 봄날 오후다.
다른 업무를 서둘러 끝내고 한 시간 반전에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한 후에
인근 공원에서 Killing Time 을 하기로 했다.
반바지 반소매 옷차림으로 달리는 사람들,
개와 함께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두 손을 꼭 잡은 데이트 족들로 숲 속은 제법 분주했다.
 
 숲 속 구석진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양말, 신발을 벤치 아래에 벗어 놓고
펑퍼짐하게 누워 들고 온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헬로!  헬로!" 하고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한 백인 노인이 벤치 옆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는 일불짜리 지폐 한 장이 언뜻 눈에 들어 왔다.  
그의 부인인 듯, 한 할머니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내 귓가를 스쳤다.
 
 "샤핑 카트(SHOPPING CART)가 없는 걸 보니
거지(HOMELESS)는 아닌 것 같은데 "  
 (미국의 거지들은 일반적으로 살림도구를 담은 SHOPPING
CART를 하나씩 밀고 다닌다.)
 
나를 거지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놓쳐버린 일불이 은근히 아쉬웠다. 

3 
 
인간은 하나같이 착각의 동물이다.
데카르트처럼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
 
며칠 전에 한 선배로부터  
 
"산다는 것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사람은 사람이 가는 길이 있습니다.짐승은 사람의 길을 갈 수 없고사람은 짐승의 길을 가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인간의 양심과 체면과 도리를 저버리고짐승처럼 추잡하고 잔악한 행동을 할 때그는 짐승의 차원으로 전락하고 맙니다."라는
한국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안병욱 교수의 글을 받았다.
 
그럴 듯한 주장이다. 적어도 인간의 생각으로는......,
그러나 동물들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사람들의 일방적 오해이고 착각이다.
그 말을 들은 동물들이 더러워진 귀를  
시냇가로 달려가서  흐르는 물로
씻어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 요순시대 허유나 소부처럼.
 
이 세상 모든 동물들에게 물어보라!
인간으로 환생이나 진화를 바라는 동물이 있으면
손이든 발이든 들어 보라고.

모두 불쾌한 얼굴로 콧방귀만 뀔 것이다.
정신이 잠시 돌았던지, 돌연변이가 아니고서야 어찌
골치 아픈 인간의 길을 택할 동물들이 있겠는가?
행여나 자기들의 길을 택하겠다는 인간들이 나타나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라도 극구 막을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두고
"그림처럼 아름답다(Picturesque) "고 하는
인간의 덜 떨어진 표현만 해도 그렇다.
그림을 Naturesque 하면 몰라도
Picturesque 라니?  말도 되지 않는 어불성설(語不成說) 이다.
역시 인간은 자기착각의 멋으로 살아간다.
 
4
 
이천여 년 전 인도 북부 어느 숲 속에서
일어났던 붓다에 대한 에피소드다.  
붓다가 수백 명의 군중들을 모아 놓고
설법을 펼치고 있었다. 갑자기 브라만교 구루 한 명이 청중 사이를 헤치고
붓다 앞에 나타나 그를 향해 온갖 험담과 욕설을 쏟아 놓았다.
장내가 금방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붓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고
조용히 듣고 만 있었다.
붓다의 묵묵부답에 성질이 난 구루가 
"당신은 소문대로 죽은 시체의 반 토막이야 !
왜 아무런 대답이 없어?" 하며 다그쳤다.
 
붓다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비난과 험담은 나에게는 선물과 같은 것이지요.
받지 않는 선물은 준 사람에게 되돌아가는 법이요."
 
오해와 착각들은 선물이다.
굳이 시냇가를 찾아가서 흐르는 물로
귀를 씻는 수고까지 베풀 필요가 있겠는가.  
 
흘러가다가 스스로 사라지는
부질없는 선물인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