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갬페다라 산마을
(2011년 10월 15일, 토요일)

오늘은 지난주일 갔던 갬페다라(Ghyampe Dara) 산마을
임마누엘 교회로 봉사 가는 날이다.

악취와 매연과 혼잡스러운 우상숭배의 도시를 빠져나와
숲의 향기를 맡으며 산으로 향하는 마음은
지옥에서 탈출하는 듯 한 해방의 기쁨으로 충만하다.

도심을 벗어난 네팔의 산은 어디를 가나 규모가 크다.
작은 동산도 우리네 태백산만큼이나 크고 웅장하다.

네팔의 산은 아직은 개발한다고 마구 훼손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아무데나 버리는 쓰레기로 인해 구석구석 오염되고 썩어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꾸밈없는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이 인간들 때문에 더렵혀지는 모습을 보며
죄책감까지 든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여야 할 것이다.
거대한 생명체인 가이아는 인간들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신음한다.
그러면서도 인간들은 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도시의 탁한 먼지와 지독한 향불 냄새로 오염된 폐를
신선한 산 공기로 씻어내며 오토바이를 쉼 없이 달려 갬페단다에 이르니
완전히 지옥을 탈출하여 천국입구에 다다른 기분이다.

산등성이 안개 속에 피어난 노란 유채꽃과 만발한 연분홍 역기 꽃은
한 폭의 수채화를 펼쳐 논 느낌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의 순발력은 조금씩 떨어져도
감수성은 여전히 민감하여 꿈임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설렌다.

지난주일 함께 예배 드렸던
100세 되신 할머니가 마을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신다.
정정하신 모습으로 봐서 할머니의 마음도 청춘이실 게다.
비록 몸을 늙어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늘 꿈과 소망을 갖고 젊게 사시니 이것이 믿음의 복이 아니겠는가.

물 좋고 산 좋고 경치 좋아 그런가?
산마을 노인들은 노환으로 인해
몸의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긴 하지만 거의가 장수하신다.
병원이 없고 약을 먹지 않으니, 연약한 생명은 아예 5세 이전에 죽게 되고
면역력이 강한 사람들만 살아남아 산 사람들은 거의 모두 장수한다.
히말라야 산하에서, 블랙야크처럼 높은 고지에서도 강하게 살려면
자연에 순응(順應)하고 동화(同化)되어야 한다.
이를 거역하는 자는 스스로 도태(淘汰)된다.

80세 좀 넘으신 두 분 할머니가 일찍 교회에 오셔서 우릴 기다리다 반가이 맞이하신다.
지난주 치료 받고 몸이 매우 좋아졌다며
라형제 부인 잔디카의 두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연실 인사를 하신다.
인사를 받던 잔디카가 나에게 다가와 잘 안 되는 한국말로
너무 행복하다며 봉사가 이렇게 행복한 줄 몰랐다고
“목사님 감사합니다”라고 배꼽인사를 몇 번이나 한다.

봉사자들이 뜸을 뜨는 틈을 타 잠시 밖에 나와
히말라야 산군의 설산을 바라보며 아픈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편다.
오전에 빨래하시던 100세 할머니가 이번엔 교회 옆 오솔길에 앉아 낫을 갈고 계시다.
풀을 베시려는 지 다 간 낫을 들고 풀숲으로 가신다.
시간이 된다면 할머니와 유채꽃 밭을 거닐며 이런 저런 살아오신 이야기나 나누고 싶다.

100세 이상 사시는 분들은 대부분 별로 아픈데도 없다.
그 연세가 되면 삶의 방식이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른다.
죽음도 삶도 슬픔도 행복도 그리고 시기와 질투와 욕망도 모두 초월한다.
두려움조차 초월하여 혹 야생 짐승이 옆이 와도 걱정이 없다.
자연 모두가 동무요 친구다.
그렇게 초월한 삶을 사는 자는
내 안에 하늘나라가 있고, 하늘나라 안에 내가 있다.
살아있어도 죽은 자처럼 살고, 죽어도 산자처럼 기억된다.

지난 주 나를 픽업한 산타씨네서 점심을 준비한다.
지난 번 점심 저녁까지 굶고 봉사하던 모습이 안쓰러웠나보다.
시장해서 인가 달밧이 내 입맛에 딱 맞다.
내가 마치 네팔사람인양 먹고 또 먹고 실컷 먹는다.
연한 콩순을 따서 감자와 양파 등과 섞어
유채꽃 기름으로 볶아 만든 반찬이 한국음식처럼 맛있다.
이들은 나보다 더 맛있게 먹는다.
큰 쟁반에 서너 공기의 밥을 수북이 담아 손으로 썩썩 비벼 잘도 먹는다.
하루에 두 끼 먹으니 한 번 먹을 때 잔뜩 먹는다.
하여 이들의 배는 남자나 여자나 모두 만삭이 된 모습이다.
배가 불러야 끈도 없이 입는 여자들의 사리(치마)가
밑으로 흘러내리지 않는다.

오늘은 교인들이 치료받는 것을 양보하고 마을 사람들을 전도하여 데리고 왔다.
약을 써 보지 않은 분들이라 신통하게 효과가 나타난다.
그리고 작은 침으로 병세가 호전되는 모습이 매우 신기한 듯
많은 마을 사람들이 슬금슬금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해가 일찍 넘어가 밀려오는 환자를 다 못해 주어 죄송한 마음이 든다.
하루 종일 내 옆에서 자원봉사 한 요겐드라 형제의 오토바이를 타고 하산한다.
비포장 길에 오토바이가 덜컹거려 배낭을 짊어진 내 허리를 더욱 압박한다.

요겐드라는 내 숙소 옆에서 조그만 슈퍼를 운영하는 29세 청년인데
오늘 하루 종일 가게 문을 닫고 자원봉사 하였다.
아마 아픈 다리를 치료받고 난 후 은혜를 갚으려는 모양이다.