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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聖靈/Pneuma)은 기독교에 한정된 것인가? (4)
류기종  |  rkc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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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03월 04일 (일) 17:16:18
최종편집 : 2012년 03월 04일 (일) 17:21:47 [조회수 : 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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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聖靈/Pneuma)은 기독교에 한정된 것인가? (4)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만물이 생성되기 위해서는 "최초의 원인"(prima causa)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가 말한 최초의 원인을 하나님의 창조의 기운인 영(ruach) 곧 성령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주만물의 시작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활동의 표현/수단인 그의 영(ruach)에 의해서/영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 보면, 성령 곧 하나님의 영으로서의 성령은 곧 하나님의 창조행위 즉 하나님의 (창조)활동성의 측면(the aspect of creative activity of God)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성령은 곧 "창조활동 속에 계신 하나님"(God in creative action or activity)을 의미한다고 말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바로 자신의 영 곧 자신의 지혜와 능력인 성령으로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였고 또한 계속해서 창조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성령은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대명사 곧 하나님의 다른 이름 즉 지속적인 창조(활동) 중에 계신 하나님(God in successive-creative action)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하나님과 성령은 한 실재의 다른 두 명칭 곧 동체이명(同體異名)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가 "하나님은 영이시니" (God is Spirit)라고 정의내린 것도 이런 의미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일찍이 어거스틴은 그의 삼위일체론에서 하나님과 성령의 관계를 말할 때, 지속적인 상호내재(mutual immanence)의 관계로 보아, 공존(共存), 공재(共在), 공역(共役)의 불가분의 긴밀한 관계로 말해준바 있다.

우리가 보통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주로 부르고 있는데, 하나님의 창조활동은 곧 그의 창조의 기운인 영(루아호) 곧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과 성령은 창조행위에 있어서 공동 행위자며 또한 공동참여자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성령은 양쪽 다 영적 실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즉 시종일관 함께 창조활동을 하고 계시는 분(실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상과 우주 만물이 살아있고 계속 존재하고 또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 그의 영을 통하여 창조활동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하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말은 바로 하나님이 그의 영을 통한 창조 활동과 재창조활동(the action of creation and re-creation) 곧 우주 만물과 인간의 창조와 완성(구원)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계심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창조 활동 중에 계신 하나님을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이 우주만물의 생성변화 과정에 직접 관계하지 않는 하나님의 초월적/원초적 본성인 "제일 본성" (the primordial nature)에 대칭해서(제일 본성과는 달리), 하나님의 내재적 본성을 "제이 본성" 곧 "결과적 본성"(the consequent nature of God)이라고 부르고, 그 "제이 본성"으로서의 하나님은 한시도 쉬지 않고 우주만물의 모든 생성과 변화의 진행 과정에 계속 관계하시고 참여하시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을 "창조성"(creativity)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창조자"(the creator)란 말 대신에 "창조성"(creativity)으로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영(ruach) 곧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와 능력으로서의 성령은 화이트헤드가 말한 "창조성" 혹은 "창조활동 (속)의 하나님"(God as creativity/God in creative activity)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최초의 창조(우주창조)에서와 같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창조활동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성령을 하나님의 창조의 힘과 지혜 혹은 화이트헤드가 말한 "창조성" 혹은 창조의 능력이나 원리로 이해한다면, 성령에 대한 이해의 범위를 유대-기독교적 관점(the Jewish-Christian perspective) 너머로 확대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동양의 종교 및 철학 사상에서도 이와 유사한 우주관 내지 우주생성관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pneuma)이란 용어나 "성령"이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은 것을 전제로 하고 말이다. 특히 유교의 성리학에서 말하는 태극(太極) 음양이기(陰陽理氣) 철학사상과 또한 도교에서 말하는 만물의 생성변화의 원리로서의 도(道)는 만물의 생성변화의 근원적 원리나 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유교의 태극 이기론에 따르면 태극 안에 우주 만물의 두개의 생성요소인 이(理)와 기(氣)가 있으며, 이 이와 기의 상호 승합 작용에 의해서 만물이 생성된다고 보고 있다. 바로 이 이(理)와 기(氣)의 상호 관계의 문제를 가지고 율곡과 퇴계가 많은 논쟁과 토론을 전개한바 있는데, 이 "이기론"을 성경의 창조론에 연결시켜 본다면, 이 중에서 이(理)는 창조적 원리인 지혜 또는 말씀(wisdom/logos)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으며, 기(氣)는 태초에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 사용된 하나님의 창조의 기운인 "사랑의 힘" 곧 "루아호"를 간접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료된다. 그러나 태극(太極) 안에 이(理)와 기(氣)가 함께 들어있듯이 하나님의 영인 성령 안에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한 능력인 "지혜"와
"사랑"이 함께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또한 신플라톤주의 창시자인 플로티누스(Plotinus)의 순수심(pure mind)으로서의 "일자"(一者/the One)와 우리 한국의 고유철학사상인 일즉다(一卽多)의 원리인 한사상(韓思想)의 "한"(韓/큰 하나)도 만물의 생성변화의 원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표면적/직접적으로는 신의 창조의 기운인 입김/호흡으로서의 영 혹은 성령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넓은 의미로는 창조의 원리(지혜와 힘)로서의 성령의 활동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료된다. 왜냐하면 여러 관점에서 고려해 볼 때, 도교에서 말하는 만물의 존재의 근원적 원리 혹은 힘에 해당하는 도(道)와 플로티누스(Plotinus)의 만물을 탄생시키는 순수심(pure mind)로서의 "일자"(the One) 그리고 우리의 고유사상인 일즉다(一卽多)의 원리로서의 "한"(韓)은 다 같이 만물의 생성변화의 근원적 힘 혹은 원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승불교의 달마(Dharma) 곧 진리 또는 법(法) 즉 연기(緣起)의 법칙(法則)/pratitya-samutpada(dependent co-origination)도 만물의 생성변화의 원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연기의 법(칙)은 사물들 자체가 지닌 생성변화의 (인과/因果)법칙을 말하며, 어떤 외부적인 힘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의 힘과 지혜를 의미하는 영(pneuma)이나 성령과 직접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고 시료된다. 하지만 궁극적 진리를 깨닫게 하여 진각과 열반(Nirvana)에 이르게 하는 초월적 지혜인 "반야지"(Prajna)와는 상당히 통하는 요소가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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