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적 은혜인 율법

율법이 옛 언약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백성들의 연약함 안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온전히 해방시키지는 못하였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사람으로 이 땅에 보내신다.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다(마 5:17). 예수님의 말씀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성취되었다. 그렇다면 율법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율법과 완전하게 된 율법이다. 완전하게 되기 이전의 율법과 완전하게 된 율법이다. 율법은 이전 제품이고 완전하게 된 율법은 신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신제품이 출시되면 이전 제품은 자연히 퇴장하게 된다. 완전하게 되기 이전의 율법은 완전하게 된 율법이 모습을 드러내면 자연히 퇴장하여야 한다. 비록 율법이 은혜이지만 시간적으로 제한을 가지고 있는 은혜였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가 세례 요한의 때까지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눅 16:16). 세례 요한은 옛 언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다. 율법과 선지자는 옛 언약 시대에 한해서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은혜이었던 것이다. 율법의 어떤 부분만 요한의 때까지인 것이 아니라 모든 율법이 요한의 때까지만 이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고 율법을 폐하셨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는 담을 허무셨다. 그리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 곧 교회를 이루어 평화를 이루셨다. “그리스도께서는 ~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엡 2:15상).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은 구약의 율법 전부이다. 도덕법이 제외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율법이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일점일획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으리라(마 5:17)고 말씀하셨다. 동시에 율법이 요한의 때까지라고 말씀하셨다. 문자적으로 모순이다. 천지가 물리적인 우주라면 모순이다. 물리적인 우주는 없어지지 않았는데, 요한의 때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전자는 천지가 없어지면 율법도 없어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에서 천지는 언약의 세계에 대한 관용어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그 시점에서 언약의 세계에 대한 관용적인 표현이다. 그 시점은 옛 언약의 시대이기에 천지는 옛 언약의 세계를 뜻한다. 옛 언약이 유효할 때까지는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옛 언약이 없어지면 율법이 폐해진다. 율법은 옛 언약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요한의 때까지라고 할 때에 그 의미도 옛 언약의 때까지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이 말씀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계 21:2)과 연결되어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란 새 언약의 온전한 도래를 가리키는 관용어구이다. 새 하늘과 새 땅 이전의 하늘과 땅은 옛 언약의 세계를 뜻한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이 겹쳐 있는 기간에서 옛 언약이 완전히 폐하여지면 이전 하늘과 땅은 없어지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만이 남게 된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 멸망과 돌성전 파괴를 통하여 옛 언약을 완전히 폐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은 옛 언약이 완전히 폐하여진 이후의 교회를 가리킨다. 하늘 영광으로 가득한 영광스러운 교회를 뜻한다. 그렇게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기 이전에는 율법이 유대인들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유효하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유효하지 않다.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라는 구분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모두가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애초에 율법이 유효하지 않았다.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 갔을 때에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었던 야고보는 특이한 제안을 한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중에 서원한 네 사람이 있는데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는 것이다(행 21:24). 그런 제안을 하게 된 배경은 바울 사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한다는 것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율법에 열성을 가진 모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행 21:20)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바울 사도는 율법에 대해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옛 언약의 관점에서는 율법 아래 있고 새 언약의 관점에서는 율법 아래 있지 않았다. 유대인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 있는 자와 같이 되었고 이방인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다(고전 9:20-21). 자신에 대한 얘기가 사실이 아니고 자신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을 알려주자고 하는 야고보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유대인이라도 그리스도인이 되면 율법에서 자유할 수 있었는데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례에는 제사 드리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음에도(행 21:26) 그는 시행하였다. 율법에 대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쳤던 바와 완전히 상반되는 행동인데도 그가 기꺼이 시행한 이유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여전히 율법이 유효하였기 때문이다. 옛 언약이 파기되지 않은 시점이기에 율법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하였던 것이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이기에 율법이 유효한 시점에서 율법 준수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옛 언약이 파기되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율법을 준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히브리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주된 내용이다. 히브리서는 옛 언약이 파기될 때가 가까웠음을 안 저자가 그 이후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쓴 것이다. 그 시점은 예루살렘 멸망과 돌 성전 파괴가 이루어진 주후 70년이다. 율법은 그때까지만 유효하였다. 그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유효한 은혜이었다.

영원한 구원과 멸망의 갈림길인 율법

율법은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주어진 부르심을 누리는 방편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었다.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었다.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시고 그들에게 제사장 나라로서 온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심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한 은혜를 헛되이 받을 때에는 율법의 내용을 따른 하나님의 행하심이 뒤따른다. 율법 넓게는 옛 언약의 내용에는 순종을 통하여 누리는 복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당하는 심판이 함께 주어져 있었다(신 28장).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미 제시하신 언약을 따라 행하신다. 율법은 구원받은 옛 언약의 백성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편이면서 그들 앞에 놓인 영원한 구원을 위한 조건이었다. 예수님과 같이 완전하게 지켜야만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조건인 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옛 언약의 백성들이 너무도 분명하게 잘 이해하고 있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되풀이하여 들려졌던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 어디에서도 이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책망하신 적이 없다. 이 부분을 거부하신 적이 없다.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는 율법을 변경시키고 장로들의 가르침을 율법보다 앞세운 것이었다. 율법을 (영원한) 구원의 조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었다. 율법은 구원을 누리는 방편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구원의 조건이었다. 신 28장은 그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선지자들도 그 말씀에 근거하여 지속적으로 같은 내용을 전달하였다.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멸망의 역사는 영원한 구원은 받고 상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교회가 이 부분에 있어서 오해가 적지 않다.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 영원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처럼 율법을 지켜야 영원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그러한 생각이 옳다면 예수님 이전에 그 누구도 영원한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모세, 여호수아, 다윗 왕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만큼 율법을 지킨 사람은 없다.

이러한 생각은 야고보 장로의 진술을 오해한 결과이다. 율법의 한 가지를 어기면 모든 율법을 어긴 것이 된다는 부분이다(약 2:10). 야고보 장로의 진술과 같이 율법의 한 가지를 범하면 모든 율법을 범한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야 한다. 바르게 제사하면 용서받는다. 야고보 장로의 진술은 율법의 한 가지를 어기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영원한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냥 문자로서 이야기된 그대로를 가리킬 뿐이다.

구약 성경에는 그 사람의 전 생애에 대해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왕들이 있다. 다윗 왕을 그 본으로 하여서 의롭다고 선언된 왕들이다. 그들이 율법을 완전히 지켰기에 그러한 선언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 생애에서 여러 모양으로 잘못을 범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 생애에 대해 의롭다고 선언하셨다.

어느 정도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정도에 대한 기준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며 언약의 자녀들에게 적용하신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셔서 그 판정에 있어서도 결코 부당하지 않으시다. 불의하다는 판정과 의롭다는 판정에 있어서 객관적으로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현재적으로 의지하면서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율법을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