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문화와 편견
(2012년 2월 3일)

동민도로 로하스 선교베이스캠프로부터 약 4시간 거리에 있는
서민도로 산호세 지역을 방문하였다가 우연히 산호세 시장님의 초청으로
시청사에서 직원들과 가족들을 치료하게 됩니다.
처음에 시청 직원들이 우리로부터 치유 체험을 하고나서
봉사를 요청하였을 때
우리 치유사역의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기 때문에
이 먼 곳까지 다시 와서 비싼 숙박료를 들여가며
있는 사람들을 치료해 줄 예산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시장님께 보고하여
호텔을 잡아주고 모든 숙박료를 부담할 테니 꼭 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들의 요청을 받아 들여 1주 동안의 봉사를 약속합니다.

우리 선교 팀이 산호세에 머무는 동안
그들은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우리를 도웁니다.
산호세 앞 바다는 일출과 낙조를 모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어둠을 물리치고 떠오르는 찬란한 동해안의 일출과
수평선 너머로 지는 서해안의 아름다운 붉은 낙조를 바라볼 수 있는
비치 옆의 호텔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바닷가에 나가 산책도 하고
호텔 내에 있는 풀장에서 수영도 합니다.
저녁에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듣고 싶은 노래도 주문하고
우리가 먹고 싶은 대로 음식도 시켜 먹습니다.

청사 관광안내소에서 봉사하는 낮 시간 동안에는
시 관광과 직원 전원이
자기들 업무를 전폐하고 우리의 치유사역을 도웁니다.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임시 환자침대를 만들어 놓고
접수를 받아주며 질서 있게 외래환자들을 안내하고
점심식사 전과 후로는 새참을 시켜와 우리가 피곤하지 않도록 돕습니다.
시장님도 치료받기 원하셨지만 마닐라 출장을 가시는 바람에
시청에서 세 번째로 높다는 분이 직접 오셔서 치료를 받으시고
침뜸 교육문제도 문의 하십니다.
한 내과 의사가 동양의술에 매력을 갖고 체험하러 오려다
갑자기 세미나 참석하느라 오지 못하고
대신 부인이 와서 몸 전체에 침과 뜸을 받고 갑니다.
한마디로 산호세 봉사는 우리에게 즐겁고 보람 있는 치유축제였습니다.

봉사하러 와서 너무 극진한 대접을 받으니
하나님께 좀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한편, 매일 고생스럽게 산속 오지나 해안가 마을을 돌며
우리가 직접 밥을 싸가든가 쌀과 반찬을 마련하여 갖고 다니며
봉사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시나 보다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여기서는 대접도 잘 받았지만
우리와 다른 필리피노들의 성문화도 보게 됩니다.

20대의 젊은 여자공무원이
65세가 된 노인 남자환자를 모시고 와서
옆에 서서 극진히 보살펴 드립니다.
하도 친절하고 공손하게 대하여 “아버님이시냐”고 물어봅니다.
망설임도 없이,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No, this is my boyfriend!"
(아니오, 이분은 나의 남자친구입니다.)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지켜보고 있는데서 너무 당당하게 말하여
내가 민망스러워 남의 눈치를 살핍니다.
나와 함께 들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입니다.
노인 분 역시 젊은 여자의 말을 이어
점잖게 나를 보며 금방 대꾸합니다.

"This is my wife"
(이 사람은 나의 부인입니다.)

그 노인과 보호자를 보내고 나서 나를 돕는 시청직원에게 물어봅니다.

“boyfriend(남자친구) 와 friend(친구) 는 어떻게 다릅니까?”
“friend 는 그냥 친한 사이를 말합니다.
친한 사이면 남자나 여자나 연령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friend 라 말할 수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든다면,
12살 여자아이와 50세 가정주부하고 친한 사이이면
friend 라고 서로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boyfriend(남자친구) 나 girlfriend(여자친구)는 잠자리도 함께 하고
자녀를 낳을 수도 있는 사이입니다.
비록 결혼식을 하지 않았더라도 둘이 동의하고 사랑하면
얼마든지 함께 자녀를 키우며 함께 살 수 있는 관계입니다”

“그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도 있습니까?”
“물론 학교에 보낼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가요?”
“둘이 동의하고 사랑하면 함께 사는 것을 문제 삼을 사람이 없으며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여자는 노인을 ‘나의 boyfriend(남자친구)’ 라 말하고,
노인은 젊은 여자를 ‘나의 wife(부인)'라 말하는 데 왜 그렇게 말하는가요?”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가 여자를 girlfriend(여자친구)로 사귀다가
부인이 사별한 경우나
아니면 부인의 동의를 얻어 wife로 삼았는지도 모릅니다.“

좀 이해가 안가는 면이 있지만 그냥 넘어가며 대기 환자들을 치료해 줍니다.
그러다 요번엔 또 다른 경우를 봅니다.

나이는 45세 정도 되어 보이고
키가 1미터 75센티미터는 되는
필리피노 치고는 늘씬하게 잘 생긴 사람이
머리는 스포츠를 하고 신발은 큰 운동화를 신어 마치 농구선수 같습니다.
7년 전 한국에 다녀 온 적이 있다며 한국말을 몇 마디 할 줄 알아
한국말로 떠듬거리며 친절하게 인사도 합니다.
그가 치료받을 차례가 되어 여자 방으로 들어가기에
그리 가지 말고 저쪽 남자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싱글 벙글 웃으며 그냥 여자 방으로 들어갑니다.
대기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시청직원이 나에게 그분은 여자라고 알려 줍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분명히 목소리도 남자고
몸치장도 의상도 모두 남자모습인데 여자라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가 옷을 벗고 여자 방 침대에 가서 벌렁 누워있습니다.

그러자 직원은 한 술 더 떠서 여러 사람이 듣는데서
“그녀는 게이(gay:동성애자)입니다”라고 장난기 섞인 말로 웃으며
모두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소개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봅니다.
그 말을 들은 당사자도 그리고 대기하고 있는 다른 환자들도
별 대수롭지 않은 듯 한 표정입니다.
당황하고 이상한 느낌을 받는 사람은 오직 나 한사람뿐입니다.
치료하며 보니 정말 그는 남자가 아닌 여자가 분명했고
자기보다 예쁘게 생긴 조그만 여자와 동거한답니다.
그 사실을 그녀는 전혀 숨기지 않았으며,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그들의 사생활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오늘 봉사를 모두 마치고 호텔에 와서도 자꾸 낮에 만났던
두 사람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어서 알 곤 있었지만
그렇게 당당하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필리피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데
나 혼자 당황하고 나 혼자 깊게 골몰하며 생각합니다.
이건 분명 내가 자라온 환경과 이들이 자라온 환경이 다른데서
생겨나는 일종의 문화충돌 혹은 문화갈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사회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우리 사회나 나의 생각 속에서는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은
이들에 대한 문화적 편견에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세상을 여행하며 수많은 외국 사람들을 접하면서
외국문화와 관습을 나의 잣대로 측정하고 판단하고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천벌을 받아야 할 부정한 여인이지만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의 입장에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리고 용서하셨습니다.

순간순간 예수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의 너그러우신 성령이
나를 지배하고 깨우쳐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사진에 위 내용의 주인공 세 분이 모두 있습니다. 세분은 과연 누구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