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축하한다. 새누리당을 승리로 이끈 박근혜 위원장은 대단했다. 과연 선거의 여왕다웠다. 19대 총선 전까지 만해도 새누리당이 100석이나 확보할까를 의심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그녀는 ‘역전의 여왕’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우리는 2004년, 그녀의 업적을 기억한다. 당시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으로 전락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란 자충수를 둔 상태였다. 누가 봐도 한나라당의 완패요, 열린우리당의 압승을 예상했다. 결과는 열린우리당 152석, 한나라당 121석이었다.  

숫자로만 보면 열린우리당의 압승이라 하겠지만, 아니다. 이때도 선거의 여왕은 여왕다웠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한나라당의 여의도 천막당사 이전. 그런 퍼포먼스가 국민들에게 자극을 줬다. ‘분골쇄신’의 드라마가 먹혀들었다. ‘차떼기당과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핵폭탄을 안고도 121석을 확보한 건 기적이었다. 어쩌면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싶다.  

그 드라마는 2012년에도 다시 쓰여 졌다. MB정권의 실정, 경기의 침체, 한미 FTA의 반기 등 수많은 악재가 있었다. 더군다나 ‘민간인 사찰’은 메가톤급 악재였다. 서양사회 같으면 ‘대통령 탄핵감’이었다. 아량이 넓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민간인 사찰을 용서해주는 듯 했다.  

이번에도 여왕은 실력을 발휘했다. 사태의 핵심을 파악한 그녀는 이름부터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한나라당이란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어떤지 누구보다 잘 간파했다. 별거 아닐 거 같은 이름 하나를 바꾸어 역전을 일구어내는 그녀는 가히 천재다. 무엇보다 MB와의 단절을 꾀한 그녀는 ‘매의 눈’을 가진 여왕다웠다. ‘민간인 사찰’이 메가톤급 폭탄이었음에도 불발탄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녀의 기지였다. “그건 MB정부 일이고, 여왕님은 다르시잖아”란 정서를 일구어냈다.  

새누리당이 이런 형국을 ‘속전속결, 일사천리’라 한다면, 민주통합당은 ‘오합지졸, 우유부단’등이 아닐까 싶다. 민주당을 찬성하던 국민들이 “입에 떠 넘겨줘도 못 먹냐”라 할만하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막말 김용민’의 카드를 버리지 못한 민주당 지도부를 원망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17대 총선시절, 민주당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때도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이라는 두 집 살림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19대 총선 때는 통합민주당과 국민참여당(물론 통합진보당으로 바꿨지만)으로 두 집 살림을 냈다. 사람들은 말한다. “박근혜 봐라. MB가 아니꼬워도 끝까지 한나라당에서 버티는 거”라고. ‘한 지붕 두 가족’일지언정 분가는 안하는 여왕의 혜안은 대단했다. 마치 흥선대원군이 훗날을 도모하려고 바짝 엎드렸던 파락호 시절을 연상케 한다. 때론 숙일 줄도 알고, 때론 치고 나올 줄도 알고. 당신은 진정 정치 9단의 지존이다.  

그 결과 새누리당 152석, 통합민주당 127석, 자유선진당 5석, 통합진보당 13석, 무소속 3석 등의 결과가 나왔다. 새누리당 외의 의석수를 다 합쳐 봐도 148석이다. 명실상부한 과반수이상의 여당을 탄생시켰다. 정말 “브라보, 퀸”이다.  

하지만, 이 모든 ‘박근혜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가. ‘선거의 여왕’이란 그녀가 진짜 여왕은 아닐까. 사실 그녀는 1952년생이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1961년 5.16군사정변을 일으킨 후 세운 3공화국(1962년) 때가 10세였다. 초등학교시절부터 그녀는 대통령의 딸이었다. 20대 후반(1972년 박대통령 서거 )까지 그녀는 대통령의 딸로 살았다. 그녀가 천성적이던 후천적이던 아버지 박정희를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4년 “나를 따르라”는 한마디에 멀쩡한 당사를 남겨두고 여의도 천막당사로 한나라당 전체가 움직였다. 그게 보통 결정인가. 다른 정당 같으면 어림도 없다. 누군가 그런 발언을 했다면 합의를 도출해내느라 설왕설래하다가 결국 하지 못할 공산이 커지 않을까.  

MB정부 탄생부터 여왕과 MB의 불화가 있었다. 그럼에도 여왕은 탈당하는 어리석음은 고사하고, 표면적인 반기조차 표시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에서 ‘친박 연대’라는 유래 없는 조직이 탄생했다. ‘친박 연대’가 MB를 욕하고자 하면 여왕은 이내 “입조심해”라 했고, 그들은 “깨갱”이라 화답했다. 그녀의 여왕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오죽하면 19대 총선에서도 ‘구 친박연대’라고 하는 정당(미래연합)이 나왔을까. ‘박근혜’ 하나면 다 통한다는 생각이다.  

2012년 풍전등화의 한나라당 운명 앞에 그녀가 또 등장했다. 마치 잔다르크처럼. 이번에도 “나를 따르라”는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그녀를 따랐다. 이름을 바꾸라면 바꿨다. 정당명을 바꾸는 것은 여러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하고, 대화하고, 뒤집고 등의 과정을 거쳐 겨우 해낼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나서면 순식간이다. “MB와는 철저하게 단절하라”고 명령을 내리니 그들은 말도 잘 들었다. 다른 정당이라면 몇 달 몇 년 걸릴 일도 삽시간에 이루어졌다.  

과거 여야를 막론하고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오죽하면 거대한 정당을 ‘김영삼당, 김대중당, 김종필당’이라 했을까. 독재를 누구보다 비판하던 그들조차 독재구조였다. 하기야 그때는 그런 구조여야 맞대결이 되었을 테니.  

하지만, 이건 과거의 일이 아니다. 이런 과거의 망령이 ‘박근혜당’이라고 하는 걸로 아직 살아있다. 여왕의 말 한마디면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대군들이 21세기에도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역시 여왕님이셔. 우리가 믿고 따를 분은 오직 저분이셔”라는 수많은 백성들도 존재한다. SNS로 토론하고, 스마트폰으로 합의하고, 인터넷으로 비판하는 이 시대에 말이다. 19대 총선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일인독재를 선망하는 사회임을 드러내주었다. 우리 사회가 과연 민주적이긴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