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9장 30절
“그러나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제목 : 그렇게 된다니까.


1.

홍세화 선생의 강연 가운데 흥미로운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외할아버지에게서 들은 “개똥 이야기”라고 하는데, 문득 아, “개똥철학”이 여기서 나왔나 보다 했다.

이야기인 즉 슨, 어느 날 서당 훈장 선생님이 삼 형제를 모아놓고 각기 장래 희망을 물었다는 것이다. 첫째가 답하기를, “저는 선비가 되려 합니다.” 하자 훈장이 “음, 포부가 제법이구나”하고 칭찬했다. 둘째는 “저는 장군이 될 겁니다.”하니 훈장은 “용기가 참 가상하다”고 추어주었다. 마지막 막내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막내가 황당한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전, 지금 여기 개똥 세 개가 있었으면 합니다.” 훈장이 이게 뭔 괴이한 소리인가 하고 그 까닭을 묻자 막내의 대답이 이러하다는 거다. “큰 형은 저보다 책도 읽지 않고 책 읽기를 싫어하면서 선비가 된다하니 그 입에 이 개똥을 처넣고 싶고, 둘째형은 저보다 겁이 많으면서도 장군이 되겠다니 웃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입에 개똥을 먹여주고 싶어요.”

말본새가 또박또박하고 이치에 닿는지라 훈장이 아무런 반박을 못하고 “그러면 세 번째 개똥은 누구에게 주려고?” 하고 묻자, 막내는 우물쭈물 거린다. 이때 외할아버지가 손자 세화에게 묻는다. “답을 아느냐?” 의기양양해진 세화는 “거야, 이런 형들의 진상도 모르고 칭찬한 훈장선생님이 개똥을 먹을 차례죠.”하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에 외할아버지는, “그래, 맞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해줄 때마다 네가 바로 그 세 번째 개똥을 먹는 처지는 되지 마라”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대답한 손주에게 아차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평생에 남는 가르침이다. 이후로 홍세화 선생은 이 세 번째 개똥을 먹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왔다는 자기고백을 한다.

이 이야기는 자신만만하게 말한 이의 허를 찌르는 역습에 그 핵심이 있다. 그 세 번째 개똥이 훈장에게 가는 줄로만 알지마라, 그 주인공은 바로 너 일 수 있어, 하는 경고가 번뜩이니 놀랍기만 하다. 그런 외할아버지의 손주답게 홍세화 선생은 지금도 겸손하고 진실하게 세상을 대하며 젊은이들을 일깨우고 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도 제자들에게 평생에 남는 이야기가 된다. 첫째인줄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꼴찌요, 꼴찌인 줄 알았는데 웬걸 첫째라니? 이 기막힌 역전의 드라마는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일까?

이 말씀은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앞에 일어났던 사건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어느 부자 청년의 이야기다. 이 청년은 어떤 날 예수에게 찾아와 묻는다. “무슨 선한 일을 해야 내가 영생을 얻습니까?” 자신의 최고 우선가치가 무엇인지 밝힌 셈이다. 그러자 예수는 예수에게 묻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물으라고 하면서 율법의 계명을 지키면 되지 뭘 또 이런 걸 가지고 와서 묻고 그러냐고 답한다. 이에 그 청년은 자기는 대단히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한다고 줄줄이 읊는다.

청년과 예수의 대화는 이어진다. “이렇게 훌륭하게 사는데 아직도 뭐가 부족합니까?” “그래? 그러면 됐네. 있는 거 다 팔아 가난한 사람 줘봐. 그리고는 나를 따라오렴, 하늘의 축복이 다 네 것이 될 거야.”

이크, 말 한번 잘못했구나, 했는지 또는 기겁을 했는지, 이 청년은 아무튼 그 요구에 답하지 못한 채 돌아간다. 이 본문은 그런데 부자 청년만 괴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대목을 읽는 모두를 힘들게 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말이다.


3.

그러나 잘 읽어보면, 예수는 이 청년이 그렇게 잘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재산정도야 집착하지 않고 훌훌 벗어던지고 예수를 따를 수 있다고 본 것이 아니겠는가? 그걸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토록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니까 그러면, 이것까지 하면 완벽해, 하는 대답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해왔던 신앙생활은 이 한 마디 앞에 걸려 넘어진다.

