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을 보내며
 
1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날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들은 헤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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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달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한 번쯤은
불러보는 애창곡이다. 내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계절이 남기고 간 이 뜻 모르는 그리움들은.......,
    
계절은 숙명이다.  때가 되면 오고, 때가 되면
떠나가는 인연이 바로 계절이다.   
그런 면에서 계절은 꿈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계절은 사랑의 대상일 뿐이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내 슬픔 또한 꿈의 추락에서
연유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룰 수 없었던 사랑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2

벚꽃, 철쭉, 모란, 버지니아 도그우드, 개나리, 불루벨....
이름 모르는 야생화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다.
아니, 따사한 삼월 오후의 햇살에 놀라 운무(雲霧)로
스러져가고 있다. 그 화사함, 찬란함, 소박함들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그리움의 파편들만
삼월의 마지막 봄 하늘을 죽음처럼 부유(浮游) 하고 있다.
서글프다.
 
어떤 시인이 말했던가?  그리움이 변해서 꽃이 된다고..
행여, 그 시인은 알고 있었을까? 꽃과 그리움의 차이점을...
꽃은 사라지나, 그리움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씨앗이라는 것을....
 
"난 사랑은 꽃과 같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그
사랑을 피울 유일한 씨앗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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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하나만 기억해 보세요/ 한겨울 차가운 눈 밑에
봄의 따스한 태양 빛에 장미로 피어나길 기다리는 그 씨앗을
(Bette Midler 가 불렀던 팝송 "The Rose" 에서)

3
 
흔히들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한다. 또, 시인 엘리엇은
사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가장 ‘잔인한 달’이라 노래했다.
나에게 삼월은 생명을 잉태하는 위대한 계절의 어머니다.
꽃들의 죽음은 봄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죽음은 대지에 연두색 새순들을 키우고
나뭇가지에 신록의 움을 트게 하는 봄의 시작을 의미한다.  
죽음은 계절을 낳는 위대한 자연의 어머니다.
   
참으로 이상하다.  
꽁꽁 얼어붙은 대륙의 겨울을 깨는 것들이 억샌 들풀들,
아름드리나무들이 아닌
연약한 잎 없는 꽃들이라는 사실이.

가장 연약함으로 가장 강함을 물리치는 역사,
그것이 바로 우주창조의 신비일 것이다.
 
꽃은 연약하다. 그러나 생명을 낳는 꽃은 강하다.
여성은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그리고 그리움의 씨앗은 죽음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