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시오데이(Missio Dei)
 (2012년 1월 12일 목요일) 
 

야자수 숲속을 지나, 맨발로 물을 건너고, 외나무다리를 건너
작년에 왔던 해안가 조그만 마을에 예고도 없이 찾아갑니다.
이곳 지명은 매우 재미난 이름이 많습니다.
하윌리 건너 마을의 이름은 ‘안아플라’입니다.
안 아프고 싶다는 말 같습니다.
오늘 다시 1년 만에 방문한 마을이름은 ‘아플나야’로
‘아픈 사람 오면 모두 나을 꺼야’라는 말 같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이들과 멀리서부터 반갑게 손을 흔들고 인사를 나눕니다.
이사 온 사람들인지 아니면 다니러 온 사람들인지
낯선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만 곧 친해집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잠시 의자에 앉아
마당에서 농구를 하며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내 발 앞 땅바닥에서 무엇이 꿈틀거려 보니
가엾게도 태어난 지 며칠 안 되는 작은 병아리가
땅에 뒹굴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농구하던 아이들이 뛰다가 밟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생겼습니다.
 

수년전 아침, 테헤란로 산책하다가
쓰러져 죽어가던 새 한 마리 살려 주었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테헤란로 플라타너스 나무 밑, 바쁘게 사람들이 움직이는 아침출근길 보도에
예쁜 파랑새가 쓸어져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채여 거의 죽어가는 상태였습니다.
그 놈을 내 방에 데리고 와 침을 놓아 살려 주었더니
내가 있던 12층 건물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멀리 사라졌습니다.
 
땅바닥에서 신음하며 움직이지도 못하는 병아리를 손에 들고
작은 호침을 꺼내 백회, 대추, 지양, 중완에 속자 속발하여 응급조치합니다.
손바닥 보다 작은 병아리가 무슨 침 자리가 있겠냐마는
대충 그 자리가 될 만한 곳에 침을 놔 주고
그늘에서 말리고 있는 고기잡이 그물위에 편안히 놓아둡니다.
 

옆에 암퇘지가 새기를 낳는 중인데 세 마리만 낳고
다음 새끼는 힘이 없어 낳지 못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형님 댁에서 돼지새끼 받아 본 경험으로
이놈이 힘이 없어 그러는 줄 알고
옆에 있는 사료를 질척하게 개어 먹이며 정신 차리게 합니다.
 
무릎이 풍선만큼 부어오른 장정이 다리를 끌고 옵니다.
독비, 학정, 양능천, 현종 그리고 아시혈에 침을 놔주고 뜸도 떠 줍니다.
 
배가 아픈 어린아이를 데리고 옵니다.
사관을 트고 중완을 다스려 주고 소상을 점자출혈 합니다.
 
두 살짜리 머리가 펄펄 끓는 고열 환자를 데리고 옵니다.
병원도 없고, 약국도 없는 곳에서 고열환자는 매우 위험합니다.
심하면 죽는 경우도 있고, 살아도 비정상이 될 경우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라 유침 할 수도 없습니다.
급한 마음에 열 조절 자리를 모두 찾아 속자 속발합니다.
 
독맥에서 대추를,
수태음 폐경에서 어제를,
수소음 심경에서 신문을,
족태양 방광경에서 풍문과 독유를,
족소음 신경에서 태계와 복류를
수소음 심경에서 대릉과 노궁을,
수소양 삼초경에서 액문을
그리고 감기 몸살로 온 몸이 쑤실 때 쓰는
담경의 현종과 삼초경의 외관도 다루어 줍니다.
너무 어린 아이라 놀랠까봐 이첨에 점차출혈은 하지 않습니다.
위와 같은 혈자리를 약 2분 동안에 순간적으로 살짝 살짝 다 다룹니다.
 
1년 만에 가니 여기저기서 반갑다는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가자마자 정신없이 바쁩니다.
한 숨 돌리며 잠시 아이들이 농구하는 모습을 보며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야자수를 대접받아 마시며
즐거운 교제시간을 가집니다.
 
약 1시간이 흘렀을까?
옆 그물위에 놓아둔 병아리가 움직이기에 살 것 같아
땅에 내려놓아 주었더니 잘 걸어 다닙니다.
기운 없어 새끼를 못 낳던 돼지가 그동안 새끼를 두 마리나 더 낳았습니다.
무릎 아프다던 장정이 싱글벙글 웃으며 안 아프다고 좋아합니다.
배 아프다던 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또래 아이들과 농구를 하고 놉니다.
심한 열로 고통스러워하던 두 살짜리 아기가 열이 떨어지며 조용히 잠을 잡니다.
 

지켜보던 마을사람들이 신기해하고 고마워합니다.
나 역시 그렇게 모두가 빨리 좋아질 줄은 몰랐는데
금방 환자들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습니다.
 
간단한 침구요법과 돌봄으로 이렇게 사람과 동물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니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나를 치유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약국에 가서 해열제만 사 먹어도 금방 좋아지고
감기약만 먹어도, 그리고 상처에 약 한 번만 발라도
금방 좋아질 간단한 외상을
바로 치료하지 못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되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나 같은 사람을 도구로 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선교지 현장에서 날마다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