애초에는 영생에 대한 관심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세상의 재물이 그의 우선 순위였다는 사실이 폭로된 셈이다. 그런데 제자들의 시선은 좀 달랐던 모양이다. 이들은 아니 저 정도로 모범적이고 대단한 신앙열정을 가진 이마저 이런 문제 하나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냐 말이야? 하고 웅성거렸던 것이다. 더는 내놓을 것도 없는 가난한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앞길이 막막해지는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이때 평소에는 꼭 그렇지도 않았던 베드로가 똑똑한 척하고 턱 하니 나선다. “잠깐, 제가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야말로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런 우리가 무엇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하, 그렇구나. 우리는 다 버렸구나. 이걸 깜빡했지. 제자들은 자기들의 정체성에 대해 새삼 확인하게 된다. 자기의 소유를 완전히 포기하고 예수를 따르는 일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처지가 아닌가? 이게 베드로가 제기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이 본문이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무슨 말인가? “그렇구나. 다 버렸다고? 그래 잘 했다. 첫째다. 그런데 말이다. 하나 짚을 게 있다. 너는 버린 것을 기득권으로 내세우고 있네? 네가 희생한 것을 기득권으로 삼고 있네? 버렸으면 버렸지, 뭔가 바라고 했던 거야?” “으윽.” 베드로, 어찌 답할 건가?


4.

헌신과 희생의 삶이 사실은 알고 보니 그 안에 숨겨진 목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 순간 그 헌신과 희생은 이미 본질적 순결성을 상실하고 다른 그 무엇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면 어찌 되겠는가? 본래 순수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고 여겼던 헌신과 희생이 사실은 다른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방편과 술수라면, 그 가치는 더는 본래 내세웠던 것과 일치하지 못하게 된다. “여기 있지 말고 뒤로 가시지.” 하는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일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봐,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무얼 희생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말이야. 기득권 질서를 허무는 일에 앞장섰다가 그게 기득권이 돼서 다시 그 자신이 기존질서의 특권층이 되어버리는 사태는 적지 않게 반복되어 왔다.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이는 수없이 목격하게 되는 바다.

한국 교회는 대 성장을 이루었다가 요즘 주춤거린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내세우는 것은 모두 그럴싸하지만, 사실 바라는 것은 전혀 엉뚱한 것들이다. 입으로는 영생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재산증식에 대한 기도가 그 핵심인 경우가 어디 하나 둘인가? 입으로는 국가의 장래를 논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권력과 재물에 대한 탐욕이 들끓고 있는 경우 또한 얼마나 많은가? 이걸 버리지 못하면, 모든 것이 꽝이다. 한국교회는 이런 요구 앞에 서 있다.

그와 함께, 자신들이 꽤나 헌신하고 희생해왔다고 해도 별반 차이가 없을 수 있다. 그 헌신과 희생 자체로서 감사하고 그 이후의 일은 하나님에게 맡기지 못하고, 이만한 희생과 헌신의 기여를 했으면 그걸 발판으로 해서 그 다음 단계로 올라서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다반사이다. 이게 대체 뭔가? 결국, 자신이 비판하고 있는 개인이나 세력과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부자청년의 열성적인 신앙생활도 뭔가 다른 걸 얻기 위해 했던 것이며, 이들 제자들도 그들의 희생이 다른 무언가에 대한 목표가 있는 도구일 뿐이다. 예수는 이에 일침을 가한다. 이 머리와 마음이 불순한 것들아, 그렇게 해서 뭘 얻겠다고?

그러니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다. 신앙의 열정으로 포장된 위선도 위험하고, 신앙의 헌신적 삶을 기득권으로 내세우는 자세도 다 그게 그거다. 그래서 나는 첫째다, 라고 여겼다가 꽈당하고 넘어지는 것이며, 나야 뭐 있어? 하고 묵묵히 그저 하나님 나라의 뜻에 따라 사는 이는 도리어 첫째의 자리에 오른다. 우린 그래도 저 자와는 구별되고 잘 난 이들 아니냐고 했던 베드로의 허가 찔린 사건이다.


5.

2012년 총선과 대선의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를 진보적으로 열어나가기 위한 이들에게 경고가 되는 말씀이다. 아차, 하다가, 공든 탑 무너진다. 저자들이야 말로 개똥이나 먹여야 할 자들이다, 라고 했다가 자기가 그걸 온 천하가 보는 앞에서 먹어야 하는 일이 생기거나, 아니면 이만하면 첫째 아냐? 했다가 꼴찌로 굴러 떨어지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우리의 영혼에 긴장의 끈이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역사를 향해 움직일 수 있은 동력이 생겨날 것이다. 자칫 하면 아닌 말로 한방에 훅 간다. 첫째인줄 알았다가 꼴찌로 망하는 것이다. 반면에 꼴찌의 겸손과 순수한 헌신이 세상을 주도하는 첫째가 되도록 하게 할 것이다.

변화의 주체가 바로 되어야 올바른 변화가 온다. 개똥철학과 꼴찌의 신학이 우리를 구원해주리라. 정말 그렇게 된다니까. 아멘.


* 기도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교만의 죄에서 지켜주시고 기득권을 누리고 싶어 하는 덫에 걸리지 않게 하여 주소서. 진정 새로운 변화를 일구어내기 위해 필요한 힘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들을 비난하고 욕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의 정당함에 충실하여 저절로 알곡과 가라지가 구별되는 세상을 만들어 주소서. 역사의 구름을 거두어 주시고, 희망의 햇살이 누구에게나 비치는 그런 멋진 세상을 꿈꾸게 하소서.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