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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聖靈/Pneuma)은 기독교에 한정된 것인가? (7)
류기종  |  rkc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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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03월 25일 (일) 14:53:31
최종편집 : 2012년 03월 25일 (일) 14:56:51 [조회수 : 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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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령과 인간의 영과 이성(理性)의 관계:
그러면 성령과 우리 인간의 영과 그리고 우리 인간의 마음(심성) 혹은 이성(理性)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일은 하나님의 영인 성령과 우리 인간의 영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우선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인 영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일반적으로는 우리 인간의 정신적 측면인 마음, 심성, 심령, 영혼 혹은 이성 또는 지성 등으로 이해하여 왔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이성적 존재, 지적인 존재, 정신적 존재 혹은 "영성적 존재"(homo spiritus/spiritual being)로 인식하여 왔다.

우리 인간의 정신적 존재성 혹은 영(성)적 존재성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영적인 요소로 볼 수 있으며, 바로 이 영적(혹은 정신적) 요소가 하나님의 영인 성령과 접촉할 수 있고, 또한 성령이 우리 안에 내재/내주 할 수 있는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는 하나님의 영(성령)이 거하실 처소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모양 혹은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
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1:26-27)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
나니"(롬8: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혹자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구분하여, "형상"은 하나님(신성)의 외적인/형식적인 닮음((formal resemblance)을 말하고 "모양"은 하나님의 내적인 곧 본질적인 닮음(inner/essential resemblance)을 말한다고 하며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교부 오리겐(Origen, 185-254)이다. 오리겐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곧 신성의 요소를 하나님과의 본질적인 유사성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모양(similitudo)과 형식적 유사성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형상(imago)으로 구분하여, 인간의 타락의 결과로 본질적 유사성은 상실하였지만 형식적 유사성은 상실되지 않았다고 보았으며, 이처럼 남아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후에도 불완전하게나마 이성적/지적인 요소와 자유가 주어져 있다고 보았으며,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교제가 부분적으로나마 가능하다고 보았다.

즉 그에 따르면, 우리 인간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이미지/신성적 요소)이란 지성(intellect)과 영성(spirituality)과 사랑(love)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본질적 특성이 초월성과 내재성을 나타내는 영적 특성 곧 "영성"과 앎의 능력을 나타내는 지적 능력 곧 "지성"과 그리고 아가페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들 지성과 영성과 아가페 사랑은 본래 하나님의 본질적 특성인데,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에게 지성과 영성과 사랑의 요소(잠재적 능력)를 부여해 주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본질적 특성 곧 지성과 영성과 사랑의 요소들이 인간의 타락(탐욕과 교만)으로 인하여 상실 내지 훼손 혹은 크게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바로 이 잃어버린(파괴되고 약화된) 하나님의 형상의 완전한 회복으로써, 이들 지성과 영성과 신적인 사랑의 요소(능력)를 온전히 회복하고 소유하는 일을 의미한다. 우리 인간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런 오리겐의 해석은 오늘날 우리들(현대인들)에게도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드려진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영적인 요소인 하나님의 형상과 성령과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또한 성령과 우리 인간의 이성과 영성과 사랑(자비심)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성령이 바로 하나님의 영 즉 하나님께로부터 발현되는(나오는) 영적 실재이기 때문에 성령은 바로 하나님의 본질적 특성을 그대로 지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령의 본질적 특성은 신의 본질적 특성인 진리와 사랑과 지혜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전체의 집약적 표현이기도 하다. 예수는 성령을 진리의 영으로 표현한 반면, 사도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그리고 특히 로마서 5장 10절에서는 사랑의 영으로 표현했다(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바울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사랑이 진리와 지혜와 함께 하나님의 가장 본질적인 성품(essential nature)으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으로서의 성령은 진리를 알게 하는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써 하나님의 가장 깊은 것 까지도 알게 하는 영이기 때문에, 지혜 곧 지성의 영(spirit of wisdom/intellect)이며, 또한 시공을 초월하는 영성(spiritual entity) 곧 영적 실재성이며, 동시에 사랑의 영(spirit of love)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성령은 하나님의 인격적(신격적) 특성인 지정의(知情意)의 요소를 다 지닌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사도 바울은 우리 인간의 구성적 요소를 말할 때, "육"과 "영"의 이분법적으로 말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육"과 "혼"과 "영"의 삼분법적으로 말한 것을 볼 수 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모든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사도 바울에 따르면 우리 인간에게는 세 개의 중요한 요소 즉 몸(육)과 혼(심성 즉 감성과 지성/이성) 그리고 시공을 뛰어넘는 초월적 능력 곧 영적(spirit/pneuma)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영적 측면이 우리 인간의 가장 높고 깊은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초월적 실재인 하나님을 찾고 알고 그분과 관계할 수 있는 능력(faculty) 혹은 가능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 인류 역사에 종교와 철학과 예술 등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우리 인간의 이 영적 측면을 동서의 여러 종교와 철학은 다양한 개념과 명칭으로 말해 왔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성/지성 혹은 지혜(logos/nous/sapientia)로, 히브리 지혜인들이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성령) 혹은 영적 지혜 곧 계시의 영으로, 기독교 신비주의 영성가들은 초월적 지혜인 영지(靈智/
gnosis)로, 그리고 동양의 종교 특히 선불교에서는 반야지(般若知/Prajna) 혹은 법안(法眼)으로, 유교에서는 격물(格物)과 치지(致知) 혹은 양지(良知)로, 도교에서는 진지(眞知), 도안(道眼) 또는 심안(心眼) 등으로 불렀다. 그리고 우리 한국의 다석 류영모는 절대지(絶代知)라고 칭했다.

특히 히브리 지혜자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원이라고 말하여, 이 영적인 지혜가 초월적/영적 실재인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앙심(경외심)에서 나온다고 보았으며, 특별히 고대 유대교의 영적 현자들인 히브리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영이 자신들에게 임함으로서 신령한 지혜를 얻게 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성령은 사도행전의 오순절 사건만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에, 아니 하나님의 우주 창조 시 즉 태초에서부터 활동하셨음을 알 수 있으며 특별히 히브리 선지자들의 활동에서 뚜렷하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히브리 선지자들에게 나타난 성령의 활동은 이사야서 11장과 42장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
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
거움을 삼을 것이며..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11:1-5);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사42:1);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또 내가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요엘2:28-29)

어떤 의미에서 구약성서 중에서 창세기 1장 2절과 잠언서 8장(22절-36절)의 말씀을 제외하고는, 위에서 인용한 이사야서 11장과 42장 그리고 요엘서 2장의 말씀이 성령의 본질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사야서 11장 1절 이하의 말씀에 따르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라고 기록되었는데, 영어로는 "wisdom"과 "understanding"(이해력/총명)으로 번역되는 말이다. 즉 이새의 줄기(혈통)에서 나타날 한 인물(지도자)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명철)의 영이 임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복음서 기자들은 이것이 바로 갈릴리 지역에서 복음운동(영성운동)을 전개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실현되었다고 말하고 있다(마4:12-16, 눅4:18, 요12:37-41). 즉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 지혜와 명철의 영이 (물붓듯이/한량없이)임하여 사람들에게 평화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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