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2011 미션 네팔 후기
(2011년 12월 4일, 주일)

2011년 10월 23일, 주일, 오후 1시 30분,
어느 듯 내가 탑승한 비행기는 카투만두를 벗어나
인도 상공을 날아 방콕을 향하여 간다.
차창아래 까마득히 멀리 내려다보이는
넓게 펼쳐진 산과 들 사이로 유난히 넓고 긴 사행천이
인도인들을 먹여 살리는 젖줄임을 과시하듯 웅장하고 유유하게 흐른다.
37일간의 고단한 여정, 잠시 기내의자에 몸을 기대어 긴장을 풀며
눈을 감고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본다.

금번 네팔 방문은 망설임 가운데 시작된다.
네팔에 가서 교회도 개척하고 선교병원도 세우기로 하였던
야심찬 계획이 게시의 취소로 일순간에 무너진다.

2년 전부터 함께 매주 토요일 나한테 와서 주일예배를 드리며
침뜸의술 공부를 하던 게시가 지난 9월 4일 주일 오후, 공부를 다 마치며,
일주일 후에 네팔을 가기로 최종적인 결정을 한다.
항공권 구입 및 침뜸 도구를 준비하기 위하여
다음 주 수요일 서울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에 전화를 하여 느닷없이 못 간다고 핑계를 댄다.

남을 도우며 대가를 바라고 도운 적은 없지만
떠날 준비를 다 하고
갑자기 얼토당토않은 전화를 받으니
괘씸한 마음이 든다.

그는 열심을 다하여 2년 반 동안 매주 토요일 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가난한 나라에서 돈 벌러 온 외국인이며
앞으로 목회를 할 목사인지라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도왔다.

잠 재워주고, 밥을 손수 해 먹이고,
물론 무료로 2년 동안 열심히 공부를 가르쳤다.
그가 한글보다는 영어에 익숙하여
인터넷으로 미국에서 원서를 구입하여 가르치는 수고도 하였다.
시간이 나면 가까운 곳에 관광도 시켜주고
멀리 강원도까지 가서 침뜸 봉사하는 곳을 견학도 시켰다.
그의 부인을 한국에 초청해 달라고 부탁하여
지난해 부인을 초청하여 한국에서 3개월 동안 지내도록 해 주었다.
가난한나라 사람을 한국에 초청하는 대사관 업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제천에 있는 간사에게 부탁하여
게시가 제천 교회에 다니며 교인들도 사귀고 봉사하도록 하여
게시가 본국에 귀국하여 교회를 개척하면
그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게시를 돕는 길이 열리도록 협력하였다.

작년 9월에는, 직접 네팔을 방문하여 포카라에 있는 게시네 집을 방문하고
그 지역사람들을 치료해 주며 앞으로 게시가 와서 선교활동을 잘 하도록
붐 조성을 해주고 돌아왔다.

‘네팔 미니스트리라’는 카페와 명함을 만들어 주어
게시목사의 비전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어느 날 수원에 계신 모 침례교회 목사님이 카페를 보시고 게시목사를 찾았다.
계시의 사정을 카페를 통하여 잘 알게 되었다는 그분은
앞으로 게시의 고향인 포카라 지역에 신앙공동체를 세울 것인데
그러게 되면 게시에게 월급도 주고 직원으로 쓰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분은 작년에 이미 포카라 지역을 방문하여 살펴보고 오셨다.
모든 일이 우리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어찌되었든 이러저러한 일로 게시의 약속 불이행 때문에
금번 네팔 선교계획에 빨간 경고등이 켜지게 된다.

내가 늘 특정한 수입원도 없이 해외 선교 다니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아 잘 알아서인지.
게시는 평소에 스스로 말하길 자기는 돈 버는 사람이기 때문에
네팔가게 되면 항공료로부터 체류비 일체를
모두 자기가 책임을 지겠으니 걱정하지 말고 함께 가자하였다.
3개월은 너무 짧으니 6개월이나 1년 정도 있어달라고까지 했다.
하여 금번 네팔 방문을 위하여 내가 별도로 여비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네팔 선교를 위하여 특별히 조직된 선교후원회원도 없고
마련된 자금도 없는 상태다.
참으로 난감한 처지다.
이런 경우 또 다시 하나님께 무릎 끓고 기도하는 길 밖에 없다.

가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가길 원한다면 어떻게 갑자기 경비를 마련하는가!

