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연 앞에서 어떤 존재? - 김기홍의 시 '버려두소서'

그냥 버려두소서
한동안, 아니 한평생
그렇게 고개 숙이고 있도록 내버려두소서
가진 것 아집밖에 없으면서
그 동안 어리석게도 고개 들고 살았나이다
다 버렸다고 하면서도 다시 태어나는 견고한 아집 덩어리에
화마저 뒤섞이어 그렇게 살았나이다.

누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나이까
흙과 물과 바람으로 만들어진 이 작은 덩어리를
생각과 판단을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이 세상이 제것인 양 살아가는 미물에게
정말 어떠한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오래도록 고개 숙여 생각하게 하소서
하여 마침내 인간이란
자연 앞에서 작은 티끌임을 알게 하소서

사람이 숲을 정복하고
사람이 초원을 정복하고
사람이 무릇 많은 동물을 정복하고
그도 부족하여 남성이 여성을 정복하고
사람이 사람을 정복하고
막무가내 돈과 권력과 사상마저 정복하고
태초의 물과 바람과 불마저 관장하려 할 때
천세 만세를 휘돌아도 다 돌 수 없는 무한의 우주에
사람이 작은 티끌임을 알게 하소서

진정 부끄러움을 알게 하소서
내 속에서 우러나 그려지는 형체도 없는 님이시여
물과 바람과 불의 힘을 오래도록 깨닫게 하시고
물과 바람과 불이 늘 함께 함을 느끼게 하며
내 속에 그들이 늘 존재하여
때로는 바람처럼 때로는 물처럼 때로는 불처럼
흔들리며 일어나며 흘러감을 자각케 하시고
그저 그들로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한 점 구름임을 알게 하소서

때로는 먹고 자는 것에 연연하여
또 다른 나에게 포로가 되어 움직이는 나를 바라보며
불처럼 뜨거운 눈물로 매질하며
강물처럼 흐르게 하소서
억센 강풍 앞에서도 꺼지지 않는
이 몸 태워 마음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게 하소서
세상 넓은 바다에 아주 작은 미물임을 깨닫게 하소서
(김기홍·시인,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