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사망에 대한 잡상들

1

지난 가을 마지막 잎사귀는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계절이 바뀌었다.

간밤에 소리를 죽이고 내리던 한 줄기 빗방울은 그냥 내린 것이 아니다.
언젠가 강이 되고 바다를 이루게 되리라.
하물며 한 사람의 생사야 오죽하랴!!

사람이 일초에 4명꼴로 태어나고, 2명꼴로 죽는다고 한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탄생과 죽음은 그만큼 우주를 변화시킨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한 대학생이 쏜 흉탄에 쓰러진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죽음으로 세계일차대전이 발발했다.

독재정권 시절, 마산 해변에서 발견된 고등학생 김주열의 시체가
18년간 일인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이처럼, 한 사람의 죽음이 세계지도와 역사를 통째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

세계 언론들이 며칠째 김정일 사망소식으로
도배질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올 크리스마스시즌의
다시없을 특별보너스인 셈이다.

나는 김정일 사망소식을 알리는 긴급뉴스를 한밤중에 접하고서
"혹시라도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발발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이곳저곳으로 돌리느라 잠을 설쳤다.

날이 밝자마자 가깝게 지내는 T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의견을 물었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며 호화호식을 해도
운동을 게을리 하면 그 꼴을 당하는 거야."
그의 김정일 죽음에 대한 첫마디 소감이었다.

평소에 건강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그로서는 아주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인간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버릇이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아주 재미있는 사실은
"사탄 김정일이 죽으면 북한문제가 해결된다."라고
철통같이 믿고 있었던 사람들의 반응이다.

마땅히 쾌재를 불러야 할 그들이
"후계자 김정은 체제가 흔들리면 한국에 큰 재앙이다."라며
불안감으로 안절부절 하고 있다.

한국의 증권, 부동산 가격들이 일제히 하락하고,
달라 가격이 치솟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깊은 속셈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자신들의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허겁지겁하고 있는 꼬락서니들이......,

"구관이 명관이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미신처럼 믿고 사는 공자학파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미지의 미래는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성경 누가복음에 이와 엇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 귀신이 기거하고 있는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집을 뛰쳐나간다. 백방을 뒤지고 쏘다니며 적당한 거처를
찾아보아도 헛수고만 한다. 결국 구관이 명관이라고 체념하며
익숙하고 낯익은 옛집으로 되돌아간다.
이번에는 영구히 거주할 결심으로 일곱 놈의 친구 귀신들을 대동하고.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 고 가르쳤던 예수가 이 우화로 말하려 했던 메시지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다.
귀신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두려움이 곧 귀신이라는 말이다.

2

역사는 학문이나 과학과는 달리 가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정을 통해서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역사다.

나는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생각할 때마다
나치독일의 히틀러가 연상된다.
관상, 성격, 파란만장한 생애가 왠지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아래 이야기들은 내가 주워들은 이야기들이다. 사실여부는
확인해 본 적이 없다.

히틀러 이야기다.
대학시절에 친구로부터 들은 에피소드다.
그 친구도 영국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한 교수로부터
강의시간에 들었다고 했다.

히틀러는 일차대전 시 동맹군이었던 독일군 사병으로 전쟁에 참전했다.
하루는 한창 전투 중에 바지를 내린 채로 숲 속 큰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대변을 보고 있었다. 마침 적진을 탐색하고 있던 영국군 척후병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 척후병은 불행히도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적을 사살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영국사병은 히틀러 면상에 총구를 정조준 했다. 방아쇠를 막 당기려는 순간,
"비록 적이지만 대변을 보고 있는 사람을 사살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너무 잔인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들었던 총을 그만 내려놓고 말았다.

그 영국사병은 전쟁 후에 영국의 한 유명대학의 영문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신문에 실린 히틀러의 사진을 보고서 "아, 바로 그놈이었구나!"라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다음은 북한 김일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몇 년 전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됐던 한 교포단체의 모임에 참석했다가
뉴욕 J 목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히틀러 일화보다는 다소 신빙성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김일성은 기독교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독실한 장로교 신도였던 어머니 강반석 씨와
칠곡교회 장로였던 외할아버지 강동욱 씨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걸로 알려져 있다. 그도 젊은 시절에는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기독교신자였다.

그는 출석하고 있던 교회 S 목사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됐다. 교회와 목사 사택을 부지런히 드나들며 사랑을 나누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충분히 가능하다.
목사 딸과 결혼을 결심한 김일성은 목사를 찾아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간곡히 청을 했다. S 목사는 김일성이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다는 이유를 들어
그의 청혼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누가 알겠는가? 그 영국 척후병이 만일 기독교인이 아니었더라면
히틀러에 의한 이차대전의 비극은 없었을 테고,
그 목사가 예수의 신발 끈을 맬 수 있을 정도의 사랑과 관용을
갖춘 기독교인이었더라면 김일성이 목사가 됐을 지를......,

3

"일이 잘 풀리면 내 탓이고, 잘못 풀리면 조상 탓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이 있다.
히틀러는 사생아로 태어나서 가난한 편모슬하에서 성장했다. 그는 제법 타고난 소질을 갖춘 화가 지망생이었다.