선교(Missio Dei)는 게시목사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기 위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진대
게시가 못 간다고 무조건 나도 포기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 기도해 보고 결정해야 할 사항이다.

한 번도 사람들에게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고
네팔 선교를 놓고 혼자 기도만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선교사역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세상 사람들의 힘을 빌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네팔 방문계획이 하나님께서 심히 원하셨던 일이었나 보다.
의외로 기도의 응답이 빠르게 이루어진다.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금번 선교사역이
게시 때문에 삐걱할 것을 아시고 미리 모든 걸 준비해 놓으셨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당신이 사랑하시는 신실한 믿음의 자녀들 중에서
후원자를 택하여 나를 돕도록 하신다.

여기저기서 잘 다녀오시라며, 나의 사정을 잘 알기나 하는 것처럼
평소보다 넉넉하게 선교헌금을 하신다.
항공료를 부담하시겠다는 분도 나선다.
평소와 달리 선교 가서 드시라고 반찬과 금일봉을 들고 오시는 분도 있다.

안타까운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풍요롭게 경비가 마련된다.
더욱 은혜로운 점은 이 분들은 모두 드러내지 않고
익명으로 협력하길 원하시는 분들이다.

이러한 일련의 되어 가는 일들은 보면서
선교는 내가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기도하였다면 아무런 응답이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불쌍한 암하렛츠(Amhaaretz)를 돌보기 위하니
천사들을 동원하여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신 걸로 생각한다.

출국하기로 계획한 9월 16일,
처음 계획한 날에서 단 하루도 연기하지 않고
나를 태운 타이항공이 네팔을 향하여 나른다.

실은 이렇게 모든 게 준비되어도, 현지에서 나를 도울 사람이 없으면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곳에서 혼자 선교봉사활동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현지에서 도울 사람도 미리 예비하신다.
게시가 취소하는 바람에 못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네팔에서 이메일로 전해들은 현지인 라형제가
네팔에 오시면 자기가 모든 걸 책임지고 돕겠으니
염려하지 마시고 오시라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게 된다.

하나님이 도우시고, 주위 사람들이 돕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가슴을 활짝 펴고
히말라야의 신선한 기운을 호흡하기 위하여
활기차게 대기를 뚫고 날아가는 비행기 속에 몸을 맡긴다.

9월 18일 오후 1시.
약속대로 라형제가 카투만두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하며
네팔 힐링 미션이 시작된다.

선교지 체험을 목적으로 2주 동안만 다녀올 생각으로
함께 오신 장로님과 먼저 안나푸르나 힐링 미션트레킹을 간다.
이는 트레킹 하면서 그 지역 사람들을 섬기는 일이다.
4박 5일 동안 매일 8시간에서 10시간씩 돌계단을 오르내리는
푼힐 트레킹 코스는 너무도 가파르고 힘든 산행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아프던 무릎도 오히려 안 아프고 잘 걷게 된다.

고레파니 지역을 오르고 내리며 불과 2박 3일 동안에
24개국이나 되는 많은 나라에서 트레킹 온 외국인들을 만난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분에겐 나이도 물어본다.
영국에서 온 전문 트렉커 한분만 나와 동갑이고
그 많은 나라에서 온 수백 명이 모두가 나보다 연하이다.

히말라야를 등산하기엔 이미 늦은 나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접하지만
난 아직 몇 년이고 더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세계 각처에서 온 젊은이들과 자연스럽게 만나며
아시아 선교비전을 넘어서서 세계 비전까지 생각해 본다.
특히 평소에 내가 가보고 싶었던 중동의 두바이에서
젊은 청년들이 약 20여명이 단체로 왔는데
그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두바이 선교의 비전도 갖는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4:13)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요, 헛것이다.”(약2:17, 20.)

포카라에서의 이른 새벽,
사랑곳(Sarangot) 전망대 앞에 펼쳐진 안나푸르나 전경의 장관은
수많은 나라에서 온 트레킹 족들을 감동시킨다.

페와호수 주변을 도는 승마 프로그램이 있다.
지난 번 장로님의 권유로 잠시 동안 한국에서 말을 타본 경험이
큰 효과를 발휘하여 신나게 말을 타고 호수 주변을 돌아본다.

폐와호수의 저녁노을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한 미국인 젊은 여자가 수시로 경치가 변하는
호수에 비치는 석양의 파노라마를 바라보며 시를 쓴다.
우리도 물가에 앉아 짜이 한 잔을 마시며
곧 넘어가는 석양을 아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