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1
 
며칠 전 한국의 한 벗으로부터
"무소유"에 대한 글을 이메일로 받았다.
무소유(無所有) 하면,
이 시대 무소유(無所有)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고 법정 스님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 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利害)와 정비례 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는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다."
 
그가 무소유를 외쳤던 1970년대의 한국사회는
경제가 테이크 오프 ( Take-off) 단계를 거쳐서
한참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던 때였다.

그 당시 유일한 시대정신은 경제성장을 통한 부의 축적,
바로 돈이었다.
한 마디로 돈의, 돈에 의한, 돈을 위한 사회가
그 시대였다. 
 
그러니 無所有의 외침은 무산계급(無産階級)들이 지껄이는
위험한 좌파논리로 매도될 수밖에 없었다. 
 
2
 
요즘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무소유를
예찬하는 이메일들이 몇 통씩 날아든다.
주로 현직에서 은퇴하신 후 이메일로 행복 전도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분들이 띄우는 이메일들이다.

천만다행이다. 무소유를 더 이상  좌파우파의 색안경을
통해서 보지 않는 것이.
 
무소유의 삶!  그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매력적인 말이다. 그러나 실로 어려운 단어이다.

애국가를 잘 부른다고  진정한 애국자가 아닌 것 처럼,
아멘소리를 입에 달고 다닌 자가 참 신앙이 아닌 것 처럼.
 
3
 
무소유의 삶이 어찌 물질적인 삶만 두고 하는 말이겠는가?
종교, 철학, 지식, 명예, 사랑, 미움, 두려움......,
내가 집착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비워야 할 소유물들이 아니겠는가.
  
굳이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無所有라는 단어를 쓰며
머리를 복잡하게 굴릴 필요도 없다.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간이다.
빈손의 삶, 그것이 바로  무소유의 삶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태어 날 때와 죽을 때 그 빈손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태어날 때는 두 손을 불끈 쥐고 나오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두 손을  펴고 죽는다. 

 불끈 쥔 두 주먹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유에 대한 강한 집념이다. 그런 면에서 소유욕은
모든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생존적인 본능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탐욕의 시녀가 되어 살다 간다.
인간의 역사는 한 마디로  소유욕의 역사다.
 
삶의 가장 위대한 스승은 죽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죽을 때 양 손을 펴고 있는 두 손바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은
가장 행복해 보이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소유하는 동물이다.
그러나 행복을 위해서는 그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 불행한(?) 동물이다.
이것이야 말로 무소유 역리(逆理)의 진정한 의미이다.

잠시 글을 멈추고 나의 양 손을 펴본다.
분명 까칠한 빈손이다.

그러나 잠시 후 나의 손은 무언가를 소유하기위해
움켜 쥘 것이다.
물질, 명예, 평안, 권위, 일, 관계......,

진정한 무소유는 더 이상 가질 것도 없고,
더 이상 버릴 것도 없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