그의 가정형편은 길에서 행상하며 연명해야 할 정도로 빈곤했다. 그런 중에도 그는 어머님 허락 하에 미술가로서 꿈을 키워갔다. 그는 빈에 있는 유명 미술학교에 두 번 응시했다가 실패 하고 말았다.

그는 그 책임을 그 당시 미술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유태인의 인종차별주의에 돌렸다. 그것이 유태인들을 증오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만약 히틀러가 그의 꿈처럼 화가 됐더라면 세계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다.

김정일은 영화광이었다. 어려서부터 김정일의 관심과 취미는 영화였다.
대학시절에도 학교 강의실 대신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즐겼다.
그가 할리우드 영화들의 광적인 팬이고 영화 수집광이었다는 것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의 영화에 대한 집착은 한 때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감독 신상옥과
여배우 최은희를 납치하기까지 하여 국제적 비난과 망신을 샀다.

그는 성격이나 취미로 비추어 볼 때, 애초부터 정치인이 될 재목이 아니었다.
영화감독이나 영화배우가 되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 방면으로 진출했더라면 설령 유능한 영화감독은 못되었더라도,
폭력영화나 깡패영화에서 액션스타로 대성을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두 사람 다 경우는 다르나 그들의 파란만장한 독재자의 생애는 부모 탓이 클 것이다. 한 사람은 어머니의 가난 때문이었고, 한 사람은 아버지의 탐욕 탓이었다.
결국 모두 부모, 조상을 잘못 둔 탓이로다.

그런 면에서 "부모들의 95%가 자식들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미국의 여론조사결과는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대부분 부모들은 성공이나, 부, 권력보다는  자녀들의 행복을 원한다는 이야기다.

4

나는 개인적으로 정치인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세상 직업 중에서 정치처럼 특별한 전문지식이나
능력, 자격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는 직업은 없을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하사관 출신 히틀러나, 소령 출신 김일성, 대령 출신 카다피,
소장 출신 박정희처럼 하루아침에 위대한 정치가로 변신할 수 있는 직업이 정치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정치인들은 두 가지 기질만 가지고 있으면 만사형통이다.
첫째는 실체가 없는 미래와 현재를 맞바꿀 수 있는 장사꾼 기질이다.
그들은 대동강물이 자기 것이라고 속여서 팔아먹었다가 금방 꼬리를 잡히는

 봉이 김 선달처럼 어리석지도, 이솝의 "양 치는 목동과 늑대"이야기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 두 번에 목덜미가 잡힐 만큼 순진하지도 않다.

그들은 꼬리나 목덜미가 잡히기에는 너무 교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법적 처벌대상이 될 수 있는 사기나 거짓말 같은 것들은 아예 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화려한 약속만 하면 된다.
특히 독재자들은 이런 일에 도가 튼 달인들이다.

나폴레옹의 "위대한 로마제국의 재건", 히틀러의 "독일민족 지상주의",
김정일의 “강성대국"같은 미래에 대한 환상적 호언장담은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집권 5년 동안 연 7% 경제성장, 국민소득 $40,000, 세계 7번째 경제대국",
"선진조국과 통일을 이룩하겠다."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들인가?
감히 어느 누가 실체도 없는 미래에 대한 약속들을 현행법으로
고발하고 처벌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들은 미안하다고 사과할 필요조차 없다.
그 아름답고 호화찬란한 미사여구들은
이미 우민들의 머릿속에서 까맣게 잊혀 있을 테니까.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기질이다.
사냥꾼은 토끼사냥이 끝나면 필요 없게 된 사냥개를 잡아먹는다.
정치인들은 소기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면 필요 없는 동지들이나 수하들을 숙청한다. 그것이 정치인이 될 수 있는 두 번째 필수 자질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처럼
머리가 애교스럽게 비상해야 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재직 시 여자대학생 인턴과 섹스
스캔들 때문에 국회의 탄핵 직전까지 갔던 사람이다.

역시 그는 미국의 명문 예일 법대 출신 변호사다웠다.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나는 루인스키와 섹스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세 번씩이나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미국법상으로 "오랄섹스는 분명히 성교행위가 아니다."

5

많은 사람들이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이 "머리에 피도 체 마르지 않은 애송이"라고 그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역사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못한  무식에서 나온 말이다.

알렉산더대왕은 20세, 카다피는 27세, 나폴레옹과 김일성은 30세,
히틀러는 31세에 정권을 거머잡았다. 그 외에도 30대의 나이에
군력을 잡은 예는 수를 다 셀 수 없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시대는 그 시대와는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것도 헛소리에 불과하다.
컴퓨터시대에는 나이가 30대만 넘어도
자동적으로 고려장을 당하는 시대이다.

젊다는 것이 정치에서 오히려 큰 장점이 됐으면 됐지,
약점이 되지는 않는다. 이제 운명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젊다는 것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 쪽은 예측이 불가능한 부정적인 얼굴이고,
다른 한 쪽은 발전을 약속하는 긍정적인 얼굴이다.
이 시점에서 젊은 김정은에게 내가 걸고 있는 베팅은 그의 긍정적인 얼굴이다.

김정은이가 이육사의 시 "광야"에 나오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민족의 미래를 향해서 노새 등에 업혀서라도 느릴망정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기대해 본다.

이것이 나의 올 크리스마스 한 가지 바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