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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살아있는 신과 함께
(2011년 10월 18일, 화요일)
치료받은 사람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아침부터 환자가 밀려온다.
네팔인 들은 보통 하루 두 끼 식사가 정식이다.
오전 10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오후 4시경에 저녁을 먹는다.
그러므로 환자들은 내가 점심 먹어야 되는 것을 모르고
늘 점심시간에 붐빈다.
봉사자들이 뜸을 떠 주는 사이 잠시 짬을 내어 혼자 점심을 먹고 온다.
라형제 역시 네팔인이라 점심을 먹지 않고
음식점에 가서 짜이만 한잔 마시고 온다.
바쁘게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저녁식사를 일찍 하고
더르바르 광장에 나간다.
사람구경도 하고 기회 되면 전도도 하기 위해서다.
혼자지내며 심심하니 성경을 보든가 전도 나가는 일 밖엔 할 일이 없다.
전도는 예수께서 하신 방식대로 일대일 혹은 일대다수 맨투맨 방식이다.
자연스럽게 사귀어 커피 점에도 가고, 광장일대를 함께 걷든가
때론 집을 방문하여 환자가 있으면 치료도 해주고 기도를 해준다.
이 세상에 아픈 이를 위해 치료해 주고 기도해 주는 것
싫어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 이들은 나의 후견인이 되기도 한다.
주일이면 나를 교회로 안내하여 내 옆에 앉아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그 중에 하나가 라형제이다.
더르바르 광장에는
마침 텔레콤 회사의 후원으로 네와르 전통 민족문화공연을 한다.
돈 주고도 보기 힘든 공연을 공짜로 보게 되다.
각 민족별로 색다른 고유의상을 입고 나와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다민족 사람들이 각자 개성 있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함께 어우러져 사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이들은 우리처럼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게 아니고
다민족 국가를 자랑한다.
지구촌의 각 국가들은 지금 다민족 국가로 변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우리의 전통적 기반을 뒤흔드는
문화 종교적 위기상황이 도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삼면이 바다로 막히고 한 면은 북한으로 막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끼리만 살아온 단일민족 단일언어 국가는
지구상에 우리나라밖에 없다.
지구촌 시대가 열리고 다민족 시대의 도래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단일민족에 만족할 수는 없게 되었다.
우리와 피부와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민족을 받아들이고 품어야 할 때가 되었다.
급속히 변화하는 세계흐름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세계화의 시대에 우리만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
네팔의 상용어는 영어가 아니고 네팔리 언어가 따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 행사에선 항상 영어를 사용한다.
사회자가 네팔리어를 사용하지 않고 유창하게 영어를 사용해도
네팔리들은 불편해 하지 않고 거의가 이해하는 듯하다.
히말라야를 찾는 많은 외국인들을 접하면서
이들은 이미 이루어진 다민족 사회에서
여러 나라 말을 할 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산다.
대학이상 나온 사람이면 보통 4개국어를 말을 할 줄 안다.
영어는 기본이고 힌디어, 파키스탄어, 티베트어 등은 대부분 할 줄 안다.
그리고 네팔 접경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위의 나라들을 비자 없이 국경 없이 드나들기도 한다.
축제의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축제가 잘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보살펴 달라는 의미일까?
오늘 밤 특별 게스트로 살아있는 신, 쿠마리 여신을 모셔왔다.
행사가 시작되자 주최 측에서 가장 먼저 여신을 소개하고
신전 탑에 준비된 신좌로 정중히 안내한다.
먼젓번 카투만두 더르바르 광장에 갔다가
쿠마리 여신을 만나기 위해 한 시간 이상 기다렸는데
겨우 일분간만 보여주고 사라진 적이 있다.
그렇게 보기 힘든 쿠마리 여신을 장시간 볼 수가 있다니!
큰 행운을 만난 기분이다.
카투만두의 쿠마리 여신은 겨우 여섯 살 정도 된 어린 신이었다.
오늘 등장한 쿠마리 신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성숙한 미모의 여신이다.
