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
 
"어떠한 사람의 인생도 플러스마이너스로 계산하고
나면 결국 제로만 남지요."
가깝게 지내는 친구 분이 입버릇처럼 나에게 하는
말이다. 고사 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 를
현대식 감각으로 표현한 말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20세 약관의 나이에 마케도니아 왕위에 올라
거대한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건설하고
32세의 아까운 나이에 말라리아 병에 걸려 사망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래와 같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죽거든 두 손을 관 밖으로 내놓아 남들이 볼 수 있도록 하시오.
만천하에 한 때 천하를 호령했던 알렉산드로스도 떠날 때는
빈 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소."

역시 "마케도니아인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라는 칭호를
받을만한 불세출의 대영웅 다운 유언이다.
그의 말이 맞다.
인생은 그 누구라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운명을 피해나갈 수는 없다.
 
2
 
나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60여 개의 우화들을
아주 좋아하다. 아무리 되풀이해서 읽어도 어렸을 때
읽었던 이솝의 우화들처럼 싫증이 나지 않는다. 늘 새롭게
내 심금을 흔들어 놓는다.
 
누가 나에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꾼을
한 명만 꼽으라 "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예수를 꼽을 것이다.
 
성경 누가복음에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 는 말씀은 예수가르침의 핵심이요 전부다. 

그런 면에서 그 사랑의 대상인 이웃이 무엇인가를 정의해 주는 아주 짤막한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여행 중에 강도를 만나 모든 소유물을 빼앗기고
거의 반죽음 상태로 길가에 버려졌다.
마침 그 길을 지나가던 한 성직자가 그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얼굴을 옆으로 돌린 채 피해 지나가 버렸다.
잇따라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레위인 이 그 옆을 지나갔다.
그도 성직자처럼 멀찍이 길을 피해 지나가 버렸다.

마지막으로 한 사마리아인이 그 현장을 지나간다. 그 당시
이방인들과 피가 섞인 인종튀기라고 온갖 멸시를 받고 있었던 천민이었다.
그는 그 나그네를 발견하자마자 달려가서 값비싼 기름과 포도주를 쏟아 부어

 응급치료한 후 자기 낙타 등에 태우고 인접 여관을 급히 찾아갔다.
그리고 주인장에게 충분한 돈을 건네주며 나그네의 치료를 간곡히 부탁했다.

아마도 그는 하루하루를 일을 해야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보따리 장사꾼이었을 것이다.

그는 환자의 완쾌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애처로움을 간직한 체 길을 떠나야 했다.

 "만약 치료비가 부족하면 돌아오는 길에 꼭 갚겠습니다." 라는 약속을 남기고.

그는 요즈음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 사람이다.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순진한 바보천치일지도 모를 일이다.
 
3
 
나는 여태껏 노상에서 강도를 만났다는 사람들을 향해서
"오직 칠칠치 못하면 백주 대낮에 강도를 만나?"하고
 비난을 해 온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또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향해서는
"사건의 자초지종도, 근본도 모르는 남의 일에 왜
끼어들어 위험스런 고생을 사서 하느냐 ? 물에 빠진 놈을 구해주면 적반하장으로
자기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은 놓는 것이 요즈음 세상이야!"하고 거침없이 힐난을 해왔다.
 
솔직히 성경에 나오는 그 선한 사마리아인은 시대를 잘 만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당시는 요즈음처럼 은혜를 원수로 갚는 약아빠진 세상이 아니었을 테니까.
 
얼마 전에 한국에서 오랫동안 노상걸인들을 찾아다니며
헌신적 봉사를 해온 한 글벗이 나에게 이런 실망에 찬 이메일을 보내왔다.
"내가 마치 걸인들을 육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실망에 전적으로 수긍이 간다."가난은 하느님도 어쩔 수 없다"는
옛말도 있지 않는가?
 
여기서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 쩨로 그 선한 사마리아인에게 이웃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인연이 바로 이웃이었다.
둘째, 그는 자신의  선한 행위에 대해서 아무런 보상을 기대하지 않았다.
셋째, 그의 선행은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일회용이었다.
 
인간들의 사랑은 깨달음처럼 순간적 행위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위대한 영혼도 일방적인 사랑이나 자선행위를
지속적으로 베풀다 보면 지치고 실망하기 마련이다.
지속저인 사랑은 자칫 잘못하면 우상으로 변해버리고
그 우상은 결국 위선으로 타락하고 말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인간 사랑이 가지고 있는 한계다.
 
4
 
아무튼 나는 이 우화를 읽을 때마다 마치 가시방석 위에라도
앉아 있는 사람처럼 마음이 찔려온다.
나는 평생을 늘 선한 사마리인들과 마주치기를 학수고대하며
살아 왔다. 심지어는 이를 위해 열심히 기도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일회용 선한 사마리인 역활이라도
제대로 수행해 본 기억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기회가 올 때마다 일부러
외면하고 기피해 왔던 사람이 나다.
 
나이를 들어가면서 가끔 내 지난 삶의 대차대조표를 계산 해보곤 한다.
아무리 플러스 편을 후하게 쳐서 계산해 보아도
사랑 면에서 만큼은 내 인생은 마이너스다.  빚쟁이 인생이다.
신이 당장 이 순간에 나를 천당과 지옥, 두 문 앞에
불러 세워놓고 천당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커트라인 점수가 제로라고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눈앞이 캄캄해 진다.
나는 입에서 변명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머리를 푹 숙인 채 지옥문 앞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더더구나 사도 바울이라도 나타나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고
주장을 하는 날에는 나는 아예 지옥문도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지 못할 것이다.
 
나의 지난 인생은 꽹과리 소리만 요란한 채
텅 빈 굉음소리만 남은 것 같다.
나는 알렉산드로스대왕도 아니지 않은가.
천하를 누리고 천상을 가졌던 그의 손도 결국 빈손이었다.

가만히 나의 작은 손을 들여다본다.
내려놓아야 할 것들로 제법 무게가 느껴진다.

그동안 지고 있었던 사랑의 빚, 은혜의 빚을
좀 더 내려놓고 내 손을 편하게 해주고 싶다.

내 유익을 구하지 않았던 작은 사마리아인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