공연에는 별 관심이 없어지고
신좌에 조용히 앉아 있는 여신에게만 관심이 집중된다.
여신은 오른손을 든 채 대중을 향하여 손바닥을 펴고
신좌에 위엄 있게 앉아 있다.
축복하는 의미인지 아니면 환영한다는 의미인지 모르겠다.
여신은 한 시간 이상의 긴 시간이 흘러도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마네킹처럼 똑 같은 자세로 앉아있다.
보통사람은 하기 힘든 부동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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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공연이 무르익을 즈음
무대 뒤로 돌아 여신이 앉아있는 탑 가까이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
나도 슬며시 따라가 본다.
가까이 가 보니 쿠마리 여신은
정말 신처럼 존귀하고 고고하며 경이로운 모습으로
한 치의 흐트러진 모습도 보이지 않고 위엄 있게 앉아있다.
용감한 한 외국인이 접근하여 감히 여신과 대화를 시도한다.
그가 정중히 경배한 후 여신의 옆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여신이 살짝 미소를 지어준다.
나도 뒤 따라 여신이 앉아 있는 층계로 올라가
경배는 하지 않고 사진만 찍는다.
나에겐 미소를 지어주지 않는다.
아마 경배를 안 해서 그런가보다.
쿠마리 여신도 역시 살아있는 인격체라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가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으로 칭할지라도
내 자신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막상 쿠마리 여신의 옆에 앉아 있으니 이상한 감정이 든다.
사진을 찍을 때도 그랬고
계단을 내려올 때도 계속 다리가 후들거린다.
호흡도 고르지 않다.
상징은 실체를 은유한다.
비록 아무것도 아닌 형상일지라도
상징적 의미가 부여되면
우리의 정신 속에서 실체의 역할을 해낸다.
하여 우상은 멀리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용기를 얻어
내 뒤를 따라
쿠마리 여신을 경배하고 사진을 찍는다.
다음 날
라형제에게 자랑하며 사진을 보여준다.
진짜 쿠마리 신이 아니라며 웃는다.
이는 어릴 때 쿠마리 여신이었는데 지금은 퇴임하고
처녀로 살며 과거 쿠마리 신의 모습을 지키며 사는 이라고.
쿠마리 여신은, 아주 어릴 때 신으로 선발되어
초경을 하기 전까지만 여신의 행세를 하고
그 이후엔 신좌에서 물러나 신전 주변에 홀로 살며 지낸다.
나는 처음부터 진짜 신으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가짜 신이라고 해도 별로 서운함이 없다.
퇴임한 쿠마리 여신도 실제 신이 아니고
현재 신으로 추앙받는 쿠마리도 실제 신이 아닐 바엔
가짜면 어떻고 또 진짜라 한들 내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대여섯 살 된 어린 쿠마리 여신보다는
퇴임했을지언정 성숙한 여인으로 장성한 모습이
더 아름답고 경이롭지 않는가!
신을 너무 많이 섬기다 보니
결국엔 살아있는 신까지 만들어 숭배하는
네팔리들이 한심하기도 하고, 한편 재미있기도 하다.
놀라운 사실은 힌두교인 들은 살아있는 어린 쿠마리 신을
진짜 신처럼 경배하고 떠받든다는 점이다.
전혀 장난으로 하거나, 도네이션을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고
실제로 섬기기 위해서 살아있는 신을 세운다.
은퇴한 쿠마리 여신도 상당히 존경을 받는다.
그녀는 과거 신으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지키기 위해
평생 결혼하지 않고 수도자의 길을 걷는다.
네팔리들은 항상 신을 경배하며 수없이 많은 신들과 함께 산다.
하루도 신 없이 사는 날이 없다.
이곳은 사람 숫자 보다 신들이 더 많은 신들의 나라이며
사람들은 수많은 신(신상)과 섞여 산다.
인간은 신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일상생활은
신 없는 세상의 사람들처럼 산다.
너무 많은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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